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공화정은 기원전 509년부터 기원전 27년까지, 로마 제국은 기원전 27년부터 1453년까지 이어졌다….
로마 공화정은 기원전 509년부터 기원전 27년까지, 로마 제국은 기원전 27년부터 1453년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1453년이면 중세 말기다. 세종대왕이 막 승하했을 때다. 그럼 로마 제국이 중세 국가였단 얘기인가? 2천 년 넘게 지속된? 보통은 서기 476년 서로마가 망하고 로마 제국도 끝났다고 배운다. 우리 쪽에서는 고구려가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으로 최대 전성기를 누릴 때다. 그때부터 유럽은 중세에 들어가고, 르네상스가 오기 전까지 암흑기에 빠졌다고들 한다. 그런데 동쪽에선 로마 제국이 멀쩡히 살아 있었다. 수도는 콘스탄티노플, 지금의 이스탄불. 황제도 있었고, 행정도 돌아갔고, 정교회라는 국교도 있었다. 작은 나라도 아니고 진짜 자주 로마제국 전성기 시절도 넘볼만한 세력으로 서로마의 멸망 이후에도 천 년 가까이 이어진 이 나라가 우리가 말하는 비잔틴 제국이다. 그럼 로마 제국은 광개토대왕 때 망한 나라인가, 세종대왕 때 망한 나라인가? 천년의 간극이 너무 크다. 그런데 왜 비잔틴이란 다른 이름으로 불릴까? 당시 그 지역 공용어는 그리스어였고, 그 제국 사람들은 자기 나라를 Βασιλεία τῶν Ῥωμαίων 바사일레아 톤 로메온 '로마 제국'이라 불렀다. 황제도 '로마인의 황제'였다. 당시 그 제국 사람들은 스스로를 로마이 Ῥωμαῖοι 로마 사람이라고 불렀다. 주변 국가에서도 그 나라를 임페리움 로마눔, 로마 제국이라고 불렀다. 스스로 비잔틴제국이나 "동쪽의" 로마제국이라고 부르거나 생각한 적 없다. 그런데 서유럽 역사가들은 이걸 '동로마', '비잔틴' 따로 떼어 부르며 진짜 로마에서 분리된 것처럼 만든다. 말하자면 '로마의 후계자' 타이틀을 서쪽이 차지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기것해야 독일인 나라를 신성로마제국이라고 부르며 제국 놀이를 했던 거고. 로마 제국이 물러가고 그 자리에서 이런 저런 나라를 세우고 있는 게르만족 야만인들인 자신들이 문명을 재건했다고 말하려면 로마는 먼저 망해야 했고, 그러려면 동쪽에 살아 있는 로마는 로마가 아니어야 했다. 1000년 이상 분열되다보니 서유럽 카톨릭 신자들에게는 정교회의 복장과 의식도 생소해보이기 시작했고. 그래서 "남"이 되기로 작정한 거다. 게다가… 이런 "로마의 후계자 유럽"이라는 정체성과 역사 개념이 정립됐을 때 그 땅은 오스만 제국 땅이었다. 서유럽에게는 무서운 무슬림국가. 향신료 먹고 싶은데 인도와의 무역을 가로막고 있어서 유럽이 지구 반대 쪽으로 돌아가다 미 대륙을 발견하게 만든 막강한 제국. 강역도 "비잔틴 제국"과 비슷하거나 더 크고 심지어 콘스탄티노플 점령으로 오스만 황제들이 로마 황제 타이틀도 공식적으로 가져가 버렸다. 자칫 오스만 제국에 역사적 적통 자리를 넘겨줄 수도 있어서 그 땅의 로마 제국 역사를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사실 동쪽의 로마 제국이 영토도 쪼그라들고 망하기 직전이던 1400년대 들어서는 서유럽 국가들이 이 작은 나라 사람들을 로마인이라고 부르지 않고 그리스인이라고 '낮춰'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서유럽의 왕국들이 동쪽의 로마제국과 단절하고 1000년간 서로 모른 척하고 지냈나? 아니다. 심지어 신성로마제국 황제들도 콘스탄티노플의 인가를 원했고 받았다. 십자군 전쟁도 콘스탄티노플이 요청해서 시작됐다. 그냥 정상적인 이웃국가들이었다. 거의 순수하게 역사가들의 장난으로 로마제국이 476년부터 역사서에서 사라졌다. 결국 로마 제국은 476년에 끝난 게 아니라 1453년까지 계속됐다. 언어는 라틴어에서 그리스어로 바뀌고, 종교도 정교회로 발전했고, 행정체계도 조금씩 달라졌지만 핵심은 그대로였다. 법, 황제 중심 통치, 제국의 정체성. 로마가 진화한 거지, 사라진 게 아니다. 심지어 서유럽이 중세 암흑기를 겪는 동안 동쪽에서는 번성하며 로마 제국의 역사와 전통을 고스란히 지켜냈다. 사실 동쪽에 로마 제국이 멀쩡하게 번성하고 있었는데 서쪽이 좀 바보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고 중세 전체를 암흑기라고 부르는 건 발해가 멀쩡히 있는데 그 시절을 통일신라 시대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다. 이제 남북국 시대라고 부른다. 굳이 '동로마'니 '비잔틴'이니 이름을 바꿔 부를 필요도 없다. 그냥 로마 제국은 중세까지, 거의 1500년 가까이, 공화정부터 시작하면 2000년 넘게 존속했다. 이게 더 단순하고 정확하다. 사진은 116년 "서로마 제국"의 최대 강역 vs 564년 "동로마 제국"의 최대 강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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