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국 서비스업 현장에선 고객과 종업원 모두가 서로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 한쪽은 “왜 이렇게 일 처리가…

요즘 미국 서비스업 현장에선 고객과 종업원 모두가 서로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 한쪽은 “왜 이렇게 일 처리가 느리고 불친절하냐”고 하고, 다른 쪽은 “왜 이렇게 무례하고 황당한 요구를 하느냐”고 한다. 말하자면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감당 못하는 시대다.

서비스직 종사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점점 더 많은 고객들이 상식 밖의 요구를 한다고 한다. 메뉴에 없는 걸 집요하게 요구하거나, 음식이 몇 분 늦었다고 폭언을 하거나, 아예 사람 취급을 안 한다는 식이다. “버거를 시켰지만 파니니를 원했는데 왜 버거를 가져왔냐”는 항의부터 “바로 지금 해달라”, “공짜로 해달라”는 요구까지, 예전보다 훨씬 당당하고 거침없다. 그런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일이지만, 감정노동까지 감당해야 하니 진이 빠진다는 말이 많다.

그런데 고객들 입장에서도 할 말은 있다. 코로나 이후 전보다 서비스 속도가 느려졌고, 직원들의 태도도 성의가 없어졌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특히 젊은 직원들이 무표정하거나 사무적으로만 응대한다고 불만을 갖는 경우가 많다. ‘Gen Z stare’, 즉 감정 없는 응시가 밈이 된 것도 이런 맥락이다. 고객은 예전처럼 특별한 대접을 받고 싶어 하는데, 직원은 더 이상 감정노동을 해줄 이유를 못 느낀다.

결국 이건 단순한 무례함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이 너무 달라졌고, 그 차이를 더 이상 맞춰줄 여유도 없는 상태다. 고객은 ‘나는 손님이니까’라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종업원은 ‘나도 사람인데 왜 참아야 하냐’는 감정이 쌓이고 있다. 이 간극은 매일같이 마찰을 만들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사람들 정말 변했다”고 말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게 단기간에 끝날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은 ‘불친절한 직원’과 ‘무례한 손님’이 서로를 끝없이 생산해내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어느 한쪽이 바뀌지 않으면 계속 더 나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관계를 회복시키려면, 어느 쪽이든 먼저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지금은 그런 건 없고 서로에 대한 불만이 증폭되는 중이다. 어떤 모습으로 터질지, 어디서 절충점이 나올지 모르겠다.

윤석열도 김건희 특검 막겠다고 내란을 일으키고 감옥갔고. 이재명 잡겠다고 대법원도 선거개입을 한 상태고. 강…

윤석열도 김건희 특검 막겠다고 내란을 일으키고 감옥갔고. 이재명 잡겠다고 대법원도 선거개입을 한 상태고. 강선우 막겠다고 여성단체들과 보좌관들이 속셈을 드러냈고. 지금까지의 패턴을 봤을 때 김건희를 더 때리면 이 특정 판사들이 무리수를 두며 스스로 법원 개혁 포문을 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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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크로 시대, 미국은 백인과 흑인을 철저히 구분하는 사회였다. 학교, 병원, 화장실, 식당, 극장, 심지어…

짐 크로 시대, 미국은 백인과 흑인을 철저히 구분하는 사회였다. 학교, 병원, 화장실, 식당, 극장, 심지어 음수대까지—공공시설 대부분에 "Whites Only(백인 전용)", "Colored Only(유색인종 전용)"이라는 표지가 붙었고, 그 구분은 사회적 분위기가 아니라 법으로 강제됐다. 이 구분의 핵심은 단순한 피부색이 아니라, 누가 ‘백인’인가를 정의하는 문제였다. 아일랜드계, 이탈리아계, 폴란드계 이민자들은 처음 미국 사회에서 ‘진짜 백인’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직업·주거·결혼 등 여러 면에서 심한 편견과 차별을 겪었다. 하지만 공공시설 이용에서는 예외였다. 그들은 흑인들과 같은 'Colored' 시설이 아닌, 백인 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법적·사회적으로 백인 범주 안에 포함되는 순간, 그들은 그만큼의 권리도 부여받았다. 반면 라티노, 특히 멕시코계 미국인들은 훨씬 복잡한 대우를 받았다. 지역에 따라 완전히 다른 기준이 적용됐다. 텍사스나 아리조나 같은 남서부 지역에서는 'White', 'Mexican', 'Colored' 세 가지 구분이 공존했다. 그런데 플로리다나 루이지애나 일부 지역에서는 라티노를 아예 흑인으로 분류해 ‘흑인 전용’ 음수대나 화장실을 이용하게 하는 일도 있었다. 그들은 백인이 아니란 이유 하나만으로 흑인들과 함께 묶였고, 이중의 차별을 겪었다. 물론 흑인들의 권리를 억압해야 할 때 필요하면 라티노도 백인으로 구분해 대립 시켰고,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작년 대선에 많은 라티노가 트럼프를 지지하고 지금 추방 당하는 중이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경험도 예외는 아니었다. 캘리포니아와 같은 서부 지역에서는 특히 중국계, 일본계, 필리핀계가 백인 전용 식당이나 수영장, 극장에서 배제당했다. 대중교통이나 학교에서도 차별이 있었고, 남부에서는 법원 판결로 아시아인을 ‘Colored’로 분류해 흑인 학교에 보내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경제적 지위가 높거나 지역 사회에서 인정받은 일부 아시아계 가족은 예외적으로 백인 학교에 자녀를 보내기도 했다. 그만큼 차별 기준이 일관되지 않았고, 지역과 계층, 분위기에 따라 달랐다. 미시시피 시골 등에 공립학교에 가면 벽에 역대 졸업생 사진들이 걸려있는데 어느 시기까지 백인 전용 학교였다가 그 지역 교육부 규정 변경 후 모든 인종에게 열리면서 백인 학생들이 다 빠져나가고 흑인학교처럼 된 곳들이 많다. 근데 자세히보면 양쪽 모두 아시아인과 라티노 학생들이 있다. 백인 학교일 때는 매우 부자로 보이는 동양계와 라티노 학생들이 있고 흑인 학교일 때는 좀 가난해 보이는 아이들이 사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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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건 통일교건 개신교건 불교건 문제가 있는 쪽은 결국 다 잡으러 갈 느낌인데, 그 중 개신교와 불교는 압…

신천지건 통일교건 개신교건 불교건 문제가 있는 쪽은 결국 다 잡으러 갈 느낌인데, 그 중 개신교와 불교는 압도적으로 신도 수가 많아서 사실 한 쪽에서는 잡고 한 쪽에서는 말리고 하는 그림이 더 좋긴 하다. 그걸 노리고 한 거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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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를 보고 자꾸 “얼마전까지 저쪽에서 우리 욕하던 사람이야!” 이런 거 좀 덜했으면 좋겠다. 그동안의…

인사를 보고 자꾸 "얼마전까지 저쪽에서 우리 욕하던 사람이야!" 이런 거 좀 덜했으면 좋겠다.

그동안의 언행은 당연히 평가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어쩔 수 없는 거 안다.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의 업무 수행 능력을 예측할 수단이 경력 밖에 없으니까.

근데 고용인이 이재명이다. 지금 내가 기대하는 건 이재명 대통령이 이 도비들을 잡아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게 만들며 얼마나 많은 양의 노동량을 빼낼 수 있느냐다. 아니 권오을, 이언주 같은 사람들은 뭐라고 불평하기 전에 임명되고 공천 받아버려서 그렇지 같은 기준으로는 지금이라도 내보내야할 사람들 아닌가. 박용진은 또 극심한 진상짓을 얼마나 오래 했는데 지난 대선에 이재명 진영으로 영입되고는 잘 하고 있다.

저쪽에도 사실 영혼없이 진영에 충성하던 사람들 많다. 더 큰 보상을 위해서건 개과천선을 해서건 이쪽으로 넘어와 진짜 맞는 진영을 찾는 사람도 나온다. 김상욱처럼.

실제로 사용을 하지 않더라도 검찰의 캐비넷 등에 큰 게 걸려있는 사람들은 그 자료를 이재명 정부도 보고 있음을 알고 있다. 패가 떨어지자 바로 그날로 대구 시장직 포함 모든 걸 던지고 피신한 홍준표처럼, 정권 바뀌기 직전까지 강렬히 저항하다가 바뀌는 순간 바로 투항하는 사람들 중엔 이것만 지켜주면 모든 걸 다 바칠 사람들 많다. 이 중에 일부는 불이 나도 우리보다 더 마지막까지 이재명 대통령 옆을 지킬 간절한 사람들도 나온다. 이재명 정부가 이걸 활용한다는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은 스스로 이 길을 택할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는 거다.

적과 우리가 5:5로 대치 중이어도 저쪽에 좀비가 쳐들어왔다면 저쪽 다섯 사람 중 최대한 여럿을 이쪽으로 빼내놔야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좀비 수가 줄어든다. 한 명 빼 올 때마다 우리는 +1, 저 쪽은 -1이라 2의 차이가 생긴다.

잡아다 일 시키면 우리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은 좀 잡아오게 놔두자… 그리고 그 판단은 우리가 아니라 이재명 대통령이 하는 게 맞고. 우리 쪽에 생각보다 사람 별로 없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능력만 키우며 욕먹을 짓 한 번도 하지 않고 살아온 그런 사람들 사실 거의 없다. 그리고 뉴스에 나오지 않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지금 열심히 채우고 있는 공직은 7000여개에 달한다.

임진왜란은 유럽에까지 알려졌고, 그것도 그냥 알려진 게 아니라 가톨릭 선교사들의 보고서를 통해 로마 교황청까…

임진왜란은 유럽에까지 알려졌고, 그것도 그냥 알려진 게 아니라 가톨릭 선교사들의 보고서를 통해 로마 교황청까지 정식 전달되었다. 그 당시에 동아시아에서 활동하던 선교사들은 각자 일본, 조선, 중국에 흩어져 있었고, 이 전쟁을 각자의 자리에서 바라보며 기록을 남겼다. 그 보고가 교황청으로 향했고, 전혀 다른 세계였던 유럽에까지 조선이라는 나라의 전쟁 소식이 전파됐다. 가장 핵심적인 인물은 루이스 프로이스다. 포르투갈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로 일본에서 30년 넘게 살았고, 조선 침략을 벌인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움직임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그는 히데요시가 조선을 침략한 걸 “오만하고 분별없는 짓”이라고 평가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조선에서 온 통신사와 일본 측 사이의 어긋난 분위기, 전쟁 발발 후 조선인들이 포로가 되면서도 끝까지 항거하거나 자식을 지키기 위해 변장을 했다는 이야기들, 모두 그의 기록에 남아 있다. 그는 직접 조선 땅은 밟지 않았지만, 일본 내 기리시탄들과 현지 일본인 신자, 다른 선교사들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이 내용을 상세히 교황청에 보고했다. 그런데 실제로 조선 땅을 밟은 유럽인도 있었다.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라는 예수회 신부인데, 스페인 출신이고, 일본군을 따라 1593년 겨울에 부산에 상륙했다. 목적은 일본군 안의 가톨릭 신자들—대표적으로 고니시 유키나가 같은 장수—을 위해 종군 사제로서 활동하는 것이었다. 그는 조선에서 약 1년 반 정도 머물렀고, 그 사이 여러 편지들을 유럽에 보냈다. 조선의 자연환경이나 전쟁 중의 삶, 포로가 된 사람들 중 몇몇에게 세례를 준 일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었고, 이 편지들 중 일부는 실제로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 인쇄되어 읽혔다. 그가 데리고 간 조선 소년 ‘비센테 가온 Vincent Caoun’은 후일 조선 선교를 위한 인물로 훈련시키려 했던 계획의 일부였다. 전쟁이 끝나면 조선도 선교 대상으로 삼겠다는 계획이 이미 세워지고 있었던 셈이다. 한편 중국에서는 마테오 리치가 있었다. 그는 명나라 안에서 활동하던 이탈리아 출신 선교사였고,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는 난징과 북경 근처에서 전쟁의 여파를 직접 목격했다. 그는 “조선은 중국의 속국인데 일본이 침략했고, 명나라가 조선을 도우러 8만 명을 파병해 일본군을 물리쳤다”고 유럽에 보고했다. 물론 숫자는 부풀려졌겠지만, 전쟁으로 명나라 사회 전체가 패닉 상태였다는 건 분명했다. 사람들은 일본군 첩자가 도시에 숨어 있다고 믿었고, 외국인에 대한 경계도 극도로 심해졌다. 그 영향으로 리치는 한동안 북경 입성이 막히기도 했다. 이 모든 내용이 그의 편지와 보고서에 담겨 로마 예수회 본부와 교황청으로 전달됐다. 이 세 선교사들의 보고 덕분에 교황청은 전쟁의 경과와 조선이라는 나라의 존재, 그리고 전쟁이 동아시아 전체에 미친 파장을 파악할 수 있었다. 교황청은 바로 개입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일본에서 박해받는 가톨릭 신자들의 상황과 전쟁으로 생긴 선교 기회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실제로 교황 클레멘스 8세는 이 시기 일본 순교자들을 시성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하고 있었고, 세스페데스의 보고 이후 조선을 새로운 선교지로 삼는 가능성도 적극 검토했다. 사실 임진왜란 이전부터 예수회는 조선에 관심이 많았다. 1570년대부터 이미 “조선을 선교하자”는 계획이 올라왔고, “일본 상인을 통하면 접근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었다. 당시 조선을 잘 몰랐던 유럽인들 눈엔 심지어 “조선을 넘으면 흰 피부 사람들이 사는 독일 같은 땅이 나온다”는 식의 상상까지 섞여 있었다. 조선을 중국과 유럽을 잇는 통로로 보는 발상이 실제 보고서에 담겨 교황청에 전달됐다. 정리하자면, 임진왜란은 유럽에서 단순한 극동의 전쟁이 아니라 선교사의 눈을 통해 본 극동의 실시간 첩보로 읽혔다. 프로이스는 일본 내부에서 전쟁의 시작과 파장을 설명했고, 세스페데스는 실제 조선 땅에서의 경험을 기록했으며, 리치는 중국의 반응과 파장을 정리해 전달했다. 이 세 가지 시각이 모여 로마 교황청은 조선이라는 나라와 그 전쟁의 파장을, 현장감 있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건 단순한 보고 그 이상으로 향후 선교 전략을 조정하는 데 영향을 준 생생한 정보였다.

1. 지금 이 순간 제일 중요한 건 이재명 정부가 개혁에 성공하는 거다. 정권 한 번으로 빠듯하고, 재창출은…

1. 지금 이 순간 제일 중요한 건 이재명 정부가 개혁에 성공하는 거다. 정권 한 번으로 빠듯하고, 재창출은 개혁 성공 여부에 달려있어서 역시 모든게 개혁 성공에 달려있다. 실패하면 윤석열 파 다시 돌아오고, 선거 같은 거 더 이상 못하게 될 수 있다. 미친듯이 개혁하고 숙청해야할 비상 상황인데 평상시처럼 얌전만 떨다가 트럼프에게 민주주의의 생명줄을 넘겨준 바이든 봐라.

2. 이재명 대통령이 인선을 발표했다. 다시 말해 그 개혁, 이 팀으로 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럼 난 이 팀을 원한다. 이 팀을 이재명 대통령 본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강제로 수정할 땐, 정말 확실한 이유가 필요하다. 그리고 지금 합당한 이유는 단 하나 밖에 없다. 그 사람이 이재명 팀의 일부로 이재명의 개혁 계획을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확신이다. 그러면 바꿔야 한다. 근데 이재명의 계획을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 판단을 어떻게 하나. 이재명이 이 사람을 롤모델로 뽑았는지, 장수로 뽑았는지, 적진에 던져줄 염병환자 시체인지 어떻게 알고? 그리고 그 판단을 왜 지금 해야 하나. 그냥 일 시키고 몇달 결과를 보면 되는데. 사실 지금 나오는 인사에 대한 불평 불만은 다 헛소리다. 왜냐,

3. 자꾸들 착각하는데 개혁과 행정에서 끊임없는 성공의 경험을 가진 건 우리가 아니라 이재명이다. 기득권과 싸워 가장 아픈 곳을 잡고 심지어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기 까지 해본 건 이재명이지 우리가 아니다. 우린 노무현, 문재인 정권을 통해 기득권과의 싸움에서 장렬하게 대파 당한 경험만 있다. 근데 우리가 이재명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 팀 안돼. 다시 짜." 솔직히 이 말이 나오나? 왜? 우리 쪽 사람이 아니라서 싫어? …. 왜 실패했는지 알 것 같지 않나?

4. 이해하기 더 쉽게 설명해주겠다. 자판기에 동전 넣는데 이 사람들 지금 못생긴 동전 빼라고 시위 중이다. 이재명 자판기는 동전 넣으면 매번 개혁이 나왔다. 금액도 맞게 동전을 이재명이 하나 하나 조심스레 골라서 준비해줬는데 왜 돈도 없고 음료도 없는 것들이 못 넣게 지랄이냔 말이다. 난 목말라서 지금 눈 돌아가게 생겼는데.

5. 내가 진짜 목마른 이유는 내가 저쪽 사람이었으면 난 지금 이 상황 다 뒤집고 제대로 준비해서 내란 일으킬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내란 공범들 지금도 대부분 현직에 있다. 지금 이재명이 해야하는 개혁보다 저쪽에서 마음먹고 뒤집는 게 100배 쉽다. 아직 저쪽 수뇌부가 무당들로 차있고 정상 수준의 능력자가 하나도 없는 게 우리의 천운일 뿐이다. 난 이재명이 욕망에 굴복하는 삶이 아니라 우리 쪽에서 바르게 살아와준 게 너무 다행스럽다. 저쪽에 있었으면 우린 끝났다. 100년 간 뒤집지 못한다.

아래 글도 그렇고 사실 내가 진짜 지적하고 싶은건… 한국 대중이 단죄를 너무 좋아한다는 거다. 어떤 사안…

아래 글도 그렇고 사실 내가 진짜 지적하고 싶은건… 한국 대중이 단죄를 너무 좋아한다는 거다. 어떤 사안을 봤을 때 문제 해결보다 "그래서 누구 잘못인데. 누구를 조지면 되는데." 솔직히 여기에 더 관심이 있다. … 사실상 문제 해결이 되지 않았어도 누군가 거하게 폭탄을 맞았으면 어느 정도 만족해버린다.

민주당 임명 청문회가 일종에 국민적인 축제인 게, 국힘 인사들은 뻣뻣하게 고개 들고 국민의 대변자들을 비웃기 때문에 볼 맛이 안나지만 민주당 인사들은 웬만하면 뭘 지적하건 고개 숙이고 사죄하기 때문에 단죄가 이뤄진듯한 맛이 있다는 거다. 민주당 인사들은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과 높은 검증 기준에 부합해야하는 것 외에도 고위인사 단죄에 굶주린 대중의 갈증을 풀어줘야 하는 책임까지 진다.

대중이 단죄하기로 마음 먹은 이상 아무리 억울해도 무조건 사실만 말하며 설명하려 들면 이 대중은 더 화낸다. 사죄하는 태도를 보인 이상 매를 맞아주며 갈증도 풀어주되 낙마는 하지 않는 묘기를 보여야 한다. 갈증을 풀어준다고 보답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국힘 인사는 절대 이런 일에 끝까지 부인을 하지 필요 이상으로 스스로 나서서 사죄하고 당하지 않는다.

강선우 장관의 예에서도, '제보자'도 익명으로 빠졌고 제보자에 힘을 실어준다는 민보협도 익명으로 숨었다. 익명의 인물들은 단죄할 수 없다. 제보자가 이름을 공개하고 나왔으면 대중은 그의 근태와 현 소속 정당 등 그 사람의 자격과 그 사람은 얼마나 단죄 받아야 할지를 고민했을 거다. 대중은 사안 자체를 평가하는 것보다 관계된 인물들 중 누가 가장 나쁜 놈인지에 가장 관심이 있다. 이번에 얼굴을 특정할 수 있는 건 강선우만 남겼기 때문에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일정수준은 강선우 혼자서 대중의 갈증을 풀어줘야 했다. 아이템이 조금만 더 셌으면 억울한 오해더라도 결국 낙마했을 거다.

의료서비스 예를 들었지만, 문제 해결을 하려고 해야지 화내고 단죄할 대상을 찾는 게 급선무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