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트가 마음에 드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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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트가 마음에 드는군


톰 행크스 영화 [빅]에서 톰 행크스 여친으로 나오는 엘리자베스 퍼킨스와 [기묘한 이야기]의 밀리 바비 브라운 사이에는 아무런 혈연도 없다 한다.






처음 대도시들이 사용한 가로등불은 가스불이었다. 밝기가 약했다. 다음 주로 사용한 건 에디슨의 백열등이었다. 역시 효율이 낮았고 어두웠다.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수은등이 주류가 된다. 효율이 좋고 수명이 길었다. 청백-청록색을 내서 당시 영화에서 녹색 거리를 볼 수 있다. 같은 시기 저압나트륨등도 일부에서 쓰였다. 최고의 효율 덕에 특정 산업지대, 터널, 도로 등에서 쓰였으나 순수하게 노란빛을 내기 때문에 사람이나 물체의 빛을 구분하기 힘들었다. 70년대 이후는 고압나트륨등이 가로등 대부분을 차지했다. 오일쇼크 이후 에너지 효율이 중요해지며 유지비가 적고 수명이 긴 고압나트륨등으로 대도시들이 거의 다 바꿨다. 우리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밤거리 모습이 주황색인 이유가 바로 고압나트륨등이다. 영화에서도 이 따뜻한 빛이 형광등이나 아크등과 다른 느낌을 주기 때문에 감독들이 의도적으로 특정 전구가 있는 장소를 선택한다. 2010년대부터는 효율이 최고인 LED 전등으로 바꾸고 있다. 수명도 좋고 효율도 좋고 색도 사실 다양하게 만들 수 있지만 거의 대부분 기존의 주황색보다는 좀 더 자연스러운 하얀빛을 사용한다. 다 좋지만 [드라이브] 같은 영화는 이제 나오기 힘들어졌다. 예상치 못한 색의 등장은 난감하게 강렬한 보라색이다. 대부분의 경우 15년 쯤 된 LED 거리등들이 변색된 경우다. 하얀 LED는 청색 LED에 노란 형광체 코팅을 입혀서 백색으로 만드는데 그 코팅이 장시간 고온 환경, 자외선, 청색광 피로로 반응해서 결국 보라색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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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찌도 유태인들의 능력은 필요로 했지만 동시에 인간 이하로 짓밟을 권리도 동시에 원했다.
트럼프도 한국인 기술자들이 필요하지만, 와서 백인들 발 밑에서 기다가 돌아가라는 뜻이다.

1980년 영화 [에어플레인!]은 당시 북미에서 연간 흥행 4위에 오르고, 제작비의 30배 가까운 수익을 거두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진짜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돈을 벌어서만은 아니다. 에어플레인의 조연 배우들은 하나같이 전성기를 누린 진지한 배우들이었다. 로이드 브리지스는 50~60년대 TV 시리즈 [씨헌트]로 액션 스타의 이미지를 구축했고, 로버트 스택은 [언터처블스]에서 냉철한 FBI 요원 엘리엇 네스로, 피터 그레이브스는 [미션 임파서블]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짐 펠프스로 이름을 날렸다. 이들은 모두 "저 배우가 나오면 믿음이 간다"는 인상을 남긴 얼굴들이었다. 레슬리 닐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1950년대부터 50편이 넘는 드라마, 서부극, [금단의 행성] 같은 SF 스릴러에 출연하며 단단한 목소리와 신뢰감 있는 주연 배우로 인식됐고, [포세이돈 어드벤처] 같은 재난 영화에서도 진지한 역할을 맡아왔다. 감독 짐 에이브러햄스와 주커 형제는 바로 이 점을 노렸다. 코미디 연기를 해본 적 없는 배우들을 일부러 섭외한 것이다. 관객이 진지함을 기대하는 배우들이 황당한 상황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대사를 읊조리면, 그 어긋남 자체가 웃음이 된다는 계산이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는 수녀가 기타를 치고, 조종실에 커피 메이커가 있고, 자동조종장치가 풍선 인형이지만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등장인물 모두가 미쳤지만, 그 세계 안에서는 아무도 이상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아무도 웃긴 표정을 짓거나 관객과 함께 웃지 않는다. 이 세계관의 일관성이야말로 에어플레인을 전설로 만든 핵심이었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자신들의 역이 왜 웃긴지조차 몰랐다. 웃음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냥 극본에 나온대로 그대로 연기했다. 브리지스는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담배를 끊기엔 최악의 날이라며 약물을 흡입하는 장면을 진지하게 연기했고, 그레이브스는 어린 승객에게 기묘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대본대로 친절한 기장을 연기했다. 피터 그레이브스는 내용을 이해 못해서 고생했는데 감독들이 "나중에 설명드릴테니 일단 찍읍시다"하고는 결국 설명을 안 해줬다. 그들의 몸과 연기는 오랜 경력 동안 몸에 밴 진지함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레슬리 닐슨만큼은 달랐다. 그는 정확히 극본의 어느 부분이 웃긴지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계산적으로, 더욱 철저히 진지함을 연기했다. “I am serious. And don’t call me Shirley.”라는 명대사는 바로 그 타이밍과 뉘앙스를 꿰뚫은 결과였다. 이 영화는 닐슨의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 이미 성공한 주연 배우였던 그는 54세에 코미디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나 이후 30년 동안 [총알탄 사나이] 시리즈 등에서 같은 공식을 반복하며 최고의 코미디 배우로 거듭났다. 다른 배우들도 에어플레인을 계기로 코미디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지만, 커리어 전체를 갈아엎은 사례는 닐슨이 유일했다. 에어플레인의 유머는 사실 말장난, 시각 개그, 멍청한 상황극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정교하다. 재난 영화를 완벽히 패러디한 구조, 쉼 없이 몰아치는 개그의 밀도, 그리고 진지함을 무기로 삼은 연기까지. 수준 낮은 농담이 놀라운 아이디어로 승화된다. 유치한 소재인데 나보고 연출하라면 저렇게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든다. 이후 [총알탄 사나이]뿐만 아니라 [사우스 파크], [더 오피스], [파크스 앤 레크리에이션] 같은 작품들 모두 진지한 형식과 어이없는 내용을 충돌시키는 구조를 이어받았다. 에어플레인은 가장 진지한 사람들이 가장 웃긴 코미디를 만들 수도 있다는 기대치의 역설을 보여줬다.







미스터빈은 평양 관객들도 폭소하게 만든다 케이팝은 아직 노력해야.. 아육대로 안된다. 대머리 가발이라도 쓰란 말이다!



2차대전이 끝나고 연합군이 독일 전역을 점령했을 때, 항복하거나 체포된 독일군 포로 가운데 놀랄 만큼 많은 이들이 사실상 ‘군인’이라기보다 히틀러 유겐트(Hitlerjugend) 출신의 십대 소년들이었다. 마지막까지 베를린 방어전에 투입된 대원들조차 14~17세 사이가 많았고, 전장에서 총을 든 경험 외에는 세상 물정도, 민주주의의 가치도 모른 채 성장한 세대였다. 이들이 미군에게 잡혔을 때 상당수는 "이제야 자유를 얻었다"고 여겼다 한다. 이들을 그냥 고향으로 돌려보내면 파시즘 교육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 사회 불안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특히 미국은 전후 유럽에서 공산주의가 확산될 조짐을 예의주시하고 있었기에, 이 젊은 세대를 ‘민주주의적 시민’으로 재교육하는 일이 전략적 과제가 됐다. 그런 맥락에서 프랑스 북부의 아티시(Attichy) 지역에는 미군이 설립한 특수 포로 수용소가 만들어졌고, '새장 Bird Cage'라는 프로그램이 가동됐다. 일부 자료에 따르면 약 만 명가량의 청소년 포로가 이곳을 거쳐 갔다고 전해진다. 아티시 수용소에서 시행된 프로그램은 단순한 포로 관리가 아니라 일종의 ‘탈나치화 교육’에 가까웠다. 독일어 교재를 통해 자유주의 정치제도, 헌법, 시민권 개념을 가르쳤고, 토론 수업과 영화 상영, 신문 제작 등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는 훈련을 시켰다. 나치 시절 주입받은 인종주의나 전체주의적 사고를 교정하는 것이 핵심이었고, 전쟁 책임에 대한 토론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꼭 인도주의적 복지나 청소년 보호 차원만은 아니었다. 미국 입장에서 중요한 목표는 전후 서유럽 재건에서 잠재적 불안 요소를 제거하고, 이들이 공산주의 진영에 매혹되지 않도록 미리 사상적 장벽을 세우는 일이었다. 그래서 교육은 일정 수준 이상으로 깊이 들어가지 않았고, 민주주의의 복잡한 구조를 체계적으로 이해시키는 것보다 ‘반(反)나치, 반(反)볼셰비즘’ 기조를 주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UN이 소년병을 금하는 등의 UN 아동권리협약을 채택한 건 이로부터도 한참 뒤인 1989년이었다.





1970년대 초, 전자공학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은 부품 하나가 등장했다. 이름은 555 타이머 IC. 스웨덴 출신 엔지니어 한스 카멘지트(Hans Camenzind)가 시그넷틱스(Signetics)에서 설계했고, 1972년 세상에 처음 공개됐다. 당시엔 단순한 타이머 칩으로 소개됐지만,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가장 널리 쓰이는 아날로그 IC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555의 매력은 놀랍도록 단순하면서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재다능하다는 데 있다. 내부 구조는 비교기 두 개, 플립플롭, 방전 트랜지스터, 저항 3개가 전부다. 하지만 이 간단한 회로를 어떻게 연결하느냐, 외부 저항과 커패시터 값, 전압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낸다. 저항 값을 바꾸면 타이밍 시간이 달라지고, 커패시터 용량을 조절하면 출력 주파수가 바뀌며, 공급 전압을 조정하면 신호의 세기나 파형 특성까지 달라진다. 같은 칩이라도 회로 구성에 따라 타이머, 발진기, 펄스 생성기, PWM 제어기 등 서로 다른 성격으로 동작하는 것이다. 출시 이후 지금까지 50년 넘게 변함없는 인기를 유지하며 매년 약 10억 개 이상이 생산된다. 디지털 시대에도 이 아날로그 IC가 여전히 살아남는 이유는 가격이 매우 저렴하면서도 범용성이 뛰어나고, 회로 설계가 단순해서 거의 모든 전자 장치에 쉽게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새로운 칩이 등장했지만 555는 “없어서는 안 될 기본기”가 됐다.




"엄마아빠 싫어! 아예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나을뻔 했다구!" "살터진 자국이 없어졌어!" "돈! 양육에 들어간 돈이 돌아왔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