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컴퓨터들이 마법같은 일들을 해주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1950년대에 소련과 핵전쟁을 준비하던…

지금이야 컴퓨터들이 마법같은 일들을 해주는 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1950년대에 소련과 핵전쟁을 준비하던 미국 정부 입장에서 사람의 눈에 의지하다가 나라 전체가 날아가는 건 악몽이었다.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설치된 레이다 기지에서 들어오는 데이타를 분석하고 보고하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사람보다 빠르게 반응해 늦기 전에 보복공격하는 능력을 갖춰야 했다. SAGE 컴퓨터가 탄생했다. 소련의 폭격기 침입을 실시간으로 추적/대응하는 방공 지휘 시스템의 핵심이었다. 보스턴,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등 주요 대도시에 SAGE 센터가 들어섰다. 한 대가 250톤이었고 진공관이 6만 개 이상 들어갔다. 대 당 약 3천만 달러가 들었고 지금 가치로 약 4700억원이다. 총 56대가 건설됐다. 1층이 연산/논리 장치역할을 했다. 수만개의 진공관과 다이오드로 이뤄진 연산 장치, 제어 회로가 설치됐다. CPU에 해당한다. 2층이 메모리 장치였다. 자기 코어 모듈과 보조 기억 장치로 채워졌다. 256kb의 막대한 용량을 가졌다. 3층이 입출력과 디스플레이였다. 레이다 데이터 입력, 전화선/모뎀, 콘솔, 대형 CRT 디스플레이 등이 있었다. 다른 구역이나 다른 층에 냉각/전원 구역을 뒀다. 수천 kW의 전력과 대형 에어컨 시스템이 돌아갔다. 별도 냉각탑을 둘 정도였다. 미국은 이 SAGE 시스템으로 1958년부터 전국을 포괄하는 자동화 실시간 온라인 방공 네트워크를 갖췄다. 소련은 1991년 해체될 때까지도 지역 자동화 네트워크와 사람 중심 관제로 대응했고 전국 자동화 방공 네트워크는 갖추지 못했다. 기술력의 차이였다. —- 저런 대형 컴퓨터에서 개인용 컴퓨터로의 혁명을 일으킨 건 SAGE 컴퓨터로부터 18년 뒤 1976년에 워즈니악이 발명한 애플 I였다. 혼자서 운반 가능할 정도로 작았고 SAGE보다 6배 빨랐다. 이제 6만원짜리 라즈베리 파이 5 한 대가 저 5000억원짜리 4층 SAGE 컴퓨터보다 12만배 이상 더 빠르다. 저때까지는 컴퓨터는 미리 원하는 연산 내용을 준비하고 하드웨어를 준비하고 연산을 위해 케이블을 연결하거나 해야했다. 전기톱처럼 큰 작업의 일부에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기계였다. 워즈니악의 컴퓨터는 전원을 켜면 그냥 BASIC이 사용자의 입력을 기다렸다. 사용자가 키보드로 입력하기를 기다리는 컴퓨터라는 개념 자체가 처음이었다. 컴퓨터를 먼저 켠 뒤에 뭘 하고 놀지 고민해도 됐다. 아니, 키보드와 모니터를 직접 눈앞에 두고 대화하듯 사용할 수 있는 싼 개인용 컴퓨터 자체가 처음이었다. 그때까진 메인프레임에 키보드와 모니터만 따로 모아두는 경우는 있었지만 개인용 컴퓨터들은 스위치와 전구로 인풋 아웃풋을 해결했다. 워즈니악이 발상해낸 키보드, 본체, 모니터라는 구성이 개인용 컴퓨터 혁명을 일으켰고 이 구성은 스마트폰이 나올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애플 I으로부터 32년 뒤인 2008년에 아이폰으로 스마트폰을 유행 시키고 컴퓨팅 방식을 다시 한 번 바꾼 것도 역시 애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