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도 오랜 세월 진보의 지지를 받았지만 당선되고 나서 할 수 있는 건 신자유주의뿐이었고. 노무현도 당선…

김대중도 오랜 세월 진보의 지지를 받았지만 당선되고 나서 할 수 있는 건 신자유주의뿐이었고. 노무현도 당선되고 나니 이라크 파병과 한미FTA로 많은 지지자 가슴에 못을 박았고. 극도의 신비주의 전략 안철수가 무릎팍도사 출연했을 때는 진보에서 중도우파까지 다들 자신의 염원을 투영했지. 김어준도 안철수는 문재인과 결이 같은 사람이라고 그랬고. 문재인 뽑은 사람들 상당수는 문재인 정권의 개혁이나 특히 인사에서 연속된 실망을 경험하고 있다. 근데 수십 년 도전하는 경우나 어떤 바람을 타고 대통령이 되는 경우나, 어느 정도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해서 서로 상충하는 바람을 가진 유권자들까지도 나를 지지할 수 있게 여유 공간을 마련해주는 게 필수인 것 같다. 지금 이재명을 개혁 대통령으로 생각하고 지지하는 우리도 이 점은 잊지 않는 게 좋겠다. 세종대왕이 돌아와도 수백만의 머릿속에 수백만 개 이상형을 동시에 만족하게 할 수는 없다.

미국 남북전쟁(1861 – 1865)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 미국 남부 주들은 전쟁이 끝난 뒤 중남미를 침공…

미국 남북전쟁(1861 – 1865)이 한창 진행 중이던 때 미국 남부 주들은 전쟁이 끝난 뒤 중남미를 침공, 병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북부와 휴전을 통해 두 개로 갈라진 국가가 될 때를 대비해 중남미를 흡수해서 방대한 국토와 인구로 공업이 전무한 남부의 국가경쟁력을 보완하려는 계획이었다. 남부 주들은 북부의 간섭없이 노예제도를 확장할 수 있는 새로운 영토를 원했고, 아직 국력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안정이 되지 않은 멕시코, 브라질 등은 점령당하기만 기다리고 있는 빈 땅으로 보였다.

남부 주들은 전쟁 중에 멕시코에 첩보원들을 보내 민란을 일으켜보려고 하기도 하고, 브라질 아마존강 유역을 정탐할 첩자들을 보내기도 했지만, 전쟁에서 지면서 다 헛일이 되고 말았다. 앞에 먼저 브라질에 침략 경로를 살펴보러 갔던 남부 미국인들은 결국 남부 골수 노예주의자들이 망명할 땅을 알아보는 일을 하게 됐다.

전쟁이 끝난 다음 해인 1866년에 아직 노예제도가 합법이던 브라질 상 파올로 주에 적게는 10,000명에서 많게는 20,000명의 남부 미국인들이 망명해서 아메리까나라는 도시를 이뤘고, 일부는 지금까지 살고 있다. 미국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의 부인의 종조부도 그때 브라질로 망명한 사람 중 하나였고, 카터도 조지아주 주지사 시절에 아메리까나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미국 백인우월주의의 상징이 된 남부기를 브라질의 아메리까나 시에서도 한동안 사용했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Confederados

#invasion #brazil #mexico #civil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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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정치적으로 쇄락하고있던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이 영토확장이라는 정치쇼로 반전을 시도하기 위해…

1999년 정치적으로 쇄락하고있던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이 영토확장이라는 정치쇼로 반전을 시도하기 위해 구소련 독립국가들과 병합 추진. 만만한 상대가 쪼그마한 벨라루스 밖에 없었음. 그래서 동등한 국가 대 국가 병합 조건까지 제시하며 러시아가 벨라루스를 모셔가던 상황.

벨라루스의 독재자이자 역사상 가장 야심찬 야심가 루카셴코는 "이 작은 나라에서 독재자해서 언제 빛을 보겠나. 러시아를 먹자."라고 생각. 실제로 벨라루스-러시아 연합 탄생.

옐친이 조만간 은퇴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진짜 루카셴코가 새 연합의 지도자가 됐고, 벨라루스라는 새우가 러시아라는 고래를 삼킨 상황. 단지 그 당시로는 듣보잡이던 푸틴이 이미 배후에서 러시아 국내 권력 장악을 끝낸 상황이라 결국 연합은 이름만 남았음. 그래도 지금도 벨라루스-러시아 연합 최고 수장은 루카셴코.

… 역사책에 계셔야 할 분이 아직도 현역 독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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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적으로 순익이 나기 힘든 사업들은 민간영역에 맡기려고 하면 안 된다.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예가 거의 없다…

단기적으로 순익이 나기 힘든 사업들은 민간영역에 맡기려고 하면 안 된다. 전세계적으로 성공한 예가 거의 없다. 철도, 인프라, 우주, 건강, 등등.

민간영역의 장점은 빠른 세대교체(iterations)에 있다. 뭔가 아이디어를 내고 시도해보고 안되면 바로 포기하거나 수정. 이게 개별 회사 내에서 이뤄질 때도 있고, 업계별로 이뤄질 때는 여러 사업자들 중 가장 잘하는 사업자만 남고 나머지가 도태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빨리 프로젝트를 접어서건 빨리 망해서건 일단 여러 아이디어 중 어느 게 나은지 실험하고 판단하기에는 민간이 훨씬 효율적. 단지 이건 많은 실패와 사업체/자본의 죽음을 통해 얻는 효율이다.

문제는 건강, 안전, 안보 같은 경우 빨리 해보고 망하면 접고 다른 거 해보고 하기 힘들다는 거다. 사람이 죽으니까. 이걸 시장에 맡겨 제일 효율적인 사업자만 살고 나머지 사업자가 관리하던 고객들은 건강, 안전, 안보를 잃게 되는 일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철도, 우주산업 등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우주산업은 이윤이 날 수 있는 시점까지 가려면 앞으로도 몇십 년의 정부투자가 필요하다. 철도가 없는 나라에 철도회사가 단독으로 철로를 만들고 사업해서 이윤을 내는 건 초기 철로 건설 비용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부분 국가가 만들고 계속 운영하거나 영국처럼 민영화 시도를 한다.

그러나 민영화 하는 순간 돈이 안되는 구간이 사라지거나 축소되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서의 공공성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돈이 되는 대도시 구간만 계속 신설 되기 때문에 국토균형발전의 반대방향으로 가게 된다.

한국은 흑자가 큰 수서발 고속철만 민영화했다. 당연히 남은 노선을 운영하는 코레일의 영업이윤은 내려갈 수 밖에 없고, 코레일이 운용중인 적자 구간들이 위협받는 상황으로 간다. 민영화에서 이걸 피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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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경우 국영철도를 여러개 구간으로 쪼갠 뒤 이윤이 많이 나는 구간과 적자 구간을 묶어서 각 사업자가 둘 다 책임지게 했다. 시골 지역 사용자들이 소외되지 않게 노선, 스케줄, 발권가, 모든 걸 미리 정해주고 사업자는 그 방침 그대로 운영만 하도록 했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계획이었지만 실제로 민영화 시도는 계속 실패했다. 아무것도 수정할 수 없는 노선 수주에 민간 기업들이 영국 정부에 제시할 수 있는 건 영국 정부에 주기로 한 라이센스 비용을 경쟁사보다 올리겠다는 것 뿐이어서 서로 더 낮은 이윤을 향해 돌진하다가 결국 수주한 회사는 운영해보고 적자가 나서 포기하고 나간다. 그러면 그 구간은 다시 국영화되고 몇 년 뒤 다시 민영화를 시도한다. 이 작업이 수십년간 수차례 반복되는 중이다.

사실 더 큰 문제는 민영화된 기간보다 국영화된 기간에 사용자만족도 등이 더 높아서 도대체 왜 자꾸 민영화 하려는 건지 의문인 국민이 많다는 것. 그리고 민영화 된 뒤에 정부가 투자해야하는 보조금은 더 늘어서 민영화를 통한 비용절감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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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어로 “အိမ်애인”이 집이라는 뜻이고, “ထောင်타웅”이 감옥이라는 뜻. 합치면 “အိမ်ထောင်…

미얀마어로 "အိမ်애인"이 집이라는 뜻이고, "ထောင်타웅"이 감옥이라는 뜻. 합치면 "အိမ်ထောင်애인다웅"인데 결혼이라는 뜻.

스웨덴어로 "gift"가 형용사로 결혼한, 기혼의 뜻도 있고, 명사로 독이라는 뜻도 있음.

미군 철수는 이미 예정되어있던 수순. 미국은 이란과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할 생각이었지만…

미군 철수는 이미 예정되어있던 수순. 미국은 이란과 중국 견제를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할 생각이었지만 아프가니스탄은 현대전 의미에서의 점령이 힘든 곳.

1. 옛날 제국들은 마음대로 아프가니스탄 점령 자주 했음. 페르시아, 알렉산더대왕, 아랍제국, 몽골제국, 티무르제국, 무굴제국 등이 성공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점령하고 접수.

2.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실패하기 시작한 근대 제국으로는 영국이 있는데, 영국이 침공하기 직전에도 아프가니스탄은 시크제국에게 완전히 복속 당하기도 했음.

내가 보기에 차이는 복속하면 살려주고 저항하면 죽여없애는 게 전쟁의 규칙이었던 시절, 땅뺏기 전쟁은 심하면 그 땅에 살던 토착민을 완전제거하고 자신들의 족속들로 그 땅을 채우는 게 가능했다는 것. 특히 2차대전 이후 현대전에서는 더 이상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러시아가 그루지야나 우크라이나 땅을 자꾸 빼앗아가는 정도 외에 제국주의적 영토전쟁이 힘듦.

이는 아프가니스탄 뿐 아니고 미국의 이라크 점령 실패에서도 나타남.

3. 영국 소련 미국은 각각 러시아 견제, 공산당 혁명 지원, 이란-중국 견제라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점령하러 들어갔다가 참패.

소련도 사실 1929년에 아프가니스탄 침공했을 때는 쉽게 성공했음. 점령이 아니라 토벌만 하고 물러나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

4. 게다가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교란하기 위해 미국이 무자헤딘을 지원한 게 그 지역(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이란)의 종교적 극단주의의 급속한 팽창을 가져와서 탈레반, 알카에다의 시초가 되었기 때문에 앞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는 제국들은 이슬람 극단주의 전체와 싸우게 되기도 해서 이도교 세력에 의한 복속이 더 불가능한 땅이 됨.

아직 파키스탄이나 이란은 필요에 따라 충분히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하고 괴뢰정부를 세울 수 있다고 봄. 같은 종교이자 예전에도 아프가니스탄을 복속시킨 역사가 있기 때문에.

5. 문제는 영국 소련 미국이 포기하고 나간 땅에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는 중국.

인도의 영향력을 차단하기 위해 티베트를 점령하고 미국의 중국본토에 대한 물리적 접근을 막기 위해 수십 년째 북한을 활용해온 중국의 외교정책이 과연 아프가니스탄의 유혹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이 성공하면 아프가니스탄에서 중국 신장으로 연결되는 91킬로 길이의 국경이 매우 뜨거워질 예정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미국의 노력을 배후에서 물심양면으로 교란해온 중국이 미국이 떠나간 뒤 아프가니스탄을 가만히 둘 수 있을까.

중국과 유럽을 실크로드로 연결하는 바로 그 교역로가 그 91킬로의 국경을 지나감. 일대일로의 상징적 의미로라도 중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접수하거나 최소한 안정적 우군으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

중국은 알렉산더대왕이나 몽골제국처럼 처참한 무력으로 아프가니스탄을 병합할 것인가, 아니면 영국 소련 미국처럼 전략적 점령을 시도했다가 신장 무슬림까지 각성하는 계기가 될 것인가, 아니면 동남아와 아프리카에서처럼 총알이 아닌 돈을 무기로 아프가니스탄 식민화에 성공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