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리새류에 속하는 컬크레스트 아라사리 Curl-crested Araçari 라는 새. 파마머리 왕부리.






왕부리새류에 속하는 컬크레스트 아라사리 Curl-crested Araçari 라는 새. 파마머리 왕부리.






남편: "날씨 진짜 좋은데 어머니랑 같이 어디 산책이라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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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뭐? 날씨가 좋은데 나랑 안보내고 어머니랑 가자고? 식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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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예전 같으면 나가자고 해도 방안에서 게임만 하던 놈이… 사람을 이렇게 차별해도 되는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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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어떤 일을 해석하는 방법은 80에서 120까지 다양하게 있다. 사람들이 별 생각없이 딱 들었을 때 "100이네."할만한 일도 어떤 사람에게는 80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120이다. 그리고 80과 120은 너무 달라서 그 둘 사이에 어떤 갈등이 생긴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똑같은 현상의 다른 해석만 가지고도 서로 싸울 명분이 둘 다 모두에게 생긴다. 명분만 보고 싸우면 안된다는 뜻이다.
그럼 민주진영같이 할일은 많고 이런 쓰잘데기 없는 논란에 허비할 에너지가 없는 조직은 이런 무에서 창조되는 유같은 실체없는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할까.
우리 모두 그냥 "내눈에 120으로 보이는 거 보면 어딘가에 80이라고 보고 있을 사람들이 있겠군."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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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려니 하면 되는데 안되는 이유.
1. 그냥 아무 생각없이 접하면 대부분 100이라고 할 일이지만, 이 일을 80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통해 전해들으면 이건 80이고 나머지는 다 틀렸다. 그렇게 느껴진다. 120으로 처음 접한 사람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2. 많은 사람들은 100 위치에서 80과 120을 모두 이해하기 보다는 자신이 정한 수치에서 1만 달라져도 선제공격해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해야한다고 생각한다. 1이라도 내주면 손해라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남은 이해할 대상이 아니라 극복해야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3. 이 일을 모두가 각자의 입장에서 공정하게 보려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걸 40이라고 우겨서라도 이걸 80쪽으로 끌어가려는 사람들이 있고, 160이라고 주장하며 120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다.
4. 이걸 모두 잘 배합하면 지금의 혼돈이 생겨난다.
5. 근데 세상이 혼돈인 것 같다도 대다수는 100을 보고 100이라고 생각한다. 80, 120, 40, 160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일부다. 시끄러워서 그렇지 소수다. 그걸 깨닫는 순간 이 혼돈을 정리할 수 있는 건 우리 자신임을 알 수 있다. 시끄러운 유튜버들과 인플루언서들이 아니라 우리 대중이 선동을 무시하는 게 우선이다.
유로/엔/파운드가 1군 기축통화인 큰 이유 중 하나는 미국과 유럽중앙은행/일본은행/영란은행이 무제한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다는 거다. 한국이 미국과 무제한 달러 스와프를 체결하면 원화 뒤에 달러가 보증을 서주는거라 원화가 달러/유로/엔/파운드와 함께 기축통화권에 편입된다. 1군은 못돼도 2군은 된다.
그게 되면 이런 효과가 생긴다.
– 외환위기라는 리스크가 그냥 소멸한다.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0가 되더라도 상관없다. 미국에서 급한대로 빼다 쓰면된다.
– 수입을 많이 하는 한국 경제에 환율과 물가 안정이 특히 더 중요한데, 달러와 원화 사이 급등과 급락에서 오는 취약점이 거의 사라진다. 원유 원자재 가격 불안이 많이 줄어든다.
– 국가 리스크 프리미엄이 낮아져서 국채 금리가 떨어진다. 기업들이 채권 발행할 때도 이자 비용이 줄어든다. 금융기관의 외화 조달 비용도 내려간다. 그냥 금융의 모든 면 구석구석에서 공짜로 돈을 더 벌게 된다는 뜻이다.
– 지금은 4천억 달러 이상 보유하느라 미국 국채 같은 저수익 자산에다 어마어마한 돈을 묻어두는 건데, 무제한 스와프가 있으면 그 대부분을 다른 곳에 투자해도 된다.
– 무역 결제에서 원화를 사용하자고 제안할 수 있다. 상대편에서도 원화를 보유할 가치가 생겼으므로. 보유한 원화를 처분하는 것도 쉬워지므로.
미국이 요구하는 "투자액"이 어마어마한 돈이긴 한데, 무제한 달러 스와프를 체결해준다면 내가 보기엔 그게 훨씬 유익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장점들이 바로 미국이 이걸 허용하기 힘든 이유라는 점이다. 미국이 무제한 보장해줬다가 한반도에서 전쟁이라도 나면? 중국과 분쟁이 터지면? 부동산이나 건축업계 발 경제 불안이 터지면? 미국 경제에 무리가 갈 정도로 달러를 빨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미국도 지금까지 G7급 파트너와만 맺어왔다. 너무 많이 받아주면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므로. 한국에게 이걸 주면 인도, 브라질 등도 무역 협상에서 같은 조건을 요구하게 된다.
미국이 거액을 뜯어내려할 때 받아치기 위한 제안으로는 완벽하다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가지 말라고 잡는데도 현대 LG 직원들 한국으로 무조건 데려온 것도 포함. 👏👏👏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2세는 독일어 오페라를 의뢰해 모차르트가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을 빈에서 무대에 올릴 수 있게 했고 진정한 스타로 만들어줬다. 근데 같은 요제프 2세의 개혁으로 화려한 장례가 금지됐고 대부분 시민이 공동묘지 공동 무덤에 묻히게 됐다. 1791년 12월 빈에서 사망한 모차르트도 그래서 묘지나 묘비없이 다른 무명인들과 함께 매장됐기에 정확하게 어디에 묻혔는지 아무도 모른다. 훗날 이 공동묘지를 폐쇄 정리하고 그 자리 성 마르크스 공동묘지에 기념적 무덤을 만들었다. 빈 중앙묘지에도 기념묘가 있다.


자본주의의 폐단. 사회주의 국가이던 중국이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고도 경제 성장을 얻었으나 효율과 함께 무단 재하도급의 비효율도 겪는 중이다. 2013년에 중국 광시성 난닝시에서 탄요우휘覃佑輝라는 사업가가 경쟁자였던 웨이모우魏傑라는 사업가와 법정싸움을 하다가 지게 되자 제거하기 위해 청부살인자를 약 3억원 정도 주고 채용. 근데 그 청부살인자 갑이 또 다른 청부살인자 을을 한 1.5억원 주고 채용. 근데 이 하청이 병, 정, 무까지 갔다. 최종적으로 1500만원 제안받은 청부살인자 무였던 린시엔스凌顯四는 이 돈으로 할 짓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웨이모우와 만나 협상했다. "내가 죽였다고 하고 사진 찍어 보낼 테니까 당신은 좀 죽은척 하고 숨어 사시오." 해서 묶은 채로 찍은 사진 등 촬영. 결국 다 신고. 원청자 형량 5년. 갑 3년 반. 을 3년. 병 3년 3개월. 정 3년 3개월. 무 2년 7개월. https://zh.wikipedia.org/zh-hant/%E8%A6%83%E4%BD%91%E8%BE%89%E9%9B%87%E5%87%B6%E6%9D%80%E4%BA%BA%E6%A1%88


MSX는 1980년대 일본이 주도한 독특한 시도였다. NEC, 후지쓰, 샤프 같은 회사들이 각자 독자 규격으로 컴퓨터를 만들던 시절, 신기하게도 마이크로소프트와 일본 아스키가 나서 일본 시장을 위한 공통 규격을 마련했다. CPU, 그래픽, 사운드 칩, 슬롯 구조, 키보드 배열까지 기준을 정해 두면, 다른 회사가 만든 MSX라도 같은 소프트웨어와 주변기기를 쓸 수 있었다. 이 시도는 단독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미국의 CP/M 같은 운영체제 표준화, IBM PC의 하드웨어 개방 정책이 이미 업계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MSX는 거기서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일본과 아시아 시장에 맞게 ‘홈 컴퓨터의 VHS’를 꿈꾸었다. 동시에 MSX 자체는 이후 다른 콘솔·PC 규격에 영향을 주었는데, 특히 16비트 시대로 넘어가며 표준화가 더 중요해졌을 때, “플랫폼을 공유하면 시장이 커진다”는 교훈을 남겼다. 흥미로운 점은, MSX 카트리지가 닌텐도 패미컴(NES) 팩과 물리적으로 호환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설계와 크기에서 유사점이 있어, MSX용 게임들이 따로 발매됐지만 일부 개조나 어댑터를 통해 패미컴 팩을 MSX에서 돌릴 수 있었다. 당시 게이머들 사이에선 널리 알려진 꼼수였다. 이는 곧 MSX가 게임 시장과 깊이 연결되도록 만들었다. 나쇼날, 소니, 파이오니어, 파나소닉, 샤프, 필립스, 캐논, 야마하, 도시바, 미쯔비시, 산요, 후지쯔, 히타치, 카시오 등이 MSX 컴퓨터를 개발했다. 한국에서도 MSX는 단순한 컴퓨터를 넘어 오락 문화의 중심에 섰다. 삼성, 금성과 대우가 정식으로 MSX 기반 컴퓨터를 생산했고, ‘재믹스’ 같은 콘솔형 기기도 나왔다. 저렴하고 친숙한 게임용 기기로 자리 잡으면서, 가정에 컴퓨터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MSX 게임기가 곧 컴퓨터였고, 덕분에 한국 오락실과 가정용 게임 시장이 넓어지는 데 다리 역할을 했다.



















내가 트럼프라는 인물에 대해 처음 들은 건 아마 90년대 중반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루저였고 지금도 루저다. 트럼프 사업 분석 – https://www.facebook.com/unattached/posts/pfbid05fi2KbC1kgzMfudmUY2tsL7uGhW1rFJmZyyej6eB23Sszx1zx21MM8obzgvySJVQl 아래는 1990년 배니티 페어에 실린 기사에서 따왔다. "도널드 트럼프는 늘 아버지를 롤모델로 여겼다. 『거래의 기술』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프레드 트럼프는 1905년 뉴저지에서 태어났다. 스웨덴에서 온 그의 아버지는… 그럭저럭 되는 식당을 운영했다.” 사실, 트럼프 가문은 독일계였고 절박할 정도로 가난했다. “어느 땐 어머니가 바느질 품을 팔아 생계를 이어 갔지.” 프레드 트럼프가 내게 말했다. “한동안 아버지가 클론다이크에서 식당을 했지만, 내가 어릴 때 돌아가셨어.” 도널드의 사촌 존 월터는 자세한 가계도를 한 번 쓴 적이 있다. “우린 같은 할아버지를 공유했어요.” 월터가 내게 말했다. “그리고 그분은 독일인이었지요. 그게 어쨌다는 거죠?” 프레드 트럼프는 뉴저지 출생이었지만, 가족들 말로는 자신의 독일 배경을 숨길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고 한다. 세입자 대부분이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전쟁 후엔, 자기 혈통을 알면 유대인들이 절대 자신에게서 집을 빌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죠.” 이바나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프레드 트럼프의 이런 위장은, 사업에서 무엇이든 통한다는 인상을 아이에게 쉽게 심어 줄 수 있다. 이 점을 도널드 트럼프에게 묻자 그는 얼버무렸다. “사실 좀 복잡해요. 제 아버지가 독일인은 아니었고, 아버지의 부모가… 독일계고, 스웨덴계고, 유럽 전역에서 조금씩 온 거죠… 그래서 2판에선 다른 나라들에 좀 더 비중을 둘까도 생각했어요. 스웨덴에서 편지가 너무 많이 와서요. 의회에 와서 연설해 달라느니, 대통령을 만나 달라느니…” 도널드 트럼프는 자신의 독일적 배경의 몇몇 측면을 꽤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듯했다. 존 월터는 트럼프 오거니제이션에서 일하는데, 사무실에서 도널드를 만날 때마다 발뒤꿈치를 ‘딱’ 하고 맞대며 “하일 히틀러!”라고 한다고—아마도 가족 농담일 거라고—이바나가 어느 친구에게 말했다. 지난 4월, 아마 체코 민족주의 감정이 치솟은 탓인지, 이바나 트럼프는 자신의 변호사 마이클 케네디에게, 남편이 가끔 침대 옆장에 보관해 둔 히틀러 연설집 『나의 새 질서(My New Order)』를 읽는다고 말했다. 케네디는 지금 그 책 한 부를 사무실 옷장에 수류탄 다루듯 보관하고 있다. 히틀러의 연설은 초기 시절부터 1939년의 가짜 전쟁(Phony War) 시기까지 이어지며, 그가 선전의 대가임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사촌 존이 그 히틀러 연설집을 줬습니까?” 내가 트럼프에게 물었다. 트럼프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걸 누가 말했지?” “기억이 안 납니다.” 내가 말했다. “사실은, 파라마운트의 내 친구 마티 데이비스가 『나의 투쟁』을 내게 줬어. 그는 유대인이야.” (“히틀러에 관한 책을 주긴 했습니다.” 마티 데이비스가 말했다. “하지만 『나의 투쟁』이 아니라 히틀러 연설집 『나의 새 질서』였어요. 그가 흥미로워할 거라 생각했죠. 난 그의 친구지만, 유대인은 아닙니다.”) 잠시 뒤, 트럼프는 이 주제로 다시 돌아왔다. “설령 내가 그 연설들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그렇다고 단정하진 않아—난 절대 읽지 않을 거야.” 이바나는 친구들과 변호사에게 트럼프가 숨은 나치라고 설득하려는 걸까? 트럼프는 독서가도, 역사광도 아니다. 어쩌면 히틀러 연설집 소지는 히틀러의 선전술에 대한 관심을 보여 줄 뿐인지도 모른다. 총통은 스탈린그라드와 북아프리카에서의 패배조차 위대한 승리로 묘사하곤 했다. 트럼프 역시 줄어드는 자기 세계에 계속 의미를 부여했다. “나만큼 현금흐름이 좋은 사람은 없어.” 그는 이미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고 난 한참 뒤에도 『월스트리트 저널』에 이렇게 말했다. “난 현금의 왕이 되고 싶어.” 프레드 트럼프는 아들처럼 과장을 마다하지 않았다. 도널드가 어릴 적, 아버지는 “욕실이 아홉 개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타라 같은 기둥이 있는 집”을 샀다고 말했다. 물론 그 집은 퀸스에 있었다. 도널드는 언젠가 더 큰 세계를 그리게 되었다. 사치에 매혹된 건 도널드의 어머니 메리였다. “어머니는 웅장함에 대한 감각이 있었어요.” 트럼프가 내게 말했다. “엘리자베스 여왕 대관식을 보며 푹 빠져 있던 어머니 모습을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그런 데 전혀 관심이 없었고요.” 도널드 트럼프는 공사 현장에 아버지를 자주 따라갔다. 둘은 몹시 가까웠고, 거의 영혼의 짝 같았다. 가족사진에서도 프레드와 도널드는 함께, 종종 팔짱을 끼고 서 있었고, 도널드의 누이들과 막내동생 로버트는 어딘가 바깥에 있는 듯했다. 이바나는 종종 친구들에게 도널드가 아버지를 설득해, 형제자매 셋의 신탁기금까지 자신이 관리하게 했다고 말하곤 했다."




조국혁신당 이번 사건은 앞으로도 더 전개될 상황이 있어보인다. 혁신당에게는 정말 악재다.
근데 다 끝난 뒤 "그래서, 그 당에 구조적 문제가 있었던 거야 없었던 거야?" 혹은 "그럼 앞으로 제기되는 의혹은 믿어야 되는 거야 의심해야 하는거야?"라는 의문이 있는 분들은 이걸 생각해보면 도움된다.
당이 됐건, 국가가 됐건, 그 시스템 안에서 당신이 무고 당했을 때 스스로 책임 없음을 입증 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는가?
Yes: 억울하게 누명 쓰는 사람들이 스스로 누명을 벗을 길이 있다는 뜻이므로 그 구도에서 피해자로 지목된 사람들 중심으로 사건을 보면 된다. 그 안에서 가해자로 억울하게 지목될 확율이 비교적 낮다는 뜻이다.
No: 미안하지만 그 안에서 피해자들이 제대로 보호받기는 힘들다. 피해자들의 권리는 이 시스템을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악용하는 사람들이 이미 가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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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비위 사건 외에 모든 일에 적용되는 상식이다. 예외를 두려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러면 안된다. 정의를 위해서도, 피해자를 위해서도, 특히 진실을 위해서는 더 더욱.
여러 생각이 든다. 추미애 당대표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안희정 사건이 터졌지만 당이 책임지지 않아도 됐다. 검찰이 알아서 처리 했고 아무도 민주당이나 추미애 대표가 책임질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외에는 아무도 안희정이 민주당이고 민주당이 안희정이라고 하지 않았고 아무도 이걸 당 vs 김지은 구도로 몰고가려 하지 않았다. 사실상 더불어민주당을 만든 문재인 전 대표/대통령이 왜 김지은 씨를 직접 만나려 하지 않았냐며 문재인 책임이라고 헛소리하는 사람도 없었다. 오거돈 때도 당연히 경찰이 조사했지 당에게 처리 책임을 묻지 않았다.
추미애 위원장은 다시 혁신당의 책임을 "가해자"와 동일 선상에 놓고 있다. 여러모로 칼질을 당하는 혁신당과 조국 비대위원장이다.
조사하고 설명하고 사과했고 제명했다. 앞으로의 추가 조사 후 가해 사실이 있었다고 나오건 없었다고 나오건, 당의 책임은 민주당이나 정의당에 비해서도 확실하게 다했다.
전에 그런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리가 없지만, 혁신당에 한해서만 당과 전 대표의 무한책임을 묻고 있는 사람들의 의도가 궁금하다. 당 vs 강미정이라는 정말 해괴한 구도가 깨지고 드디어 김보협이 등장하자 짜증내는 사람들은 정말 "피해자"에게 관심이 있었던 게 맞나. 당만 보고 있었던 것 같은데?
’내란 수사 너무 심하게 하다보면 그 기세로 언론 개혁도 시도할텐데 내란 수사부터 미리 견제 해야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