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해 처음 들은 건 아마 90년대 중반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루저였고 지금도 루저다…
내가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해 처음 들은 건 아마 90년대 중반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루저였고 지금도 루저다. 트럼프 사업 분석 – https://www.facebook.com/unattached/posts/pfbid05fi2KbC1kgzMfudmUY2tsL7uGhW1rFJmZyyej6eB23Sszx1zx21MM8obzgvySJVQl 아래는 1990년 배니티 페어에 실린 기사에서 따왔다. "도널드 트럼프는 늘 아버지를 롤모델로 여겼다. 『거래의 기술』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프레드 트럼프는 1905년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스웨덴에서 온 그의 아버지는… 그럭저럭 되는 식당을 운영했다.” 사실, 트럼프 가문은 독일계였고 절박할 정도로 가난했다. “어느 땐 어머니가 바느질 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 갔지.” 프레드 트럼프가 내게 말했다. “한동안 아버지가 클론다이크에서 식당을 했지만,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셨어.” 도널드의 사촌 존 월터는 자세한 가계도를 한 번 쓴 적이 있다. “우린 같은 할아버지를 공유했어요.” 월터가 내게 말했다. “그리고 그분은 독일인이었지요. 그게 어쨌다는 거죠?” 프레드 트럼프는 뉴저지 출생이었지만, 가족들 말로는 자신의 독일 배경을 숨길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고 한다. 세입자 대부분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전쟁 후엔, 자기 혈통을 알면 유대인들이 절대 자신에게서 집을 빌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이바나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프레드 트럼프의 이런 위장은, 사업에서 무엇이든 통한다는 인상을 아이에게 쉽게 심어 줄 수 있다. 이 점을 도널드 트럼프에게 묻자 그는 얼버무렸다. “사실 좀 복잡해요. 제 아버지가 독일인은 아니었고, 아버지의 부모가… 독일계고, 스웨덴계고, 유럽 전역에서 조금씩 온 거죠… 그래서 2판에선 다른 나라들에 좀 더 비중을 둘까도 생각했어요. 스웨덴에서 편지가 너무 많이 와서요. 의회에 와서 연설해 달라느니, 대통령을 만나 달라느니…”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의 독일적 배경의 몇몇 측면을 꽤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존 월터는 트럼프 오거니제이션에서 일하는데, 사무실에서 도널드를 만날 때마다 발뒤꿈치를 ‘딱’ 하고 맞대며 “하일 히틀러!”라고 한다고—아마도 가족 농담일 거라고—이바나가 어느 친구에게 말했다. 지난 4월, 아마 체코 민족주의 감정이 치솟은 탓인지, 이바나 트럼프는 자신의 변호사 마이클 케네디에게, 남편이 가끔 침대 옆장에 보관해 둔 히틀러 연설집 『나의 새 질서(My New Order)』를 읽는다고 말했다. 케네디는 지금 그 책 한 부를 사무실 옷장에 수류탄 다루듯 보관하고 있다. 히틀러의 연설은 초기 시절부터 1939년의 가짜 전쟁(Phony War) 시기까지 이어지며, 그가 선전의 대가임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사촌 존이 그 히틀러 연설집을 줬습니까?” 내가 트럼프에게 물었다. 트럼프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걸 누가 말했지?” “기억이 안 납니다.” 내가 말했다. “사실은, 파라마운트의 내 친구 마티 데이비스가 『나의 투쟁』을 내게 줬어. 그는 유대인이야.” (“히틀러에 관한 책을 주긴 했습니다.” 마티 데이비스가 말했다. “하지만 『나의 투쟁』이 아니라 히틀러 연설집 『나의 새 질서』였어요. 그가 흥미로워할 거라 생각했죠. 난 그의 친구지만, 유대인은 아닙니다.”) 잠시 뒤, 트럼프는 이 주제로 다시 돌아왔다. “설령 내가 그 연설들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그렇다고 단정하진 않아—난 절대 읽지 않을 거야.” 이바나는 친구들과 변호사에게 트럼프가 숨은 나치라고 설득하려는 걸까? 트럼프는 독서가도, 역사광도 아니다. 어쩌면 히틀러 연설집 소지는 히틀러의 선전술에 대한 관심을 보여 줄 뿐인지도 모른다. 총통은 스탈린그라드와 북아프리카에서의 패배조차 위대한 승리로 묘사하곤 했다. 트럼프 역시 줄어드는 자기 세계에 계속 의미를 부여했다. “나만큼 현금흐름이 좋은 사람은 없어.” 그는 이미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고 난 한참 뒤에도 『월스트리트 저널』에 이렇게 말했다. “난 현금의 왕이 되고 싶어.” 프레드 트럼프는 아들처럼 과장을 마다하지 않았다. 도널드가 어릴 적, 아버지는 “욕실이 아홉 개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타라 같은 기둥이 있는 집”을 샀다고 말했다. 물론 그 집은 퀸스에 있었다. 도널드는 언젠가 더 큰 세계를 그리게 되었다. 사치에 매혹된 건 도널드의 어머니 메리였다. “어머니는 웅장함에 대한 감각이 있었어요.” 트럼프가 내게 말했다. “엘리자베스 여왕 대관식을 보며 푹 빠져 있던 어머니 모습을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그런 데 전혀 관심이 없었고요.” 도널드 트럼프는 공사 현장에 아버지를 자주 따라갔다. 둘은 몹시 가까웠고, 거의 영혼의 짝 같았다. 가족사진에서도 프레드와 도널드는 함께, 종종 팔짱을 끼고 서 있었고, 도널드의 누이들과 막내동생 로버트는 어딘가 바깥에 있는 듯했다. 이바나는 종종 친구들에게 도널드가 아버지를 설득해, 형제자매 셋의 신탁기금까지 자신이 관리하게 했다고 말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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