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한때 ‘에너지 독립’을 이뤘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셰일오일 붐 덕분이었다. 수압파쇄와 수평시추 기…
미국은 한때 ‘에너지 독립’을 이뤘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셰일오일 붐 덕분이었다. 수압파쇄와 수평시추 기술로 자국 내 원유 생산량을 세계 1위까지 끌어올렸고, 중동 석유에 더는 의존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산업은 처음부터 구조가 허약했다. 셰일 유정은 시추 이후 빠르게 고갈된다. 1~2년만 지나도 생산량이 반토막 나고, 새로운 유정을 계속 뚫지 않으면 유지가 불가능하다. 이 과정에 드는 자본과 장비 비용이 커서 유가가 조금만 떨어져도 바로 적자다. 문제는 정제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셰일오일은 경질유라 정유공장에서 처리하기 까다롭고, 미국의 기존 정유 인프라는 오히려 수입 중질유를 기준으로 설계된 게 많다. 미국이 원유를 수출하면서도 동시에 수입을 계속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셰일 산업은 애초에 내실이 없었다. 2010년대 붐을 일으킨 건 기술이 아니라 돈이었다. 헤지펀드와 사모펀드들이 앞다퉈 투자하면서 셰일 유정이 우후죽순 생겼고, 단기 생산량은 폭발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익은 거의 없었고, 적자를 감추며 확장만 하다가 2020년 유가 폭락과 함께 줄줄이 파산했다. 지금 남은 기업들도 근근이 버티는 수준이다. 생산은 줄었고, 이익이 나더라도 대부분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에 쓰고 있다. 신규 투자 여력은 없다. 이제 셰일은 성장 동력이 아니라 유지가 어려운 고비용 산업으로 바뀌었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전략비축유(SPR)다. 원래 7억 배럴 넘게 비축돼 있던 SPR은 최근 몇 년간 유가와 물가 통제를 위해 방출되면서 절반 가까이 줄어 현재 약 3억7천만 배럴 수준이다. 다시 채우는 데는 막대한 예산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현재로선 정치적 동력도 없다. 결국 위기 상황이 오면 미국은 단기 대응 능력을 상당 부분 잃은 셈이다. 셰일은 비싸고 불안정하고, SPR은 비었고, 수입 석유는 여전히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전환도 생각만큼 빠르지 않다. 태양광과 풍력은 늘고 있지만, 운송 연료나 산업용 열에너지는 대체가 어렵고, 전력 저장·송전 인프라 문제도 남아 있다. 결국 이 모든 요소가 겹치면 미국은 다시 중동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사우디, UAE, 이라크 같은 산유국들과의 관계가 다시 중요해질 수밖에 없고, 미국이 잠시 동안 탈중동을 외칠 수 있었던 건 셰일이라는 거품이 일시적으로 가능하게 만든 착시에 가까웠다. 셰일이 구조와 생태계를 바꾸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면, 미국은 다시 기름줄을 따라 중동으로 회귀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 큰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추월해오는 중국의 압박에 큰 그림보다는 당장 급한 불 끄기에 집중하고 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