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7세기는 “이슬람 세계의 군사적 최전성기”라고 불린다. 오토만·사파비·무갈 제국이 동시에 존속하면서…

16-17세기는 "이슬람 세계의 군사적 최전성기"라고 불린다. 오토만·사파비·무갈 제국이 동시에 존속하면서 서아시아남아시아 전체를 장악했고, 유럽과 맞먹거나 압도하는 화력을 갖추었다. 저 때 십자군전쟁처럼 기독교-이슬람 구도로 갔으면 유럽 기독교 문명이 지워질 수도 있었을 것 같다. 1. 오토만 제국 (1299–1922) 영토 규모: 16세기 말 전성기 기준 약 500만 km². 발칸, 아나톨리아, 중동, 북아프리카 전역을 포괄. 인구: 약 2,000만~3,000만 (16세기 기준). 군사력: 예니체리(신식 보병) 제도 → 화기(火器) 사용 전문 보병. 대형 화포, 성벽 파괴용 포병은 세계적 선두. (1453년 콘스탄티노플 대포가 상징적) 16세기에는 유럽 세력과 대등하거나 앞선 수준의 군사 현대화를 달성. 지중해·홍해·인도양까지 해군력 전개. 특징: 유럽과 가장 직접적으로 충돌한 제국. 빈 포위전, 레판토 해전이 상징. 2. 사파비 제국 (1501–1736) 영토 규모: 약 2~3백만 km² (현 이란 전역 + 코카서스 + 메소포타미아 일부). 인구: 약 1,000만~1,500만. 군사력: 초기에 튀르크계 기병(쿠즐바시)에 의존 → 기동성 뛰어났지만 화기 대응 약함. 오토만과 전쟁을 거듭하면서 점차 화기·보병 전술 도입. 그러나 예니체리만큼 조직화·현대화는 못했음. 특징: 시아파 국가 정체성을 군사·정치적으로 확립. 오토만과의 대립이 상시적이었고, 중앙아시아 유목세력과도 전투 지속. 3. 무갈 제국 (1526–1857) 영토 규모: 17세기 아우랑제브 전성기 때 약 4~5백만 km² (인도 대부분). 인구: 약 1억~1억5천만 (당시 세계 최대 규모 국가 중 하나). 군사력: 바부르가 파니파트 전투(1526)에서 화포와 조총을 적극 활용해 승리. 기병 중심이었지만 대규모 포병 운용도 병행. 방대한 인구를 바탕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군대 동원 가능. 그러나 분권적 봉건 구조 때문에 군사 조직의 통일성과 현대화는 오토만에 비해 뒤처짐. 특징: 대규모 전쟁보다는 행정·경제 규모에서 압도적. 그러나 18세기 들어 유럽의 신식 화기에 밀리기 시작.

서구 사회에서 오토만 제국은 흔히 단순한 “타자”, 즉 유럽을 위협했던 미지의 이슬람 세력으로만 기억된다….

서구 사회에서 오토만 제국은 흔히 단순한 "타자", 즉 유럽을 위협했던 미지의 이슬람 세력으로만 기억된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유럽인들에게 충격을 안겼고, 빈 포위전은 "기독교 유럽이 함락될 수도 있다"는 불안을 상징한다. 그러나 이런 서술은 주로 감정적이고 피상적인 측면에 머물렀다. 서구의 역사 교과서 속 오토만은 ‘끝내 몰락한 제국’, ‘퇴폐와 정체의 집합체’로 그려지곤 한다. 그 속에서 유럽 중심 서사는 "우리가 결국 승리했다"는 자기확인에 집중했다. 하지만 서구의 위정자들은 달랐다. 오토만 제국의 군사적 힘, 행정적 정밀성, 전략적 위치를 누구보다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토만을 해체할 때, 그들은 단순히 패전국 하나를 무너뜨린 것이 아니었다. "다시는 재건될 수 없도록" 민족, 종교, 언어, 영토를 세밀히 갈라놓았다. 아랍은 프랑스와 영국의 위임통치로 쪼개지고, 아나톨리아는 터키 공화국으로 축소됐다. 발칸은 이미 19세기 내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갔다. 이 해체 과정은 우연이 아니라 정밀한 전략이었다. 서구 지도자들은 오토만이 다시 부활한다면 유럽의 세력 균형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 제국은 단순히 무슬림 집단의 제국이 아니었다. 동로마제국을 흡수한 16-17세기 전성기 오토만은 약 2천만-3천만 명을 포괄했는데, 그 중 거의 절반에 가까운 인구가 동방정교회 신자였다. 발칸반도, 그리스,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남부, 그리고 옛 비잔틴의 심장부까지 광범위하게 편입되면서, 오토만 영토 안에는 천만 명 이상의 그리스 정교회, 슬라브 정교회 신자들이 살았다. 즉, 오토만은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를 둘 다 품은 다종교 제국이었고, 단순한 “이슬람 제국”이 아니라 동방정교회와 이슬람을 동시에 지배하는 거대한 정치적 실체였다. 밀레트 제도 아래 정교회 총대주교가 제국 안에서 자치적 권한을 행사했고, 교회조직은 그대로 존속하며 오히려 오토만 통치 덕에 로마 가톨릭으로의 강제 통합을 피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구조는 유럽 내부와는 완전히 달랐다. 유럽에서는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종교전쟁이 벌어졌지만, 오토만 안의 동방정교회인들은 세금 부담과 제약은 있었어도 공동체를 유지하며 수백 년을 살아갔다. 그래서 발칸과 동지중해의 종교·문화적 지도가 지금까지 오토만의 흔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사회는 이 제국을 역사적으로 정직하게 다루지 않으려 했다. 교과서와 대중적 역사 속에서 오토만은 몇 번의 전투와 몇몇 위협 장면으로만 등장하고, 그 실제 위상은 의도적으로 축소된다. 오토만이 단순한 적이나 미지의 타자가 아니라, 유럽사의 구조를 형성했던 거대한 축이었다는 점을 말하는 것은 불편했기 때문이다. 오토만이 기독교 세계 절반을 지배하고, 비잔틴과 로마의 행정 전통을 이어받아 다민족 제국을 운영한 사례라는 사실은 쉽게 지워졌다. 마치 "없었던 것처럼" 다루고, 잊히기를 바라는 태도가 서구 역사 서술에 깊이 배어 있다. 하지만 실제로 오토만은 마지막까지 존속한 최강의 이슬람 제국, 동시에 중앙아시아에서 출발해 지중해와 중동을 아우른 튀르크 제국 전통의 정점이었다. 더 나아가 비잔틴의 행정과 로마의 법, 그리고 이슬람의 보편적 세계관을 융합한, 인류사에서 가장 독특한 제국의 하나였다. 서구가 두려워하면서도 기록 속에 축소해버린 바로 그 존재가, 사실은 오늘날까지 유럽과 중동의 정치·종교 지형을 만든 실질적 주체였던 것이다.

MCU 영웅들은 대부분 변신의 순간을 통해 각성된다. 이 변신은 단순히 외형 변화가 아니라 약자가 죽고 새로…

MCU 영웅들은 대부분 변신의 순간을 통해 각성된다. 이 변신은 단순히 외형 변화가 아니라 약자가 죽고 새로운 존재로 재탄생하는 통과의례다. 관객은 약자의 고통에 감정이입하다가, 변신 순간 폭발하는 희열을 공유하게 된다. 스티브 로저스는 말라깽이로 놀림받고 무력한 모습을 보여주다가, 기계 문이 열리며 근육질의 신체로 다시 태어난다. 약자가 죽고 캡틴 어메리카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토니 스타크는 동굴 속에서 자동차 배터리에 의지해 생존하는 나약한 상태로 머물다가, 마크 I을 착용하는 순간 스스로를 구원하는 영웅으로 변한다. 토르는 오만한 신으로서 추방당해 망치조차 들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이 되었다가, 다시 자격을 증명하며 천둥과 함께 부활한다. 이후 한쪽 눈을 잃고 아버지와 형제를 잃지만, 새로운 가디언 가족과 함께 우주를 떠돌며 또 다른 여정을 시작한다. 브루스 배너는 과학자의 평범한 모습을 지니지만, 분노의 순간 초록 거인으로 변한다. 인간적 약점과 내적 상처가 터져 나오는 방식의 변신이다. 이러한 구조는 전통적 영웅담의 변형이다. 길가메시가 죽음을 체험하고 다시 깨닫듯, 헤라클레스가 시련을 거치듯, 이들은 모두 무력함·추방·상실을 겪은 후 재탄생한다. MCU는 실험실, 동굴, 왕좌, 수술실 같은 현대적 무대를 통해 같은 서사를 재현한다. 결국 이들은 모두 hero’s journey의 길을 따른다. Call to Adventure에서 약자의 모습으로 출발하고, Abyss에서 상실과 절망을 겪는다. 이어지는 Transformation에서 신체적·정신적 변화를 경험하며, Atonement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인다. 마지막으로 Return with the Elixir 단계에서, 토르가 가디언즈와 새로운 여정을 떠나듯, 이들은 세계에 기여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이 여정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실과 승리를 동시에 겪고 귀환한 영웅은 또 다른 여정을 향해 나아간다. 매 시즌마다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가는 드라마처럼, 영웅의 서사는 계속해서 순환한다. 이러한 영웅의 여정은 현실 정치인의 삶에서도 반복된다. 각자 몇년 주기로 여정을 반복하기도 하고, 각자의 인생 전체가 하나의 영웅의 여정이기도 하고, 이들 모두의 이야기를 하나로 모아도 민주당의 여정이 된다. 김대중은 수차례 투옥과 납치, 사형선고라는 최악의 Abyss를 경험했지만, 끝내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며 귀환했다. 그의 삶은 한국 정치사의 가장 분명한 Return with the Elixir의 사례다. 노무현은 정치적 무명과 끝없는 패배를 견디며 추락을 거듭했다. “바보”라는 별명으로 상징되는 약자의 자리에서 출발했지만, 끝내 대통령이라는 변신을 이루며 Transformation을 완성했다. 문재인은 평범한 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로 출발했지만, 권위주의 시대의 고난을 지나 민주적 리더로 변모했다. 권력의 정점에서도 조용한 품격을 유지하며 귀환의 길을 걸은 모습은 Atonement의 단계와 겹친다. 이재명은 가난과 노동자의 삶이라는 현실 속에서 사회적 약자의 상처를 온몸으로 겪은 뒤 정치적 지도자로 부상했다. 그는 수많은 탄압과 위기를 통과하며 여전히 Abyss와 Transformation 사이를 오가는 여정 한가운데 서 있다. 조국은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적 부름에 응해 찬란히 빛나는 자리까지 올라갔다가, 권력의 중심에서 추락해 법정과 수감 생활이라는 어둠을 경험했다. 가족과 함께 감당한 고통은 그를 심연에 떨어뜨렸지만, 검찰정권이 깨지며 사면과 함께 정치적 리더로 복귀하는 모습은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들인 귀환의 서막이다. 다섯 인물은 모두 고난과 추락을 경험하고, 그 과정에서 인간적 나약함을 드러내며, 다시 사회적 사명을 지닌 존재로 돌아왔다. Call → Abyss → Transformation → Return의 구조가 뚜렷하게 반복된다. 또한 한 인물의 여정은 다음 인물의 여정과 겹치며 이어진다. 민주진영 인물들이 모두 영웅이라서 이런 모습이 반복된 것이 아니다. 다양한 인물들 중에서 대중은 무의식적으로 영웅의 여정을 투영할 수 있는 사람들을 기억한다. 고난을 통과해 다시 돌아온 이들에게서, 대중은 영웅의 패턴을 본능적으로 읽어내고, 그래서 그들의 이야기가 집단의 기억 속에 강하게 남는다. 전에 얘기했던 필연성과도 연관된다.

얼마전까지 현역이던 사람들이지만, 이미 한국현대 정치사 같은 역사책을 써야하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관심 주…

얼마전까지 현역이던 사람들이지만, 이미 한국현대 정치사 같은 역사책을 써야하는 사람들 외에는 아무도 관심 주지 않는 정의당. 왜 지금도 조국조국거리는지 알 것 같다. 예를 들어 민주당이 뭔가 큰 잘못을 반복하며 다음 총선에서 0석이 되는 충격적인 일이 생겼다고 보자. 그래도 50년 넘는 역사의 민주당이고 과반의석을 오래 유지했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을 배출했는데 0석됐다고 그냥 모든 걸 포기하고 사라지거나 "이게 아닌가벼" 하고 정반대 쪽으로 튈수는 없는거다. 다시 예전 180석은 못찾고 18석을 노리더라도 예전 지지층을 노려야지. 정의당도 일단 망하긴 했고 재건을 시도하고 싶은데 망하던 시점에 정의당 지지층은 거의 순수하게 반민주당/반조국이었다. 망하던 시점에 신장식 천호선 박창진 등이라도 아직 당에 있었으면 정의당을 만들었던 일파인 유시민의 국민참여계라도 앞으로 나서서 다른 노선을 시도해보겠지만 이미 다 쫓아낸 뒤였다. 그런 정의당이라 권영국으로 얼굴마담을 바꿨지만 이들의 전략은 "망하기 직전 지지층을 일부라도 회복해야해"가 된거다. 그리고 바로 그 지지자들이 정의당에게서 원하는 건 아무리 세상이 이미 바뀌고 검찰정권이 끝나가는 상황이더라도 민주당 욕하고 조국 욕해서 자신들의 혐오가 정당했다고 주장해주는 거다. 설사 영영 원내복귀를 못해도 계속 더 세게 민주당 욕해서, 과거 초강력 반민주당 성향 정의당 지지층 중 충분한 수가 당비를 내주면 정의당 당직자들은 이대로 이짓하며 먹고 사는 것도 가능하다는 점도 있다. 조원진, 황교안이나 전광훈의 정치세력이 의석이 없어도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비유하자면 친일단체가 1945년 8월 16일에 "이제 우린 뭐하고 살지?"라는 질문에 "예전처럼은 못하지만 그래도 작은 규모로 우리 하던거 하는 수 밖에 없잖아" 하고 일장기를 들고 거리로 나가는 상황이다. 사실 답은 집단 정계은퇴 & 생업 복귀지만 아직 미련을 못버려서 저런다.

마케도니아 테토보에 있는 14세기 이슬람 수피 수도원(텍케) Arabati Baba Teḱe. 일반적으로…

마케도니아 테토보에 있는 14세기 이슬람 수피 수도원(텍케) Arabati Baba Teḱe.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이슬람 건축양식과는 다르다. 사실 이슬람은 아랍반도 밖에서는 필요할 땐 현지 전통과 양식을 따르며 빠르게 전파에 성공했고 나중에 기독교도 이 전도 방식을 따라했다.

인도에서 쓰이던 다양한 문자체계 중 팔라바 – 그란타 문자가 남인도 타밀어 문자로 발전하는데, 기원후 1세기…

인도에서 쓰이던 다양한 문자체계 중 팔라바 – 그란타 문자가 남인도 타밀어 문자로 발전하는데, 기원후 1세기부터 인도와 교역하며 인도 영향권에 있던 동남아도 점차 이 그란타 문자로 된 힌두교 경전/불경 들을 배우며 이 문자에 바탕한 자신들의 문자들을 만들었다. 결국 이슬람과 함께 아랍어가 들어오기 전에 개발된 동남아 문자들은 대부분 동글동글한 그란타 문자에 바탕돼 있다. 남쪽에서 개발되던 이런 문자들은 한반도에까지 들어오지는 못한 것 같다. 그래도 세종대왕도 훈민정음 창제시 산스크리트(범어)와 티베트, 파스파 문자 등을 참조했다고 하는데 전부 브라흐미 문자에서 나왔으니 넓게 보면 한글과 동남아 문자들도 같은 브라흐미 인도 문자에 영향을 받았다. 단 한글은 브라흐미 문자의 자음 모음을 조합한다는 매우 효율적인 방식을 따라해 사상적 영향을 받았을 뿐 형태적 유사성은 없다고 했는데.. 사실 보면 많이 보이긴 한다. ㄱ, ㄴ, ㄷ, ㄹ, ㅁ, ㅂ, ㅅ까지는 Λ, ┴(브라흐미),द, र, म, प, स(브라흐미 계열 문자인 데바나가리) 그냥 따라한 것 같긴 하다… 그래도 그냥 따라한 게 아니라 브라흐미 문자는 자음이 주인공이고 모음은 부수적인데 한글은 라틴 문자처럼 자음과 모음이 동등하게 독립된 구조로 더 발전시켰다.

인도 갠지스강 Ganges은 힌디어로 강가 ganga라고 한다. ganga는 산스크리트어 기본형 동사 gam…

인도 갠지스강 Ganges은 힌디어로 강가 ganga라고 한다. ganga는 산스크리트어 기본형 동사 gam-에서 파생된 단어로 "가다, 흐르다"라는 뜻이라고 본다. gam-은 더 고대로 올라가면 인도유럽어에서 ǵʰem 으로 나타나고, 이건 북방 게르만계에서는 kom, 다시 영어에서는 come과 go, 남쪽 라틴어에서는 venire로 변했다. 라틴어에서는 인도유럽어의 g가 v나 b로 바뀌는 일이 많다. ǵʰem -> vem -> venire 순으로 변했다. 소를 뜻하는 gous도 게르만계에서는 kuz -> 영어의 cow가 됐고 라틴어에서는 bos, bovis가 됐고 영어의 beef가 됐다. 낯선이, 손님을 뜻하는 인도유럽어 gostis도 게르만계를 통해 guest, 라틴계를 통해 host로 변해 둘 다 영어에 존재한다. 서로 반대 의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