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줄 알았던 DVD 콜렉션 박스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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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에 책임을 지실 때가 되셨습니다.




디퓨전 모델은 지금의 AI 이미지 생성 기술을 대표하지만, 근본적으로 느리고 비효율적인 구조를 안고 있다. 쉽게 말해 ‘완성된 그림을 거꾸로 되짚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먼저 이미지를 완전히 노이즈로 망가뜨리고, 그걸 수백 번의 단계를 거쳐 다시 복원해 나가는 식이다. 결과는 아름답지만, 과정은 엄청난 계산량과 전력 소모를 요구한다. 마치 1000조각짜리 퍼즐을 일부러 부수는 과정에서 그 그림에 대한 정보를 얻은 뒤 다시 그 조각으로 열심히 비슷한 모양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지금은 이게 유일한 방법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사실 중간 샘플링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이미지는 실제로 쓰이지 않고 버려지므로, 그만큼의 에너지가 낭비된다. 이 방식의 가장 큰 한계는 속도다. 초고성능 GPU를 써도 한 장을 그리는 데 수 초에서 수십 초가 걸린다. 전력 효율도 나쁘다. 한 번의 생성마다 꽤 많은 전력이 쓰인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서 같은 품질의 그림을 실시간으로 얻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더 짧은 길’을 찾는 시도가 활발하다. 대표적인 게 ‘레이턴트 디퓨전(Latent Diffusion)’이다. 이미지를 직접 다루지 않고, 압축된 ‘요약 공간(잠재 공간)’에서 생성해 계산량을 줄인다. 쉽게 말해 압축 버전에서 대충 그린 다음에 정상 화질에서 개선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흐름은 ‘GAN(적대적 생성망)’과의 결합이다. GAN은 머신러닝을 통해 그림/사진 그리는 법을 훈련한 모델이다. 디퓨전과는 개념이 다르다. GAN은 한 번에 이미지를 그려내지만 품질이 불안정하고, 디퓨전은 안정적이지만 느리다. 둘의 장점을 섞어 속도와 품질을 동시에 노리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엔 아예 발상을 바꾼 ‘열역학 기반’ 접근도 나온다. 노이즈를 거꾸로 되짚는 대신, 에너지가 가장 안정된 ‘자연스러운 상태’를 직접 찾아내는 방식이다. 마치 물이 흘러내려 결국 고요한 연못에 이르듯, AI가 스스로 가장 균형 잡힌 그림 상태를 찾도록 유도한다. 이런 방식은 계산 단계를 크게 줄이고, 물리 법칙에 가까운 효율을 목표로 한다. 마치 미로 퍼즐을 푸는데 확률적으로 가장 답일 가능성이 높은 곳만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디퓨전은 갈 수 있는 모든 길을 동시에 시도하며 그 중 더 나은 길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이번에 Extropic이라는 회사에서 새로 내놓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약속한대로라면 100분의 1, 1000분의 1 로 처리 시간과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다. 하드웨어 차원에서 에너지 기반 모델을 직접 샘플링해, 확률 분포 자체를 이용해 이미지를 생성한다. 중간 샘플링 같은 게 없다. 두고봐야겠지만 사실이면 AI 기술은 다시 한번 도약을 앞두고 있다.


2011년 이후 북한의 권력구조를 김정은의 권력 유지 입장에서 보자면 쿠데타 가능성이 있는 김정일 시대 핵심인물들을 꾸준히, 주기적으로 숙청했다. 특히 군부 실세들을 많이 날렸다. 리영호 총참모장, 김격식, 현영철, 김정각 등 군 인사들을 조용히, 그리고 공개적으로 숙청했다. 일부는 해임, 일부는 처형됐다. 군이 갖고 있던 무역, 자재, 외화사업 등 경제 권한도 내각과 당으로 이관됐다. 형식적으로는 고난의 행군이 끝나 군이 스스로 유지비를 자급해야할 필요가 사라졌기 때문이고, 실제로는 역시 핵전력 완성으로 더 이상 선군의 필요성이 크지 않고 또 동시에 쿠데타 가능성을 낮추기 위함이었다. 집권 초기에는 김정일의 내각과 선군정치를 그대로 물려받는 척했지만 그 뒤로 사실상 일방적으로 군 권력을 해체하고 있다. 당 중앙위원회의 권한을 복원/확대하면서 아예 당이 군을 지도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시진핑도 최근 군 통솔권을 당에게 위임하며 비슷한 권력구조 개편을 시도했다. 트럼프가 윤석열의 계엄 등을 보고 배우듯 중국도 북한을 따라하는 부분이 있다. 동시에 장성택과 김정남 등 친중 인사들을 빠르게 제거했다. 김정은이 체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거나 예기치 못한 일을 자꾸 벌일 경우 장성택이 들고 일어나고 김정남으로 지도자를 교체하는 중국의 시나리오를 무력화 시켰다. 이는 사실 김일성이 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친소련 연안파, 친중국 파 등을 모조리 숙청하고 단일체제를 만든 것의 재판이다. 정리하면 김정은의 북한은 군이 약화되고 당이 강해졌으며 김정은 1인에게 권력이 더 집중됐다고 볼 수 있다. 핵도 있겠다,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도 최고 상황이라 이래저래 김정은의 잠자리가 편할 것 같다. 북한이 지난 10년간 조용한 이유가 자신감이다.


1950년 2월 14일 모스크바에서 마오쩌둥과 이오시프 스탈린이 중소 우호 동맹 상호 원조 조약을 맺었다. 45년 승전 후 경제 재건에 집중한 소련과 49년에 건국된 사회주의 중국이 본격적으로 손을 잡는 계기였다. 아직 청나라-러시아 시절 식민주의 잔재가 남아있던 두 사이를 소련이 뤼순과 다롄 조차권을 중국에 반환하고 만주철도 경영권을 완전히 넘겨주며 정리했다. 소련은 동시에 3억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해 중국의 1차 경제5개년계획의 시작을 도왔다. 이는 한국전에서의 협력 등으로 이어지나 53년 스탈린의 사망과 중소 노선차이가 심화되면서 60년대 초 중소 분열로 이어진다. 중국과 소련은 국토분쟁으로 69년에 소규모 전쟁까지 벌린다. 소련은 중국 핵공격을 검토했고 중국도 소련의 핵우산을 믿지 못하고 64년에 핵실험에 성공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이미지와 달리 스탈린은 키가 165cm였고 마오쩌둥은 180cm 이었다.


1968년 1월 23일, 동해의 겨울 바다에서 미 해군 정보수집함 USS Pueblo가 북한 해군에게 포위됐다. 당시 임무는 단순한 전자정보 수집이었다. 공해상 항로를 지키고 있었지만 북한은 자국 영해 침범을 주장하며 기관총을 겨누었다. 선장은 자신들의 기관총 두 정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저항 대신 선내 자료를 파괴하려 했지만, 서류 소각기는 고장 나 있었고, NSA의 암호 매뉴얼과 감청장비 대부분이 그대로 노획됐다. 이 사건은 미국 정보사에 있어 ‘현대 정보전의 최악의 손실’로 기록된다. 승조원 83명은 북한으로 끌려가 11개월간 억류됐다. 북한은 그들을 “제국주의 침략자”로 내세워 국제 언론 앞에서 머리를 숙이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선전용 사진마다 손가락 욕을 슬쩍 섞어 넣었다. 북한은 처음엔 그 의미를 몰랐고, “하와이 행운의 손짓”이라며 웃으며 공개했다. 뒤늦게 모욕의 의미를 깨닫자 가혹한 구타가 이어졌다. 그들은 ‘참회 편지’도 강요받았다. 하지만 그 안엔 교묘한 조롱이 섞였다. 한 선원은 “우리는 북한의 관대한 대우에 깊이 감사드린다. 김일성 동지께서는 우리의 지도자이시며, 우리 같은 peon들에게까지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라고 썼다. 겉보기엔 충성의 문장 같지만, peon은 pee on과 같은 발음이라 우리가 북한 니들에게 오줌을 싼다는 뜻으로 읽히는 내용이었다. 북한 통역관은 이를 ‘평민’ 정도로 이해했고, 그대로 공개했다. 미국은 전쟁까지 고려했다. 당시 린든 존슨의 백악관은 핵무기 사용 시나리오까지 검토했지만, 결국 냉전의 확전 위험을 감수할 수 없어 외교 협상으로 방향을 틀었다. 11개월 후, 판문점을 통해 포로들이 석방됐다. 미국은 ‘유감과 사죄’를 담은 문서를 서명하되, 귀환 직후 그 문서의 효력을 공식 부인했다. 미국이 실제로 북한에게 공식적으로 간첩질에 대해 사죄했다. 미국이 미개한 독재국가라고 깔보고 조롱하던 나라에게 사죄한 일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자존심을 제대로 구겼다. 미국은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공식 사과하고 포로를 돌려받은 뒤 다시 공식적으로 그 사과를 취소하는 안해도 될 속좁은 짓을 했다. 그러나 푸에블로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원산에 정박해 있던 배는 1990년대 평양 대동강변으로 옮겨졌고, 관광객들이 내부를 볼 수 있게 꾸며졌다. 최근에는 서해안의 새 전시장으로 이전됐다. 이 이동 자체도 미국을 향한 상징적 조롱이었다. 냉전의 잔재를 마치 전리품처럼 옮겨다니며, 여전히 미 해군 마크를 단 채 선전용 배로 세워둔 것이다. 사진은 체포된 푸에블로 호 선원들. 가운데 손가락을 바짝 세우는 선원들. 북한 측과 포로 석방 협상하는 미국. 석방된 미 선원들을 환영하는 미육군참모총장 찰스 본스틸.





사실 북한과 한국은 2000년까지는 굉장히 살벌한 관계였다. 서울 불바다 같은 표현이 주기적으로 있었고 매번 한국에서는 쌀과 라면이 동이 났었다. 그냥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전쟁 공포로 인한 사재기가 잦았다. 미국도 실제로 94년에 북한을 폭격하는 작전을 어느 정도 진행했었고 한반도는 그냥 두려움이 아니라 실질적 전쟁 위험 속에 있었다. 이제는 북한이 뭘 해도 사재기는 없다. 내일 당장 북한 초음속미사일 같은 신무기를 선보여도 아마 장보는 날 아니면 아무도 쌀 사러 나가지는 않을 거다. 이유는 2000년부터 이뤄진 정상회담과 역설적으로 북한의 핵개발 성공이다. 정상회담 전까지는 진짜로 한국에서 북한에 대한, 북한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괴물이었다. 사실 북한을 경제적으로 추월한 게 겨우 79년 일이기 때문에 2000년 당시 우리에게 북한의 비중감은 지금과 다르게 아직 컸다. 이해할 수 없는 존재. 자꾸 우리를 죽이겠다는 무서운 이웃. 특히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 소식은 주로 한국정부와 미국정부의 프로파간다를 통해서 접했기 때문에 전혀 이성적이거나 예측가능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근데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과 만나는 모습을 보니 저쪽도 그냥 웃고 놀라고 땀흘리는 인간이었다. 그 순간부터 한국인들은 사재기를 멈췄다. 반대로 북한의 태도도 그 이후부터 확 바뀌는데, 한국이 북한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진 것처럼, 북한도 한국과 미국에 대한 두려움이 확 사라졌다. 그 계기는 바로… 핵실험이었다. 1953년 휴전부터 핵실험 성공까지 북한은 끊임없이 미국의 침공 위협에 시달렸다. 실제로 미국은 계속해서 정탐선, 정찰기, 다양한 비밀작전을 끊임없이 수행했다. 거의 현실화 직전까지 갔던 클린턴의 94년 북 폭격 계획까지, 북한 지도자들은 좌불안석이었다. 미국이 미국에게 협조하지 않는 독재자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이미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바다 같은 표현이 잦았다. 두려움에 떠는 개는 더 크게 짖는다. 그래서 우리 일상 대화에서 '6자회담' 같은 단어가 기본 어휘였다. 핵실험 성공 이후 북한은 여유가 생겼다. 실제 90년대 기근, 아사 사태 등은 사실 북한에서도 굉장히 옛날 일이고 경제는 그 이후로 꾸준히 성장 중이다. 전력도 개인집 태양광 패널 등 덕에 공급 상태가 많이 좋아졌다. 무엇보다도 미국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예 사라진 상태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핵무기를 가진 상대에게 직접적 군사작전을 벌인 일이 단 한 차례도 없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제 잘 짖지 않는다. 상황을 뒤흔들기 위한 불바다 같은 표현은 사라지고 오히려 한국 국내 정치에 커멘트를 할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한반도 상황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진화한다. 2000년대의 정상회담과 핵실험으로 만들어진 구도에도 이미 변화가 오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전이 큰 계기가 됐다. 한국도 군사강국이자 무기생산국가로 도약 중이고 북한도 이전의 골치거리에서 중-러-북 동맹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무기 수출이나 북한의 러-중 동맹 참여는 의외로 남북 관계와 큰 연결고리는 없다. 북한이 없었어도 우리는 수출 했을 거고 우리가 없었어도 북한은 우크라이나전에 파병했을 거다. 서로만 바라보다가 서로가 서로에게 별로 큰 관심이 없음을 깨닫고 이제 눈을 돌려 제각기 독립된 존재로서의 삶을 찾아가고 있다. 실제로 이런 사실관계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이미 남북한 국민들은 20년째 평화를 몸으로 느끼고 있다. 한국 국민들은 북핵보다 부동산에 수천배 더 관심이 있다. 북한 핵무장이 가져온 한반도 평화의 역설이다. 어떻게 보면 미니 냉전 구도가 안정적으로 정착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한반도 비핵화가 사실 그래서 더 복잡하다. 이 균형을 깰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의미가 있을 건데, 한국이 기술개발하는데 미국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단 동맹 리더로서 미국을 존중해 한국에는 없는 플루토늄을 팔아달라고 미국에게 부탁하며 암묵적 승인을 판매 결정을 통해 보여달라는 뜻이다. 우리가 핵무기 개발한다는 것도 아니고 잠수 좀 길게 하겠다는데. 우리가 잠수 오래 하면 중국의 발이 묶인다니까?
그렇게 해서 미국이 원하는 중국 봉쇄에 협조할테니까 한국에게는 추가적 핵억지력이라는 실리를 달라 이거다. 어차피 미국이 제공한다는 핵우산은 불발탄인 걸 모두가 아니까.
이게 되고나면 이미 불필요한 주한미군은 한국에게 의미가 더더욱 없어진다. 거기까지는 아마 트럼프가 생각 못하고 있을 듯.
전작권 회수와 함께 세트로 가져오던가, 흥정해서 핵연료를 못받는 대신 전작권을 확실히 가져오던가. 둘 중 하나면 난 만족.
그리고 만약 미국이 내부적으로 검토해보고 한국에게 이것까지 협조하는 건 무리다라고 하면 한국은 다른 업자를 알아보거나 스스로 재처리에 나서겠다고 주장할 명분이 생긴다. 기술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건조를 허가해달라고 한 것도 아니니. 안팔아? 그럼 딴데서 산다.

스티븐 시걸은 80~90년대 초반, 순식간에 액션영화계의 새로운 얼굴로 떠올랐다. 일본에서 무술을 수련하고 돌아와 아이키도라는 손목을 돌리면 상대가 날아가는 신비한 무술, 그것도 ‘진짜 실전 아이키도’를 선보인다는 이미지였다. 그는 일본에서 아이키도 관장의 딸 미야코 후지타니와 결혼해 도장을 접수하는데 성공하고 한동안 운영하다 미국으로 돌아왔다. 사실 이게 베트남전 기간 동안이라 시걸은 징집을 피하기도 했다. 그게 목적이었다는 말도 있다. 전 부인에 의하면 실력으로는 검은 띠 따는 게 불가능이었지만 그냥 통과시켜줬다 한다. 이후 여러 번의 결혼(이중 결혼 논란 포함)과 불륜과 성희롱 폭로가 이어졌고, 전 부인과의 폭력 의혹까지 불거졌다. 원래도 기존의 아이키도에 비하면 호전적으로 대결적인 스타일을 추구하던 스티븐 시걸은 헐리우드 진출 뒤에는 폭력적인 성향을 자주 드러냈다. 촬영 현장에서 리허설 없이 전력을 다해 들어가 상대 배우나 스턴트맨을 다치게 한 사례가 많았다. Under Siege 촬영 중 동료 배우가 갈비뼈를 다쳤고, Out for Justice에서는 스턴트맨 두 명이 손목 부상을 입었다는 보고가 있다. 프로레슬러 출신 스턴트맨 진 르벨과의 유명한 일화도 있다. 시걸이 “나는 절대 기절하지 않는다”고 허세를 부리다 목조르기에 걸려 그대로 쓰러졌다는 이야기다. 시걸은 이후 부정했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날 스튜디오에 냄새가 진동했다”고 말한다. 실제 무술가를 상대로 붙은 건 그게 유일하고 그 외에는 대부분 왜소한 사람을 상대로 괴롭혔다. 존 레귀자모는 “리허설 중 시걸이 나를 벽에 밀쳐 숨이 막혔다”고 했다. 아이키도 실력 역시 논란이 크다. 일본에서 장인의 도장을 운영한 건 사실이지만, 정통 아이키도계에서 그를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도장 후계자였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고, 일본 무술가들 사이에서는 “시걸이 보여준 건 쇼맨십이지 무도정신은 아니다”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냥 최대한 많은 학생에게 자신을 향해 번갈아가며 돌진한 뒤 자신이 기술을 걸면 낙법을 쓰도록했다. 아마도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걸 처음부터 생각했던 것 같다.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은 아이키도를 아예 모르는 건 아니고 젊었을 때 1단 정도 실력은 됐다고 한다. 그는 이후에도 자신이 CIA 작전에 참여했다거나, 러시아·세르비아 정부로부터 특수 지위를 받았다는 식의 말들을 반복했다. 경찰, 군, 스파이, 외교관까지—그의 자칭 이력은 끊임없이 늘어났지만, 공적 기록으로 확인된 것은 거의 없다. 심지어 아이키도를 창시한 오센세에게서 직접 사사받았다고까지 주장했다. 참고로 오센세는 시걸이 일본에 가기 몇년 전에 작고하셨다. 시걸은 그 아들 우에시바 깃쇼마루 도슈를 만나본 적이 있을 뿐이다. 아직 이미지가 완전히 망가지기 전인 97년도에 티베트의 한 린포체로부터 환생한 고승이라고 인정을 받기도 했다. 아마도 그래서 중국 옷을 입고 다니는 것 같다. 비대한 몸을 감추기 위해 큰 중국 복장을 하고 빽빽한 흑발의 가발을 쓴다. 이소룡이 영화에서 입었던 옷을 따라하는 걸까. 시걸은 스스로 만든 캐릭터의 경계 안에서 경력을 쌓다가 경계를 깨고 허언증의 영역에 들어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