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은 부패한다. 그래서 모든 권력은 감시가 필요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감시를 받지 않는 권력이 있는데,…

권력은 부패한다. 그래서 모든 권력은 감시가 필요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감시를 받지 않는 권력이 있는데, 바로 유권자의 권력이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탱크로 무너지지 않는다. 오늘날의 민주주의는 선거와 유튜브, 뉴스와 댓글을 통해, 바로 유권자의 손에 의해 서서히 고사한다. 정치는 혐오와 분열을 동력 삼고, 언론은 거짓과 선동을 흥행 코드로 삼으며, 자본은 모든 걸 왜곡한다. 결국 시민들은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게 되고, 그 결과가 트럼프, 보우소나루, 윤석열 같은 인물들이다. 건강한 민주주의를 가진 것 같은 나라에서도 가끔 이런 극우세력이 힘을 얻는 건 단순히 유권자의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저런 막강한 권력의 연합체가 주도하는 방향으로 끌려가게 되기 때문이다.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 필요한 건 단순한 시민운동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를 구조적으로 방어하는 장치다. 이를 위해 참고할 수 있는 개념이 바로 '방어적 민주주의(defensive democracy)'다. 이 개념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세력에게 민주적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 원칙을 뜻한다. 실제로 독일은 이런 원칙을 헌법에 명시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다시는 나치 같은 세력이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지 못하게 하기 위해, 기본법(Grundgesetz) 속에 강력한 민주주의 수호 조항들을 포함시켰다. 예를 들어 극단주의 정당이나 단체는 활동 자체가 금지되고 해산될 수 있다.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개인이나 세력은 선출되었더라도 권리가 제한된다. 이를 담당하는 연방헌법수호청(BfV)은 정보기관이면서도 민주주의 파괴 세력을 감시하고 법적으로 대응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 독일은 이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면서도,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시도에는 단호히 선을 긋는다. 근데 나치 같은 세력이 정권을 잡으면 안 되는 나라가 독일 뿐인가? 전세계가 필요한 조항이다. 한국에도 헌법 제8조 4항 위헌정당 해산이 이런 방어적 민주주의 제도에 해당되나, 부족하다. 이보다 한 단계 진화된 형태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사법기관이나 선관위가 정치적 충돌에 따라 흔들리는 구조로는 충분하지 않다. 혐오와 거짓, 반민주적 선동을 독립적으로 조사하고 징계할 수 있는 민주주의 방어위원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 기구는 정치인, 언론인, 판사, 유튜버, 일반 시민 누구에게든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훼손한 발언과 행동에 대해 경고와 제재, 기소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 사법체계와는 분리된, 민주주의 그 자체만을 지키는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설계 원칙은 이 조직이 정권에 따라 흔들리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고 당연히 정권이 바뀔 수 있다. 그래서 임기를 없애야 한다. 민주주의와 인권, 평등의 가치를 실제로 이해하고 실천해온 인물들이 처음 이 위원회를 설계하고 주도하며, 그 철학과 기준을 그대로 이어갈 후임을 길러내는 방식으로 운영돼야 한다. 이는 인사권이 있는 대통령이나 국회 다수파가 위원회를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고, 반격이 불가능한 체계가 핵심이다. 동시에 이 조직의 내부가 부패하거나 경직되지 않도록 막기 위한 장치들도 함께 설계돼야 한다. 구성원 개개인의 가치 변화나 능력 저하를 감시하고 교체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 '헌신검증위원회'가 주기적으로 각 구성원의 활동과 태도를 점검한다. 일정 연령 이상 또는 일정 주기마다 가치 실천 능력과 판단 능력에 대한 평가도 이뤄진다. 모든 주요 결정은 이해관계자 배제 원칙의 이중심사제로 운영되며, 조직 외부의 이념적으로 호환 가능한 독립 감시기구가 정기 감사를 수행한다. 또한 각 구성원은 후계자 양성과 조직 철학 전수를 위한 심층 토론과 교육을 일정 비율 의무화하고, 그 과정도 기록되고 평가된다. 이 모든 장치는 조직의 철학과 목적이 시대를 넘어 유지되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설계다.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건 또 하나의 위원회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혐오와 거짓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느끼는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내는 문화적 기반이다. 시간이 지나면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 더 이상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상식처럼 작동하는 사회. 그걸 위한 구조를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저절로 굴러가지 않는다. 지키지 않으면 무너진다. 이제는 그것을 지킬 방법을 제도화할 때다. 우리가 제도화와 운용에 성공하면 전세계가 따라오게 되어있다. 대부분 아직 자신들의 트럼프들을 퇴출시키지 못한 상태기 때문에 먼저 퇴출에 성공한 한국이 길을 보여주길 기다리고 있다. 민주주의 방어위원회, 혹은 민주주의 수호청 신설을 제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