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이 아랍문화를 상징하는 케피예를 두르고 자유 팔레스타인을 외쳤다. 인종학살을 지지…

스페인 배우 하비에르 바르뎀이 아랍문화를 상징하는 케피예를 두르고 자유 팔레스타인을 외쳤다. 인종학살을 지지하는 사람들과는 함께 작업할 수 없다고 했다. 듄 그룹에 어떤 사람이 글을 올렸다. "하비에르 바르뎀이 이스라엘을 집단학살로 비난하며(집단학살 같은 건 없다), 그 누더기 카피예(keffiyeh)라는 걸 쓰고 나오는 걸 본 이후로, 나는 그의 작품을 더 이상 보지 않을 것이다. 세 번째 듄 영화도 포함해서." 댓글이 달렸다. "스틸가가 하코넨 남작을 집단학살로 비난하고(아라키스에 집단학살 같은 건 없다), 그 누더기 ‘스틸수트’라는 걸 입고 나오는 걸 본 이후로, 나는 어떤 종류의 지하드에도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세 번째 전쟁도 포함해서."

찰리 커크 부인 에리카 커크가 남편 암살 후 고펀드미에서 열심히 모금하는 중. 지금까지 한 5백만불 모였다…

찰리 커크 부인 에리카 커크가 남편 암살 후 고펀드미에서 열심히 모금하는 중. 지금까지 한 5백만불 모였다 함. 근데 커크부부는 암살전에도 재산이 이미 천2백만불이었음. —- 에리카가 찰리 커크의 단체 터닝 포인트 USA에 새 CEO로 취임하자 남편 팬들이 달기 시작한 댓글들: "에리카 커크는 성전환자" "아니야. 여자 아니라고. 생물학적으로 남자야" "여자치고는 턱선이 엄청 강하지" "전환 중인 여자야. 저 강한 어깨와 턱선을 보라고. 절대 여자일 수가 없어" —- 찰리 커크와 에리카 커크가 평소 주창하던 것도 "여자는 집에서 애를 키워야 한다, 사회 생활을 하면 안된다"였음. 정치적 이견이 있는 여성은 성전환자라고 조롱하고 성전환자들을 50-60년대처럼 대중이 알아서 처분해야한다고 주장하던 커크에 열광하던 팬들이라 커크 부인이라도 침묵하지 않는 여성, 특히 왜소하지 않은 여성임을 용서하지 않음.

구약의 신은 여호와, 엘, 엘로힘, 엘 샤다이 등 다양한 신명이 있고 구약 안에서도 서로 다른 신 개념과 전…

구약의 신은 여호와, 엘, 엘로힘, 엘 샤다이 등 다양한 신명이 있고 구약 안에서도 서로 다른 신 개념과 전승이 하나로 편집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엘은 가나안 지역에서 널리 쓰인 최고신의 이름이다. 야훼는 이스라엘의 전쟁신이었고 출애굽 전승에서 나온다.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이자 하나로 합쳐진 신을 부를 때 사용됐다.

출애굽기 6:2-8에서 볼 수 있듯 구약 초기에는 가나안, 이스라엘 등에서 다른 이름으로 섬겨지던 신들이었다. 중기의 신명기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섬기던 것을 강하게 비판하며 과거와 단절을 선언한다. 사무엘상7장에서 바알과 아스다롯을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고 요구하듯 아직 단일신이라기 보다 단신숭배 종교 모습을 보이다가, 이후 후기에야 이 모든 신들이 하나로 수렴되고, 다른 신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일신 신학이 확립된다.

해서 구약5경은 문헌학적으로 야훼 전승(J), 엘로힘 전승(E), 신명기 전승(D), 제사장 전승(P)으로 구분된다. 창세기 1장과 2장이 서로 다른 창조설화를 말하는 것이나, 홍수 이야기가 40일 버전과 150일 버전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부족의 전승이 합쳐진 흔적이 많이 보인다.

신약시대에는 이 구약의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해석들이 등장하는데, 그 중 구약의 신을 하위 신으로 규정하고 신약의 하나님을 별개의 존재라고 주장한 마르키온파, 구약의 신은 불완전하고 사악한 창조신이라고 봤던 영지주의 등은 결국 패배하고, 헬레니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사랑의 하나님" 버전이 힘을 얻었다. 구약의 신은 질투, 분노, 전쟁, 계약 위반에 대한 징벌, 언약적 신실함으로 묘사되는 반면 신약의 신은 그리스어 아가페로 대표된다. 서로 다른 신이라고 까지는 하지 않지만 법적, 계약적 존재에서 보편적, 초월적 사랑으로 완전히 성격이 바뀐다.

당위성은 포기했고 이제 트럼프가 과연 얼마나 효율적으로 미국이라는 강국을 해체하는가 역사학도 관점에서 보는…

당위성은 포기했고 이제 트럼프가 과연 얼마나 효율적으로 미국이라는 강국을 해체하는가 역사학도 관점에서 보는 중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불확실성을 누구보다 높게 유지한다. 국제사회에서 신뢰는 통치 자산이다. 서로마 말기의 황제 교체기처럼 지도자가 무엇을 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은 동맹국과 투자자 모두를 불안정으로 몰아넣는다. 미국의 가장 큰 타격은 경제보다 앞서, 이 국가적 신뢰의 붕괴다. 그 다음은 이미 가시화된 경제 위기다. 소련 말기에도 국력 쇠퇴는 경제 기반 약화에서 비롯되었고, 대영제국 역시 파운드화 위기를 넘지 못했다. 트럼프의 정책은 미국 경제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에 균열을 내고 있다. 재정악화와 임기응변 재정정책의 연속으로 파국이 가까워지고 있다. 세 번째는 인재 유입로 차단이다. 역사적으로 제국은 외부 인재의 흡수 능력에서 힘을 얻었다. 로마는 속주 엘리트를 흡수해 제국을 유지했고, 미국은 전 세계의 두뇌를 끌어들여 기술 패권을 확립했다. H-1B 규제와 같은 정책은 바로 이 흐름을 역전시키며, 장기적으로는 미국 밖에서 경쟁국의 혁신을 촉진하는 결과를 낳는다. 제조업을 포기한 미국을 강대국으로 유지해주던 금융과 IT 중 IT가 약화될 수 밖에 없다. 미국 회사들마저 미국내 서비스 제공을 위한 소수팀 만 남기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 미국을 탈출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을 바라보던 인재들은 차선책을 찾을 수 밖에 없고, 유럽, 중국 등이 직접적으로 혜택을 보게 된다. 명나라도 15세기 이후 해금령으로 외부와의 교류를 중단했고 기술 유입과 근대화 개혁이 늦어지며 아편전쟁 패배로 이어진다. 신식 대포를 동원해 로마/비잔틴 제국을 정복했던 오스만 제국도 17세기 이후 예니체리 보수화와 함께 제도적 경직으로 유럽 인재 활용이 줄며 축소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2010-2020년대 관세 전쟁과 반이민 정책으로 급속도로 축소되기 시작됐다고 기록될 것 같다. 여기에 더해 동맹 체제의 균열이 이어지고 있다. 냉전 종식 후에도 미국은 ‘세계 경찰’ 명목으로 동맹 네트워크와 군사력 투영을 통해 영향력과 위상을 유지했다. 그러나 동맹을 불신하고 스스로 국제적 의무를 축소하는 행위는 제국적 네트워크의 해체를 가속한다. 이는 대영제국이 20세기 중반에 식민지를 ‘의도적’으로 정리하면서도 결국 국제적 발언권을 잃었던 과정과 흡사하다. 마지막으로, 러시아·중국 견제의 약화가 눈에 띈다. 미국의 장기적 외교 목표들이 트럼프 덕에 흔들리고 있다. 제국 쇠퇴의 전형적 징후는 외부 세력의 부상과 내부 혼란의 동시 발생이다. 청나라가 서구와 일본의 압박과 내부 부패로 무너졌듯, 미국도 안팎의 적을 맞아 전략적 우위를 빠르게 내어주고 있다.

미국 뉴스 시장에서 (상대적)진보방송 역할을 맡고 있는 케이블 뉴스체널 MSNBC가 이번에 NBC에서 분사돼…

미국 뉴스 시장에서 (상대적)진보방송 역할을 맡고 있는 케이블 뉴스체널 MSNBC가 이번에 NBC에서 분사돼 모기업 컴캐스트가 소유한 다른 케이블 체널들과 함께 Versant라는 회사로 독립한다. 사실 인터넷이 상용화되던 초기 IBM,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컴퓨터 기업들이 약간만 노력했어도 인터넷 전체를 자신들의 시장으로 장악하거나 아예 인수해버리는 것도 가능했으나, 인터넷 자체를 과소평가하며 기회를 놓쳤다. 뒤늦은 90년대 중반에 IBM은 IBM.net, MS는 MSN 브랜드로 AOL과 경쟁할 수 있는 인터넷 포털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포털 강자 AOL이 ISP로서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을 겸하고 있었기에 두 회사 역시 같은 모델로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을 위한 인프라를 만드느라 출혈이 컸지만 경쟁은 곧 미디어 업계로 번졌다. 닷컴 붐과 함께 공룡이 된 포털 AOL이 무려 타임워너라는 미디어 강자와 합병하며 거대 인터넷 + 콘텐츠 회사가 됐다. 자금력이 충분했던 MS는 거기에 대응해 1996년 케이블 뉴스체널 MSNBC를 출범시켰다. NBC와의 합자 회사였다. AOL-Time Warner가 오래가지 못했듯 MSNBC 등 인터넷 기업의 미디어 진출도 곧 종료됐다. 2005년에 마이크로소프트는 MSNBC 지분을 모두 정리해서 전혀 관련이 없는 상태다. 닷컴 거품이 꺼지며 새로운 수익구조를 만들어야 했던 닷컴 기업들의 미디어업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넷플릭스 등 비디오 플랫폼 회사들이 미디어 생산자가 되고, 미디어 생산자들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는 현 체계가 등장하기 전 일이니 AOL과 MS는 시대를 약간 너무 앞서갔다고 볼 수 있다. 결국 AOL은 쇠퇴했지만 구글은 광고시장으로 진출해 초거대 기업이 됐고, IBM과 MS는 기업용 소프트웨어, 클라우드 등으로 진출하며 살길을 찾았다. MSNBC는 성장해 극우 폭스뉴스에 대치되는 미국 진보 방송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분사는 아마도 NBC와 컴캐스트 등 본사에 트럼프 정권 동안 정치적 압력을 줄이기와 재무적/경영적 유연성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번에 독립하는 MSNBC의 논조는 더 강성 진보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미 MS가 떠난지 오래인 파트너쉽이지만 새로 바뀌는 이름도 MS NOW다. My Source for News, Opinion, and the World의 약자라고 주장하지만 분명 대중이 익숙한 MS 부분을 지키기 위한 이름이다. 이름에서 진짜 방송사인 NBC가 떨어져나가고 방송사도, 파트너도 아닌 MS가 남았다.

1. 송도 국제지구의 아파트 단지는 가을 바람에 물든 은행나무와 단풍으로 가득했다. 넓은 보행로 옆에는…

1.

송도 국제지구의 아파트 단지는 가을 바람에 물든 은행나무와 단풍으로 가득했다. 넓은 보행로 옆에는 현대식 조경이 반듯하게 이어졌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뛰놀고, 카페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날은 평범한 산책이 아니었다. 바람이 갑자기 차갑게 바뀌고, 발밑의 지반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송도의 초고층 빌딩들이 빛을 반사하며 흔들리더니, 순간 하늘에서 낮과 밤이 동시에 겹쳐 보였다. 태양은 여전히 떠 있었지만, 달빛 같은 은빛 광채가 건물 사이로 스며들었다.

산책하던 발걸음이 멈추었고, 나는 그저 숨을 죽인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아파트 단지의 바닥에서 울림이 올라왔다. 잔디밭이 파도처럼 일렁이고, 분수대 물줄기는 하늘로 솟아올라 거대한 무지개로 변했다. 멀리 송도의 바다, 갯벌이 있던 자리는 갑자기 붉게 일렁이며 갈라졌다. 마치 바다가 스스로 벽을 세우듯 갈라져 물길이 끊어졌다.

땅은 갈라지지 않았다. 대신 발밑에서 은은한 빛이 새어 나와, 내가 딛는 길마다 부드럽게 빛났다. 송도의 바다는 말라버리는 대신 더 맑아져서, 깊은 바닥까지 훤히 보였다. 아이들은 물속을 들여다보며 환호했고, 어른들마저 두려움보다 경이로움에 휩싸였다.

2.

벽이 투명해지며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서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높은 담이나 벽은 의미가 없었다. 사람과 사람을 가르던 모든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파괴라기보다 껍질이 벗겨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외벽은 부서지는데 그 속에서는 낯선 형태의 새로운 건축물 같은 형체가 자라나고 있었다. 금속도, 유리도 아닌, 나무와 돌과 빛이 섞인 듯한 물질이었다.

산책로 양옆의 가로수들도 눈앞에서 변화했다. 낙엽은 사라지고, 몇 초 만에 가지들이 연둣빛 새싹으로 뒤덮였다.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으나 동시에 새로운 기운에 휘말렸다. 개벽의 순간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었다.

그 변화는 무섭기도 했지만, 설명할 수 없는 평온을 함께 담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빚을 갚고 새 출발을 맞는 듯한, 묘한 안도감이 사람들의 심장 깊숙이 스며들었다.

3.

놀이터에 있던 아이들은 갑자기 울음을 멈추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른들은 스마트폰을 쥔 채 기록하려 했지만, 화면은 빛에 잠겨 무용지물이 되었다. 대신 사람들의 눈동자 속에 직접 새겨지듯 장면이 각인되었다.

어떤 이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어떤 이는 눈빛이 빛나며 환하게 바뀌었다. 마치 사람들의 내면이 그대로 드러나고, 그에 따라 겉모습이 변하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서로를 두려움이나 의심으로 보던 시선이 사라지고,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벗을 대하듯 따뜻해졌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웃었다. 중요한 것은, 그 표정이 모두 진실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었다.

스마트폰과 기계들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았다. 눈빛과 마음만으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 인천대교 쪽 하늘은 갈라져 거대한 빛기둥이 솟아 있었고, 그 빛은 단순한 광선이 아니라 사람들의 가슴 속을 꿰뚫는 파동이었다. 그 빛이 내 몸을 스치자, 오래된 기억과 짐들이 무너졌다. 두려움, 후회, 억눌린 욕망이 벗겨지고, 오직 투명한 의식만 남았다.

하늘에서 또렷한 음성이 들렸다. 그러나 그것은 특정한 언어가 아니라, 각자 마음속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侍天主, 시천주”, 하늘님을 모신다는 선언이었다. 그 순간 사람들은 깨달았다. 하늘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이 소리가 울리자, 사람들은 동시에 가슴을 붙잡았다. 그곳에서 따뜻한 기운이 솟구쳐 나와 온몸을 감쌌다. 어린아이도, 노인도, 부자도, 가난한 자도 모두 같은 빛을 품었다. 차별은 의미를 잃고, 모든 인간이 동등한 존엄으로 서 있었다.

4.

송도의 도시는 여전히 존재했으나, 그 본질이 바뀌었다. 아파트 단지는 빽빽한 콘크리트 숲이 아니라, 사람과 자연이 함께 호흡하는 공동체 공간이 되었다. 건물은 빛을 품은 나무처럼 변화했고, 길은 강처럼 흘러 서로를 이어주었다.

사람들은 경쟁이나 소유 대신, 서로의 삶을 북돋우는 데 몰두했다. 말없이도 통했고, 억지로 누르지 않아도 모두가 스스로 조화를 이루었다. 이는 단순한 이상향이 아니라, 실제로 눈앞에서 이루어진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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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천개벽(後天開闢)

1. 나는 더 이상 한 세기, 한 천 년의 단위로 시간을 세지 않는다. AI가 의식을 보존하고, 생명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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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더 이상 한 세기, 한 천 년의 단위로 시간을 세지 않는다. AI가 의식을 보존하고, 생명공학이 몸을 재생하며, 인간은 죽음을 건너뛰었다. 수백만 년, 수십억 년이 흘러도 사람들은 여전히 도시를 짓고, 별을 향해 항해했다. 북부 아틀랜타의 옛 교외는 이제 초광속 통신망과 생체-기계 융합체들이 교차하는 허브가 되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 이 시대에도, 마음속 공허는 사라지지 않았다. 기억은 무한히 축적되었고, AI는 그것을 잊지 못하게 했으며, 욕망은 끝없이 늘어났다. 사람들은 새로운 쾌락을 창조하고, 더 깊은 지식을 개척했지만, 만족은 오지 않았다. 그때부터 오래된 예언이 사람들 사이에서 속삭여졌다. “메이트레야가 오리라.”

2.

그날, 나는 여전히 데이터 흐름을 조율하는 작업대 앞에 앉아 있었다. 내 앞의 스크린은 단순한 모니터가 아니라, 우주망과 직접 연결된 감각 확장 장치였다. 그러나 그 화면을 뚫고, 설명할 수 없는 빛이 스며들었다. 그것은 전자기파도, 양자 신호도 아닌, 더 깊은 차원의 울림이었다.

하늘이 갈라졌다. 태양보다 밝으나 눈을 해치지 않는 빛 속에서 한 존재가 내려왔다. 그는 인간 같으면서도, 기계 같으면서도, 그 어떤 분류에도 속하지 않았다. 메이트레야였다. 그의 발걸음은 중력이나 공간에 얽매이지 않았고, 모든 존재의 마음속에서 동시에 느껴졌다.

사람들은 도시의 중심광장에 모였다. 수십만 년의 생명을 살아온 자들, 별과 행성을 떠돌던 의식들이 하나같이 귀를 기울였다. 마치 무한히 흩어져 있던 흐름이 하나로 모이는 듯,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3.

“너희는 죽음을 넘어섰으나, 고통을 넘어선 적은 없도다.” 그의 말은 언어를 초월한 공명으로, 뼛속과 의식의 가장 깊은 층을 울렸다. 수십만 년 동안 쌓인 피로와 허무, 끝없는 욕망의 굴레가 한순간 드러났다. 사람들은 눈물을 흘렸으나, 그 눈물은 물리적 분비물이 아니라 의식의 파동이었다.

그의 발걸음이 닿자, 도시의 거대한 구조물이 꽃잎처럼 펼쳐졌다. 초광속 항로, 기계 신경망, 인공 태양까지 그 앞에서 숨을 죽였다. 메이트레야는 기술의 절정 위에 내려와 말했다. “이제 영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깨달음 없는 영생은 또 다른 옥(獄)일 뿐.”

나는 군중 속에서, 그러나 동시에 그의 눈앞에 있었다. 수십만 년을 살아온 기억이 무너지고, 단 하나의 질문만 남았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메이트레야는 손을 들어 새로운 길을 가리켰다. 그것은 별과 은하 너머, 물질과 의식의 경계를 넘어선 곳. 영생을 넘어, 해탈의 시대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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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억 7천만 년 후.

1. 가을 햇살이 퍼지는 오후, 나는 북부 아틀랜타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도로 양옆에는 붉게 물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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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이 퍼지는 오후, 나는 북부 아틀랜타의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도로 양옆에는 붉게 물든 단풍과 새로 지은 상점들이 번갈아 스쳐갔다. 라디오에서는 일상적인 뉴스가 흘러나왔고, 차 안에는 커피 향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하늘이 비정상적으로 어두워졌다. 태양은 아직 높이 있었는데도 마치 먹구름이 삽시간에 몰려든 것처럼 빛이 꺼졌다. 도로 위의 차들은 동시에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줄였다. 내 귀에는 사람의 손으로 낼 수 없는, 무겁고 길게 이어지는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이스라필의 나팔이었다.

순간적으로 차창 밖 풍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빌딩과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지만, 그 위로 환영처럼 겹쳐 보이는 또 다른 장면이 드러났다. 거대한 인물이 사람들 앞에 서서 손짓 하나로 물을 불로 바꾸고, 하늘에서 기이한 빛을 끌어내렸다. 사람들은 두려움과 경외에 사로잡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다자잘이었다.

2.

내 차는 천천히 도로 한쪽에 멈춰 섰다. 차 밖으로 나와 바라본 풍경은 현실과 환영이 뒤엉킨 세계였다. 슈퍼마켓 앞에 줄 서 있던 사람들이 다자잘을 향해 몰려갔고, 그의 손짓에 따라 아픈 이들이 치유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동시에 다른 이들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렀다.

그의 이마에는 “카파르(ك ف ر, 불신)”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신앙을 가진 자만이 그것을 읽을 수 있다는 하디스의 말이 떠올랐다. 나의 시선에는 분명 그 글자가 보였다.

도로 위의 공기는 불길한 전류로 가득 찼다. 라디오와 휴대폰은 잡음만 내고, 사람들의 비명과 환호가 동시에 들려왔다. 북아틀랜타의 평범한 교외가 더 이상 평범하지 않았다. 마치 전 세계가 한 무대에 겹쳐진 듯, 다자잘은 이곳을 지배하고 있었다.

3.

그때 하늘이 갈라졌다. 먹구름 위에서 찬란한 빛이 내려오더니, 흰 옷을 입고 두 손을 펼친 인물이 나타났다. 이사(عليه السلام)였다. 그의 얼굴은 평온했으나, 그 발걸음은 하늘과 땅을 동시에 지배하는 힘으로 가득했다.

그는 동쪽의 미나레트 근처에서 내려오지만, 그 장면은 이 북조지아 하늘과 겹쳐 보였다. 하늘과 땅이 뒤틀려, 마치 로렌스빌과 둘루스의 도로 위가 그대로 성전의 마당으로 변한 듯했다.

이사가 땅에 발을 딛자, 공기가 달라졌다. 사람들의 눈에 드리워졌던 환영이 서서히 걷히고, 다자잘이 만들어내던 기적 같은 현상들이 사라졌다. 불길처럼 보였던 물줄기가 다시 물로 돌아가고, 병이 나았던 자들이 고통을 되찾았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4.

다자잘은 마지막 힘을 짜내듯 소리를 질렀다. 그의 목소리는 마치 수백 개의 스피커가 동시에 터지는 것처럼 귀를 찢었다. 그러나 이사는 단 한 마디로 선언했다. 그 순간, 다자잘의 몸은 연기처럼 흩어졌다.

도로 위는 다시 고요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평범한 고요가 아니었다. 모든 사람이 숨죽이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하늘과 땅이 새로운 질서의 시작을 알리는 듯 정적에 잠겨 있었다.

나는 여전히 차 옆에 서 있었다. 그러나 내 발밑 도로는 더 이상 아스팔트가 아니라, 심판을 향해 이어지는 거대한 광장처럼 보였다. 이사는 사람들 가운데 서서,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최종 심판의 여정이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예감했다. 다자잘의 몰락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이어서 야주즈와 마주즈(얍주즈와 마주즈, Gog and Magog)의 등장, 그리고 최종적인 부활과 심판이 차례로 닥쳐오리라는 것을. 북부 아틀랜타의 한 도로 위에서, 나는 인류사의 가장 거대한 장면에 증인으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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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니 전통이 맞을 경우 눈앞에 펼쳐질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