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우주개발의 아버지라 불리는 비크람 사라바이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드라마 같다. 케임브리지에서 물리학을 공…

인도 우주개발의 아버지라 불리는 비크람 사라바이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드라마 같다. 케임브리지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던 그는 2차대전 시기 영국에 남을 수도 있었지만, 전쟁이 끝나자 곧장 고향 아메다바드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 안의 창고를 개조해 물리학 실험실을 차렸다. 부유한 사업가 집안의 아들이었지만, 그는 돈을 벌 생각보다 과학을 만들고 싶었다. 연구를 하면서도 그는 혼자만의 성취에 머물지 않았다. 동료를 모으고, 교육기관을 세우고, 재정이 필요한 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기업과 정부를 연결했다. 물리연구소(PRL), 인도경영대학원 아메다바드 캠퍼스(IIMA), 위성응용센터(SAC), 커뮤니케이션·방송연구소, 무인기상관측센터, 심지어 예술과 무용을 위한 다다니 예술센터까지, 그는 과학·경영·환경·문화 전 분야에서 수십 개의 학술·연구기관을 설립했다. “과학기술이 문화와 경제 속에서 숨 쉬어야 국가가 발전한다”는 그의 신념이 그대로 드러난 행보였다. 인도라는 나라에서 과학을 하는데 필요한 게 뭐가 됐건 아직 없으면 만들었다. 그가 주도한 INCOSPAR는 훗날 ISRO로 발전했고, 인도는 60년 만에 세계 최상위권 우주강국 반열에 올랐다. 지금의 경제성장을 이루기 한참 전부터 진행된 일이었다. 1960년대 초 케랄라 주 타룸바 어촌에서 첫 로켓을 발사하던 시절, 장비를 자전거와 소달구지로 나르고 교회 건물에서 관제를 하던 나라가, 지금은 저궤도·정지궤도 위성 발사, 심우주 탐사, 달·화성 착륙선, 위성항법 시스템, 재사용 발사체 시험까지 자체 역량으로 해내는 극소수 국가가 됐다. 발사 비용 대비 효율성은 세계 최고 수준이고, 상업 발사 서비스 시장에서는 유럽의 아리안스페이스, 미국의 스페이스X, 러시아 발사팀과 경쟁하며, 다국적 기업과 여러 국가들이 ‘저비용·고신뢰 발사 서비스’를 위해 ISRO를 찾는다. 오늘날 인도 우주 프로그램의 위상은 단순히 값싼 발사 대행업체를 넘어섰다. 자국 안보·경제·과학 전 분야에 위성 네트워크를 촘촘히 깔아 실시간 통신, 농업·재난 대응, 해양 감시, 군사 정찰까지 아우른다. 달 탐사선 찬드라얀-3는 인류 최초로 달 남극에 착륙했고, 화성 탐사선 망갈리얀은 세계 최저 비용으로 성공해 ‘우주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차세대 재사용 발사체(RLV)와 유인 우주선 ‘가간얀’ 프로젝트까지 가동 중이며, 글로벌 위성항법 시스템(GAGAN)과 지역 항법시스템(IRNSS)로 독자 GPS 체계를 구축했다. 한국과 비교하면, 위성체와 발사체 기술 모두에서 인도가 한 세대 정도 앞서 있다. 한국은 나로호·누리호로 자체 발사 능력을 확보했지만 아직 심우주 탐사선, 재사용 발사체, 대규모 상업 발사 경험은 제한적이다. 반면 인도는 PSLV·GSLV 시리즈로 300개 이상의 위성을 궤도에 올렸고, 세계 7대 우주 강국 중 하나로 꼽히며, 우주탐사·발사·위성응용 전 분야에서 독립적 체계를 갖춘 상태다. 모든 것은 포기할 줄 모르는 한 청년이 귀국해 자기 집에서 시작한 작은 실험실에서 비롯됐다. “우주는 부유국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사라바이의 믿음이, 이제는 인도를 미국·러시아·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우주강국 반열에 올려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