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와 중세 봉건 질서를 극화한 [왕좌의 게임]은 장르도, 배경도, 형식도 다르지만 근본 구조는 놀라울…
[대부]와 중세 봉건 질서를 극화한 [왕좌의 게임]은 장르도, 배경도, 형식도 다르지만 근본 구조는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두 작품은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단순한 윤리극을 넘어, 권력과 폭력의 구조 속에서 원칙, 타협, 오만이 어떻게 인간과 가족, 그리고 세대를 파멸로 이끄는지를 치밀하게 해부한다. [대부]는 표면적으로는 마피아 가문의 흥망성쇠를 다룬 것 같지만, 실제로는 3대에 걸친 원칙과 타협, 그리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업보를 정밀하게 그린 서사다. [왕좌의 게임] 역시 처음에는 주요 인물들이 예측 불가능하게 무작위로 죽어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동일한 패턴이 반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을 고수하는 자는 체제에 의해 도태되고, 권력을 쥔 자는 타협의 대가를 자손에게 떠넘기며, 그 후손들은 결국 선대의 선택이 만든 덫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두 작품은 전혀 다른 시대와 장르를 다루지만, 인간이 권력과 도덕 사이에서 어떤 순환을 반복하는지를 놀라울 만큼 비슷한 궤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점은 ‘정의로운 자의 몰락’이 반복되는 구조다. [왕좌의 게임]의 네드 스타크는 진실과 정의를 믿고 끝까지 도덕적 원칙을 지키려 하지만, 정치의 룰을 거부한 대가로 단두대에 오른다. [대부]의 안토니오 안돌리니(비토 코를레오네의 아버지) 역시 폭력 앞에 무릎 꿇지 않고 자존심을 지키다 가족을 몰살당한다. 두 인물의 선택은 각각 개인의 존엄을 수호한 행위였지만, 체제는 그런 선택을 철저히 응징한다. ‘올바름’은 도덕적으로 숭고하지만, 부패한 세계에서 그것은 생존 전략이 되지 못한다는 냉혹한 진실이 드러난다. 왕좌의 게임에서 말하는 “이기거나 죽는다”는 말은 곧 이상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구조적 선언이다. 이에 반해 타협과 계산을 통해 살아남은 자들의 서사는 그 자체로 비극이다. 비토 코를레오네와 타이윈 라니스터는 폭력과 음모를 수단화하며 권력을 세습 가능한 유산으로 만든다. 그들은 “가족을 위해”라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그 가족은 결국 권력 구조가 만든 부패를 고스란히 물려받는다. 아들은 아버지의 범죄를 대신 속죄하고, 딸은 불안정한 가문을 지탱하기 위해 인간성을 포기한다. 그들이 구축한 ‘제국’은 겉으로는 번영을 누리지만, 내면은 이미 썩어 들어가고 있다. 왕좌의 게임의 냉혹한 룰은 여기서도 변하지 않는다. 이들은 살아남지만, 권력의 대가를 고스란히 지불하며 이들이 최고 가치로 여겼던 가족이 파괴되고 업보는 후대로 넘어간다. 세 번째 부류는 이 두 길을 모두 걷고자 했던 이들이다. 마이클 코를레오네와 롭 스타크는 원칙을 완전히 버리지도, 현실을 완전히 무시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애초에 체제 자체가 타락을 전제로 작동하는 만큼, “절반의 타협”은 양쪽의 파멸만 불러온다. 마이클은 가문의 죄업을 청산하겠다며 폭력의 수렁을 더 깊게 파고들고 눈 앞에서 사랑하는 딸과 가족을 잃으며 외로운 최후를 맞이한다. 롭은 사랑과 명예를 동시에 지키려다 정치적 신뢰를 잃고 무참히 살해된다. “두 세계의 균형”이라는 이상은 결국 양쪽에서 모두 배척당하는 환상일 뿐임을 두 작품은 보여준다. 더불어 롭 스타크의 선택에 대한 대가는 다시 한번 후세, 아내의 뱃속의 아이까지 함께 치른다. 왕좌의 게임의 규칙은 변하지 않는다.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쥐려는 자는 결국 가장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러한 구조는 단지 픽션 속 비극이 아니다. 폭력과 불평등을 토대로 작동하는 체제 속에서는 선택 자체가 곧 타락이다. 원칙을 지키면 제거되고, 타협하면 부패하고, 둘을 아우르려 하면 체제에 삼켜진다. [대부]에서 자본주의는 인간의 영혼을 거래 가능한 화폐로 만들고, [왕좌의 게임]에서 봉건 질서는 명예마저 정치의 도구로 삼는다. 결국 인간이 체제 속에서 취할 수 있는 모든 길은 파멸이라는 공통된 목적지로 수렴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파멸이 개인의 실수 때문이 아니라 구조 자체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개인의 윤리는 체제의 논리 앞에서 무력해지고, 심지어 도덕조차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장식으로 변한다.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윈스턴 스미스는 진실과 자유를 지키려 하지만 전체주의 체제는 그의 사상을 끝내 굴복시킨다. 카프카의 [소송]에서 요제프 K는 죄가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체제의 기계 속에서 파멸한다. 이처럼 선한 개인이 구조를 이기지 못한다는 비극적 패턴은 20세기 문학의 핵심 구조이자, [대부]와 [왕좌의 게임]을 관통하는 서사적 운명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개인의 도덕성이나 의지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 즉 “선한 개인도 악한 구조 안에서는 패배한다”는 인식이야말로 20세기 후반 이후 대중서사의 핵심 메시지가 되었고, [대부]와 [왕좌의 게임]은 그 메시지를 각자의 시대에 맞게 구현한 작품들이다. 그 안에서 인간은 정의로워도 죽고, 타협해도 망하고, 오만해도 무너진다. 남는 것은 구조 그 자체, 그리고 그 구조가 반복적으로 생산하는 비극뿐이다. 그것은 인간의 윤리가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그 취약함을 먹고 자라는 체제가 얼마나 끈질긴지를 보여주는 냉정한 문화적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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