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담하는데 한국은 아직 잠재력이 넘쳐나는 나라다. 나라 영향력, 군사력, 다 5-6위로 나오는데 경제력이 아직 못 따라잡았을 뿐이다.
국가 시스템에 철밥통을 차리고 기생충이 되어버린 언론, 검찰, 사법부, 정치, 교육이 훌륭한 국민의 다리를 붙잡고 있다.
걱정 마시라. 조만간 이재명 대통령이 하나 하나 해결해준다. 좀 많은 일이긴 하지만 5년간 다른 거 못하고 개혁에만 온국민이 집중하면 다 될 가능성도 있다. 5년 안에 싹 다 고치고 새로운 나라가 돼서 동아시아 패권 놓고 미중일과 경쟁하는 거다. 적어도 다른 강대국들이 동아시아를 가지고 놀지 못하게 평화를 지키는 중-강대국이 될 수 있다.
https://www.usnews.com/news/best-countries/rankings/powerhttps://www.globalfirepower.com/countries-listing.php
애플이 키운 건 아이폰만이 아니었다
애플의 공급망 전략은 자사의 안정성을 위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전략은 중국 제조업 전체의 숙련도를 한 세대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애플은 혁신했고, 중국은 그 혁신을 체계로 만들었다.
애플은 중국에 아이폰 생산기지를 구축하면서, 거의 모든 2차·3차 부품 공급사에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애플에만 납품하지 말고, 다른 고객도 확보해라.” 이는 착한 자본주의적 배려가 아니라 냉정한 리스크 분산 전략이었다. 애플 입장에서는 미래의 제품에서 해당 공급사의 부품 구매를 중단할 경우, 그 회사가 파산해버리면 언젠가 그 회사가 필요할 때 다시 쓸 수가 없게 된다. 차라리 살아남은 상태로 기다리게 하자는 계산이었다.
결국 이 조건은 공급사들에게 새로운 고객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이었고, 그 ‘다른 고객’ 대부분은 중국의 신생 스마트폰 기업들이었다. 이들은 애플을 통해 훈련된 고숙련 공급사들과 손을 잡으며 비약적인 품질 상승을 이뤄냈다. 그 공급사들은 단순히 부품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정밀 가공·조립 공정·배터리 효율·방열·EMI 차폐 등 아이폰에서 축적된 최고 수준의 제조 기술을 신생 중국 기업들에게 전파하는 중계자이기도 했다. 그 덕에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출시 몇 년 만에 글로벌 수준의 품질과 성능을 확보할 수 있었고, 애플은 결과적으로 자신이 키운 공급망을 통해 경쟁자의 국가 산업을 간접 육성하게 된 셈이 되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형성된 고숙련 제조 기반은 스마트폰에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다른 산업 영역으로 확산됐다. 특히 전기차(EV), 드론, 무기체계 등으로의 수평 확산이 두드러졌다. EV는 배터리, 센서, 열관리, 정밀가공의 총합이며, 이는 아이폰 부품과 공정 대부분과 겹친다. 드론 역시 경량화, 통신칩, 고정밀 금형, 내열소재 등이 핵심인데 이 역시 아이폰 생산 기반과 기술적으로 일치한다. 중국의 군사용 드론이 상업용 수준을 뛰어넘으며 세계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전환의 속도와 기반이 결정적이었다.
이런 기술의 ‘파급’은 단순한 산업의 발전이 아니라, 중국의 산업 체계 전반이 고도화된 구조로 재정렬된 결과다. 공급사 하나하나의 성장이 아니라, 국가 단위의 ‘스케일 업’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애플의 통제 밖에서.
이 현상은 단지 “애플이 중국에 생산을 맡겼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애플은 중국에 스킬을 이식했고, 시스템을 내장했으며, 그 결과물은 글로벌 경쟁상대로 되돌아왔다. 중국의 여러 스마트폰 기업이나 EV 스타트업, 드론 기업들은 단순한 카피캣이 아니다. 이들은 애플 생태계 내부에서 실시간으로 역방향 기술학습을 진행한 파트너였다. 애플이 아이폰을 만든 것이 아니라, 애플이 중국 기술생태계를 생성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고의가 아닌, 리스크 회피를 위한 부차적 조치의 부산물로.
이전에도 비슷한 전례는 있었다. 일본의 소니는 1980~90년대 고성능 부품 공급망을 갖췄지만, 그건 그 파트너들이 완제품 경쟁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처음부터 완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공급망과 자본, 내수 시장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었고, 애플은 그 엔진에 고급 연료를 붓는 역할을 해버렸다. 삼성은 이 점을 간파했기 때문에 한국의 하청 구조는 철저히 종속형으로 설계되었다. 삼성 없이는 살 수 없도록 만든 공급망은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이었지만, 국가 산업의 독립성과 수직 확장 가능성을 가로막기도 했다.
결국 애플은 자신이 만든 기술의 총합보다, 그 기술을 학습한 국가가 더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기술은 총보다 빠르게 국경을 넘었고, 무기를 건넨 손은 결국 총구의 반대편에 서게 되었다. 오늘날의 애플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기술기업이지만, 그들이 공장을 세웠던 도시들은 이제 애플 없이도 스마트폰을 만들고, 전기차를 조립하며, 자국산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 애플이 만든 건 단지 아이폰이 아니라, 애플 없이도 움직이는 제조국가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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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맥기의 저서 [Apple in China]는 애플이 중국에 미친 영향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맥기는 애플이 2015년 한 해에만 중국에 550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이는 당시 미국의 반도체 산업 지원 법안인 CHIPS Act의 4년간 투자 규모를 초과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애플은 중국에서 수천만 명의 엔지니어를 교육하여, 이들이 중국 내 다른 산업에서도 핵심 인력으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https://www.smartkarma.com/ko/insights/episode-117-talking-apple-in-china-with-patrick-mcgee
지금은 반윤으로 이미지 세탁 중이지만 한동훈은 윤석열 정부 전반기 최소 절반의 지분이 있는 총리급 법무장관이었다. 윤석열은 화재가 나도, 경제가 힘들어져도, 엑스포 유치에도 한법무를 불러 일 시켰다. 이태원 참사가 한동훈 법무장관 때 마약사범 마약사범 하며 실적 올려보겠다고 하다가 일어난 일이다.
1973년 2월 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마오쩌둥이 헨리 키신저와 마주 앉았다.
“중국은 가난한 나라입니다. 가진 건 별로 없어요. 여성 인구가 너무 많다는 걸 빼면 말이죠.”
(웃음)
키신저가 재치 있게 받아쳤다.
“그쪽은 수입 할당제도 없고, 관세도 없겠군요.”
(더 큰 웃음)
마오는 망설임 없이 직구를 던진다.
“원하신다면 수만 명쯤 보내드릴 수 있어요.”
저우언라이 총리는 옆에서 슬쩍 보탠다.
“물론 자발적으로 간다는 전제 하에.”
마오는 다시 웃으며 마무리한다.
“그들을 미국에 보내면 재앙을 일으킬 겁니다. 우리는 짐이 줄어들겠고요.”
(폭소)
기록은 CIA 해제 문서(“Memorandum of Conversation between Chairman Mao and Dr. Kissinger,” 1973년 2월 17일)에 분명히 남아 있다. 당시 마오의 발언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표정과 맥락을 보면 절반쯤은 진심이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인구 문제는 이미 심각했고, 중미 간 외교 카드로 인구를 꺼내든 이 대목은 정치가 아니라 무역협상에 가까웠다.
당시 미국은 비엣남전의 후폭풍과 여성해방운동, 인종갈등으로 정신없던 시기였다. 거기다 중국 여성 수만 명이 “이민”을 오겠다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키신저는 웃으며 받아쳤지만, 웃음 뒤에 계산기 돌아가는 소리는 마이크에 안 잡혔을 뿐이다.
이 발언을 듣고 닉슨이 뭐라 했는지는 공식 기록에 없다. 다만 키신저는 워싱턴 복귀 후, 내부 회의에서 “중국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냉정하고, 훨씬 더 유연하다”고 보고했다.
정치가 말장난처럼 보일 때, 사실 그 말장난이 핵보다 무서운 신호일 때가 있다. 1970년대 초, 미중 수교는 탁구가 아니라 이런 대화들 속에서 이루어졌다. 사람 수를 무기로 꺼내는 나라. 그걸 듣고 계산하는 나라. 그리고 50년 후, 그 이야기조차 잊어버린 나라들.
트럼프는 올해 하버드 대학이 외국인 학생들 등록하는 걸 막았고 법원에서 다시 트럼프를 막는 가처분 명령을 내린 상황이다. 트럼프가 성공하고, 그들을 받아주겠다고 발표한 홍콩 과기대에 수천명의 하버드 학생들이 가게 된다면 이건 희극으로 봐야하는 건지 운명의 장난인지.
이준석의 고민은 생존 전략이다. 지지율이 10% 안팎이기 때문에 ‘완주’도 ‘단일화’도 모두 리스크가 있다. 그는 지금 ‘이재명 정부 하에서 어떤 포지션이 가장 오래 버틸 수 있는가’를 계산하고 있다.
1. 완주의 시나리오: 개혁보수의 쿼터
이준석이 10% 이상을 안정적으로 받고 마무리할 수 있다면 완주도 괜찮은 선택이다. 김문수도 어차피 3자 구도에서는 20% 안팎을 받을 것이고, 이준석도 그 아래의 젊은 개혁보수 공간을 차지할 수 있다. 보수에는 항상 유승민, 안철수와 같은 ‘비주류 개혁보수’에 대한 일정 지분이 존재했다. 이 틈을 파고드는 전략으로 오래 가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준석의 최종 목표는 독자 정당 유지가 아니라 국민의힘 복귀다. 따라서 시점과 명분을 언제, 어떻게 잡을지가 핵심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개혁보수 이미지마저 소진되고, 양쪽에서 버림받는 결과가 될 수 있다.
2. 단일화 시나리오: 전술적 후퇴로 기반 재건
만약 스스로도 10%를 넘기기 어렵다고 판단하면, 현실적으로 단일화 후 국힘 복귀가 낫다. 캠프 운영비, 여론의 피로감, 조직력 부족 등 실질적 문제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이럴 경우 단일화 협상에서 최소한 공천권 보장, 다음 총선에서 계파 의원 확보 등의 실리를 챙기고 돌아가는 게 좋다. 물론 또 약속이 깨지거나 약속했던 주체들이 사라지는 일도 발생할 수 있지만, 아예 아무 것도 약속받지 못하고 들어가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3. 명태균 특검 방어: 경선조작 혐의 방어를 위해서는 대선후보가 나을지, 국힘 최고위원이나 비대위원장이 보다 유리할지도 고민 중이다. 이 사안은 단순한 스캔들이 아니라, 공직선거법 위반 및 불법 공천 구조의 실체로 번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정치적 신분과 보호막 없이 맞서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따라서 지금 개혁신당 하나 운영도 벅찬 이준석 입장에서는 대선후보로 계속 남는 것보다, 국민의힘 내부에 진입하여 체계적 방어에 들어가는 편이 전략적으로 유리하다. 성접대 의혹도 당대표 하기 훨씬 전에 제기 됐지만 국힘대표가 되고나서 본격적으로 고발되면서 어떻게든 방어하고 넘어가는데 성공했다. 대표가 아니었어도 공소시효 소멸로 방어 가능했을지는 알 수 없다. 확률상 경선조작 혐의도 국힘 대표 지위에서 방어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수 밖에 없다.
4. 윤핵관 붕괴 이후: 윤핵관 세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다면, 이준석이 당 밖에 있는 것보다는 국민의힘 내부에서 힘을 결집하고 공백을 노리는 것이 현실적이다. 안철수가 국민의당 대표 시절 독자적으로 존재감을 만들려 했지만, 어차피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도 없고 결국 국힘과의 합당/단일화 이벤트로 합류해 내부에서 경쟁하게 됐던 것과 비슷하다. 그때 안철수가 민생당과 싸웠던 거나 이준석이 허은아와 싸웠던 거나 결국 같은 이벤트다. 그리고 박근혜 탄핵 때도 이준석은 지금과 똑같은 코스를 밟아 잠시 탄핵의 불똥을 피해 나왔다가 국힘으로 돌아갔다.
지금의 대선보다 훨씬 중요한 싸움은 차기 당권 경쟁과 공천권 재편 과정이다. 내부에 있어야 이 변화에 직접 개입할 수 있다.
5. 개헌 협상과 희소성 상실: 민주당과의 거래 창구는 닫혔다
개혁신당의 한때 존재 이유 중 하나는 개헌 정국에서 민주당과 협상해 생존 공간을 확보하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가능하려면 이준석이 이재명과의 대립각을 피했어야 했다. 지금은 정반대다. 그는 최근 이재명과 민주당을 직접 겨냥해 공격의 초점을 맞췄다. 이는 개헌 협상 가능성을 스스로 접었다는 뜻이다.
국힘이 약화되며 개혁신당의 캐스팅보트 가치는 떨어지고, 일부 보수 인사들이 민주당에 흡수될 조짐까지 보이는 가운데, 이준석은 오히려 반이재명 진영의 투사 역할을 택하고 있다. 토론회에서 김문수 대신 날카로운 공세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향후 국힘 복귀를 전제로, ‘보수 진영 내 충성 시연’의 성격이 강하다. 애매하게 중간에 서 있으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하니, 아예 반이재명 전선에 전념해 존재 가치를 증명하려는 선택이다.
6. 책사 정치의 한계: 플랫폼 없는 천재는 없다
이준석의 정치는 한마디로 ‘책사 놀이’였다. 지난 대선에서 ‘비단주머니’ 운운하며 모든 걸 아는 듯한 태도, 기사를 유도하고 여론을 주도하던 그 모습은 국힘이라는 대형 플랫폼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연기였다.
그러나 개혁신당을 창당하고 나서 드러난 현실은 혹독했다. 실무 인력 부족, 조직 운영의 한계, 유치한 홍보물과 메시지, 무엇보다 결정적 국면마다 전략이 아니라 감정이 앞서는 모습이 반복되었다. 이준석은 지금 깨닫고 있을 것이다. “정치는 무대가 있어야 연기도 된다.” 플랫폼과 자원이 없는 상태에선 똑똑한 척도 설 자리가 없다. 결국 다시 돌아갈 무대는 사람과 돈이 있는 국민의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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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이준석은 이재명과의 협상 여지를 닫고 국힘 복귀 후 반이재명 투사로 남는 전략을 택했다. 단일화는 시기의 문제일 뿐 거의 확정적이다. 그 이후는 다시 국힘의 권력 핵에 접근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정신차리고 개헌 국면에 공을 세우며 ‘면죄부’를 노리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다.
P.S. 같이 들어가고 싶겠으나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이낙연은 어찌 될려나. 그게 가장 궁금한 사람은 사실 이낙연이지 아무도 관심없다.
1880년대에 처음 전기 발전기를 도입한 일본에서 오사카는 미국 발전기를 수입하고 도쿄는 독일 발전기를 수입한 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한국-미국처럼 60Hz 를 쓰는 오사카에서도 점차 전력망을 구축해나갔고, 중국-유럽처럼 50Hz를 쓰는 도쿄도 점차 전력망을 키워갔다는 거다.
결국 오늘날까지 서일본은 60Hz, 동일본은 50Hz라 호환이 되지 않는다. 도호쿠 지진 때 전력난이 발생해도 서일본에서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한다.
지금 교체하려면 발전기를 다 갈아야해서 비용이 비싸다는데, 시간이 갈 수록 교체 비용은 올라가기 때문에 아마 포기.
일본은 따라서 100v/50Hz와 100v/60Hz를 쓰고, 미국은 110v/60Hz. 유럽은 220-240v/50Hz.
한국은 미국처럼 110v/60Hz 쓰다가 승압해서 220v/60Hz.
문재인 대통령에게 난 90% 만족. 사실 만족도는 퇴임후 더 올라갔음. 계속 등산, 일상 소식 등을 올리며 저쪽 진영과 이쪽 진영의 횃불성애자들 속을 뒤집어놓는 게 난 너무 마음에 들었음.
이렇게 대전을 앞두고 민주진영이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또 김용민을 비롯한 횃불성애자들 또 머리에서 김이 나겠구나… … 꼬시다… …
트럼프는 남아공 대통령을 불러다 또 협박을 했다. 남아공에서 백인 농부들이 살해되고 있다는 헛소리를 담은 동영상을 틀며.
이유는 남아공 광물 채굴권 협상이 있기 때문이다. 소문에는 비밀리에 트럼프 회사가 채굴회사를 남아공에 등록했다고도 한다. 찾아봐도 안나오는 걸 보면 그냥 소문일 수 있다.
카타르에서 선물받았다는 비행기도 알고보니 2월 달에 카타르 왕실에서 트럼프에게 구경시켜준 적이 있는 비행기인데 그때부터 계속 욕심내며 요구해왔다한다. 카타르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팔 생각이 있다고 했는데 트럼프는 바로 그냥 카타르 정부에서 선물로 제공했다고 선언.
트럼프가 하고 있는 일은 윤석열과 비슷하게 미국의 민주주의 체계를 하나 하나 허무는 일이다. 또 동시에 개인 부를 쌓기위에 암호화폐 등 가지고 엄청 노력하고 있다. 이건 불행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가 부를 좇는데 쏟는 노력 만큼은 나라가 덜 망가지고 사람들이 덜 고통받는다. 어차피 언젠간 내려올테니 그때 처리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