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전체 음악 시장에서 힙합/랩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 정도다. 그런데 그 힙합 장르 안에서 다시 아…

미국 전체 음악 시장에서 힙합/랩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30% 정도다. 그런데 그 힙합 장르 안에서 다시 아틀란타 지역 랩이 30%를 차지한다는 건, 한 도시의 단일 장르 시장이 사실상 미국 음악의 10%를 좌우하고 있다는 뜻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랩 신은 철저히 양분돼 있었다. 투팍과 닥터드레가 이끄는 웨스트코스트, 나스와 제이-지, B.I.G. 비기로 대표되는 이스트코스트. 동서가 나뉘어 서로 다른 세계관을 구축했고, 실제로 사람들이 죽는 싸움으로까지 번졌다. 하지만 2000년, 아웃캐스트의 [Stankonia]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 앨범은 힙합이 단순히 ‘거리의 음악’이 아니라 상상력의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증명했다. 아틀란타는 처음부터 힙합의 중심지가 아니었다. 뉴욕에서 출발한 랩 문화는 서부로 이동하며 갱스터리즘을 만나고, 다시 남쪽으로 내려와 복잡한 미국의 인종·계급 현실과 뒤섞였다. 남부는 늘 ‘변방’이었다. 하지만 아웃캐스트, T.I., 릴존, 루다크리스가 연달아 성공하면서 아틀란타는 ‘변방의 사운드’를 ‘주류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 기존의 랩은 분노, 자존심 등의 매너리즘에 머물렀지만, Stankonia는 그 틀을 완전히 벗어났다. 펑크의 폭발적인 리듬, 고스펠의 화음, 전자음의 질감, 시적이고 초현실적인 가사를 한데 뒤섞어 완전히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B.O.B.” 같은 곡은 당시 힙합에서는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속도와 에너지로 폭발했고, “Ms. Jackson”은 랩이 가족과 후회, 용서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며 힙합이 총과 돈 외에도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예술의 언어라는 걸 보여줬다. 투팍의 "Dear Mama" 이후 사라진 감성을 살려냈다. '동부 서부는 니들끼리 싸워라. 우린 음악할거다.' 남부 힙합의 지형은 그 순간부터 완전히 바뀌었다. 그 변화의 본질은 단순히 사운드가 다르다는 게 아니다. 아틀란타 랩은 늘 융합에 능했다. 펑크, 고스펠, 일렉트로닉, 드럼앤베이스, 트랩 비트까지 자유롭게 섞었다. 기존 이스트·웨스트가 서로의 고유 스타일을 지키려 했다면, 아틀란타는 그 틀을 깨고 ‘잡종성’을 무기로 삼았다. 그게 지금 전 세계 힙합 프로덕션의 표준이 됐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산업 구조다. 아틀란타는 할리우드나 월스트리트처럼 집단적 네트워크가 강한 도시다. 클럽, 스튜디오, 라디오, 프로듀서, 패션 디자이너가 촘촘히 연결돼 있다. 신예가 빠르게 데뷔하고 지역 스타가 바로 전국구로 확산되는 구조다. 2000년대 이후 트랩 사운드를 정립한 Zaytoven, Metro Boomin, Mike Will Made-It 같은 프로듀서들이 모두 이 생태계에서 자랐다. 사실 90년대까지 아틀란타는 R&B로 더 유명했다. 베이비페이스의 라페이스 레코드가 아틀란타에 있었고 TLC, 어셔, 토니 브랙스튼, 핑크, 그리고 바로 아웃캐스트를 발굴해냈다. 이미 프로듀서 네트워크는 탄탄했다는 뜻이다. 게다가 2000년대 후반부터 조지아주의 영화산업이 급성장 하며 마블 시리즈 등 상당수가 아틀란타에서 촬영됐다. 뮤직비디오, 광고, 패션, 아트디렉션 산업이 동시에 성장했고 모두 힙합에 중요한 요소들이다. 그리고 아틀란타는 옛날부터 미국 남부의 수도에 가까운 도시였다. 남부에서 플로리다와 텍사스는 자신들만의 문화를 가진 지역이고, 그 외에 남부라고 부르는 광활한 지역에는 사실 아틀란타 외에 대도시라 할만한 도시가 없다. 아틀란타도 도시만 놓고 보면 미국에서 30번째 규모일 뿐이다. 광역권 중에서는 아틀란타 광역권이 6위다. 미국의 대도시 중 흑인 중산층이 경제 주체인 거의 유일한 도시이기도 하다. 아틀란타 흑인들은 차별이 심한 미국, 특히 남부에서 그나마 주류로 산다. 이제 ‘아틀란타 사운드’는 단순한 지역색이 아니라 현대 힙합의 문법이 됐다. 리듬 구조, 드럼의 공간감, 베이스의 배치, 멜로디의 반복 방식 전부가 전 세계 래퍼들의 기본 언어로 쓰인다. 릴 베이비, 퓨처, 21 새비지 같은 세대는 더 이상 ‘남부 래퍼’가 아니라 그 자체로 글로벌 기준이 됐다. 아틀란타 랩에 맞설 수 있는 지역 음악으로는 시카고를 들 수 있지만 규모는 훨씬 작다. 아틀란타가 미국 랩음악의 30%를 차지한다면 시카고가 10% 정도 지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