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은 애플을 ‘아이폰을 잘 만드는 회사’ 정도로 인식하지만, 실제로 애플은 지난 50년 동안 정보기…

많은 사람들은 애플을 ‘아이폰을 잘 만드는 회사’ 정도로 인식하지만, 실제로 애플은 지난 50년 동안 정보기술 산업과 세계의 흐름을 바꾸는 혁신의 중심에 있었다. 그들의 성과는 단순한 하드웨어 판매를 넘어, 개인용 컴퓨터, 사용자 인터페이스, 디지털 음악, 인터넷 대중화, 모바일 컴퓨팅이라는 다섯 가지 근본적 전환점에서 결정적 역할을 한 기술적 선구자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하드웨어만 개발하는 게 아니라 전세계 사용자들의 생활 방식까지 자신들의 주도하에 여러 차례 바꿨다. 첫 번째는 개인용 컴퓨터(PC)의 상용화다. 1977년 출시된 Apple II는 키보드, 저장장치가 통합된 형태의 최초의 저가형 대중적 개인용 컴퓨터로 평가된다. 이는 당시 주로 기업이나 정부가 사용하는 거대한 메인프레임 중심의 컴퓨팅 환경에서, 가정과 개인으로 컴퓨터 사용을 확산시키는 전환점을 제공했다. IBM이 PC 시장에 진입하기 전에 이미 애플은 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다. 쉽게 말해 개인들이 집에서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개념 자체가 애플 전에는 없었다. 두 번째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와 마우스 중심의 컴퓨터 조작 방식 전환이다. 1984년 맥킨토시는 처음으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 GUI 기반 컴퓨터였으며, 애플은 이 제품을 통해 컴퓨터 사용 방식을 키보드 명령어 입력 중심에서 마우스와 아이콘을 활용한 시각적 조작 방식으로 전환시킨 주역이었다. 타이핑도 모르고 명령어도 모르는 사람은 접근하기 힘들던 기계에서 손목과 손가락 클릭만으로 어르신들도 사용 가능한 기계가 됐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가 이 방식을 모방하면서 전 세계 표준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는 일반 대중이 컴퓨터를 쉽게 다룰 수 있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세 번째는 디지털 음악 산업의 탄생이다. 2001년 출시된 아이팟(iPod)은 단순한 휴대용 음악 재생기기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애플은 아이튠즈(iTunes) 플랫폼을 통해 음원 유통 구조 자체를 재구성했다. 불법 다운로드가 난무하던 시대에서 유료 다운로드라는 합법적이고 실용적인 모델을 거의 처음으로 정착시켜 음악계를 구원했다. 이후 2015년에는 애플 뮤직(Apple Music)을 통해 스트리밍 및 구독 기반 모델로 전환하며, 음악 소비 방식 자체를 바꿔놓는 데 일조했다. 애플은 단순한 기기 판매를 넘어 음악 산업의 유통 구조를 정의한 주체 중 하나였다. 네 번째는 인터넷 경험의 표준화 및 대중화다. 애플은 2003년 자체 브라우저 Safari를 출시하면서 오픈소스 렌더링 엔진 WebKit을 개발했고, 이 엔진은 이후 구글 크롬과 마이크로소프트 엣지를 포함한 현대 브라우저 기술의 기초가 되었다. 특히 iPhone에 WebKit 기반 모바일 사파리를 탑재함으로써, 데스크탑 중심이던 웹 경험을 손에 들린 모바일 환경으로 확장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 과정에서 애플은 단지 기술을 제공한 것을 넘어, 글로벌 UX(User Experience)의 기준을 끌어올리는 데 선도적 역할을 했다. 정제된 인터페이스, 반응성 높은 터치 기반 환경, 시각적 일관성 등은 웹과 앱의 디자인 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오늘날 전 세계 대부분의 디지털 제품 설계가 애플의 디자인 원칙을 직간접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대중에게 알려진 업적은 모바일 컴퓨팅 혁명, 즉 아이폰의 출현이다. 2007년 애플은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을 재정의하며 휴대전화, 음악 플레이어, 인터넷 브라우저를 하나로 통합한 아이폰을 출시했다. 이는 앱 생태계의 탄생을 이끌었고, 모바일 퍼스트 시대를 시작시켰다. 모바일 결제, 모바일 영상 소비, 위치 기반 서비스 등 대부분의 현대 디지털 생활의 기반은 이 한 기기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외에도 애플은 터치 기반 인터페이스(멀티터치), 음성 비서(Siri), 64비트 모바일 칩, 자체 설계 칩(Apple Silicon), 에너지 효율 중심의 컴퓨팅 아키텍처 등에서 업계를 선도했다. 특히 2020년 이후 M1, M2 칩 등으로 대표되는 ARM 기반 Apple Silicon은 다시 한 번 데스크탑과 모바일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AI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스마트폰 이후의 컴퓨팅 플랫폼으로 많은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AR 기반의 스마트글래스와 AI 중심의 자연어 인터페이스이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면, 화면을 손에 들지 않고도 실시간 정보 처리와 상호작용이 가능한 진정한 '포스트 스마트폰' 환경이 현실화될 수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애플은 2024년 출시한 비전 프로(Vision Pro)를 통해 시장 선점 의지를 드러냈으나, 높은 가격, 무게, 배터리 지속시간, 콘텐츠 부족 등으로 인해 대중적 파급력은 미미했고, 사실상 초기 상업적 실패로 평가받는다. 비전 프로는 기술적 완성도 면에서는 일부 긍정적 평가를 받았지만, AI 시대 이전에 개발 됐고 대중 제품이 아닌 ‘데모 기기’에 가까운 수준이었다는 점에서 스마트글래스 시대의 본격 개막과는 거리가 있었다. 더 큰 문제는 AI 전환기에 애플의 존재감이 현저히 약하다는 점이다. 2022년 이후 챗GPT, 미드저니, 클로드, 페이스북의 Llama 등 경쟁사들이 생성형 AI 전환을 주도하는 동안, 애플은 하드웨어 제조사라는 기존 정체성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자체 AI 모델이나 플랫폼 API 공개도 늦었고, 생태계 안에서의 통합도 한정적이었다. iOS 18에서 공개한 Siri의 개선 방향도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음성 인터페이스 개선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만약 메타(Meta)가 개발 중인 Ray-Ban 스마트글래스 계열이 진정한 모바일 대체제를 제공하게 되고, 이를 통해 정보 소비와 커뮤니케이션의 중심이 안경형 디바이스로 이동할 경우, 아이폰 중심 구조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애플은 구조적 위기를 맞을 수 있다. 현재도 아이폰이 애플 전체 매출의 약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하드웨어, 서비스, 웨어러블 생태계 모두 아이폰에 연결되어 있다. 스마트폰 자체의 위상이 약화된다면, 이는 애플 전체 비즈니스 모델의 재구조화를 강제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사실 2011년 잡스 사망 이후 생산체인과 유통의 귀재 팀 쿡은 애플의 시가총액을 9.4배 늘리고 세계 최대 기업을 만들었지만, 생각해보면 잡스가 만들어놓은 히트 상품들을 계속 유지 보수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버텨왔지 새로운 혁신 제품이 없었다. 이게 만약 잡스의 부재, 혹은 팀 쿡의 리더십 때문이라면 애플의 문제는 심각해진다. 애플카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동안 중국 스마트폰 회사 샤오미는 빠르게 전기차 회사로 탈바꿈에 성공했으며 팀 쿡은 투자자들로부터 과연 패러다임 변화에 적응 가능한 인물인가 하는 의문을 받기 시작했다. 요약하면, 애플은 과거 다섯 차례의 기술 패러다임 전환(개인용 컴퓨터, GUI 환경, 디지털 음악, 인터넷 UX, 모바일 컴퓨팅)에서는 선도적 역할을 해왔지만, AR 기반 스마트글래스와 AI 전환이라는 여섯 번째 물결에서는 아직 뚜렷한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비전 프로는 기대에 못 미쳤고, AI 전환기에도 상대적으로 수동적이었다. 앞의 다섯 가지 기술 혁명 이후 애플에서는 더 이상 혁명이라 부를만 한 것은 나오지 않고 있다. 어쩌면 AI와 스마트글래스 방면 도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일 수가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차세대 컴퓨팅 환경에서 애플은 더 이상 ‘패러다임을 이끄는 기업’이 아니라, 기존 패러다임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기업’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특히 팀 쿡의 위치가 위태로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