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람 아기 뿐 아니라 작은 동물 아기들을 보고 귀염움을 느끼며 만지려 하듯, 동물도 어리고 약한 동물…

우리가 사람 아기 뿐 아니라 작은 동물 아기들을 보고 귀염움을 느끼며 만지려 하듯, 동물도 어리고 약한 동물을 봤을 때, 식욕이 압도하지 않는다면 모성/부성이 작동한다. 종이 다른 동물의 아기라도, 심지어 다른 때 같으면 잡아먹었을 먹이에 속하는 동물의 아기라도 돌봐주는 일이 벌어진다.

소는 송아지를 핥아서 청소해주고 친밀감을 나눈다. 핥는 소와 송아지 모두 옥시토신이 분비되며 행복을 느낀다. 고양이를 보고 같은 행동을 하고 같은 느낌을 받고 있다. 사람이었으면 행복한 표정으로 쓰담쓰담 하는 중인 거다.

그렇다고 소가 고양이를 보고 '아이 귀여워' 이러느냐… 두려움, 분노, 행복, 장난끼 등의 직접적 감정은 동물들 사이에도 흔하지만 '귀엽다' '억울하다' '충성스럽다' '그리워한다' '사랑한다' 등의 동물들도 가끔 보이는 것 같은 상징적 감정은 대부분의 경우 우리의 상상이다. 여기서 상징적 감정이란 생존 목적과 무관한 감정의 연쇄나 의미 부여를 말한다.

본능이 정해준 논리구조에서 나온 결론에 따라 목숨을 걸고 새끼를 지키다가 상황이 여의치않으면 바로 버리고 가거나 오히려 잡아먹는 일도 생긴다. 그런 일이 벌어져도 우리가 기대하는 '슬픔' '죄책감' 같은 감정은 보이지 않는다. 새끼를 핥아 보살필 때와 똑같이 본능의 프로그램이 시킨대로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집안을 어지른 뒤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아 보이는 강아지도 주인의 당혹감을 느끼고 거기에 반응하는 것일 뿐 자신이 한 짓과 거기에 대한 벌을 미리 연계짓고 반성하고 있는 게 아니다.

동물적 본능, 진화생물학적 이득 등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는 매우 매우 드물지만 없진 않다.

대표적으로 코끼리들은 친하게 지냈던 동료 코끼리의 뼈나 사체에 계속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꾸 사체에 돌아가 만지거나 나중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그 뼈를 들고가는 경우까지 있다. 정확하게 상징적 감정을 느끼고 있다고 증명은 하기 힘들지만 개인을 인식하고 죽음 뒤에도 오래 기억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또 확실히 다른 목적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돌고래, 범고래 등이 죽은 자식을 며칠, 몇주씩 업고 다니며 사냥도 포기하고 무리에서 떨어져 지내는 경우다. 이게 현실 부정 상태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 또한 상징적 감정에서 멀지 않은 경우로 보인다.

일부 유인원들 중에도 비슷하게 죽은 자식을 오랫동안 보살피거나, 자식이 죽었을 때 주변에서 와서 위로해주는 게 분명해 보이는 행동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강아지들은 우리 인간 주변에 워낙 흔하고 함께 지내는 시간이 길다보니 이런 식으로 본능적 행동을 의인화해 감정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경우 본능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근데 가끔 개들 중에도 주인이 죽었을 때 자신도 밥을 못먹는 경우가 있다. 상징적 감정의 증거로 볼 수는 없지만 먹이를 주는 존재의 부재에 대한 단순 반응으로만 보기에는 힘든 수준의 스트레스를 받는 걸로 보인다.

까치와 까마귀도 이상한 행동을 보인다. 동료가 죽으면 모여든다. 모여서 부리로 살짝 만진다. 다른 의도는 없어보이고 그냥 건든다. 많은 경우 작은 나뭇가지나 풀을 가져다 사체 옆에, 위에 올리기도 한다. 그 머리 속에서 어떤 생각이 오가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동료의 죽음에 대해 생존과 본능 이외의 다른 '버릇'이 있는 건 확실하고, 사회적 행동인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우리 호돌이는 어릴 때부터 우리 강아지들과 키워서 안잡아먹어요'도 대부분의 경우 인간을 최상위로 두는 위계 질서를 받아들였기 때문이고, 맹수의 경우 자라면서 그 위계 질서에 도전하며 인간 주인을 잡아먹는 일이 생긴다. 대부분의 야생동물을 애완동물로 키우기 힘든 이유가 이거다.

강아지처럼 철저하게 인간을 무리의 우두머리로 받아들이거나 고양이처럼 '공생'한다고 믿는 종이 애완동물이 될 수 있지, 나머지는 힘들다. 강아지들 마저도 가끔 변심한다. 작고 귀여운 원숭이들도 사춘기를 지나며 우두머리에 도전하려하는데 하필 그게 인간이고 도전 방식이 변을 던지고 물어뜯고 물건을 부수는 방식이다.

우리 인간들이 서로 생각과 말은 상징적 의미를 마구 부여하며 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본능적 감정을 합리화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사랑도 결국 화학작용이라는 말도 있고. 우리가 개념적으로 생각하는 사랑은 고귀하고 불멸하지만 현실의 사랑이 우리에게 내리는 명령은 성욕과 번식본능이 내리는 명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에 부모라고 다 자식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상황 바뀌었을 때 잡아먹는 동물과 다를 바 없는 행동도 꽤 흔하다. 행동은 같은데 인간이라서 '응 내가 배고파서 먹었어'라고 인정을 안 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