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이 끝난 뒤 남부 정치인들이 선거를 통해 다시 정권을 잡고 노예제를 부활시킬 것을 우려한 미국 의회는…

남북전쟁이 끝난 뒤 남부 정치인들이 선거를 통해 다시 정권을 잡고 노예제를 부활시킬 것을 우려한 미국 의회는 수정헌법 14조에 공직자로서 헌법을 준수할 것을 선서한 자가 반란에 참여했을 경우 공직을 금한다는 3항을 넣었으나, 한 번도 적용된 적이 없었다. 만일의 경우를 위해 만든 법이었기 때문에.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하고 쿠데타를 시도하기 전까지는.

2021년 1월 6일 쿠데타가 트럼프가 사주한 일이라는 건 대부분 소송 판결에서 사실로 인정되고 있는데, 문제는 과연 이 법 규정을 들어 트럼프의 2024년 재선 도전을 무산시킬 수 있느냐였다. 콜로라도, 메인, 일리노이 등 주가 실제로 이 규정을 들어 트럼프를 공화당 대선 경선 투표지에서 지웠다. 대부분 민주당 강세 주들이라 실제로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진 못하지만, 출마자격이 없다는 여론이 형성되면 트럼프 재선 가도에 큰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오늘 연방대법원의 결정은 주정부가 연방선거 후보자를 투표지에서 내리는 건 불법이라는 거다. 각 주가 결정할 일이 아니라는 말인데, 그럼 연방 차원에서 이 규정을 어떻게 집행할 것인지, 그리고 실제 트럼프가 반란을 일으킨 사실은 인정하는 것인지, 출마 자격 문제 등 중요한 부분들은 빼고 그냥 트럼프의 재선에 주정부들이 끼어들 수 없게만 해주는 결정이었다.

주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대법원 판사들이 전원 동의했다. 근데 각 주가 관리하는 선거인단표의 행사를 거부함으로서 반역자의 선거 승리를 막는 합법적인 방법이 남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법원의 판결은 주정부들은 연방 선거의 후보 당선을 막는 어떤 행위도 할 수 없다는 굉장히 범위가 넓은 판결이었다. 이 부분에서는 트럼프가 임명한 판사들의 활약이 컸고 진보 성향 판사들3인과 보수 판사 1인은 투표지 후보 제명 가능 여부에 대해서만 판결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지만 보수가 6대 3으로 우세한 구성이기 때문에 5대 4로 헌법 집행을 위해서라 하더라도 연방의회가 결의하지 않는 한 주정부는 연방선거에 개입할 수 없다는 강한 결론을 내렸다.

정치적으로 부담스러운 부분은 다 비켜갔고, 원래 다수의견은 판사 한 명이 대표로 판결문을 쓰고 자기 이름을 저자로 올리는데 이번 판결에는 아무도 저자로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2000년 대선을 뒤집고 W 부시를 대통령으로 임명했던 연방대법원의 판결도 무기명 판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