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등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대화를 엿들어보지 않고선 알기 힘든 것들이 있는데… 인류 2% 정도에게 있다는 아판타시아 aphantasia 라는 증상이 있다. 머리 속에서 뭔가를 떠올리려할 때 그 개념은 떠올리지만 그 모습 자체를 상상하는 게 힘든 증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빨간 사과를 상상하라고 하면 내 머리 속에서는 당장은 아무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 속에서 봤던 사과나 사과 사진들을 떠올려 대략 이런 거겠지 하고 노력해야 3과 4 사이 정도의 이미지가 얼핏 혹은 흐리게 떠오른다. 3, 4번 수준의 이미지도 노력해야 떠오를듯 말듯 해서 집중하지 않으면 금방 사라진다. 사과가 어떤 구조인지도 알고 공모양인 것도 알고 빨간 색이 뭔지도 알기에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데 큰 문제는 없다. 단지 눈 앞에 그 모습이 있지 않는 이상 내 마음 속에서 그 이미지가 떠오르진 않는다. 과거 기억도 그 상황을 글로 정리해서 기억한 것 같은 느낌이지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이미지가 뜨는 건 별로 없다. 그냥 각 경험 당 대표적 이미지 한두개 정도씩 대충 기억한다. 내가 이 증상을 확인한 게 오늘이다.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45년간 세상 사람들이 다 나같은 줄 알고 살았기 때문이다. 왜 난 어릴 때부터 보고 베껴 그리는 건 자신 있었지만 상상해서 그리기는 아예 시도도 못하는 편이었는지, 옷가게에서 직접 걸쳐보기 전엔 이게 어울리는지 엉망인지 알 수 없고 옷을 보고 이게 집에 있는 다른 옷과 어울리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던 건지, 등 많은 게 설명된다. 이 저울의 반대 쪽에 있는 사람들이 완전기억능력을 가진 사람들인 것 같다. 머리 속에서 최근에 봤던 장면이나 그림, 책 내용까지 완벽하게 떠올려서 머리 속에서 책 페이지 일부를 다시 읽어볼 수 있을 정도인 사람들. 비슷한 게, 생각할 때 머리 속에서 생각을 말하는 목소리가 존재하는지, 목소리 없이 그냥 생각하는지의 여부가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생각할 때 어떤 목소리가 머리 속에서 나레이션 하듯 울린다고 하는데 난 대부분의 경우 그냥 개념들의 충돌과 정렬이다. 글을 쓸 때는 타이핑 하며 그걸 읽는 목소리가 느껴지는데, 읽을 때나 생각할 때는 대부분 조용하다. 작년인가 자폐증 자가테스트들에서 거의 확실한 자폐로 나왔을 때보다 더 신기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