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알렉산더 대왕 때—사실 당시 아테네 같은 민주정 폴리스 사람들 입장에선, 같은 그리스계 언어를 쓰더…
그리스는 알렉산더 대왕 때—사실 당시 아테네 같은 민주정 폴리스 사람들 입장에선, 같은 그리스계 언어를 쓰더라도 북쪽 마케도니아 왕국 출신인 알렉산더는 야만인이었지만—그래도 어쨌든 "자기들"이 "세계를 정복했다"는 의식은 남았을 것이다. 그런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서쪽에서 떠오른 로마가 자신들까지 정복해버린다. 그렇게 해서 그리스인들은 이후 거의 1500년 동안 로마 제국의 시민으로 살게 된다. 심지어 제국의 공용어는 천년 넘게 그리스어였다. 복잡하다. 그리고 15세기,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며 로마 제국이 최종적으로 무너지자 그리스인들은 곧바로 오스만 제국의 신민이 된다. 지금 우리가 아는 튀르키예/터키 제국의 시작이다. 그런데 아나톨리아, 즉 지금의 튀르키예 땅에 튀르크계 유목민이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건 11세기부터다. 그리스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은 아나톨리아까지 아우르던 고대 그리스계 로마인이고 그 지역의 진짜 토박이인데, 불과 몇 세기 전까지만 해도 중앙아시아에 있던 이방인들이 들어와 자신들을 정복하고 주인이 된 셈이다. 그 후 20세기가 될 때까지 독립하지 못한 채, 긴 시간 동안 오스만 제국 체제 속에서 점점 튀르키예 사회와 뒤섞여 살게 된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독립전쟁을 통해 독립한 뒤, 1923년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천년 넘게 한 땅에서 살아온 서로의 주민들을 강제로 교환하며 민족국가를 재정의하는 극단적인 작업을 단행했다. 그리스계 무슬림은 튀르키예로, 튀르키예계 정교도는 그리스로. 이미 섞인 유전자를 가를 수가 없으니 종교로 구분했다. 천년 간 한 나라로 지내던 걸 두 민족으로 강제로 갈라놨으니, 튀르크계가 11세기에야 그 지역으로 이주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유전적으로 굉장히 가깝다. 사실 오늘날 튀르키예인들은 중앙아시아계 유전자를 15% 정도 밖에 갖고 있지 않다. 사실상 그리스인들이다. 참고로 튀르크는 혈통보다 문화의 전파력이 막강하다. 튀르크계가 중앙아시아, 중동, 동유럽, 인도를 다 정복해 돌궐제국, 셀주크제국, 호라즘제국, 오스만 제국, 무굴 제국, 킵차크한국 등을 세웠다. 소수가 다수 현지인들을 지배하며 일부 동화되지만 그들이 세운 나라들의 정체성은 항상 튀르크였다. 절대 다수 현지인이 소수 지배자의 민족 정체성에 동화된다. 정말 강한 문화다. 그래서 튀르키예,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기르기스스탄, 아제르바이잔은 지금도 언어가 어느 정도 소통이 된다. 유전적으로 다양하지만 다 튀르크계다. 튀르키예 대통령 에르도안이 자꾸 이 나라들 다시 연합해 튀르크 제국 만들자고 하고 있는 중이다. 지금 그리스 땅에 사는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중앙아시아 튀르크 유전자를 1-5% 정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정도 차이다. 과장을 좀 섞으면 지금 한국인들을 고구려계, 백제계, 신라계로 나눈 다음, 출신 성분에 따라 강제로 분리해 다시 삼국시대를 시작한 꼴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진심으로 서로의 땅을 역사적으로 전통적으로 자신들의 땅이라고 여긴다. 36년간 결합했다가 떨어진 한국과 일본보다 훨씬 더 심하게 서로의 영토에 집착한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찬란하고 위대한 고대 그리스와 오늘날의 현대 그리스는 같은 뿌리를 가진 사람들이지만, 그 사이에는 완전히 다른 문명과 정체성의 궤적이 있다. 완전한 유전적 단절은 없었지만, 단순한 연속도 아니다. 이집트도 마찬가지다. 피라미드를 쌓고 파라오를 섬기던 고대 이집트인은 자신들이 신과 인간 사이의 백성이라 믿었다. 나일강의 질서 속에서 신정체제를 이룬 강력한 자부심은 수천 년 이어졌지만, 기원전부터 이민족의 지배가 이어지면서 점점 무너진다.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오스만 튀르크—이름은 계속 바뀌지만 이집트인은 언제나 지배당하는 쪽이었다. 찬란한 역사를 가진 고대 이집트가 끝나고 기원전 525년에 페르시아 제국에 복속 당했다. 2백년 뒤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당했다. 이때 시작된 그리스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겉으론 파라오처럼 군림했지만 실제로는 그리스어를 쓰며 이집트를 통치했다. 클레오파트라가 이 그리스계 이집트 왕조의 마지막 왕이다. 로마는 이집트를 곡물 창고로 여기며 속주로 삼았다. 이집트인들은 스스로의 땅에서 권력을 잃고, 행정과 언어와 종교에서 점점 변방이 된다. 4세기부터 기독교가 들어와 콥트교가 확산되었고, 7세기엔 무슬림 아랍 제국이 침입해 이집트는 이슬람 세계의 일부가 된다. 아랍어가 언어가 되고, 이슬람이 다수가 되면서 이집트인의 정체성은 복잡해진다. 고대 이집트인의 후손이라는 민족적 자각, 아랍 세계의 구성원이라는 언어·문화적 소속감, 무슬림으로서의 종교적 정체성까지 겹쳐졌다. 근대에 들어 프랑스, 영국의 식민 통치를 거치면서 이집트는 다시금 "우리는 누구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고대 문명의 후손이자 이슬람 문명의 일원이고, 또 독립된 근대 민족국가를 꿈꾸는 존재로서 이집트인은 자신만의 정체성을 다시 구성한다. 나세르 시대를 거치며 민족주의와 아랍주의가 엇갈렸고, 지금도 이집트인은 세 가지 자아를 동시에 갖고 산다. 고대 이집트의 후손, 아랍 무슬림, 그리고 근대 민족국가의 시민. 겉보기엔 하나지만, 속엔 오래된 문명과 제국과 종교가 겹겹이 살아 있는 복잡한 곳. 이게 유럽의 정신적 뿌리 그리스와 이집트다. 주로 한반도에서 우리끼리 살아온 우리가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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