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는 인류 역사상 첫 번째 ‘진정한 제국’이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을 하나의 중앙집권 아래 통…
페르시아는 인류 역사상 첫 번째 '진정한 제국'이었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을 하나의 중앙집권 아래 통치하고, 도로를 깔고, 공용어를 정하고, 조공과 병역 체계를 운영하며, 다양한 종교와 문화를 '통합된 질서' 아래 공존시킨 최초의 국가였다. 그 전까지의 지배는 정복이었고, 약탈이었다. 하지만 페르시아는 통치였다. 정복 후에 남은 것은 폐허가 아니라 시스템이었다. 이후 등장하는 거의 모든 제국—로마, 이슬람, 몽골, 오스만, 심지어 대영제국까지—페르시아의 흔적을 피할 수 없었다. 행정, 군사, 법, 문화의 틀을 생각할 때, 페르시아는 '제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형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건, 이들이 거의 항상 그 지역의 맹주였다는 사실이다. 산맥과 고원으로 둘러싸인 이란 고원은 방어가 쉽고 점령이 어려운 지정학적 요새였고, 이 지형은 수천 년 동안 페르시아가 반복적으로 제국의 형태로 부활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페르시아가 약해졌을 때는 예외 없이 '지정학적 대전환'이 발생했다.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정복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가 내부에서 붕괴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다리우스 3세가 강력한 통치자였고 지방 총독들의 충성도가 유지되고 있었다면, 알렉산더는 아나톨리아에서 멈췄을 것이다. 이슬람의 급속한 확산 또한 사산조 페르시아가 비잔틴과의 수십 년 전쟁으로 고갈되고, 황제가 수차례 바뀌며 내전으로 와해된 상태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성했던 페르시아였다면, 이슬람은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몽골 또한 마찬가지다. 호라즘 제국이 안정적이고 통합된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면, 징기스칸은 몽골 부족의 통합조차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분열과 오만은 몽골 세계 제국의 급부상을 가능케했다. 결국 페르시아가 약하지 않았다면 인류의 많은 '대전환'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페르시아의 약화는 곧 다른 무엇의 부상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다시 한 번 그런 시점에 와 있다. 이란은 지정학적으로 여전히 난공불락의 고원 위에 있지만, 내부는 심각하게 불안정하다. 경제는 제재와 부패로 무너졌고, 사회는 오랜 독재, 젠더와 세대 갈등으로 분열되어 있다. 체제는 종교적 권위에 기반하지만, 젊은 층은 탈종교와 서구화를 향해 걷고 있다. 이란이 계속해서 약화된다면, 역사적 패턴은 반복될 것이다. 오스만의 후예를 자처하며 군사력을 키우고 있는 튀르키예가 다시 동쪽의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 등과 연합하며 지역 맹주를 넘어 제국 재건에 나설 수 있다. 러시아는 카스피 해를 넘어 남하하려 할 것이고, 중국은 '일대일로'의 안정적 교두보 그리고 미국의 중국 봉쇄 우회로로 이란을 장악하려 할 것이다. 미국은 이란 붕괴를 틈타 새로운 중동질서의 재편을 시도할 것이다. 역사적 교훈을 기억하는 열강과 신흥 세력들은 이 기회를 통해 패권을 노리게 된다. 그러나 만약 (어쩌면 패전 후) 이란이 내부의 갈등을 극복하고 '개방'을 선택한다면? 이란은 다시 한 번 '페르시아'로 부활할 수 있다. 서구화와 개방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민족 정체성, 풍부한 자원, 고대 제국으로서의 문화적 자부심, 시아파 이슬람의 맹주 지위, 지정학적 중심지로서의 위치, 그리고 고원이라는 천연 요새는 이란을 다시금 경제적·군사적·문화적 패자로 만들 수 있다. 페르시아는 수천 년 동안 망하지 않았다. 때로는 침묵했고, 때로는 가면을 썼지만, 사라진 적은 없다. 그렇기에 지금의 이란은 또 하나의 역사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그 전환이 내부로부터의 부활이 될지, 아니면 또다시 외부로부터의 침투가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