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 하면 보통 ‘최종무기’라는 느낌이 있다. 그 이상은 없고, 그 이상은 필요도 없다. 사실이다. 처음 개…

핵 하면 보통 ‘최종무기’라는 느낌이 있다. 그 이상은 없고, 그 이상은 필요도 없다. 사실이다. 처음 개발한 미국도 딱 두 번만 사용했으며 이후 여러 나라가 경쟁적으로 만들었지만 단 한 번도 추가로 쓰이지 않았다. 전략핵은 대부분 상황에서 실전용이 아닌, 오직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핵을 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0.0 %와 0.1 %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0.1 %만 넘어도 웬만하면 그 나라와의 전쟁은 피한다. 핵무기는 사용하는 게 아니라 보유함으로서 전쟁억지력을 높이는 도구다. 프랑스와 영국은 2차 대전 직후 과거 제국의 형태가 완전히 꺼지기 전에 서둘러 핵무기를 갖췄다. 그러나 쓸 일은 없었고 비용만 컸다. 두 나라 모두 그때에 비해 세력이 줄어 만약 오늘 핵이 없는 상황에서 “새로 개발할래?” 하면 러시아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선뜻 결정을 못할 것이다. 제대로 된 미사일을 개발 못한 영국은 탄두만 자체 생산하고, 탄도미사일은 미국산 트라이던트를 사다 쓴다. 핵미사일을 사고파는 묘한 관계다. 그렇다면 북핵은? 미국·일본·한국이 20 년 넘게 문제 삼으며 북한을 봉쇄하는 이유가 북핵인데, 실제로 가치가 있나? 어떤 시나리오에서 어떻게 쓰일까? 북핵 사용은 두 경우에 고려가 가능하다. 1. 미국과의 전쟁에 져 점령당하는 과정에, 2. 미국이 북한을 핵폭격했을 때. 핵폭격은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으로도 용인되지 않기에, 같은 수준의 보복력이 있으면 공격받을 확률은 거의 사라진다. 심지어 전황이 절망적이라도, 전면적 핵 사용은 “모두 죽는” 선택이기에 손익이 맞지 않는다. 94년처럼 미국의 북한 폭격 계획이 시행 직전까지 간 경우가 몇 번 있다보니 북한은 미국을 저지할 유일한 방법으로 핵을 선택했다. 자기보다 한참 약한 애들만 괴롭히는 미국은 역사상 단 한 번도 핵보유국을 상대로 직접적 군사행동을 한 적이 없다. 핵개발에 성공한 뒤로는 미국이 북한에게 폭격을 위협한 적이 없으니 성공한 셈이다. 역시 보유용이다. 그런 상황에도 미국이 북한에 핵공격을 한다면 북한도 원칙상 반격을 시도할 것다. 또, 미국과 재래식 전쟁이 발발해서 나라가 거의 점령 당한 경우에도 마지막 수단으로 고려해볼 수있다. 현실에서는 물론 가능성없는 얘기다. 전쟁에 져도 나라가 없어지지는 않고, 지도자도 재기의 기회가 오는 경우가 많은데 굳이 핵을 써서 자신의 기회도 날릴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한-북 간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러시아-우크라이나 사례가 보여주듯, 점령하려는 땅 – 수도에서 가까운 지역 – 에 핵을 먼저 쓰는 국가는 없다. 따라서 북한이 한국에 핵을 쏠 가능성은 사실상 0 이다. 한-미-일 보수 진영은 “북한은 미치광이 정권이라 한국에 핵을 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김일성·김정일·김정은 모두 자신의 이해관계를 철저히 지킨 “계산적인” 지도자였다. 미치광이들이 이렇게 오래 나라를 운영하지는 못한다. 특히 미국이 수십년째 경제봉쇄하는데도 살아남는 건, 능력을 보여주지 광기를 보여주는 게 아니다. 이 점을 보면 북한의 대남 핵공격 시나리오는 성립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은 핵을 개발할 필요가 있을까? 핵이 필요한 상황이란, 핵폭격을 억제하려 보복 능력을 갖춰야 할 때다. 한국은 핵 목표가 될까? 그렇다 – 미군기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핵전쟁을 벌이는 국가는 한국의 미군기지·지원시설을 목표로 삼는다. 전쟁이 시작되면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섬광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다. 이게 한국이 핵을 개발해서 예방할 수 있는 위험인가? 아니다. 그렇다고 한국이 핵을 실제로 쓸 상대가 있을까? 북한에 핵을 쓰면 북측 영토를 포기해야 하고, 매년 바람 불때마다 방사능 낙진을 우리가 뒤집어쓴다. 일본? 실질적으로 군대가 없다. 중국·러시아·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 주한미군이 아니면 충돌 가능성은 희박하다. 핵을 가진다고 한국이 갑자기 강대국이 될까? 이스라엘·파키스탄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미래 어느 날 윤석열 같은 위험한 정부가 또 다시 들어서면 사태가 더 위험해질 뿐이다. 따라서 한국 핵개발은 필요도, 득도 적다. “핵이 핵공격을 억제한다”는 말은 맞지만, 억제를 위해 꼭 핵이 필요한 건 아니다. 한국은 세계 5위권 군사력과 거대한 무역 규모 덕분에 상대국이 얻을 것보다 잃을 것이 훨씬 크다. 대만이 TSMC 덕분에 ‘반도체 핵우산’을 갖춘 것처럼, 한국도 경제적 연결망이 꽤 높은 수준의 억제력을 제공한다. 냉전 때 전략에 의하면 한·미 상호방위조약이 한국에게 ‘핵우산’을 보장한다. 물론 한국이 핵을 맞았을 때 미국이 자동으로 핵보복을 할리는 없으므로 이 핵우산은 가짜다. 미국은 동맹을 위해 자국 본토를 핵보복 위험에 노출하지 않는다. 내 기억으로 윤석열이 미국과 맺은 새조약 내용이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핵전쟁을 수행할 경우 한국군이 지원하고, 한국이 핵공격을 당할 경우 미국은 신속한 공동대응을 고려한다고 되어있었다. 고려한다고. 이 핵우산이 발동하는 건 한국 땅에 있는 주한미군이 핵공격을 받았을 때 뿐이다. 한국의 실질적 핵 억제력은 SLBM(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이다. 문재인 정부 때 중국이 사드 책임을 물으며 압박하자, 왕이 부장과 면담 뒤 바로 SLBM 시험을 참관해 “우리가 핵을 맞아도 중국 동해안 도시와 중국 경제는 파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핵무기의 의미, 특히 한국에 대한 의미를 정리해 보면 주한미군의 존재도 재평가해야 한다. 주한미군이 있기에 한국은 불필요하게 핵공격 1순위가 되고, 효순·미선이 사건 같은 불평등 문제도 반복된다. 예전에는 ‘계륵’이었지만 이제 한국의 향상된 군사력 앞에 순수한 ‘국가 안보 불량 자산’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