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한 때 인도, 캐나다, 남아프리카, 호주 등 덕에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이었고 공식적으로도 영국제국이…

영국은 한 때 인도, 캐나다, 남아프리카, 호주 등 덕에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이었고 공식적으로도 영국제국이었는데 왜 영국 왕들은 황제가 아니고 왕이었던거지? 빅토리아 여왕 당시 영국제국은 조지 3세가 미국 식민지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곧 세계에서 가장 큰 제국으로 거듭났다. 세계 육지의 4분의 1, 인구의 4분의 1이 영국제국에 속했다. 프랑스가 그 다음으로 식민지도 크고 강력했지만 외교 무대에서는 오스트리아 황제, 러시아 황제, 독일 황제가 항상 상석이었고 왕들은 그 다음 수준 의전에 만족해야했다. 서로 다른 국가들이고 서로 싸우는 적일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유럽 내부에서 귀족, 왕족, 칭호, 위계 서열을 공유했다. 서로 다른 문화권에서 다른 칭호를 쓰더라도 위계 서열을 정할 수 있게 서로 인정하는 등급이 있었다. 빅토리아는 사실 이게 꽤 불만이었다. 군사력, 영토, 재력, 모든 면에서 내가 최곤데 왜 오스트리아 따위에게?? 그래도 영국 왕과 여왕은 끝내 황제 칭호를 쓰지 않았다. 여러가지 이유에서였다. 먼저 명예혁명으로 입헌군주제가 됐는데 제국이 커졌다고 여왕이 여황이 되면 의회와 군주간 관계가 애매해지는 문제가 있었다. 수많은, 영국보다 큰 식민지들을 "파트너"라고 부르며 영제국/연방 안에 묶어둔 건데 "내가 니들의 황제니라"하고 선언하면 실제로 얻는 건 없이 식민지들의 불만만 커진다. 그때 벤저민 디즈레일리 총리가 좋은 아이디어를 낸다. 인도의 황제 칭호를 새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빅토리아는 (인도의)여황이 돼서 외교 의전에서는 황제급으로 올라가지만 집에서는 그냥 여왕으로 남을 수 있다. 해서 빅토리아는 공식 명칭에 인도 여황을 꼭 넣었고 나중의 에드워드 7세나 조지 5세는 인도 황제 칭호를 넣긴 했으나 특별히 빅토리아처럼 앞세우지는 않았다. 조지 6세 때는 이미 제국이 많이 기운 뒤라 인도 황제 칭호는 그냥 뺐다. 입헌군주제지만 조지 3세는 내각을 실질적으로 통제했고 빅토리아는 총리와 서신 교류로 법안 방향과 내각 균형을 조율해서 공식적 문서에도 공동 통치자임을 확실히 했다. 총리도 사실상 여왕이 지명한 사람이 했고, 실질적으로 여왕이 반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건 사회적으로 힘든 분위기였다. 디즈레일리 같은 강한 총리가 등장하면서 균형이 맞기 시작했고 에드워드 7세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의회가 단독으로 통치를 시작하고 처칠 때 실질 권력 없는 의례적, 상징적인 왕권이 완성된다. 유럽에서 칭제는 하고 싶다고 하는 게 아니고 역사적 정당성도 필요했다. 유럽에서 진짜 황제는 사실 교황청이 인정한 로마 제국 황제 밖에 없다. 사실 콘스탄티노플에 황제와 로마제국이 멀쩡하게 살아있었지만 서로마는 서로마만의 전통을 만들고 싶었고, 그래서 샤를마뉴 이래 황제들은 대부분 교황청을 통해 로마 황제 칭호를 받아 황제가 된다. 사실 독일일 뿐인 신성로마제국이 그렇게 해서 탄생했고, 나폴레옹이 신성로마제국을 파괴할 때 오스트리아가 이어받겠다고 제국을 선언했다. 70년 뒤 독일이 통일될 때 빌헬름 1세도 프랑스 상대로 승리 후 독일 제국을 선포했다. 독일은 카이저라는 칭호를 쓰면서도 형제국 오스트리아 황제를 생각해서 신성로마제국 계승보다는 근대 독일 민족국가의 황제라고 스스로 포장했다. 러시아는 이반 3세가 콘스탄티노플 로마 황제의 조카딸 소피아 팔라이올로기나와 결혼해서 황실 혈통 계승을 했다고 주장하며 칭제했다. 동방정교회, 그리고 광활한 영토와 큰 인구가 있었고, 스웨덴 상대로 전쟁 승리로 유럽에 영향력이 증가했기에 인정을 받았다. 엄밀히 따지면 서유럽이 인정하지 않지만, 콘스탄티노플의 로마 황제 칭호가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을 때 오스만 황제에게 넘어갔고, 오늘날 법적으로는 터키 공화국, 이스탄불의 지도자에게 칭제 권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