바리공주는 한국 무속의 기원이 되는 설화다. 버려진 공주가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가 생명수를…

바리공주는 한국 무속의 기원이 되는 설화다. 버려진 공주가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가 생명수를 가져온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무속에서 무당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를 잇는 일을 왜 하는지 설명하는 근원적 이야기다. 흥미로운 건 이 구조가 한국만의 특수한 상상력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 곳곳에서 사랑하는 이를 살리거나 부모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가는 비슷한 전승이 반복된다. 인도의 사비트리는 남편을 되찾기 위해 야마, 죽음의 신과 협상했고, 결국 남편을 살아돌아오게 했다. 그리스의 오르페우스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으러 지하로 갔으나 끝내 실패했다. 아프리카 키쿠유족의 전승에서는 완지루라는 여인이 희생되자 청년이 저승까지 찾아가 구출한다. 중국 불교 전승에서 무렴(목련)은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부처의 가르침을 빌려 구제했다. 한국의 심청전도 같은 맥락이다. 딸이 자기 몸을 바쳐 인당수에 빠지고, 죽음을 넘어 황후로 부활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다. 모두 사랑과 효, 헌신이 저승의 벽마저 뚫는다는 주제를 공유한다. 이보다 앞선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메소포타미아 아카드의 이난나, 혹은 수메르 전승의 이슈타르 이야기에 닿는다. 풍요와 생명의 여신인 이난나가 저승으로 내려가 일곱 관문을 지나며 힘을 상징하는 장신구를 하나씩 빼앗기고, 마침내 죽음을 맞지만 다시 부활한다는 구조다. 이 역시 죽음과 부활, 생명의 순환을 상징하는 전형적 신화다. 그리스의 페르세포네 신화 역시 저승에 갇혔다가 일정 기간만 지상으로 돌아오며 계절의 순환을 설명한다. 바리공주는 이 긴 계보 속에 놓인다. 부모를 살리기 위해 저승으로 가는 모티프는 인류 보편의 서사지만, 한국에서는 그것이 무당의 시원 설화로 정착해 ‘죽은 자를 위해 산 자와, 산 자를 위해 죽은 자와 통하는’ 직업의 기원이 된다. 이 신화가 메소포타미아에서 전해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실크로드와 불교 전래, 중앙아시아 전승을 거쳐 간접적인 영향이 스며들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바리공주도 약을 구하기 위해 '서역서천국', 인도로 향한다. 이 이야기들은 문화마다 옷을 달리 입었지만, 공통의 메시지를 전한다. 죽음은 절대적인 것 같아도, 인간은 그것을 넘어서려는 집요한 상상력을 키워왔다. 어쩌면 수메르의 이슈타르 여신은 그 상상력이 한국 무속과 맞닿아, 지금도 굿판에서 살아 있는 힘으로 존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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