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와 일본의 동맹은 전략적 계산이 아닌 생존과 신뢰 속에서 시작됐다. 4세기 후반, 백제는 북쪽의 고구려…
백제와 일본의 동맹은 전략적 계산이 아닌 생존과 신뢰 속에서 시작됐다. 4세기 후반, 백제는 북쪽의 고구려 압박을 받으며 바다 건너 왜국과 손을 잡았다. 단순한 사절왕래가 아니라, 왕자가 일본에 건너가 직접 외교를 하고 기술자·장인·승려들이 함께 움직였다. 시작부터 백제의 과감한 투자가 있었다. 백제는 글자와 제도, 토기와 철기, 나아가 불교와 율령 같은 문명의 골격을 건넸고, 일본은 이를 받아들여 국가로 진화했다. 백제가 단순한 외교 상대였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건 형제국이자 스승이었고, 때로는 피난처였으며, 함께 싸우는 군사 동맹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둘은 더 가까워졌다. 백제 왕자들이 일본 조정에서 정치적 지위를 얻고, 일본 장군들이 백제를 위해 칼을 들었다. 백제 왕실과 귀족들이 일본 조정에서 직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 서로가 서로를 진심으로 의지했던 흔적은 660년 백제 멸망 후, 일본이 정규군 수만의 병력을 파견해 당나라와의 정면 충돌을 감수했던 결정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난다. 그 정도 병력으로 전세를 뒤집을 수 없는 걸 알았지만 형제국의 멸망에 진심으로 원통해하며 보복이라도 해주겠다고 찾아왔다. 백강 전투는 군사적으로는 실패였지만, 관계의 깊이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많은 백제 유민들이 일본에서 정착했고, 일본의 귀족 사회 일부는 지금도 백제계 후손이라는 자긍심을 갖고 있다. 만약 백제가 멸망하지 않았다면, 두 나라는 아마 더 구조적이고 영구적인 연합체로 발전했을지도 모른다. 문화와 제도를 공유하고, 정치적 이해관계를 함께 조율하는 동아시아 최초의 지역 연합이 되었을 수도 있다. 오늘날의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를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모든 면에서 충돌 요인이 없는 이웃이다. 경제적 상호의존도, 군사 안보 구도상의 필요, 문화의 왕래 수준 등이 모두 너무 높다. 유럽의 프랑스와 독일, 영국과 프랑스도 수백 년 전쟁을 거쳐 지금은 가장 강한 동맹이다. 과거사는 오래도록 기억해야 할 역사지만, 그것 하나 때문에 미래까지 막을 이유는 없다. 백제와 일본이 보여준 오래된 신뢰와 동맹의 기억은, 이 두 나라가 다시 가까워질 수 있는 상징적인 선례이기도 하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미래를 바꿀 수 있다. 한중일 공동역사교과서 등도 더 활발한 사업을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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