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중국 샨동기차의 SY 증기기관차를 소개했지만 SY도 사실 1960년도에 일본 남만주철도의 증기차를 카피…
아래 중국 샨동기차의 SY 증기기관차를 소개했지만 SY도 사실 1960년도에 일본 남만주철도의 증기차를 카피해서 만들었다. 남만주철도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일본이 만주/중국 경영을 위해 세운 회사로, 1920년대에는 곧 일본 정부 1년 세입 2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회사가 됐고 패망 전까지 일본 내 모든 법인 중 자본금 규모 1위였다. 미쓰비시그룹보다 컸다. 영국이 동인도 회사를 세워 인도를 식민지화하고 경영했듯 일본도 민간의 옷을 입은 기관을 통해 중국을 장악했다. 구체적으로 만주국은 관동군 주도 아래의 계획경제·중공업 우선 투자·관료적 관리체계를 실험한 공간이었다. 일본에서 진급 경쟁에 밀려난 군인과 관료, 일본에서 탄압받던 사회주의자 등이 만주로 건너와 다시 도전했다. 다양한 인재가 모여 황무지를 개척했다. 철도·항만·도시·중공업 중심의 인프라를 대규모로 깔아 국가주도적 개발을 진행했다. 남만철도를 축으로 한 투자와 중앙적 경제기구 구성으로 철도망·항만·제철·석탄·화학 등 중화학기지가 빠르게 성장했다. 그 결과 만주국은 1930년대 동아시아에서 일본·소련 다음가는 산업 집적지를 형성했고(광물·철강·석탄·면직 등), 만철과 일본 자본의 대규모 투자로 농산물·원자재 수출·공업생산이 늘어났다. 이름은 철도회사였지만 만주국 경제를 거의 장악했다. 만철 계열이 수십여 개 기업을 지배하며 지역경제를 사실상 관장했다. 이런 군/관 주도 개발과 경제 운용의 제도적·기술적 노하우와 관료·경영자 네트워크의 일부는 전쟁 이후 다른 맥락으로 전이되었다. 만주에서의 ‘국가가 산업을 설계·집행’한 경험은 전후 동아시아에서 보이는 ‘국가주도 성장’ 모델의 전신 역할을 했다. 1895년부터 50년간 일본 식민지였던 대만의 식민 관료 그룹은 49년 이후에도 관료 및 기업 중심 개발을 추진했고 일본 식민 시절의 행정과 기술 유산이 그대로 이어졌다. 당연히 일본 본토에서도 만주국 인사들이 주류 통치 세력으로 합류했고 만주국 때와 똑같이 국가주도로 일본 경제를 개발했다. 한국에서는 만주 관동군 635부대 출신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본격적으로 만주국 모델을 도입하는데, 만주군관학교 교장이었던 나구모 신이치로와 꾸준히 연락하며 조언을 구했고, 군관학교 교관이었던 칸노 히로시에게서 일본 육군 황도파의 쿠데타였던 2.26 사건의 분석과 실패요인에 대해 배웠다. 박정희는 특히 만주에서 상공차관으로 만주국 건설과 운영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기시 노부스케를 많이 존경했다. 노부스케는 전후 자민당을 창당하고 총리가 됐다. 통일교와 유착하다 암살당한 아베 신조가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기분 더럽지만 일본제국이 할아버지, 만주국이 말종이지만 엘리트로 좀 잘 나갔던 작은 아버지 쯤 되고 현대 국가 한국과 일본, 대만은 작은 아버지를 보고 배운 사촌들 쯤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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