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영화 [에어플레인!]은 당시 북미에서 연간 흥행 4위에 오르고, 제작비의 30배 가까운 수익을 거…
1980년 영화 [에어플레인!]은 당시 북미에서 연간 흥행 4위에 오르고, 제작비의 30배 가까운 수익을 거두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진짜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돈을 벌어서만은 아니다. 에어플레인의 조연 배우들은 하나같이 전성기를 누린 진지한 배우들이었다. 로이드 브리지스는 50~60년대 TV 시리즈 [씨헌트]로 액션 스타의 이미지를 구축했고, 로버트 스택은 [언터처블스]에서 냉철한 FBI 요원 엘리엇 네스로, 피터 그레이브스는 [미션 임파서블]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 짐 펠프스로 이름을 날렸다. 이들은 모두 "저 배우가 나오면 믿음이 간다"는 인상을 남긴 얼굴들이었다. 레슬리 닐슨 역시 마찬가지였다. 1950년대부터 50편이 넘는 드라마, 서부극, [금단의 행성] 같은 SF 스릴러에 출연하며 단단한 목소리와 신뢰감 있는 주연 배우로 인식됐고, [포세이돈 어드벤처] 같은 재난 영화에서도 진지한 역할을 맡아왔다. 감독 짐 에이브러햄스와 주커 형제는 바로 이 점을 노렸다. 코미디 연기를 해본 적 없는 배우들을 일부러 섭외한 것이다. 관객이 진지함을 기대하는 배우들이 황당한 상황 속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대사를 읊조리면, 그 어긋남 자체가 웃음이 된다는 계산이었다. 그래서 영화 속에서는 수녀가 기타를 치고, 조종실에 커피 메이커가 있고, 자동조종장치가 풍선 인형이지만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등장인물 모두가 미쳤지만, 그 세계 안에서는 아무도 이상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아무도 웃긴 표정을 짓거나 관객과 함께 웃지 않는다. 이 세계관의 일관성이야말로 에어플레인을 전설로 만든 핵심이었다. 대부분의 배우들은 자신들의 역이 왜 웃긴지조차 몰랐다. 웃음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그냥 극본에 나온대로 그대로 연기했다. 브리지스는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담배를 끊기엔 최악의 날이라며 약물을 흡입하는 장면을 진지하게 연기했고, 그레이브스는 어린 승객에게 기묘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대본대로 친절한 기장을 연기했다. 피터 그레이브스는 내용을 이해 못해서 고생했는데 감독들이 "나중에 설명드릴테니 일단 찍읍시다"하고는 결국 설명을 안 해줬다. 그들의 몸과 연기는 오랜 경력 동안 몸에 밴 진지함에 머물러 있었다. 그런데 레슬리 닐슨만큼은 달랐다. 그는 정확히 극본의 어느 부분이 웃긴지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더욱 계산적으로, 더욱 철저히 진지함을 연기했다. “I am serious. And don’t call me Shirley.”라는 명대사는 바로 그 타이밍과 뉘앙스를 꿰뚫은 결과였다. 이 영화는 닐슨의 인생을 완전히 바꿨다. 이미 성공한 주연 배우였던 그는 54세에 코미디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나 이후 30년 동안 [총알탄 사나이] 시리즈 등에서 같은 공식을 반복하며 최고의 코미디 배우로 거듭났다. 다른 배우들도 에어플레인을 계기로 코미디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지만, 커리어 전체를 갈아엎은 사례는 닐슨이 유일했다. 에어플레인의 유머는 사실 말장난, 시각 개그, 멍청한 상황극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은 놀라울 만큼 정교하다. 재난 영화를 완벽히 패러디한 구조, 쉼 없이 몰아치는 개그의 밀도, 그리고 진지함을 무기로 삼은 연기까지. 수준 낮은 농담이 놀라운 아이디어로 승화된다. 유치한 소재인데 나보고 연출하라면 저렇게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확실하게 든다. 이후 [총알탄 사나이]뿐만 아니라 [사우스 파크], [더 오피스], [파크스 앤 레크리에이션] 같은 작품들 모두 진지한 형식과 어이없는 내용을 충돌시키는 구조를 이어받았다. 에어플레인은 가장 진지한 사람들이 가장 웃긴 코미디를 만들 수도 있다는 기대치의 역설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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