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 관련 재미있는 일화들: 1. 366년 교황 다마소 1세가 교황이 될 때는 그의 지지자들과 경쟁자의…

교황과 관련 재미있는 일화들: 1. 366년 교황 다마소 1세가 교황이 될 때는 그의 지지자들과 경쟁자의 지지자들 사이에 충돌이 벌어져 137명이 학살 당했다. 2. 897년 교황 스테파노 6세는 전임자 교황 포르모소의 시신을 꺼내 재판하는 기행을 벌이다 자신도 투옥되고 교살됐다. 3. 955년 18살에 즉위한 요한 12세는 라테란 궁전을 매음굴로 운영했고 살인, 간음, 근친상간 등 다양한 범죄가 고발됐고 비참하게 죽었다. 4. 1032년에 즉위한 베네딕토 9위는 당시 11세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강력한 집안에서 힘과 재산을 활용해 즉위 시켰다. 베네딕토는 이런 저런 범죄를 저질렀다는 기록도 많지만 재위 12년 간 세상은 평화로웠다. 정치적 이유로 쫓겨났다가 군대를 이끌고 교황자리를 다시 찾았다. 결혼할 때가 되자 자신의 대부에게 거액을 받고 교황자리를 팔았다가 나중에 다시 빼았아, 한 사람이 세 번 교황에 즉위하는 기록을 세웠다. 5. 1378년 즉위한 교황 우르바노 6세는 가혹하고 독선적인 성격으로 추기경들을 하도 고문하고 처형해서 결국 추기경들이 아비뇽에 대립교황을 세우며 서방교회가 40년 간 분열되게 된다. 6. 1492년 즉위하는 교황 알렉산데르 6세는 스페인 보르지아 가문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교황이 됐고 역사상 가장 타락한 교황으로 꼽힌다. 11년 간 재위하는 동안에도 여러 애첩이 있었고 사생아를 뒀고 여러 자녀를 추기경이나 공작으로 임명했다. 다양한 경쟁자 살해를 기획했고 교회 재산을 탕진했다. 7. 1513년에 즉위한 교황 레오 10세는 사치에 집중하다 면벌부(면죄부)를 팔았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촉발시켰다. 8. 1846년 즉위한 교황 비오 9세는 다른 것 보다도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교황령 땅을 모두 잃었다. 사실 앞에 교황들이 겪고 행했던 파란만장에 비하면 20/21세기 교황들이나 선출과정은 너무 평화로운 편…

나이가 많아서 대선 이후 계속 정치할 것도 아니었고 그냥 의전 제대로 누려보고 내란 수사를 피해보려고 그런…

나이가 많아서 대선 이후 계속 정치할 것도 아니었고 그냥 의전 제대로 누려보고 내란 수사를 피해보려고 그런 건데 이제 이재명을 밀어내고 쉽게 당선될 방법도 없어진 상황이라 어떻게든 빠져나가고 싶음. 근데 쉴 수 없는 건 이 사람도 국힘처럼 누군가가 자꾸 해야한다고 밀고 있는 거임.

교황명 (빈도) 이탈리아어 발음 라틴어 발음 어원·유래 요한 (John) (23명) 조바니 이오안네스 히브…

교황명 (빈도) 이탈리아어 발음 라틴어 발음 어원·유래 요한 (John) (23명) 조바니 이오안네스 히브리어 יוחנן (Yohanan), “야훼는 은혜롭다” 그레고리오 (Gregory) (16명) 그레고리오 그레고리우스 그리스어 γρηγόριος (grēgorios), “경계하는” 베네딕토 (Benedict) (15명) 베네뎃토 베네딕투스 라틴어 bene “좋게” + dictus “말해진”, “축복받은” 클레멘스 (Clement) (14명) 클레멘테 클레멘스 라틴어 clemens “자비로운, 온화한” 레오 (Leo) (14명) 레오네 레오 라틴어 leo “사자” 인노첸시오 (Innocent) (13명) 이노첸초 이노첸티우스 라틴어 innocens “죄 없고 순수한” 비오 (Pius) (12명) 피오 피우스 라틴어 pius “경건한, 의무에 충실한” 스테파노 (Stephen) (9명) 스테파노 스테파누스 그리스어 στέφανος (stephanos), “관(화환), 왕관” 보니파시오 (Boniface) (8명) 보니파초 보니파티우스 라틴어 bonus “좋은” + facere “행하다”, “선행자” 우르바노 (Urban) (8명) 우르바노 우르바누스 라틴어 urbanus “도시의, 세련된” 알렉산데르 (Alexander) (8명) 알레산드로 알렉산데르 그리스어 ἀλέξω “보호하다” + ἀνήρ “사람”, “수호자” 바오로 (Paul) (6명) 파올로 파울루스 라틴어 Paulus “작은, 겸손한” 하드리아노 (Adrian) (6명) 아드리아노 하드리아누스 라틴어 Hadrianus “하드리아(도시) 출신”

빌 게이츠가 목요일, 자신의 게이츠 재단이 원래 폐쇄 계획을 수십 년 앞당겨, 2045년까지 모든 자산을 필…

빌 게이츠가 목요일, 자신의 게이츠 재단이 원래 폐쇄 계획을 수십 년 앞당겨, 2045년까지 모든 자산을 필요한 곳에 분배/사용하고 문을 닫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남은 재산의 거의 전부를 기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거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간 미국 초기 억만장자들의 전통을 되살리려는 빌 게이츠. 워렌 버핏에게 막대한 기부를 하도록 설득한 적도 있다. 사회환원을 약속한 부자들은 더 있다. 1. 저커버그 부부가 장기적으로 페북 주식 소유분 99%를 기부하기로 약속. 2. 버진 그룹의 리처드 브랜슨 부부도 재산 절반 기부 약속. 3. 이베이 창업가 피에르 오미디아도 재산 대부분 기부 약속. 4. 마이클 블룸버그도 거의 전재산 기부 약속. 5. DFS면세점 창업자 척 피니도 비밀리에 전재산을 각종 대학교들 뿐 아니라 고국 아일랜드에 분쟁을 줄이는데 사용. 6. 아마존 창업자 부인 매켄지 스콧 역시 이미 절반을 기부한 상태고 나머지도 기부 약속. 7. 제프 베이조스도 거의 전재산 기부 약속. 과거로 거슬러 올러가면 더 있다. 앤드류 카네기 (1835–1919) 철강업으로 일세를 풍미한 뒤 생전 ‘카네기 재단’을 통해 도서관·교육·평화 사업에 약 3억5천만 달러를 기부했고, 사망 시 잔여 재산도 전액 사회환원했다. 존 D. 록펠러 (1839–1937) 스탠다드 오일 창업주로 생전에 약 5억 달러를 의료·교육·과학 연구에 기부했으며, 사후 대부분의 유산을 록펠러 재단·유니언 칼리지 등에 배분했다. 조지 이스트먼 (1854–1932) 코닥 설립자. 생전 치과·도서관·의료 연구 기금으로 1억 달러 이상을 쾌척했고, 사망 당시 남은 재산 전부를 ‘이스트먼 재단’에 남겼다. 로체스터 대학교와 MIT에 기부됐다. 레일랜드 스탠퍼드 (1824–1893) 철도사업으로 부를 쌓은 뒤 사망 시 약 5천만 달러를 할애해 스탠퍼드 대학교를 설립, 유산 전부를 교육기관에 환원했다. 조지 피바디 (1795–1869) 금융·상업으로 거부가 된 후 피바디 음악원, 조지 피바디 도서관 등을 설립하고 사망 때 약 200만 달러를 ‘피바디 교육기금’ 등 박물관·문화·교육 사업에 기탁했다. —- 한국인 중에는, 유한양행으로 유명한 유일한 박사(1895–1971). 전재산을 기부. 삼영그룹을 세운 관정 이종환(1924-2023). 약 1조7천억을 학교/재단/도서관 등으로 사회환원. 좀 무리한 사회환원으로 회사가 힘들어졌다는 평이 있을 정도. 카이스트에 766억원을 기부한 이수영(1936-) 광원산업 회장. 카카오 김범수(1966-) 회장이 재산 절반 기부하겠다고 선언. 먼저 5000억원으로 설립한 재단을 통해 1000억원 이상 기부한 것으로 보임. 배달의민족 김봉진(1976-) 우아한형제들 의장도 재산 절반 기부 약속. —- 일론 머스크도 거의 전재산을 기부하기로 약속했으나 아직까지 1%도 기부하지 않았고 평소 자선재단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하는 편이라…. …. 과연… —- 한 가지를 이루면 그 다음 걸 꼭 가져야만 하는 패턴에 항복하면 수천억을 벌어도 만족 못한다. 더 못 벌어서 불행해 한다. 어느 시점에는 자신의 욕망과 씀씀이를 다스려야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부처님이 되라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보유재산과 수입보다 아래에 붙잡아 둘 수 있으면 된다. 더 절제할 수 있으면 이제 성공을 향해 질주했던 그 에너지를 좋은 곳에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풍족한 삶에, 마음까지 풍족해지기 시작한다.

1994년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사실 원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다. 소설에서는 좀 더 심하게 우연과 놀라운…

1994년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사실 원작 소설을 각색한 영화다. 소설에서는 좀 더 심하게 우연과 놀라운 능력들이 나와서 현실감이 더 떨어지는 편이다. 소설에서는 프로 미식축구 선수도 하고, 프로레슬러도 되고, 나사 우주인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대통령들이랑 훨씬 더 자주 마주치고, 일부러 더 과거 마크 트웨인 스타일이다. 소설에는 없지만 영화에서 포함된 숨겨진 서브플롯이 있다. 제니와 재회할 때 제니가 신문기사들 수집한 걸 보여주는데 거기에 포레스트 검프에 대한 수사가 그의 고향에서 계속되고있고, 동네 사람들이 검프에 대해 부정적인 발언을 하는 게 보도된다. 타이밍을 봤을 때 포레스트가 달리기 시작했을 즈음의 문제였던 것 같다. 큰 기업 창업자니까 아마도… 회사 자금 문제…? 횡…령…? SEC의 수사..? …. 그래서 막 달려? 좀 너무 멀리 나갔나 싶지만 실제로 인터넷에 있는 가설이다. 검프가 정류장에서 모르는 사람들을 붙들고 자꾸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곧 있을 재판에 대비해 자기 버전의 이야기를 퍼뜨리기 위한 거라는… 사실 그렇게 보면 이상한 건 더 있다. 1975년 애플 주식 이야기가 나오는데 애플은 76년에 창업됐고 80년에 상장됐다. 이거 뭔가 심한 사기를 쳤거나 사기를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야기 장면과 정류장 이후 현실 장면을 구분해서 보자면 부자라고 말은 하지만 현실에서 실제로 돈을 쓰는 장면은 없다. 정류장 사람에게 자신의 신분을 확인시켜주기 위해 잡지를 꺼낸다.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너무 노력하고 있다. 하는 일은 잔디깎기였다. 신발도 낡은 신발이다. 댄 중위와 결혼식 때 엄청 오랜만에 본다는 건 뭔가 둘 사이에 일이 있었다는 의미일 수 있다. 투자는 댄이 책임지고 있었으니… 그리고 제니는 그걸 알고 있었다. 뉴스 기사를 수집해놨으니. 그래도 재회했다는 건 불치병 외에도 뭔가 검프가 저질러놓은 실수를 바로잡아주려 했던 게 아닐까. 변호사도 사서 붙여주고. 등등. 이런 가설은 로버트 저메키스 영화에는 항상 붙는다. 왜냐하면 음흉한 감독이기 때문이다. https://www.facebook.com/unattached/posts/pfbid02sSXmzmsiajuxT8qs3Uwsa1vQugqa3fL8q7UVanUGsgZSG9pMD8BwqFR11aZ2CDRUl

우린 헌재, 대법원, 검찰, 육사처럼 모든 권한을 집중해 갖고 있어서 견제가 안되는 기관들의 폐해를 지난 몇…

우린 헌재, 대법원, 검찰, 육사처럼 모든 권한을 집중해 갖고 있어서 견제가 안되는 기관들의 폐해를 지난 몇년간 농축해서 경험했다. 우리도 슬슬 모든 권한의 분산화라는 강박을 키울 때가 된 게 아닌지.

수사권과 일부 기소권도 공수처로 나눠놓기만 했는데도 벌써 규모에 비해 엄청난 비중감의 견제가 되지않는가. 심지어 윤석열이 임명했는데도.

한국사회 자체가 아직도 사법부를 포함한 관료 중심 체제로 돌아가고 있고 그들의 기본 세팅은 국힘이 여당이고…

한국사회 자체가 아직도 사법부를 포함한 관료 중심 체제로 돌아가고 있고 그들의 기본 세팅은 국힘이 여당이고 민주당이 야당이다. 아무리 개혁적인 리더가 등장해도 이 체제를 장악하고 국정을 운영하려면 사람을 대부분 우리 사람으로 교체하던가 해야하는데 그럴만한 인재풀이 솔직히 없다. 현실에서는 항상 우리가 그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국민의정부 출범 전 김대중은 구여권 인사들, 영남인사들, 군사정부에 부역했던 사람들까지 전부 긁어모았다. 사실 노무현도 그렇게 해서 영입돼 들어간, 원래 김영삼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대한민국의 체계 교체는 커녕 국민의당으로 호남 기득권이 떨어져나가며 민주당을 채울 자기 사람들도 없었던 문재인도 인적 물갈이는 시도도 못했고 그나마 당이나 국정이나 있는 사람들과 조직을 잘 다뤄 일 시킨 편이었다. 인적 풀은 처참했고 인사 자체에서 패착이 았다. 노무현 정부처럼 관료들에게, 특히 기재부에 휘둘렸다. 이번 이재명 정부는 할일이 정말 많은데, 그냥 있는 사람들 데리고 잘 해보기에는 있는 사람들이 조희대 같은 사람들이다. 대법원 판사 12석을 100석으로 늘리는 좋은 방안이 있지만 솔직히 그 88명은 어디서 찾을지도 막막하다. 다음은 검찰 개혁이고 수백 수천의 개념있는 법조인들이 필요한데, 그냥 어디서 뚝딱 떨어지지 않는다. 솔직히 어떤 해결방법이 있는지 모르겠어서 고민만 하고 있다가 이재명 후보의 중도보수 선언과 권오을 등의 영입을 보고 DJ 스타일 해결책을 선택했음을 알았다. 현실적인 방법이고, 성남시, 경기도 행정을 보면 알 수 있듯 하나 하나 챙겨가며 관리하는 이재명 후보 스타일에는 그게 맞다. 대법원의 쿠데타 때문에 잠시 주춤했지만 다시 진행될 이재명 후보의 캠프 확장이 기대된다. 부산경남 탈환도 기대된다. 사실 이번 김문수-한덕수 갈등에 김문수가 끝까지 버텨준다면 여럿에게 저 진영을 탈출할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김문수의 무운을 빈다.

재미있긴 한데 우린 이거 2002년에 후단협이랑 이미 다 똑같은 순서로 겪어 봐서.. 1. 노무현 민주당…

재미있긴 한데 우린 이거 2002년에 후단협이랑 이미 다 똑같은 순서로 겪어 봐서.. 1. 노무현 민주당 대선후보로 당선 2. 새 후보를 경계하는 민주당 꼰대들이 정몽준이 지지율 더 높으니 단일화하자며 후보 흔듬. 3. 당시 악역이던 김민석 의원이 민주당 탈당해서 정몽준 캠프로 감. 4. 후보단일화협의회 후단협이 생기고 내부에서 노무현 압박. 5. 결국 노무현의 승부수로 노무현으로 단일화. 결과: 정몽준은 마지막 순간에 배신. 단일화 무효라고 주장. 오히려 이게 노무현측 결집을 일으켜 간신히 승리. 후단협은 해체되고 상당수가 한나라당으로 이동. 김민석 의원 사실상 몇년 전까지 정계은퇴. 지금 김문수 후보로 당선됐고(1), 흔들고 있는 중(2). 한덕수는 당이없지만 두권이 거기 대리인처럼 일하고 있는 상황(3). 당에서도 상당수가 전당대회하자며 압박(4). 근데 지금 국힘은 (5)의 결과가 어떻게 되건 현실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저러고 있다는 게… …. 우리 때는 감동의 드라마였고 그렇게 해서 집권을 했는데 여긴 희극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