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핵심 인프라를 움직이는 낡은 시스템들

겉으로는 최신 앱과 클라우드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의 핵심 산업과 공공 인프라는 몇십 년 전 기술 위에 올라가 있다. 놀라운 점은, 이 시스템들이 단순히 “남아 있다”가 아니라 “여전히 가장 중요한 부분을 책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세상을 움직이는 낡은 시스템들이다.

가장 유명한 예인 COBOL은 1959년 미국 국방부 프로젝트로 만들어졌다. 금융권의 계정계 시스템은 지금도 이 언어가 심장부를 차지한다. 미국 은행의 예금·대출·이체 기록은 하루에 수십억 건이 처리되는데, 그 안정성을 새로 만드는 건 리스크가 훨씬 크다.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은행권에서도 같은 이유로 COBOL 메인프레임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의료계는 MUMPS(M 이라고도 불린다)라는 더 독특한 언어를 품고 있다. 1960년대 미국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병원 행정을 위해 만든 언어인데, 미국 병원 시장을 지배하는 Epic 같은 시스템이 지금까지도 M을 코어에 두고 있다. 의료 데이터는 즉시성·동시성·안정성이 핵심이라 새로운 언어로 갈아타는 시도가 번번이 미뤄졌다. 이스라엘, 유럽 일부 병원들도 Epic 도입과 함께 이 체계를 유지한다.

정부와 군사 분야에는 Ada가 있다. 1970~80년대 미국 국방부가 항공전자·미사일 제어를 위해 만들어낸 언어로, 방위 산업에서 지금도 핵심 안전 시스템은 Ada 기반으로 돌아간다. 비슷한 계열의 유럽 항공 산업(에어버스 등)도 Ada 코드가 여전히 유지된다.

항공 예약 시스템에는 TPF(Transaction Processing Facility)가 있다. IBM이 1960년대 항공권 예약을 위해 만든 체계인데, Amadeus나 Sabre 같은 글로벌 예약 네트워크가 아직도 이 구조를 버리지 못한다. 초당 수십만 건의 트랜잭션을 처리하기 위해 오랜 기간 최적화된 구조라서 대체 기술이 나오기 어렵다.

통신 분야의 Erlang은 1980년대 초 스웨덴의 에릭슨이 전화국 스위칭을 위해 개발했다. 미국 통신사들도 대규모 메시징과 실시간 서비스에 지금도 이 언어를 사용한다. WhatsApp 같은 현대 서비스도 초기에 Erlang 기반으로 움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제조업과 공장 자동화는 더 오래된 방식을 쓴다. PLC에서 사용하는 Ladder Logic은 1970년대 전기 공학 기반 도식 언어다. 산업용 장비를 교체하는 데 드는 비용과 멈춤 시간이 너무 커서, 미국·유럽 공장 대부분은 지금도 이 방식으로 생산 라인을 돌린다.

대형 유통과 물류 시스템에는 AS/400과 RPG가 있다. IBM이 1988년에 내놓은 플랫폼인데, 미국 소매·물류 회사들이 재고·주문·결제 시스템을 이 코드에 얹어둔 채로 30년 넘게 돌린다. 일본·독일도 AS/400 비중이 높은 편이다.

기상청, 기후 연구소, 해양 모델링은 FORTRAN이 지배한다. 1950년대에 개발된 언어지만, 대규모 수치 해석에서 여전히 가장 빠르다. 미국 NOAA, NASA, 유럽 기상센터(ECMWF)까지 모두 핵심 모델을 FORTRAN으로 유지하고 있다. 코드를 전부 새 언어로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과 리스크가 너무 크다.

결국 낡은 시스템들은 단순히 관성의 산물이 아니다. 오랜 기간 축적된 안정성, 대체 불가능한 성능, 교체 과정의 위험이 서로 얽히면서, 오늘날의 금융·의료·군사·항공·통신·제조·기상 인프라를 여전히 떠받치고 있다. AI 등 최신 기술이 화려한 겉모습을 만드는 동안, 세상의 기초 구조는 여전히 1970년대의 논리와 1960년대의 언어가 책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