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1년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1646-1716)는 예수회 선교사 조아킴 부베가 보내 준 도표를 받는다….
1701년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1646-1716)는 예수회 선교사 조아킴 부베가 보내 준 도표를 받는다. "아니… 이건 내가 22년째 연구하고 있는 내용과 구조가 똑같잖아!" 부베가 보낸 건 중국 고전 주역(周易) 의 64괘 도표였다. —- 라이프니츠는 이미 1679년부터 0과 1만으로 수를 표현하는 이진법 연구를 하고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10진수나 16진수 같은 체계에 의존했지만, 그는 단순한 두 기호만으로 모든 수를 나타내고, 덧셈과 곱셈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1703년에는 이진 산술의 설명(Explication de l’arithmétique binaire) 이라는 논문을 통해 이를 공식화한다. 그런데 주역의 괘는 음(–)과 양(—) 두 선으로 이루어진다. 세 줄이면 8괘, 여섯 줄이면 64괘가 된다. 각각의 선은 0과 1로 표현할 수 있고, 여섯 자리 조합은 곧 6비트 이진수와 같다. ☰는 111, ☷는 000으로 읽을 수 있는 식이다. 라이프니츠가 놀란 건 단순한 기호의 유사성이 아니었다. 그는 철학자였고, 세계의 이성이 수학적 질서 속에 있다는 확신을 평생 붙들고 있었다. 이진법은 그에게 단순한 계산 도구가 아니라, 무(0)와 유(1)라는 근원에서 무한한 다양성이 전개되는 창조의 원리를 보여주는 언어였다. 신은 무에서 세계를 창조했고, 이진법은 그 과정을 수학적으로 시각화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는 주역과의 만남을 “동서양이 하나의 진리에 도달했다”는 상징으로 해석했다. 동양은 음양의 상징을 통해, 서양은 이성적 수학을 통해, 결국 같은 보편 원리에 접근해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철학, 특히 만유조화(harmonia universalis) 개념과 이어졌다. 세상은 혼돈처럼 보이지만, 근본에는 단순하고 보편적인 법칙이 숨어 있고, 인간 이성은 그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라이프니츠에게 이진법은 인간 이성과 신적 창조 사이의 다리였다. 숫자와 기호라는 가장 단순한 질서가 세계 전체를 설명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가 꿈꾼 보편 기호학(universal characteristic)의 핵심이기도 했다. 즉, 주역과의 조우는 이진법을 단순한 수학이 아니라 철학적·신학적 언어로 끌어올린 계기였다. 물론 철학적 의미만 생각한 건 아니고 이진법을 활용한 계산기를 설계하기도 했다. 완성하지는 못했고 기록과 설계도만 남았다. 이후 이진법은 당장 눈에 띄는 실용성을 얻지는 못했지만, 19세기 들어 조지 불(George Boole) 의 논리 대수와 결합하면서 강력한 의미를 갖게 된다. 불은 참과 거짓을 1과 0으로 표현해 논리 연산을 만들었고, 이는 곧 연산과 회로 설계에 적용될 수 있는 언어가 되었다. 라이프니츠가 직관적으로 본 “0과 1로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논리학의 뼈대를 이룬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 이진법은 드디어 실용적 무대를 만났다. 전기 회로는 전류가 흐르거나(1), 흐르지 않는(0) 단순한 두 상태를 가지므로, 이진법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1937년 정보이론의 클로드 섀넌이 불 대수를 전기회로에 적용하면서 비로소 이진 논리 = 회로 설계 언어가 됐다. 1930~40년대 초기 전자식 컴퓨터에서 스위치·릴레이·진공관은 곧 0과 1을 표현하는 장치가 되었고, 이진수는 하드웨어와 수학 사이를 잇는 언어가 되었다. 오늘날의 디지털 세계는 모두 이 이진법 위에 세워져 있다. 스마트폰의 앱, 인터넷 통신, AI 연산까지도 결국 0과 1의 조합으로 돌아간다. 라이프니츠가 일부 주역에서 영감을 얻어 철학적 통찰로 다다른 단순한 수 체계는, 몇 세기 뒤 불 대수와 전자공학을 거쳐,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디지털 문명의 언어로 자리 잡은 것이다. 사진 1. 부베가 라이프니츠에게 보낸 도표. 사진 2. 주역의 64괘 사진 3. 라이프니츠 사진 4. 2진수를 활용한 로직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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