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참전을 결정한 마오쩌둥은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을 파병했고 마오안잉은 28세에 한국전에서 미군 폭격에…
한국전 참전을 결정한 마오쩌둥은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을 파병했고 마오안잉은 28세에 한국전에서 미군 폭격에 전사했다. 미국의 부탁을 들어 미국 외 처음으로 한국전에 파병을 결심한 나라가 필리핀이었다. 일본에 전국을 처참하게 점령 당했던 미국 식민지 필리핀에서는 레이테 상륙작전을 통해 일본군을 몰아내고 필리핀을 수복한 맥아더 장군의 지위가 무척 높았다. 맥아더 장군이 육사에서 공부중일 때 아버지 아서 맥아더 주니어도 미군 장성이었고 아예 필리핀 군정 총독이었다. 총독의 아들이 40년 뒤 장군이 되어 미국의 엄청난 병력과 전함과 탱크를 몰고 돌아와 필리핀을 잔인한 일본군으로부터 구한거다. 맥아더가 미국의 화신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인천상륙작전의 영웅으로 맥아더를 우러러봤던 거에 비해서도 한 5배 쯤 더 심하게 맥아더를 숭상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이런 국민영웅이자 은인 맥아더가 한국전에 참전한다는데 이제 막 독립해 스스로 군대를 움직일 수 있게 된 필리핀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필리핀 키리노 대통령은 자신의 사위 루이스 곤살레스가 한국전 파병에 자원하자 사위만 보낼 수는 없다고 친아들 토마스 키리노도 7400여명의 장병과 함께 한국으로 보냈다. 둘은 생환했다. 키리노는 일본군에게 아내와 세 아이들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된 후 모든 일본군 전범들과 일본에 부역한 필리핀인들을 석방하고 사면했다. 과거를 빨리 청산하고 일본과 우호관계를 갖는 게 필리핀에 더 도움된다는 판단이었다. 옳건 그르건 필리핀 국민들은 이런 결정에 동의하지 않았고 키리노는 재선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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