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기득권 개혁에는 크게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대통령이 직접 명령을 내리고 칼을 휘…
강한 반발이 예상되는 기득권 개혁에는 크게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대통령이 직접 명령을 내리고 칼을 휘두르는 ‘직접 개입형’이고, 다른 하나는 토론과 조율 과정을 다양한 세력과 대중에게 맡기며 변화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분산·숙의형’이다. 전자는 속도가 빠르고 성과와 책임이 분명하지만 에너지를 급속히 소진한다. 후자는 느리지만 성공할 경우 합의 기반이 단단하고 제도화 가능성이 높다. 보수 정권은 거의 예외없이 직접 개입형이었다. 4대강, 일제 과거사 불가역적 합의, 역사교과서 등 대표적 정책들은 대부분 정부가 명령하고 국가가 동원되는 방식이었다. 보수 지지층은 강한 리더십을 원하고 빠른 개혁을 선호한다. 국가가 방향을 정하고 민간이 따르는 구도에 익숙하다. 민주진영 지지자들도 사실 이 성향이 강하지만 민주당 출신 대통령들은 기본적으로 골수까지 민주주의자들이라 제왕적 리더십을 원하던 지지자들과의 갈등이 있었다. 김영삼 역시 전형적인 직접 개입형이었다.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 전두환·노태우 구속 같은 개혁을 대통령 자신이 칼을 휘둘러 처리했다. 아직 검찰이 머리를 들기 전이고 조중동이 협조적인 평온한 환경이었다. 국민의 열광을 얻고 지지율 92%를 기록했으며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를 빠르게 제거했다. 다행히 한번 개혁으로 제도화가 가능했던 이슈들이었지만, 결국 개혁 동력은 2-3 년 안에 고갈됐다. 아들의 비선조직, 후반기 외환위기 대응에서 나타난 혼란은, ‘대통령 개인의 힘’만으로는 장기전이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김대중은 적대적 언론환경에도 그 한계를 절묘하게 극복했다. 외환위기 수습과 구조조정 초기에는 결단을 내리면서도, 이후에는 반대 진영의 인사까지 정책 설계와 논의에 참여시키며 숙의 과정을 설계했다. 노사정위원회를 만들어 노동계·재계·정부가 합의안을 만들게 했고, 금융 재벌 구조조정 과정에서도 빅딜 등으로 개혁 당사자들의 의견도 존중했다. 햇볕정책에서도 보수적 군인 출신 임동원 등을 기용해 보수 안보 엘리트의 심기를 살폈다. 심지어 자신의 정책을 비판하던 전문가들까지 개혁위원회에 포함시켜 논쟁을 제도화했다. 이러한 참여 구조 덕분에 개혁은 단발성으로 끝나지 않고 제도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노무현은 숙의형의 이상을 가장 멀리 내다본 인물이었지만, 현실에서는 정치적 자원이 부족했고 구조적 저항을 돌파하지 못했다. 공론화, 국민참여, 토론 중심의 국정 운영을 시도했으나 성과보다 갈등이 더 부각되며 “주체 없는 개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문재인은 반대로 숙의형을 끝까지 밀어붙인 사례다. 공수처 설치나 탈원전, 부동산 대책처럼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정책 방향을 수정하고 사회적 논의를 거쳤다. 속도는 느리고 체감은 약했지만, 정책의 책임이 대통령에게 집중되지 않고 사회 전체로 분산되는 효과를 노렸다. 윤석열의 난, 검찰개혁처럼 직접적 수술이 필요한 이슈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했으나, 공수처 제도화, 수사 기소 일부 분리 등 구조적 개혁을 성공시켜 훗날 윤석열 내란 진압에 토대를 마련했다. 이재명은 성남·경기 시절을 보면 직접 개입형 성향이 강했다. 행정·예산·정책을 본인이 진두지휘하며 결단력 있게 추진했다. 하지만 정권 초반 4개월 동안은 외교·외부 변수 탓인지 거의 전형적인 분산형 경로를 걷고 있다. 정책 추진도 조율과 토론 중심으로 진행되며, 전면 충돌을 피하는 모습이다. 인사와 정책토론에 속도전을 원하는 그룹과 급진적 개혁을 부담스러워하는 그룹이 동시에 들어가 실제로 갈등을 겪으며 토론이 이뤄지고 있다. 아직 제대로 된 정책 스타일이 나오기에는 이르지만 직접적 수술이 필요한 개혁 대상이 많아서 결국 직접 칼을 들어야할 곳에는 직접 나서며 혼합형으로 갈 것으로 본다. 조국이 만약 차기 대통령이 된다면 개혁 스타일은 문재인과 노무현의 숙의형을 기본으로 하되, 김대중처럼 전략적으로 결단을 결합하는 혼합형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 그는 학자 출신답게 정책 토론과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고, 검찰개혁 논쟁에서도 공론장과 제도 설계 과정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동시에 본인과 가족이 겪은 정치·사법적 갈등을 통해 기득권 구조의 뿌리 깊은 저항을 체감했고 정치 입문 결정 때의 결단력을 봤을 때, 필요할 경우 정면돌파형 결단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합의와 토론을 전제로 하되, 넘지 못하는 벽 앞에서는 직접 칼을 드는’ 전략적 숙의형 개혁이 조국의 스타일이 될 가능성이 크고 그게 맞다. 이는 김대중의 방식을 한층 현대적으로 변형한 형태이자, 이재명이 나아갈 방향과도 일부 겹치는 지점이다. 진보 개혁이건 보수 개혁이건 개혁의 길은 한 가지가 아니다. 빠르게 칼을 휘두르는 것도, 느리지만 단단히 토론을 거치는 것도 각각 장단점이 있다. 그러나 장기적 성과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김대중 모델이 여전히 가장 참고할 만하다. 결단으로 판을 열고, 숙의로 제도를 굳히는 것. 그것이야말로 한국 정치가 구조적 변화를 지속시키기 위해 배워야 할 전략이다. —- 1980년대 영국의 마거릿 대처는 전형적인 직접 개입형 리더십을 구현했다. 취임 직후 공공부문 구조조정, 광산노조와의 정면충돌, 공기업 민영화, 금융시장 규제 해제 등 대대적인 개혁을 단칼에 밀어붙였다. 그 과정에서 극심한 사회 갈등과 파업이 벌어졌지만, 정치적 책임과 성과가 모두 그녀에게 집중되면서 “철의 여인”이라는 카리스마적 리더십이 확립됐다. 이 직접형 모델은 개혁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장점이 있었지만, 사회적 분열과 갈등이라는 부작용도 컸다. 신자유주의를 향한 돌진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영국 경제 구조가 이후 20~30년간 완전히 재편된 점에서 어쨌건 ‘결단주의 개혁’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직접 개입형 스타일로 우정공사 민영화, 신자유주의 구조개혁을 밀어붙이며 정치판 전체를 재편했다. ‘반개혁 세력’을 적으로 규정하고 국민투표에 가까운 총선 전략을 통해 개혁을 관철시킨 것은 카리스마 리더십의 전형적인 사례였다. 단기적으로는 정치적 저항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지만, 제도화 과정에서 후속 정부가 이를 지속하지 못한 한계도 뚜렷했다. 이는 직접형 개혁의 단점 ― 성과가 리더십의 지속성과 직결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정부는 인종차별 철폐라는 거대한 사회 개혁 과제를 앞두고 직접 명령 대신 숙의와 참여를 택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붕괴 이후 보복이 아닌 화해를 선택하고, 진실화해위원회를 설치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진실을 밝히도록 한 정책은 사회 구성원 모두를 개혁 과정의 주체로 끌어들였다. 이 전략은 속도는 느렸지만 제도적 정당성을 확보했고, 극단적인 보복 정치나 내전을 피하면서 국가 통합을 이뤄냈다. 만델라의 사례는 숙의형 개혁이 사회적 기반을 튼튼히 할 수 있다는 대표적 예다.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 개혁 모델은 장기적 분산형의 교과서다. 스웨덴, 덴마크 등은 1990년대 재정위기 이후 정치권, 노조, 기업, 시민단체를 모두 포함하는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연금, 노동시장, 조세제도를 재설계했다. 속도는 느렸지만 정책은 국민적 합의 위에서 추진됐고, 이후 정권이 바뀌어도 개혁 방향이 유지되며 장기적 제도로 자리잡았다. 이는 숙의형 개혁의 지속성, 제도화 가능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다. 1978년부터 시작된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은 공산당 일당체제를 유지한 채 개혁을 추진했지만, 모든 걸 덩의 명령으로 해결한 건 아니었다. 초기에는 농업 생산책임제와 외자 유치 특구 설립 등에서 결단을 통해 돌파구를 열었지만, 이후 정책의 구체적 설계와 실행은 지방정부·학계·기업가 집단에 상당 부분 위임했다. 예컨대 각 지방이 서로 다른 모델을 실험하고 중앙이 이를 평가·확산하는 방식은 전형적인 분산·숙의형 요소였다. 이 절충 전략 덕분에 21세기 들어 체제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세계사에서 가장 빠른 경제 전환을 이룰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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