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2023

1948년부터 조각하기 시작한 북미원주인 추장 크레이지 호스. 러쉬모어 대통령 얼굴 조각에서 27km 떨어진…

1948년부터 조각하기 시작한 북미원주인 추장 크레이지 호스. 러쉬모어 대통령 얼굴 조각에서 27km 떨어진 곳에 있음. 75년째 별 진전이 없다가 올해에 갑자기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어차피 예산이 없어서 완공은 수백년 걸릴 수 있음. 러쉬모어보다 훨씬 큼. 완공된다면 인도 [통일의 동상]에 이어 두번째로 큰 동상. 목표하는 최종 모습은 마지막 사진에 하얀 석고상 모양.

저때 심상정이 류호정 장혜영을 1, 2순위로 올리지만 않았어도 정의당의 몰락은 막을 수 있었거나 바닥 치는데…

저때 심상정이 류호정 장혜영을 1, 2순위로 올리지만 않았어도 정의당의 몰락은 막을 수 있었거나 바닥 치는데 최소 수년이 더 걸렸을거다.

신장식 변호사. 박창진. 정의당 당원들이 원했던 이런 인물들을 정의당 의원으로 원내에 보냈어봐라. 당연 지금쯤 반윤 연대에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었겠지.

결국 그 류호정이 정의당 비례의원직은 유지하며 금태섭 신당에 참여하고, 정의당 비대위원장에게 창당식 초청장까지 보내며 조롱하는 중. "나 막을 수 있으면 막어봐."

어찌보면 이들한테는 박용진이 롤모델일텐데… 근데 정의당은 워낙 수년을 반민주당 하느라 허비해놔서 개별적으…

어찌보면 이들한테는 박용진이 롤모델일텐데… 근데 정의당은 워낙 수년을 반민주당 하느라 허비해놔서 개별적으로 전향해서 민주당가서 꼴통우파하기는 힘듬. 금태섭 양향자 등과 일단 먼저 함께 한 다음에 그 당을 흡수하는 거대정당에 못이긴 척 딸려가는 게 목표인 걸로 보임. 몇년 안에, 빠르면 총선 전에 국힘에서 금태섭/양향자/이낙연/조성주/류호정을 보게 될지도.

정의당은 참… 대표 하나가 개판을 쳤으면 그래도 한 몇년 조용히 지내다 다시 나설 수 있게 다른 사람이…

정의당은 참… 대표 하나가 개판을 쳤으면 그래도 한 몇년 조용히 지내다 다시 나설 수 있게 다른 사람이 돌려막기로 대표가 돼서 버텨줘야하는데 사람이 몇 안되다 보니 항상 심상정, 이정미, 배진교, 이런 사람들이 돌아가며 대표단을 했음.

근데 심상정은 류호정 공천한 것 때문에 얼굴을 못내밀고 있고, 이정미도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만든 당사자에 지금 막 퇴진한 상황이라 나설 입장이 안되고… 결국 정의당 당적도 없던 김준우라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을 비대위원장으로 데려와야할 만큼 도산 상태.

돌려막기가 힘들 정도로 개판을 쳐놨고, 그렇게 개판쳐도 자기들은 반민주라는 틈새시장이 있기 때문에 절대 책임질 일 없을 거라고 믿었던 것 같은데 이제 계산서가 도착하는 중.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23일 서울 연희동 집을 버리고 ‘은둔’의 길에 올랐다. (…) 80년 9월 1일…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23일 서울 연희동 집을 버리고 ‘은둔’의 길에 올랐다. (…) 80년 9월 1일 11대 대통령 취임 이래 2천 5백 55일간의 청와대 생활을 마치면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싶다”던 그들의 소망은 이날로 부숴지고 말았다. (…) 이 기간[연희동에서의 2백 72일]은 적어도 전 전 대통령이 그동안의 생애중 처음 겪는 실의와 좌절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

전 전 대통령은 그 자신이 유치하고 준비했음에도 9월 17일의 서울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할 수 없었다. 여론 때문이었다. 올림픽 개막식 전날 밤 전 전 대통령은 잠을 이루지 못하며 날씨 걱정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이런 가운데서도 검찰은 11월 12일 친형 기환 씨를 구속했다. 이틀 후인 11월 14일에는 하나뿐인 처남 이창석 씨가 소환됐고 다음날 구속 수감됐다. (…)

연희동에서는 다만 이순자 씨의 눈물이 문제였다. 대령 시절 어렵게 장만한 연희동 집을 내놓기 싫었고 무엇보다도 고2 재학중인 막내아들을 혼자 남겨둘 수 없었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은 부인을 설득했고 이내 이 씨도 마음을 고쳐 먹었다.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은둔’을 최종 결심했다. 이때가 19일 밤이었다. (1988.11.23 동아일보 이낙연)

https://www.mindle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6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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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이후로 사실상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치안이 완전히 무너졌던 뉴욕시를 다시 살려냈고 9/11 테…

70년대 이후로 사실상 사람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치안이 완전히 무너졌던 뉴욕시를 다시 살려냈고 9/11 테러 당시 시장으로서 강한 모습을 보이며 인기를 끌었던 루디 줄리아니. 최근 몇년은 트럼프 최측근으로, 또 트럼프의 변호사로 활동했는데.. 트럼프가 2020년 대선 조지아주에서 이겼는데 개표원 중 두 흑인여성이 가방째 표를 들고와서 바꿔치기해 바이든으로 승자를 바꿨다는 주장을 계속 해오다 이번에 명예훼손 소송 1심에서 패소하고 1927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오늘 받았다. 돈 많은 사람이긴 한데 아마 이거 내고나면 파산. 변론 과정에서 이미 그게 거짓 주장이었음을 인정했는데도 불구하고 재판 중에도, 지난 월요일에도 법원 밖에서 언론을 상대로 똑같은 주장을 다시 반복 할 정도로 뻔뻔한 사람이라 항소해도 별 소용없을 걸로 보인다. 줄리아니가 그 두 개표원의 이름을 공개하고 거짓 주장을 하고 결국 둘은 신상이 다 공개돼 각종 협박과 폭력을 당하고 있어서 삶이 망가진 상황이라 배심원단이 거의 최고 금액으로 판결내린 것 같다. 근데 이건 민사재판이고, 대선 결과 조작 시도에 대한 형사 재판은 아직 진행중이라 아마 트럼프 따라다니다 전재산 날리고 감옥도 가게 될 걸로 보인다. (두번째 사진은 2020년 대선이 조작됐다고 한참 주장하며 기자회견할 때 자꾸 흑채가 흘러내리던 모습…)

수도권에서 80년대 90년대를 가난하게 보내본 사람들이 공유하는 추억, 아픔, 등이 있다. [니 멋대로 해라…

수도권에서 80년대 90년대를 가난하게 보내본 사람들이 공유하는 추억, 아픔, 등이 있다. [니 멋대로 해라] 보면서 특별히 슬픈 장면이 아니더라도 너무 익숙한 상황과 사람들 모습에 눈물이 핑도는 아마 그런 거. 이게 분명 내 마음에 크고 작은 상처를 냈고 그게 아물면서 나라는 사람이 형성 됐을테고, 이미 자랄대로 자랐고 가난탈출에 성공한 지금은 그 아픔이 나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추억이 됐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을 만드는데 엄청나게 중요한 요소가 됐을지도 모른다.

아직 후세가 없지만 아이들이 생기면 걔들은 정말 나와는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랄텐데, 혹시 거기서 오는 차이가 생각보다 크면 어쩌나하는 걱정이 있다. 서로 다른 경험을 하고 자랐기 때문에 걔들은 나를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혹은 내가 생각하는 중요한 인성/인품을 형성하는데 거의 필수적인 경험이 가난과 고난이라서 내가 계속 애들에게 실망하고 아쉬워하게 되면 어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