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나찌독일은 사실 여러모로 신기한 존재였다. 역사의 전개를 살펴보면 의문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2차대전 나찌독일은 사실 여러모로 신기한 존재였다. 역사의 전개를 살펴보면 의문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1차대전의 패배와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박살이난 독일이 왜 갑자기 강대국이 돼서 유럽을 정복했나. 어떻게 경제를 살렸고 어떻게 첨단무기를 개발하고 생산한건가. 유럽을 다 점령했으면 그것만 잘 지켜도 역사상 최강의 제국 탄생인데 왜 멈추지 못하고 소련 등을 침공한 건가. 유태인을 왜 그렇게 미워했나. —- 사실 한 가지만 알면 이 모든 의문점은 풀린다. 돈이다. 나찌독일은 돈을 어떻게 마련한 것인가. 여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독일 경제는 망가진 상태였고 생활 수준은 오늘날 이란이나 남아공 수준이었다. 패전과 대공황, 30%가 넘는 실업율의 여파로 막강했던 제국이 빚더미에 앉은 상황이었다. 특히 패전국으로서 연합국들에게 계속 내야하는 배상금 때문에 독일국민들의 자존심이 바닥을 친 상황이었다. 이걸 바로 잡겠다고 약속하고 정권을 잡은 게 나찌였고, 실제로 잡았다. 어떻게 한 걸까. "금속가공 연구 협회"(Metallurgische Forschungsgesellschaft m.b.H.)라는 종이회사를 등록하고 그 회사에서 다양한 군수업체에 그 회사 이름을 딴 MEFO bill, 미포 빌, 미포 상품권이라는 걸 발행했다. 정부에서는 은행들에게 이 미포 빌을 나중에 분명히 마르크로 바꿔주겠다고 약속했고 은행들은 약간의 수수료를 제하고 군수업체들에게 미포 빌을 마르크로 환전해줬다. 사실상 화폐 발행 없이 무제한으로 화폐를 발행했다. 그냥 마르크를 찍지 않고 이렇게 한 이유는 인플레이션 문제도 있지만 연합국들이 독일을 감시중이었다는 점도 있었다. 문제는 직접 와서 감시를 한 게 아니라 예산 등 보고서만 받아보며 재무관리만 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렇게 화폐를 발행하지 않고 사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로 전쟁 준비를 시작해서 연합국들의 감시를 피하는 게 가능했다. 화폐를 찍지 않더라도 은행들이 보유하던 자금을 군수업계에 풀었다는 뜻인데 인플레이션이 오지 않았을까… 물론 경기부양 효과가 있었고 대공황을 극복하는데 도움이 됐다. 군수업 등을 통해 고용율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적인 임금 수준은 동결 혹은 하락했다. 전쟁업에 푸는 막대한 (부채)자금이 민간에 너무 많이 들어가지 않도록 관리했다. 국민들에게는 대신 주기적으로 새로운 무기를 선보이는 군사 퍼레이드로 자부심을 안겨줬고, 국민들은 그 전보다 약간 나아졌지만 여전히 가난한 삶과 1차대전 패전 이전을 넘어서는 막강한 군사력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랍게도 만족했다. 이렇게 해서 도로, 공항, 군수공장, 항공기, 전차 등 인프라를 건설했고 2년 뒤 1935년에 히틀러는 공식적으로 재무장을 선언했다. 연합국이 알아도 막을 수 없는 수준의 무장을 끝낸 뒤였기 때문이었다. 이 선언은 베르사이유 조약을 정식으로 위반하는 선언이었고, 베르사이유 조약을 무력화 해주겠다는 공약을 했던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에게 약속을 지키게 됐다. —- 자금은 사실상 눈속임으로 인위적 유동성 공급으로 해결했고, 그럼 최첨단 군사 기술은 어디서 나왔느냐.. 독일이 원래부터 산업과 기술 강국이었다. 1차대전 전부터 화학, 물리학, 공학, 금속, 자동차, 정밀기계, 철도 등 거의 모든 산업기술에서 세계 중심이었다. 노벨상 수상자가 다수였고, 지멘스, BASF, IG 파르벤, 크루프, 다임러, BMW 같은 초거대 기업군과 세계 일류 학계가 이미 1920년대부터 존재했다. 이 인프라를 전부 군수산업으로 돌려놓고 같은 자금을 쏟아넣자 실제로 쓸만한 기술이 나와 유보트, 타이거 탱크, V2 미사일 같은 게 탄생했다. 자금, 기술, 이 두가지가 준비되자 독일은 기관차를 단 열차처럼 전진했다. 전쟁을 선포하고 폴란드 등을 점령하고나서는 전쟁 약탈로 미포빌을 대신할 수 있었고, 이 시점부터 나찌독일이라는 열차는 떨어져가는 연료(자금과 자원)을 구하기 위한 노력(전쟁과 약탈)을 반복하게 된다. 전쟁이 단순히 영토 확장이 아니라 채무의 현물 상환 작전이었다. 네덜란드, 프랑스, 노르웨이 등 새로운 점령지의 중앙은행이 가진 금, 예술품, 현금 등을 독일 제국은행에 예금하도록 강제했다. 이탈리아 헝가리 루마니아 등 동맹국 역시 독일이라는 열차를 위한 수백만 명의 노동력 공급지로 전락했다. 유럽 대부분을 점령했으나 유럽의 재화를 전쟁과 확장, 독일 내수를 통해 실제로 거의 소진했고 루마니아의 플로에슈티 유전에서 나오는 석유로는 부족했다. 프랑스로도 식량이 부족했다. —- 이렇게 소비에 미친 열차가 된 독일에 희생된 또 다른 그룹이 유태인들이었다. 인종주의, 역사적 이유 등을 찾지만 결국 중요한 건 돈이 많은 "타인"이었다는 점이다. 그들만의 나라가 없기에 특별히 저항할 방법이 없는 민족인데 재산은 많았다. 나찌독일은 유태인들 추방과 학살을 통해서도 무시못할 규모의 재원을 마련했다. 그로도 부족했다. 자원이 고갈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동물 무리처럼 이제 독일은 동쪽의 광활한 지역을 향했다. 소련을 침공했다. 레벤스라움 Lebensraum 이라고 거창하게 포장했지만 그냥 소련의 천연자원이 필요했다. 우크라이나의 곡창지대, 코카서스의 유전, 시베리아의 광물, 소련의 노동력, 모든 게 독일이라는 열차에서 고갈되고 있던 자원이었다. 히틀러는 단기간에 소련을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그렇게 바랐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바바로사 작전이 성공했더라도 그 다음 약탈지, 또 그 다음 약탈지를 찾아야만 했다. 어차피 언젠가는 멈춰야 할 열차였다. —- 이래서 돈으로 생각해보면 여러가지 질문에 답이 구해진다. 처음에는 그냥 속임수로 돈을 풀어 돈으로 돈을 벌듯 군수경제로 돌아갔다. 유럽을 정복하는 놀라운 업적을 보였으나 자원을 소진하고 난 독일에게 유럽은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계속 침략전쟁을 벌이게 된 이유였다. 더 이상 팽창할 수 없는 규모까지 팽창하고 자원 조달을 위해 자신들보다 강한 소련까지 침공하고는 그냥 몇년 안에 망해버렸다. "유럽을 정복한 히틀러가 그때 멈췄으면 지금까지도 나찌 제국이 있지 않았을까" 같은 상상이 큰 의미없는 이유다. 폰지 사기와 군국주의 팽창은 지속될 수도, 연착륙할 수도 없다. —- 사진 1. 미포 빌 사진 2. 미포 빌이라는 금융 사기 도구를 발명한 나찌독일 국가은행 총재 얄마르 샤흐트. 나중에 전쟁에는 반대해 해임됐고 히틀러 암살 음모 "발키리 작전"에 연루됐다는 혐의로 나찌에 의해 수감됐다. 1970년 93세까지 장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