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러시아 혁명 뒤, 소련은 레닌, 스탈린을 거치며 변증법적 유물론을 표현하기 위해 추상적 예술을 지…
1917년 러시아 혁명 뒤, 소련은 레닌, 스탈린을 거치며 변증법적 유물론을 표현하기 위해 추상적 예술을 지양하고 사실주의를 추구했다. 사회적 현실의 본질을 드러내야하는 게 예술이라고 봤다. 스타일이나 화풍은 시대와 함께 변하며 진화하는 게 맞지만 이념과 결합돼 버린 소련에서는 초기 예술 스타일이 고정되는 현상이 일어났고, 이후 소련 예술에 이 현실주의 화풍이 강한 영향을 줬다. 이 스타일은 다시 중국에서 40-70년대 장칭 지도하에 중국식으로 해석됐다. 아예 8편의 표준극(양판희 樣板戱)를 정해주고 영화, 발레, 경극, 교향곡까지 이 8개 틀에 맞춰 재편하므로서 문화를 자신들의 의지대로 바꾸려 노력했다. 60-70년대 예술지도자가 된 김정일은 무대극 [피바다] 창작에 참여하는 등 북한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기본은 소련 현실주의와 중국 양판희 구조를 결합해 혁명적 낭만주의라는 걸 만들어낸다. JMS 신도들도 정명석 취향 때문에 죄다 80년대 무용수 안무를 연습하듯, 한 나라의 지도자 취향이 나라 전체 예술과 문화에 영향을 주는 일은 흔하지만, 공산주의 혁명은 전세계 많은 국가에 이렇게 공통된 DNA를 뿌려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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