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가 되는 과정은 지난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후보 17명을 한 자리에 모아 12번에 거친 토론회를 벌였고, 그 과정에 거의 모든 후보가 트럼프에 대해 최악의 후보이자 위험한 인물이라는 입장을 공식화 했다.
결국 트럼프가 후보가 된 후 그 후보들은 자신들의 공식입장에서 180도 선회해 '트럼프 최고!'를 외칠 수 밖에 없었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공화당 인사에게 반드시 보복했기 때문이다. 재선에서 다른 후보를 미는 방식도 있었고, 지역구 유권자들을 동원해 압력을 가하는 방법을 썼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윤석열의 비리의혹을 처음 제기한 게 지금 윤석열의 수행원 노릇을 하고 있는 장제원, 김재원, 원희룡 등이었던 것과 비슷하다.
자신에 대립하는 정치인들의 지역구 유권자들을 동원할 수 있었던 비결은 트럼프의 "미국 최우선!" "중국 반대!" "미국인 일자리 빼앗는 자유무역 필요없어!" 등의 구호가 그 몇년 전부터 유행하던 티파티 운동 세력을 고스란히 접수하고 미국 전체의 시골지역과 죽어가는 공업지역의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상황이었으면 후보가 징계당하고 교체될 만한 일과 발언들이 이어져도 트럼프는 걱정할 일이 없었다. 이건 전세계적으로 두테르테와 트럼프 외에는 잘 나타나지 않는 현상인데, 이 유권자들은 표만 준게 아니라 거의 개인숭배에 가까운 충성을 보냈고, 트럼프가 권좌에서 밀려난지 1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지금도 대중연설을 하면 이벤트 장소가 광기로 가득찬다. 거리에 나서는 윤석열 주변이 텅텅 빈 것과 대조된다.
게다가 집권기 트럼프는 각 지역 공화당 지도부를 자기 사람으로 채우는데 역대 그 어떤 공화당 대통령보다 힘을 쏟았다.
2022년 2월 4일에 열린 공화당 전국위 동계회의는 다음 공화당 대선 경선에 출마할 후보들을 어떻게 지원하고 검증할 것인지, 어떻게 공정한 경쟁을 이룰 것인지 대한 회의였고, 다음 대선을 3년 앞두고 늘 열리는 회의였다. 이번 회의가 특이했던 점은 전국위 회장부터 말단까지 전부 "트럼프 대통령께서 출마하신다면 우리는 그의 대선가도에 장애물을 제거하는 일을 해야 한다. 트럼프 비판하는 공화당 당원들을 징계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는 점이다. 공화당을 지난 대선에 패배한 전직 대통령이 이렇게 완벽하게 장악한 건 처음있는 일이다.
이대로 가면 트럼프가 공화당 후보로 2024년에 출마하는 건 기정사실이고, 시골 미국인들의 지지도 흔들림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이 정상적인 정당으로 회복되는데에는 몇년이 더 걸릴 것 같다. 나이도 많은 트럼프가 사망하거나 감옥에 가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공화당은 트럼프당이고, 미국 정치수준이 계속 바닥을 향해 돌진할 것 같다.
—-
트럼프를 따라하고 있는 윤석열에게 없는 게 바로 이거다. 팬덤. 지금까지 윤석열에게 흔들림 없는 지지를 보내고 있는 35% 가량은 윤석열에 대해 별 애정이 없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윤석열이 중요한 게 아니라 민주당에게서 정권을 빼앗아 오는 게 목적이다. 윤석열 비리와 의혹 검증을 민주당에서 시도해도 별 효과가 없는데, 미국에서는 후보에 대한 강한 충성도 때문에 트럼프에 대한 공격이 효과가 없었지만, 윤석열의 경우는 여당에 대한 미움 때문이다. 트럼프와 달리 윤석열은 순수하게 일회용 후보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야권의 분열이다. 야권의 교체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안철수가 윤석열 공격하는 게 잘 먹힌다. 실제로 안철수로 야권 후보가 교체되면 그것도 이재명 선거운동에 빨간불이 되지만, 적당한 수준의 반윤석열 연대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둘이 대등한 수준까지 가도 자신으로의 단일화가 아니면 감옥을 피할 수 없어서 윤석열은 단일화에 점점 소극적이 될 것 같다.
이재명 캠프도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로 보인다. 이미 큰 연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김동연, 박사모, 김종인까지. 단지 이재명지지 혹은 반윤 연대로 힘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안철수 같은 대안 세력에 살짝 힘을 실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팬덤이 없는 윤석열에게 지금 이 순간은 안철수가 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