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긴 독재집권기를 거친 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대통령 권한을 견제하는 데 집중했다. 대통령의 연임을…
한국은 긴 독재집권기를 거친 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대통령 권한을 견제하는 데 집중했다. 대통령의 연임을 금지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했으며, 더 이상 대통령이 여당 총재가 되지 못하도록 했다. 예전처럼 대통령을 비판했다고 안기부에서 남산으로 끌고 가는 일도 이제는 없다. 민주화는 그런 점에서 확실히 진전됐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방향의 질문이 필요하다. 검찰개혁을 넘어 검찰이라는 구조 자체를 해체하고 새로운 수사·기소 체계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하며 발견한 구조적 문제나 비리를 어느 기관에 맡길 수 있는가. 국회에 국정감사권과 국정조사권이 있듯, 대통령에게도 국정 집행자로서 마땅히 합리적인 수사지시 권한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한민국은 그 제도적 장치가 부실하다.
감사원은 수사나 기소권이 없고, 특별감찰관은 대통령을 포함한 권력자를 감시하는 구조다. 경호처는 경호를 하지 수사를 하지 않는다. 국세청은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 경찰 역시 대통령의 직접 지시를 따르는 기관이 아니다. 검찰 역시 예외적인 경우에만 법무부 장관을 통해서 지휘가 가능하다. 사실 검찰이 옛 독재자들이 애용하던 무기라서 다른 조직이 필요없었던 게 이유지만, 검찰이 '독립'된 이젠 제왕적 권한 축소하려다 대통령이 일할 권한까지 축소해버린 셈이 됐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라면 대통령은 문제를 법무장관에게 넘기고 법무장관이 검찰에 넘기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겪어봤다. 대한민국의 검찰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대통령에게서 명령이 오면 흥정을 시도한다. 오히려 대통령의 권한을 무력화하고 정치적 보복에 가담하거나, 기득권을 지키는 방패막이로 작동해왔다. 그러는 동안 수십 년간 묻혀 있던 기업 내부 비리, 대형 안전사고의 책임, 언론 카르텔, 법조 유착 같은 적폐는 건드리지도 않았다.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임기 내에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대통령이 직접 감지한 중대한 비리나 구조적 문제에 대해 빠르게 수사하도록 명령할 수 있는 기관은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핵심은, 검찰처럼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조직이 있더라도 대통령이 바로 무력해지지 않도록 일정 수준의 수사 집행력은 갖되, 동시에 차기 대통령이 남용하기는 어려운 제한적 규모와 설계를 갖춘 별도 조직을 만들거나, 지금처럼 검찰/경찰/공수처 셋이 아니라 훨씬 많은 기관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주어져야 한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은 FBI, IRS, 시크릿서비스 등 다양한 연방기관을 통해 수사, 감사, 정보 수집을 병렬적으로 운영한다. 이들은 의회의 견제를 받지만 동시에 행정부 수반의 합법적 명령도 따른다. 또 행정부 기관 중에 이민국처럼 자체적 수사조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 대통령의 직접 명령도 따르도록 되어있으며 이민국 산하 수사팀(Homeland Security Investigations)의 경우 수사 범위 제한도 사실상 없다. 대통령이 문제를 인지했을 때, 심지어 일부 기관이 반발하더라도 다른 기관을 통해 작동 가능한 법적이고 제도화된 수단이 이미 준비돼 있는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지휘할 수 있는 기관도 있고, 수사권과 기소권도 충분히 많은 기관에 주어져있어서 견제가 된다.
한국도 이제 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통령이 감지한 위법을 어디에 넘길 것인가. 각 기관의 반란은 누가 제압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제도적 답을 갖추지 못한 나라는 결국, 대통령이 문재인 정부처럼 검찰의 반란에 무력해지거나, 반대로 검찰 등을 정치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인물이 대통령이 되는 이상한 구조에 머물게 된다. 어느 쪽이든 비선 조직이 생기기 쉽고 민주주의에 건강하지 않다. 지금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일을 할 수 있는 정상적인 수단이다. 이제 그걸 설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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