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차.
이분은 헌정 덕에 윤, 검찰, 문제적 사법부 등으로부터 보호받고 있다고 믿고 있고, 나를 비롯한 상당수는 저들을 지켜주고 있는 게 지금의 체제라고 느끼고 있어서 선거로도 탄핵으로도 헌재 위헌판결로도 해결이 안되는 체제라면 엎고 새로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하는 거고. 제도 뿐 아니라 그 속을 채우고 있는 인적 요소도 갈아야 하는데, 서로 보호하며 저항하는 중이라서 필요없이 힘들고 오래 걸린다. 기득권으로 복잡하게 얽혀있어서 풀 수 없을 땐 칼로 끊고 다시 시작하는 게 맞다.
이분의 입장도 이해되고 아마 국민 다수가 그렇게 느낄 것 같은데, 사실 “헌법은 수호해야한다, 왜? 헌법이니까” 수준 논리밖에 안된다. 더 정교한 논리와 주장을 듣고 싶다.
헌재가 재판관 임명 거부는 위헌이라고 판결을 해도 따르지 않는, 지금 이 헌정 체제를 거부하고 있는 게 저들이다. 이 거지같은 체제를 활용해 권력을 잡은 것도 모자라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 아예 이 체제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체제는 건들면 안된다고? 도둑은 칼을 휘두르고 있고, 경찰도 도둑편에 선 상황이지만 폭력은 불의니까 우리는 주먹을 들어선 안돼? 4.19는 뭐였고 6.10은 뭐였지? 우리가 뭔가 합법적인 수단으로 독재자를 밀어냈던 건가? 다 민중봉기로 체제가 전복되고 정부의 권위가 무너지고 자신들이 처형되기 직전임을 느끼고 권력을 포기한 경우다. 12.12 때 내란이 일어나는 것 보다는 일단 병력을 철수하자는, 체제 안에서 해결하자는 안일함이 전두환 정권을 불러왔고. 4.19 때도, 6.10 때도 저들이 만약 우리가 체제까지 엎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면 절대 물러나지 않았다. 근데 지금 상황에 우리는 체제를 지켜야 해? 겨우 38년 유지된 체제에 뭘 그리 미련을 갖나. 마치 언제나 이 모습이었고 언제나 이 모습이어야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런 태도였으면 4.19도 6.10도 실패했다.
지금 저들은 분명 우리가 대한민국의 현 체제까지는 건들지 않을거라는 자신감으로 필요할 때만 체제 뒤에 숨어서 장난을 치고 있다. 우리가 뒤엎고 판을 새로 짜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그렇다. 당장 용산으로 민중이 밀려들어가 자신들의 목을 따거나 하는, 법치가 중단되고 헌정이 중단되는 초법적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다. 옛날 이승만 전두환 때와 달리 최근 민주당은 착하다는 믿음이 있다. 왜 그런 믿음을 주나?
검찰이 정권을 잡은 것도, 언론과 국힘의 연대를 통하긴 했지만 대한민국 체제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자신들의 직무관련 권한을 이용해 권력을 잡았다. 그걸 허용하고 다 좋고 인정하는데 윤이 최종적으로 계엄이라는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었기 때문에 윤 탄핵을 외친 게 아니다. 이 따위 일을 허용하는 체제 자체를 탄핵하기 위해선 윤을 먼저 끌어내려야 했을 뿐이다. 계엄 한참 전부터 탄핵을 요구했다. 헌재가 시간 끌며 간보기를 하는 것도, 1심에서 이재명에게 유죄를 선고한 판사도, 다 이 체제 안에서 자신들이 가진 합법적 지위를 이용해서 하고 있다. 우리 얼굴 보면서. 실실 웃으면서. 난 이 체제를 규탄한다.
현 체제에서는 이 말도 안되는 윤석열 따위를 끌어내리는 것조차도 저들의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만 가능해서 이렇게 힘들고 다시 지들끼리 석방시키는 꼴을 봐야하고, 탄핵 인용도 저들의 결단만 기다리는 수 밖에 없고, 국힘이 아무리 나라를 거덜내고 민주당이 바로 집권해 아무리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어도 다시 국민이 국힘을 뽑게 되어있다. 지금 정권 교체가 이제 눈 앞까지 왔다고 또 그냥 넘어가면, 한 10년 뒤에 또 다시 현 체제의 헛점을 이용해 언론과 손잡고 국민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며 제 2의 윤석열이 제 2의 이재명을 압수수사하면서 합법적으로 권력을 잡으면, 또 그래도 그 체제 안에서 싸우는 수 밖에 없다고 할 건가.
그리고 법치와 헌정은 이미 윤석열이 검찰총장일 때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이미 깨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윤석열이 대선기간 동안 뻔한 거짓말을 해도 선거법 위반으로 걸리는 일도 없고, 마누라 수사를 피하겠다고 계엄을 하고, 헌재 판결을 권한대행이 무시해도 다들 "뭐지.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 하고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거다. 법치가 중단됐고 헌정이 중단된 상태라서 그렇다. 이미 농구경기는 중단됐고 상대팀은 몽둥이를 들고 우리를 때리고 있고 심판도 함께 우릴 때리고 있는데 우리팀에게 드리블 하지 않고 걸으면 트레블이라는 소리는 그만하자.
조세제도 개혁을 통해, 엄격한 세법적용을 통해, 재벌개혁을 통해, 다양한 개혁을 통해 부의 재분배를 유도해서 양극화를 해결 하는 게 바람직하겠지만 아무리 해도 안될 땐 그냥 토지개혁처럼 한 번에 반창고 떼듯 해결하는 게 낫다. 사회개혁도 점진적 개혁에 실패하고 또 실패했으면 이제 인정하고 다른 좀 더 극단적인 시도라도 해야 한다. 미국이 최상위층 소득세 95%로 중산층을 만들었던 것처럼. 프랑스가 독일부역자들을 처형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단번에 해결하고 넘어갔던 것처럼. 남북전쟁 후 미국이 남부 주들을 식민지로 관리하며 재교육과 개혁부터 이루고 나서 다시 연방에 받아줬던 것처럼. 새 체제에서는 존재해서는 안되는 것들을 어떻게든 구 체제 안에서 구 체제를 통해 고치려하지 않고 초법적, 초헌법적 수단으로 단번에 해결하고 나서 새 체제를 출범시켰다. 그렇게 해도 괜찮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지금 내란범들을 상대하고 있다. 내란. Insurrection. Civil war. 전쟁이 났었다는 말이다. 우리 지금 전후 처리를 논하고 있다. 전범들이 지금도 구석 구석 중요한 권력을 다 쥐고 있는 체제 하에서 전후 처리가 안된다면 그 체제를 버리고 새로 만들어야 한다. 전쟁 원인을 제거하지 않은 상태에서 체제 유지를 통한 안정은 불가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