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당에서 사건 초반부터 비대위를 요구하며 지도부 사퇴를 요구한 그룹이 있다지. 이제 원하는대로 됐으니 요직…

혁신당에서 사건 초반부터 비대위를 요구하며 지도부 사퇴를 요구한 그룹이 있다지. 이제 원하는대로 됐으니 요직에 나서는 분 들 중에 그분들이 섞여있는지 잘 봐야겠군.

민주당이나 정의당보다 훨씬 엄격하고 철저하게 조사하고 7월에 이미 상세히 간담회에서 보고하고 몇시간에 걸쳐 공개사과했지만 그 분들에겐 자신들이 장악할 기회가 왔는데 그런 작은 디테일에 멈출 수는 없었던 것. 계속 불지피고 계속 내부에서 책임지라고 비난하고.

조국 전 대표가 고생이 많다. 정치가 원래 힘든 일이긴 한데 참 곳곳에 더럽게 침흘리는 것들까지 상대해야하다니.

박희태가 캐디 성희롱 했을 때 황우여나 김무성이 새누리당 대표였던 건 기억이나 할려나. 안희정 사건 벌어졌을…

박희태가 캐디 성희롱 했을 때 황우여나 김무성이 새누리당 대표였던 건 기억이나 할려나. 안희정 사건 벌어졌을 때 추미애 대표나 바로 전에 당을 만든 문재인 전 대표에게 책임을 물었던가. 분명 가해자 안희정 그 자신에게 모든 책임을 물었고 검찰이 수사했다. 오거돈 때도 오거돈이 책임 졌고 경찰이 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 이해찬 대표나 당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았다.

난 이번 일에 마치 당대표가 성희롱이라도 한 듯이 혁신당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듯한 프레임에 코웃음 밖에 안 나온다. 그것도 새누리당이나 민주당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정성을 다해 조사하고 사과한 혁신당에게. 그런 전에도 존재한적 없고 이 이후로도 아마 기적같이 다시 사라질 기준은 대한민국에서 이재명, 조국 등에게만 적용된다.

그런 처음 듣는 논리를 듣고 "….. 그렇지. 그게 맞지."라는 사람들은 도대체… … "때리는데 왜 안 맞어? 민주진영인데 감히 피해?" 이런건가.

기사에 가해자들 절대 안나타난다. 조국을 비웃은 한겨레의 만평에도 한겨레 김보협이 가해자임은 나오지 않는다. 경찰도 안 움직인다. 다들 혁신당과 조국만 보고 있으라는 듯 하다.

‘김어준이 자꾸 우리 먹거리 뺏어가요’ 지금 언론들은, 특히 최승호는 앞으로도 절대 김어준 못따라간다. 그…

'김어준이 자꾸 우리 먹거리 뺏어가요'

지금 언론들은, 특히 최승호는 앞으로도 절대 김어준 못따라간다. 그럴 능력도 안되고, 언론은 김어준이 왜 여러차례 어마어마한 부를 거부하고 20년 넘게 저러고 살았었는지, 내란 세력이 왜 먼저 김어준을 잡아가려고 했고 언론인 자신들은 국가 전복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는지 이해를 못하고 관심도 없기 때문이다. 그냥 그가 투쟁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게 된 영향력을 시샘할 뿐이다.

이들은 자신들처럼 민주당 정권에서는 정권을 비판하며 언론 행세를 하고, 독재자가 나타나면 고개 숙이고, 삼성에 관리 받아가며, 나라를 진짜 소유하고 운영하는 사람들과 선이 닿아있는 사람들이 언론인 자격이 있지, 자꾸 독재자가 나타나면 직접 싸우고 실제 타격을 주고, 평시에도 국회의원이고 누구고 아무나 섭외해서 최고의 컨텐츠를 만들어내는 김어준이 너무 싫은 거다.

아니 애초에 한국 정치사에서 가장 큰 이벤트였던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노무현 이인제 허경영 박근혜 등 대선주자들을 전부 심층 인터뷰 한 것도 언론인들이 아니라 딴지일보 김어준이었다. 다스가 누구건지 묻기를 멈추지 않아 결국 이명박을 감옥에 보낸 것도 김어준이었다. 한국의 민주주의에 족쇄 역할을 하던 선거기간 인터넷 실명제 위헌 판결 받아낸 것도 김어준의 딴지일보다.

생긴것도 언론인처럼 안생겼고 말투도 그렇고. 특히 언론인 자신들을 상대적으로 비겁하게 보이게 만들고. 무능하게 보이게 만들고. 언론인도 아닌게 감히?

게다가 엉터리 여론조사로 여론몰이하는 게 언론인들이 독재자들과 국힘 등에게 충성 보이는 길이었는데 여론조사 꽃 때문에 얼마나 고생이 많냐.

언론인들도 충분히 기회가 있었다. 이명박 상대로 더 세게 싸울 수 있었다. 세월호 때 정부의 거짓 언플에 협조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검찰이 주는 피의사실 공표 기사거리를 거부할 수도 있었다. 매번 타협하고 권력에 순종하며 편하게 사회적 지위를 누리며 사는 길을 선택해놓고 대중의 존경과 사랑까지 독차지 하지 못해서 그렇게 화가 나나. 자신은 평생 그렇게 신나게 바람펴놓고 옆집 사람이 열녀 소리 들으니 그렇게 기분이 나쁘던가.

1814년, 한 섬에 새 총독이 부임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만 해도 이곳은 한적하고 낡은 풍경만 남은 작은…

1814년, 한 섬에 새 총독이 부임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만 해도 이곳은 한적하고 낡은 풍경만 남은 작은 섬이었다. 약 만 명 남짓한 인구에 바다를 낀 마을은 정겹지만 가난했고, 주민들은 관청의 부패와 무능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며 살았다. 길은 엉망이었고, 농사는 늘 비슷한 작물만 재배해 흉작이라도 들면 버틸 방도가 없었다. 산업이라 해봐야 소규모 채광과 어업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총독은 달랐다. 그는 단순히 머물거나 기존 체제를 관리하려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섬 전체를 새로운 실험의 무대로 여기는 듯했다. 첫날부터 관청의 장부를 들여다보고 부정과 비리를 색출했다. 낡은 세금 제도를 손봐 재정이 곧바로 섬의 공공 사업에 쓰이도록 했다. 사람들이 “이제는 내는 세금이 어디로 가는지 보인다”고 말할 정도였다. 행정 개혁은 인프라 정비로 이어졌다. 그는 우선 섬의 길부터 손봤다. 오래된 비탈길을 고치고, 주요 마을들을 곧장 잇는 새 도로를 닦았다. 주민들은 예전에는 반나절 걸리던 길을 몇 시간 만에 오가게 되었고, 물자 유통도 활발해졌다. 항구도 정비되어 배가 더 많이 드나들 수 있었고, 작은 섬에서조차 교역의 숨통이 트였다. 농업 개혁도 빼놓을 수 없다. 총독은 새로운 재배법과 작물을 도입했다. 척박한 땅에는 감자와 옥수수를 권장했고, 이미 익숙한 포도와 올리브는 더 과학적인 방식으로 가꾸게 했다. 그는 직접 농부들과 만나 “작은 땅이라도 잘 쓰면 배를 곯지 않는다”고 설득했다. 그 결과 섬의 식량 자급률이 높아졌고, 남는 작물은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었다. 섬의 산업이라고 해봐야 작은 광산 정도였지만, 총독은 여기에 눈을 돌렸다. 철광을 체계적으로 개발하도록 지시하고, 산출물을 외부로 내보낼 수 있도록 운송 체계를 강화했다. 비효율적이고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자 섬의 경제는 예기치 못한 활력을 얻었다. 주민들은 처음으로 “우리 섬이 가진 자원이 이토록 값진 줄 몰랐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총독은 단순히 경제적 기반만 다진 게 아니었다. 사람들의 일상과 생활 환경까지 손봤다. 위생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 하수 시설과 쓰레기 처리를 정비했고, 마을마다 샘과 분수를 새로 만들었다. “예전엔 여름마다 물이 모자랐는데, 이제는 아이들까지 마음껏 씻고 물을 길어간다”는 말이 들릴 정도였다. 교육에도 공을 들였다. 그는 학교를 세우고, 글을 모르는 아이들을 모아 기초 교육을 받도록 했다. 섬의 어른들은 “이곳에서 글을 배울 줄은 상상도 못 했다”며 놀라워했다. 작은 섬에서조차 문맹률이 떨어지고, 새로운 세대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 문화와 여가도 무시하지 않았다. 총독은 음악회와 축제를 장려하고, 주민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행사들을 자주 열었다. 섬사람들은 그를 단순한 지배자가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후원자로 여기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부패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관료들이 세금을 빼돌리고 자기 잇속을 챙기는 게 일상이었지만, 이제는 감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총독이 직접 모든 걸 점검하고, 부정이 드러나면 엄격히 처리했기 때문이다. 섬사람들은 “드디어 섬에 정의가 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총독은 작은 섬이지만 재무부, 법무부, 공공사업부 등을 설립했다. 이 모든 변화가 고작 10개월 남짓한 시간에 일어났다. 마치 수십 년은 걸려야 할 개혁이 한순간에 이뤄진 듯했다. 주민들은 그의 지도 아래 섬이 달라지는 걸 직접 눈으로 보았고, 불가능할 것 같던 변화가 현실이 되는 걸 경험했다. 이 총독의 이름은 나폴레옹 황제, 이탈리아 토스카나와 프랑스 코르시카 사이의 그 섬의 이름은 그의 유배지 엘바였다. 퐁텐블로 조약에 따라 나폴레옹이 제6차 대프랑스 동맹에게 항복하는 대신 엘바 섬이 황제의 자치령이 됐다. 이탈리아어를 쓰는 섬이었지만 코르시카에서 태어난 나폴레옹에게 이탈리아어는 모국어였다. 20년간 프랑스와 유럽을 바꾸고 개혁했던 것처럼 이 섬에서도 10개월만에 같은 업적을 이뤄냈다. 몇달 지나지 않아 그는 이곳을 탈출해 프랑스로 향했고, 다시 한 번 대륙을 뒤흔들 재정복의 길에 오르게 된다.

불법체류자들이 복지예산을 축낸다는 말은 근거 없는 소리다. 신분이 안 되면 복지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 예…

불법체류자들이 복지예산을 축낸다는 말은 근거 없는 소리다. 신분이 안 되면 복지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 예외적으로 자녀를 공립학교에 보낼 수 있는데, 이는 연방법에 따라 신분을 물을 수 없도록 보장된 아동 인권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은 세금만 내고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많다. 가짜 신분증으로 취업할 경우에도 임금에서 소득세와 사회보장세(FICA)를 원천징수당한다. 사회보장국 자료에 따르면 이민 신분 문제로 연금을 수령하지 못하는 사람이 수백만 명에 달하며, 그들이 내는 돈은 매년 약 120억 달러 이상 연금 재정에 남는다. 정부 입장에서는 완전히 흑자 구조다. 한국의 외국인 의료보험 재정 흑자와 비슷하다. 게다가 물가가 지금 수준에서 유지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게 이들의 저임금 노동이다. 농업, 건설, 서비스업 등 미국 경제의 기반을 떠받치는 일자리 상당수가 이민 노동에 의존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민자 가정이 연방·주·지방세로 내는 총액은 연간 4,580억 달러에 이르지만, 실제 받는 혜택은 그보다 훨씬 적다. 그리고 미국이 중국과 대등한 경제규모를 유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IT 스타트업 산업을 보라. 구글, 테슬라, 인텔 같은 기업들이 모두 1세대 이민자 혹은 2세대 이민자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현재 실리콘밸리 창업자의 약 45%가 이민자 출신이다. 일자리 창출 기여도는 말할 필요가 없다. 이민이 그렇게 싫으면 지난 빙하기부터 미대륙에 살던 원주민을 제외한 모두가 나가야 한다. 콜럼버스나 코르테스가 비자 받아서 온 줄 아나.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불법체류자”에 대한 혐오를 보이며 트럼프에게 당해도 싸다는 태도를 많이 보인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불법체류자"에 대한 혐오를 보이며 트럼프에게 당해도 싸다는 태도를 많이 보인다.

이런 이민법은 전형적인 자의적 법이다. 기준을 그렇게 정해놨으니까 그 행위들이 불법이 됐을 뿐, 사람이 지역을 이동하는 것 자체는 살인 같은 잘못이 아니다.

예를 들어 현실적인 방법은 수천만 불법체류자를 다 쫓아내거나 들어오는 걸 막을 방법은 없으니 최소한 벌금을 내고 합법 비자 신청할 길을 열어주는 게 합리적이다. 그렇게 정하면 오히려 양성화가 되며 세수가 늘고 안그래도 지금도 부족한 노동력이 늘어난다. 현실에서 미국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1인당 비용이 수천만원이 들어가고 어차피 다 잡을 방법도 없지만 꾸준히 추방하는 길을 택했다. 외국인 단죄를 위해 미국은 어마어마한 예산을 허비한다. 이유는 합법화 길을 열어주면 단죄를 못하니까. 단죄를 해야하는 이유는? 불법체류자니까. 불법체류가 아니게 만들면 되잖아? 그럼 단죄를 못하니까. 이렇게 순환반복된다.

그리고 현행법이 그래서 이민법을 어겨 불법체류자가 됐으면, 잡아서 심사하고 재판하고 비행기에 실어서 보내면 된다. 불법체류자라고 인간도 아닌 듯한 취급을 할 필요는 없다. 사람이다. 이렇게 수용소에 넣어 소식도 끊기고 죽는지 강간당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이유는 눈꼽만큼도 없다.

잘못했으면 그게 왜 잘못이고 누구에게 무슨 피해를 준건지, 생각해가며 욕하자. 길거리에서 쓰레기 투기 한거나 불법횡단 같은 것도 잘못은 잘못이니 고문하고 사형할건가. 단죄에 미쳤나.

왜 현지법을 지키지 않았냐 당해도 싸다는 분들이 있는데, 애초에 법 자체만 놓고 보면 어겼다고 보기 힘들다….

왜 현지법을 지키지 않았냐 당해도 싸다는 분들이 있는데, 애초에 법 자체만 놓고 보면 어겼다고 보기 힘들다. 거기가서 취업해서 거기서 월급을 받은 것도 아니고. 트럼프 정권이 법 해석과 집행 방식을 바꾼 거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관광 비자 받아서 어느 나라에 방문했는데 아침 산책 나왔다가 호텔 길 앞이 더럽길래 옆에 있던 빗자루를 들어 쓱쓱 쓸었더니 불법취업이라고 잡아갔다고 보면 된다. 법적으로는 동일한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이거 회사를 법적으로 처벌하려고 해도 애매하다. 근데 추방은 가능하다. 이민법은 특별하기 때문에.

이민법, 비자는 전적으로 그 나라 정부의 방침이고 특히 미국은 추방에 있어서 특별한 이유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추방할 사람 상대로는 꼭 법규를 다 지키지 않아도 엄청난 부자나 권력자가 아닌 이상 어차피 추방당한 사람이 법적인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기에 추방한 사람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한국도 유승준 생각하면 된다. 특별한 법적 근거가 없어도, 심지어 소송에서 외교부가 패해도 수십년 간 못들어오게 막는 건 일도 아니다. 특히 미국 영사관 대사관 상대로는 행정소송도 안된다. 그래서 그냥 심사관과 판사의 재량이고 지금은 총 든 ICE 요원의 마음이다.

트럼프가 자신의 사병 조직으로 ICE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다. 이제 ICE 예산이 FBI보다 크다. 형법이 아니라 이민법으로 많은 법적 인권 제약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빗자루 들었다고 잡아가도 법적으로 할말은 없다. 외교적으로 싸워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트럼프는 시민권자도 외국인같아 보이고 가난해 보이면 신원이 확인 되지 않아도, 심지어 귀화 시민 선서 장소에도 외국인 많다고 사람들 납치하러 보낸다. 먼저 납치하고 보는 중이라 현지법을 어기고 지키고가 문제가 아니다. 그냥 외국인인 게, 혹은 외국인처럼 생긴 게 문제였다. 더 자세히는 백인이 아닌 죄다.

"그러게 왜 빗자루를 들었니 트럼프에게 납치 당해 실종되거나 죽어도 니 잘못이야" 이건 정말 싸가지 없는 소리다. 아파르트헤이트 남아공 흑인들 보고 "그러게 왜 흑인이면서 백인이랑 결혼했니. 그러지 말라는데. 잡혀가도 싸지 뭐."하는 거랑 다를 게 없다.

이번에 불법체류자도 아닌데 잡혀간 한국분들이 머물고 계실 곳들은 ICE의 수감시설인데 열악하기로 악명이 높다…

이번에 불법체류자도 아닌데 잡혀간 한국분들이 머물고 계실 곳들은 ICE의 수감시설인데 열악하기로 악명이 높다. 죽는 사람도 나온다. 첫 사진은 가장 최근에 지었던 플로리다에 수용소. 에어컨 당연히 없어서 쪄죽는다. 시설 열자마자 바퀴벌레와 열대 지역 벌레들에 장악돼서 벌레와 함께 살아야한다. 그리고… 밥을 제대로 준비 안해줘서 굶는 경우가 잦다. 저곳은 시민단체들에서 소송으로 일단 폐쇄시켜놓은 상황이다. 말이 수용소지 천천히 고통주며 고문하기 위한 시설들이다. 가스처형실 가동하기 전의 아우슈비츠 생각하면 된다. 나치가 한 것처럼 이유없이 아기들을 부모와 갈라 수용하기도 한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게 바로 이런 고통이다. "추방"을 해서 본국으로 보내주느냐 하면 그게 아니라 자주 제 3국으로 보낸다. 주로 멕시코나 엘살바도르의 감옥으로 보내서 싸게 거의 무기한 수용하며 고문하는 거다. 둘째 사진은 엘살바도르의 수용소. 원래 자국민들도 수감 중 사라지거나 죽는 일이 잦은 곳인데 외국인이라 미국도 엘살바도르도 이 사람들 인권을 챙겨줄 필요가 없고 자기들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ICE에 잡혀가면 교황이 사람을 보내거나, 유명하고 힘있는 사람이 나서서 빼내주거나 하지 않으면 저 그룹으로 들어가게 된다. 너무 황당한 케이스고 사람 수가 많기 때문에 기업 차원에서,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 힘 쓸 것으로 본다. 부디 모두 무사히 귀환하길 바란다.

바리공주는 한국 무속의 기원이 되는 설화다. 버려진 공주가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가 생명수를…

바리공주는 한국 무속의 기원이 되는 설화다. 버려진 공주가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가 생명수를 가져온다는 이야기는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무속에서 무당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를 잇는 일을 왜 하는지 설명하는 근원적 이야기다. 흥미로운 건 이 구조가 한국만의 특수한 상상력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 곳곳에서 사랑하는 이를 살리거나 부모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내려가는 비슷한 전승이 반복된다. 인도의 사비트리는 남편을 되찾기 위해 야마, 죽음의 신과 협상했고, 결국 남편을 살아돌아오게 했다. 그리스의 오르페우스는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으러 지하로 갔으나 끝내 실패했다. 아프리카 키쿠유족의 전승에서는 완지루라는 여인이 희생되자 청년이 저승까지 찾아가 구출한다. 중국 불교 전승에서 무렴(목련)은 지옥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부처의 가르침을 빌려 구제했다. 한국의 심청전도 같은 맥락이다. 딸이 자기 몸을 바쳐 인당수에 빠지고, 죽음을 넘어 황후로 부활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다. 모두 사랑과 효, 헌신이 저승의 벽마저 뚫는다는 주제를 공유한다. 이보다 앞선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메소포타미아 아카드의 이난나, 혹은 수메르 전승의 이슈타르 이야기에 닿는다. 풍요와 생명의 여신인 이난나가 저승으로 내려가 일곱 관문을 지나며 힘을 상징하는 장신구를 하나씩 빼앗기고, 마침내 죽음을 맞지만 다시 부활한다는 구조다. 이 역시 죽음과 부활, 생명의 순환을 상징하는 전형적 신화다. 그리스의 페르세포네 신화 역시 저승에 갇혔다가 일정 기간만 지상으로 돌아오며 계절의 순환을 설명한다. 바리공주는 이 긴 계보 속에 놓인다. 부모를 살리기 위해 저승으로 가는 모티프는 인류 보편의 서사지만, 한국에서는 그것이 무당의 시원 설화로 정착해 ‘죽은 자를 위해 산 자와, 산 자를 위해 죽은 자와 통하는’ 직업의 기원이 된다. 이 신화가 메소포타미아에서 전해졌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실크로드와 불교 전래, 중앙아시아 전승을 거쳐 간접적인 영향이 스며들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바리공주도 약을 구하기 위해 '서역서천국', 인도로 향한다. 이 이야기들은 문화마다 옷을 달리 입었지만, 공통의 메시지를 전한다. 죽음은 절대적인 것 같아도, 인간은 그것을 넘어서려는 집요한 상상력을 키워왔다. 어쩌면 수메르의 이슈타르 여신은 그 상상력이 한국 무속과 맞닿아, 지금도 굿판에서 살아 있는 힘으로 존재하고 있다.

다신교는 낯선 신을 만나면 “우리 신의 다른 얼굴일 수 있다”라며 합치고, 필요하면 새 신을 만든다. 제우스…

다신교는 낯선 신을 만나면 “우리 신의 다른 얼굴일 수 있다”라며 합치고, 필요하면 새 신을 만든다. 제우스-아몬, 세라피스(오시리스+아피스), 로마의 그리스 신 흡수, 인도에서 지역 신이 비슈누·시바 체계로 편입된 사례가 전형적이다. 반대로 일신교는 비슷한 상대를 가장 위협으로 보고 부딪친다. 같은 하느님을 믿으면서도 교리·권위 문제로 벌어진 구교-신교 전쟁, 지도자 계승을 둘러싼 수니-시아 갈등이 그 양상이다. 이 흐름을 페니키아와 이스라엘에 대입하면 구조가 보인다. 페니키아·가나안권에는 바알·아스다롯 등 다수 신이 있었지만 최고신 엘(ʾEl)로 권위가 모였다. 이때의 ‘엘’은 고대 서북셈어권에서 “신”을 뜻하는 보통명사이자, 동시에 특정 최고신의 이름이었다. 이스라엘은 이 어휘와 상징 자산을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히브리어 ‘엘’(El), ‘엘로아’(Eloah), 그리고 형태는 복수지만 대개 단수로 쓰여 유일신을 가리키는 ‘엘로힘’(Elohim)이 그 계보다. 엘로힘은 문법형은 복수(-im)지만, “위대한 신 한 분”을 지칭할 때 단수 동사와 결합한다. 반대로 다른 민족의 ‘신들’을 말할 때는 실제 복수 의미로도 쓰인다. 이름에서도 흔적이 선명하다. 이스라엘(“엘이 다스린다/씨름한다”), 미카엘(“누가 엘과 같으랴”), 사무엘(“엘이 들으셨다”)처럼 -el이 붙는 신명(神名) 요소가 널리 남아 있다. 성서의 칭호들도 엘 엘리온(지극히 높으신 엘), 엘 샷다이(전능하신 엘)처럼 가나안적 전통을 잇는다. 종교사적 전환은 단계적이다. 초기 이스라엘은 주변과 마찬가지로 다신 환경에 있었고, 실천은 “여러 신이 있지만 오직 우리의 하느님만 섬기라”는 ‘단일숭배(모놀라트리)’에 가까웠다. 이후 북·남 왕국 시대를 거치며 야훼와 엘의 속성이 수렴·동일시되고, 중앙집권적 개혁(히스기야·요시야의 성전 중심화)으로 다른 신 숭배가 체계적으로 배제된다. 바빌론 유배와 귀환기를 지나면서 “야훼 외에는 없다”는 강한 일신교 신학이 완성된다. 요약하면, 이스라엘은 후발주자였지만 가나안의 공통 어휘·신학 표지(‘엘’ 계열)를 흡수하고 의미를 재정의하여, 다신적 어휘로 유일신 신학을 구축했다. 결론적으로, 다신교는 만남과 혼종으로 스펙트럼을 넓히고, 일신교는 배타와 정체성 강화로 중심을 좁힌다. 페니키아의 엘과 히브리어 엘/엘로힘의 연속성, 그리고 야훼 신앙의 수렴·독점 과정은 “융합하는 다신교 <-> 경계 짓는 일신교”라는 큰 틀을 고대 근동사 속에서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진은 가나안의 최고 신, El. 이 신의 이름에서 Israel이라는 이름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