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맨의 탄생은 슬픈 현실에서 비롯됐다. 1932년, 제리 시걸의 아버지는 강도가 침입한 자신의 옷가게에서…
수퍼맨의 탄생은 슬픈 현실에서 비롯됐다. 1932년, 제리 시걸의 아버지는 강도가 침입한 자신의 옷가게에서 심장마비로 숨졌다. 총에 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공포와 충격 속에서 무력하게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의 모습은 열네 살 아들에게 깊은 상처로 남았다. 시걸은 이듬해 친구 조 슈스터와 함께, 총알도 뚫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존재를 상상하기 시작했다. 무고한 사람을 지키는 절대적 존재, 수퍼맨의 원형이었다. 1938년, 두 사람은 수퍼맨의 판권을 내셔널 퍼블리케이션즈(현 DC 코믹스)에 단돈 130달러에 넘겼다. 수퍼맨은 이후 미국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떠올랐고, 만화와 전쟁 선전물, 영화, 장난감 등 다양한 형태로 전 세계에 퍼졌다. 하지만 정작 그를 만든 시걸과 슈스터는 저작권 없이 외면당했고, 평생 가난하게 살며 수십 년 동안 권리를 되찾기 위해 싸워야 했다. 1970년대 수퍼맨 실사 영화 제작이 본격화되면서 창작자들의 이름이 다시 주목받았다. 여론이 들끓자 DC는 1975년 두 사람에게 평생 연금과 건강보험을 제공하고, 모든 수퍼맨 콘텐츠에 “Created by Jerry Siegel and Joe Shuster”라는 문구를 넣기로 약속했다. 창작 40년 만의 뒤늦은 인정이었다. 이런 일은 마블의 대표 작가 스탠 리에게도 반복됐다.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엑스맨 등 수많은 마블 캐릭터 설정과 이야기를 만들어낸 그는 오랜 시간 편집자이자 작가, 홍보인으로 활동했지만 저작권은 갖지 못했다. 당시엔 창작자에게 저작권이 돌아가지 않는 계약 구조가 당연했기 때문이다. 마블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며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지만, 금전적 보상은 없었다. 스탠 리는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가진 재산 대부분은 마블에 소송을 걸어 강제로 받아낸 돈이었다. 스탠 리 사후, 그의 유족은 2021년 디즈니를 상대로 저작권 반환 소송을 제기했다. 수십 년간 창작된 캐릭터들이 단순 고용 계약으로 탄생한 것인지, 아니면 원저작자에게 권리가 있는지를 두고 법적 판단이 다시 필요해진 것이다. 수퍼맨과 마블 캐릭터는 오늘날 세계적인 문화 아이콘이 됐지만, 그 뒤엔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한 창작자들의 그림자가 있다. 제리 시걸, 조 슈스터, 스탠 리의 사례는 한 사람의 상상력과 상처가 어떻게 세상을 움직였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아이디어의 진짜 가치를 누가 가져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반면, 잭 커비와 스티브 디트코의 경우는 조금 더 나은 결과로 이어졌다. 커비는 캡틴 아메리카, 판타스틱 4, 토르, 엑스맨, 블랙 팬서 등 마블의 핵심 캐릭터들을 공동 창작했고, 디트코는 스파이더맨과 닥터 스트레인지를 사실상 만들어낸 인물이다. 두 사람 역시 당시엔 고용 작가였기에 저작권은 없었고, 마블이 디즈니에 인수되며 더욱 소외됐다. 그러나 유족들은 미국 저작권법의 ‘권리 회복 청구권(termination rights)’을 근거로 저작권 반환 소송을 제기했고, 각각 2014년과 2023년에 디즈니와 비공개 합의로 마무리되었다. 완전한 권리를 되찾은 것은 아니지만, 이후 마블 콘텐츠에는 두 사람의 이름이 공식적으로 명시되었고, 유족에게도 일정한 보상이 돌아갔다. 디즈니도 법정 논란보다 조용한 합의를 택하며, 창작자 예우 이미지를 지키는 전략을 선택한 셈이다. 스탠 리 유족의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커비와 디트코의 사례는 앞으로의 기준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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