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빨간 지역에 8억9천만명이 산다. 방글라데시를 빼고 인도 부분만 해도 7억명으로 인도 인구의 절반이 저기…

저 빨간 지역에 8억9천만명이 산다. 방글라데시를 빼고 인도 부분만 해도 7억명으로 인도 인구의 절반이 저기 살고 나머지 절반이 남쪽 저 넓은 곳에 산다. 세계 인구의 11%. 유럽 인구는 7억 5천만명이다. 갠지스강, 브라마푸트라강, 메그나강이 만든 충적평야가 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비옥한 토양을 만들었다. 사계절 농사가 가능하고, 특히 쌀·밀 재배에 유리하다. 수천 년 동안 주요 문명(마가다, 벵골, 무굴 제국)의 핵심 지역이었고 고대로부터 한 번도 망한 적 없이 계속 인구가 축적됐다. 델리, 콜카타, 다카 등 초대형 도시들이 줄을 지어있다. 사실 저 비옥한 땅을 중심으로 한 북인도는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언어적으로 남인도와 별로 공통점이 없었다. 두번째 지도에 하늘색으로 표시한 나르마다 강과 그 양쪽의 빈디야·사트푸라 산맥은 북인도와 남인도를 가르는 자연 경계선이었다. 이 강을 건너는 일은 역사적으로 큰 도전이었고, 그만큼 양 지역은 오랜 세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권을 유지했다. 북쪽은 힌디어·우르두어·벵골어를 중심으로 한 인도유럽어족 언어권이고, 남쪽은 타밀어·텔루구어·칸나다어·말라얄람어를 사용하는 드라비다어족 언어권이다. 음식, 종교 의례, 건축 양식까지 달라 나르마다 강은 단순한 강이 아니라 문명 경계선이었다. 약 2000년 전 북부에서 대규모 남쪽 강유역으로 인구 이동이 이뤄지며 더 이상 강 자체가 절대적 경계 역할은 하지 않았지만 오늘날까지도 북방 세력은 그 이상 남쪽으로는 진출하지 못했다. 역사적으로 북과 남이 한 체제로 통합된 경우는 드물었다. 마우리아 왕조나 굽타 제국이 남쪽으로 세력을 뻗쳤으나 오래 유지되지 못했고, 델리 술탄국 역시 북부 중심에 머물렀다. 무굴제국에 들어서야 비교적 넓은 통일이 이뤄졌지만, 남인도 왕국들은 여전히 자율성을 지켰다. 현대 인도는 이 역사적 분리를 극복하기 위해 남북을 강하게 연결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실제로 서로 다른 국가로 갈라져도 할말이 없는 지역들이라서 그렇다. 철도와 국도망을 전국적으로 확장해 주요 도시를 직결했고, 행정·교육에 북쪽에서는 힌디어, 그리고 전국에서 영어를 함께 공용어로 사용해 인도유럽어족과 드라비다어족 간 언어 장벽을 완화하려 했다. 남북 산업 교류를 늘리기 위해 대형 댐, 항만, 산업단지 건설도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영화·스포츠·전국 축제 같은 문화 콘텐츠를 전국 단위로 확산시켜 서로 다른 지역 정체성을 ‘인도’라는 큰 틀 속에 묶으려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선거 정치와 지역 정당 지형을 보면 나르마다 강 남북의 문화적 경계는 여전히 뚜렷하다. 북인도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지역이 많고 남인도는 벵갈루루, 첸나이, 하이데라바드 등에 IT와 첨단 산업 투자가 집중되며 엄청난 경제 성장을 겪었다. 북인도는 아직도 농업 위주인 지역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