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좋으면 외국어도 잘 할 것이다라는 관념이 잘 드러나는 게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의사나 변호사 캐릭터가…
머리 좋으면 외국어도 잘 할 것이다라는 관념이 잘 드러나는 게 한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의사나 변호사 캐릭터가 영어가 필요한 상황에는 거의 100% 영어 능력자로 그려짐. 현실은 심지어 미국에서 활동중인 한인 변호사들 중에도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 많음.
이건 ‘똑똑하고 멋지지만 당연히 만능은 아닌’ 현실적인 캐릭터를 그릴 줄 모르는 작가들의 한계일 수도 있지만 영어나 외국어같이 뭔가 폼나는 재능에 대한 무한한 동경심, 그리고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영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하는데 왜 난 못하지’같은 컴플렉스의 작용이 있다고 봄.
해서 이런 비정상적인 요인들이 영어 혹은 외국어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로 이어짐. “내가 영어만 할 줄 알았으면 취업도 하고 사업도 시작하고 여차하면 대통령도 되겠다. 이 모든 소원성취를 막고 있는 게 영어야” 하는 식으로 나타남. 현실은 미국에 노숙자들도 다 영어 완벽한 발음으로 잘 함. 영어를 할 줄 안다고 해서 머리 속에 없던 지식/지능/의지가 마구 솟아나지 않음. 사진 공부/연습은 하지 않고 카메라만 더 비싼 걸로 바꾼다고 없던 구도, 영감, 눈썰미가 생겨나지 않는 것처럼.
반대로 훌륭한 아이디어와 재능이 있는 사람이 그걸 키우는데 시간을 쏟는 게 아니라 영어공부에 집착하게 되는 구조는 낭비가 심한 구조인데, 한국은 이게 일상화가 되어있음.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비해 결과도 좋지 않은, 다시 말해 실생활에서 영어를 쓸 일이 없어서 일상적 연습의 기회가 없는 환경에서 왜 전국민이 영어공부에 매진하도록 방치하는지도 궁금.
사실 국가에서 번역청 혹은 번역부를 만들어 각종 문서, 서적, 자료 등의 번역/감수, 그리고 전문 번역/통역인력 양성을 하면 훨씬 효율적일텐데. 일본도 개화기에 온국민이 화란어를 배운 게 아니라 번역부터 철저히 해서 성공했던 것 아닌가. 사실 그 때 일본이 수많은 새 용어와 관념들을 어떻게 한자로 표현할 것인가 고민하고 연구해준 덕에 지금까지도 대대로 덕을 보고 있는게 동아시아 국가들인데. 만약 번역 대신 일본 학자들이 유럽 언어를 배우고 유럽 언어로 연구를 했다면 그 결과물의 혜택은 그 나라 그 세대만 누리고 끝났을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