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사회의 소수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매우 미국적이다. 주로 2001년 9/11 테러…
미국 정부가 사회의 소수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매우 미국적이다. 주로 2001년 9/11 테러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소수집단의 인권운동을 국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견인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먼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이(그러나 미국의 동맹국 사우디 아라비아나 파키스탄 얘기는 절대 하면 안되고) 여성들을 어떻게 억압하는지 홍보하며 여성들도 뭐든 할 수 있고 여성들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가장 좋은 방법은 무려… 군대에 가서 탈레반과 싸우는 것… 실제로 이를 위한 홍보전도 많이 펼쳤다. 군대에 갈만한 10대후반에서 20대 초반을 공략하기 위해 디즈니 등의 도움으로 십대 톱스타들을 동원해서 공익광고를 돌리는 방식으로.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들도 같은 방법으로 공략했다. 위에 말한 공익광고의 메시지가 직접적으로 어떤 그룹이라고는 말하지 않지만 1. 우리는 미국인이다. 우린 미국을 사랑한다. 2. 소수자들도 미국인들이다. 3. 소수자들이 미국을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우리도 소수자를 감싸줘야 한다 라는 메시지를 계속 반복했다. 쉽게 말해 평소에 사회에 대한 불만을 자주 표현하는 문제집단이지만 군대에 가서 미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소수자라면 용인할 수 있다… 는 메시지.
근데 그때는 아직 미국 군대에서 성소수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히면 불명예퇴역 당하고 연금도 모두 빼앗기는 "묻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정책이 살아있던 시절이라 직접 어느 소수자를 말하는 건지는 밝히지 않는다. 해서 성소수자, 여성 등에 모두 적용할 수 있게.
여기서 한 단계 더 미국적으로 가는데, 모든 홍보물이나 내용이 애국심을 강조하는 내용이고, 거기에 호응한 소수자집단들이 대부분 백인들이었다. 여성도 백인 여성이 국가에 헌신하고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받는 모습이 나오고, 성소수자도 마찬가지다. 뉴욕에서 69년에 성소수자 탄압에 앞장서던 경찰에 대한 항의로 시작된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도 그 당시에는 흑인, 라티노, 백인의 비율이 거의 동등하다시피 했지만 2000년대 이후 게이 프라이드 퍼레이드는 약 80-90% 백인이다. 이 모든 "적극적 수용" 정책에서 흑인들은 완전히 빠졌다. "오바마 당선 됐으니까 니들 인권 신장은 이제 됐잖아" 정도로 끝.
심지어 미국의 현안을 반영하기도 했다. 부시나 오바마가 이란 대통령과 불화가 생기면 이란의 성소수자 탄압이 언론에서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게이 퍼레이드에서 이란 대통령 인형을 강간하는 장면을 연출하는 식.
이 정도면 미국 정부가 다양한 종류의 인권운동을 요리하는 방법을 완전히 연마했다고 봐도 되겠다. 갈라치기 & 백인 우대 & 모든 불만은 애국심으로 승화.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