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베네틱토 16세는 요한 바오로 2세 승하하고 컨클레이브가 시작될 때 후보군에도 없던 사람. 승하하신…
교황 베네틱토 16세는 요한 바오로 2세 승하하고 컨클레이브가 시작될 때 후보군에도 없던 사람.
승하하신 프란치스코는 2013년 당시 76세로 너무 고령이라 선출 가능성이 없다고 했던 사람.
이번에 투표하는 추기경들 상당수가 프란치스코가 임명한 사람들이라 프란치스코의 의지를 이어갈 사람을 뽑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함.
교황 베네틱토 16세는 요한 바오로 2세 승하하고 컨클레이브가 시작될 때 후보군에도 없던 사람.
승하하신 프란치스코는 2013년 당시 76세로 너무 고령이라 선출 가능성이 없다고 했던 사람.
이번에 투표하는 추기경들 상당수가 프란치스코가 임명한 사람들이라 프란치스코의 의지를 이어갈 사람을 뽑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 함.

애플 vs 애플 – 2 음악 영화 출판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던 비틀즈가 중간 상인을 빼고 자신들이 직접 제작하고 유통하겠다 마음 먹은 건 분명 똑똑한 결정이었고 이후 많은 음악인들에게 교훈을 줬다. 물론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다 성공하진 못했고 특히 비틀즈가 해체되며 자회사들은 애플 레코드 빼고 거의 다 닫았다. 1. 애플 전자 원래 비틀즈가 알고 지내던 친구 중에 발명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제품 개발을 맡겼다. 진짜 가전이나 전자제품을 만들려고. 비틀즈 해체 전까지 하나도 성공시킨 물건이 없었다. 죄다 독특함만 추구해서 실용성이 없었다 한다. 2. 애플 필름 비틀즈는 새 앨범을 낼 때 영화를 제작해 개봉하는 시도를 했었다. 매직 미스테리 투어, 옐로 서브머린 등 영화들이 제작됐고 몇몇 비틀즈와 무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해체 뒤에도 조지 해리슨은 자신의 제작사를 세워 몬티 파이선의 라이프 오브 브라이언, 2010년에는 127시간을 제작하기도 했다. 3. 애플 퍼블리싱 저작권 관리 회사다. 비틀즈 음악의 저작권은 당시 다른 회사에서 관리하고 있었고 애플 퍼블리싱에서는 비틀즈가 새로 발굴한 다른 음악가들을 주로 관리했다. 나중에 비틀즈 노래 저작권들도 옮겨오려 노력했다. 나중엔 저작권이 많았던 비틀즈 멤버들이 대부분 제각기 저작권 관리회사를 세운다. 서적 발행도 제한적으로 몇번 했다. 4. 애플 레코드 역시 자회사 중 레코드 회사가 가장 컸고 활발했다. 비틀즈 자신들의 음반은 사실 EMI와 계약이 있어서 공동 발매를 주로했고, 애플 레코드의 진짜 힘은 소속 음악가들이 진짜로 훌륭했다는 거였다. 인도 시타르 음악가 라비 샹카르, 배드핑거, 빌리 프레스튼 등, 비틀즈 급의 상업적 성공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애플 레코드 만의 특성과 색을 만드는데는 완벽히 성공했다. 지금도 정상 운영 중이다. 5. 애플 유통 런던에 애플 부티크라는 가게를 열었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아름다운 물건을 살 수 있는 아름다운 가게”가 모토였고 이런 저런 물건을 다룰려 했지만 주로 패션 쪽이었다. 의류와 장신구. 개업하는 날 에릭 크랩튼 등이 와서 홍보해줬다. 돈을 너무 빠르게 허비해서 돈 많은 비틀즈로서도 감당이 안돼 6개월 정도 운영하고 폐업하며 모든 물건을 공짜로 풀었다. 6. 애플 스튜디오 녹음실이었다. 비틀즈는 애비로드 등 다양한 녹음실을 썼지만 애플 레코드 소속 음악인들은 거의 애플 스튜디오로 보내졌다. 75년에 폐업했다. —— 음악인들이 사업에 본격적으로 도전한게 비틀즈가 처음은 아니었으나 이후 음악 산업에 큰 영향을 줬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하나의 기업인것도 비틀즈에서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생각해보면 애플 컴퓨터가 시작한 건 애플 코어의 자회사들이 대부분 폐업된 후였지만 애플이라는 이름의 상표권을 갖고 있었으니 초반에는 비틀즈가 애플 컴퓨터를 쥐고 흔들었다고 봐도 된다. 사용을 허락해주는 수준으로. 2007년에 최종적으로 합의할 때는 애플이 비틀즈에게 무려 5억 달러를 주고 애플 이름의 모든 권리를 넘겨받았다. 비틀즈가 활동 당시 번 돈이 약 2-3억 달러였다. 물론 지금 물가로 생각하면 2-30억 달러가 되지만, 명목상으로는 애플에게서 받은 돈이 더 컸다.


애플 vs 애플 – 1 트럼프의 관세로 애플 주가가 폭락 중이지만 그래도 아직 거의 3조달러 시가총액이다.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다. 근데 이 애플이 창립되기 전에 애플은 이미 재벌이었다. 1960년에 결성해 세계를 정복하다시피해버린 비틀즈는 고민이 있었다. 돈도 많이 벌고 좋긴 한데, 개인 소득세 세율이 높았다. 아이디어를 내서 개인 자격으로 밴드를 하기 보다 회사를 차려 낮은 법인세를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1968년에 애플 코어 Apple Corps를 열었다. 어차피 세금으로 영국정부에 가려던 돈 2백만 파운드로 세운 회사라 사실 그 공짜돈으로 뭘 시도해도 상관없었다. 먼저 자회사 애플 레코드를 세워 거기서 모든 비틀즈 음반을 내기로 했고, 애플 전자, 애플 영화, 애플 출판사, 애플 통상 등 사업을 기획했고 실제로 진행했다. 애플 통상에서 애플 부티크라는 애플스토어(??)까지 개장했다. 물론 애플 레코드 외에는 큰 빛은 못봤다. 10년 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을 세우자 바로 고소했고 이겼다. 결국 잡스는 "애플 컴퓨터"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음악 사업에 진출하지 않고, 애플 코어는 컴퓨터 사업에 진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86년에 애플에서 미디 작곡 프로그램을 팔기 시작했을 때 애플 코어에서 바로 소송걸었다. 이겼다. 2650만불을 지불했다. 89년에 애플 직원 짐 릭스가 System 7 OS 개발 작업중에 시스템 사운드로 Chimes 라는 벨소리를 더했는데, 애플 코어와의 관계를 생각해 장난으로 Chimes 라는 소리 이름을 Sosumi로 바꿨다. 이 So sue me(그럼 고소해)라는 벨소리는 2020년까지 OSX에서 사용됐었다. 결국 2007년에 최종적으로 애플 상표권을 애플 컴퓨터에 다 넘기고 애플 컴퓨터는 애플로 이름을 바꾸고 애플이라는 상표권 사용을 애플 코어에게 허용하는 걸로 최종 해결됐다.


스타게이트나 블레이드 러너처럼 클래식이 됐고 어쩌면 완벽해 보이는 영화들이 알고보면 망작이 되기 일보직전이었고 자칫 촬영 중지 직전까지 갔다는 걸 생각해보면… 촬영장에서 그런 실제 고충과 갈등과 긴장감 없이도 화면에 그걸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예술가들도 물론 많지만, 이 영화들에서는 그런 의도치않은 갈등이 결국 영화 장면에도 남아서 전세계 팬들에게 감동을 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블레이드러너를 찍는 동안 리들리 스콧 감독은 늘 하던대로 묘한 몽롱한 분위기에 이미지와 영상으로 이야기 하길 원했고, 해리슨 포드는 스타워즈와 인디애나 존스로 대박을 친 직후에 또 하나의 튼튼한 연기에 바탕한 액션 영웅물이 만들어지길 기대했다. 스토리가 명확하고 캐릭터의 동기가 명백해야 관객이 감정이입하고 환호할 수 있다고 봤기에 형사로서도 그닥 유능해보이지 않고 영웅으로서도 특별한 점이 없는 데카드 역 자체에 욕구불만을 느꼈다. 예를 들어 포드는 데카드가 레플리칸트라는 걸 명확히 해서 이야기를 좀 더 직관적으로 만들며 깊이를 더하길 원했고 스콧은 애매하게 둬서 관객들이 제각기 가설을 만드는 걸 선호했다. 스콧은 그건 해결해주지 않고 계속 조명 세팅만 하루 종일 만지고 있었고 포드는 촬영은 언제할거냐고 고함을 질렀다. 둘이 계속 충돌했다. 둘은 영화 개봉 후 25년 간 서로 거의 연락하지 않았다. 스콧이 블레이드 러너 2049를 고사한 이유도 포드와 다시 일하는 게 힘들어서라는 루머가 있을 정도였다. 거기에 제작사와의 갈등까지 더해지며 제작사, 감독, 주연 배우 그 누구도 만족하지 못한 작품이 나왔다. 흥행에 실패했고 평가조차 안좋았다. 그러나 우리 관객들은 서서히 몽롱한 분위기, 그 속에서 뭔가 해결해보려고 이리저리 뛰는 주인공에 열광했다. 만들어진 갈등 느낌이 아닌 살아있는 분노와 두려움이 느껴졌다. 미래를 그리는 누와르물이자 멋진 영상미가 넘쳤고 첨단의 미래지만 하류인생을 그리는 사이버펑크 장르의 형틀이 완성됐다. 캐릭터들도 뭔가 극속의 인물들 같이 움직이지 않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들을 했다. 개봉 당시 흥행은 못했지만 명작 반열로 올라갔다. 해리슨 포드도 아마 2049 때 인터뷰에선가 그땐 스콧이 만들려는 영화를 이해 못했지만 지금은 이해한다며 그 갈등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자기는 그냥 완성된 영화를 만들길 원했고 스콧이 만든 건 팬들이 완성할 수 있는 고차원의 영화였다고.


합치고 그 안에서 또 자잘하게 쪼개서 갈라놓으면 됨. 육군 혼자만 돈 다 가져가고 별도 다 가져가니 썩는 것.
군도 회사처럼 모두가 할일을 하느라 바쁘면 딴 생각할 틈이 없는데, 모든 권력은 육사 출신들이 육군으로 가져가 즐기고 현대전에 필요한 공군과 해군은 상대적으로 장성도 몇 없고. 그러니 육사는 계속 쿠데타만 꿈꿈. 쓸데없이 많은 장성들이 할일이 없이 놀고 있으니까. 이걸 합치고 섞고 쪼개고 예산과 자리를 재조종하면 됨. 계속 개선하고 훈련하고 대비하느라 바쁜 군을 만들면 해결.
공수처를 만들어 대한민국 시스템의 큰 물결을 살짝 틀어놓으니 수년 뒤에 검찰 견제 결실로 돌아오는 것처럼 이것도 효능감 좋은 정책이 될 수 있음.

나무가지나 가시나무, 철조망 등에 자연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달려있는 작은 동물의 사체가 보이면 거의 대부분 때까치 shrike의 짓이다. 사냥해서 먹이감을 잡으면 뽀족한 나무가지 등에 꽃아서 보관하는 특성이 있다. 생긴건 한동훈같이 생겼가지고 하는 짓은 끔찍하네이.







1989년 다이하드는 사실 소설을 각색한 영환데, 그 소설은 형사 The Detective 라는 소설의 속편이었다. 형사는 1968년에 영화화 됐는데 주인공이 프랭크 시나트라였다. 89년에 속편을 제작하던 폭스가 시나트라에게 연락하니 이제 나이 들고 돈이 너무 많아서 못할 것 같다고 사양했다. 해서 인물 이름도 바꾸고, 나이도 줄이고, 새 배우 브루스 윌리스를 캐스트했다. 한스 그루버 역의 앨런 릭먼은 다이하드가 첫 영화였다. 첫 영화에 너무 강한 악역을 했다가 계속 악역만 하게 될까봐 되게 무서웠다고 한다. 실제로 릭먼은 악역을 많이 했다. 총을 쏘는 장면을 찍을 땐 아무리 연습해도 자연스럽게 쏴지지가 않아서 잘 보면 영화에서 한스 그루버가 총을 쏠 땐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을 감는다. 마지막에 빌딩에서 떨어지는 장면은 13미터 높이에 밧줄에 달아놨다가 그린스크린에 떨어뜨리며 찍었다. 원래 셋까지 세고 떨어뜨리기로 하고 둘에 떨어뜨려서 이렇게 놀란 얼굴을 끄집어냈다.

한국전 중에 장개석은 3만명의 중국군 파병을 이승만에게 제시했지만 대만을 지키는 게 낫다고 본 미군의 반대로 무산됐다. 그 후속 조치로 1953년 한국전이 끝날 무렵 이승만은 외교장관 변영태를 보내 대만 장개석과 비밀합의를 맺는다. 혹시라도 한국전이 재개될 경우 한국군은 북한을 지나 중국 북동부를 치고, 대만은 중국 남동부로 진격하기로.
1960년 이후 이승만이 없어지고 이 계획은 없던 일이 됐지만 이승만 때 대만과 한국 사이에는 정말 다양한 제안과 계획들이 있었던 것 같다. 둘 다 비슷하게 이념 대립으로 분단된 나라고 둘 다 친미 독재국가라 그랬는지 공동방위군 창설부터 일종에 연방 비슷한 개념까지 나왔었나보다.
제주 4.3에 직접 개입된 정황은 없지만 그 전해에 대만도 2.28 이라는 민중봉기 때 국민당 군이 민간인 수만 명을 학살했기에 이승만의 입장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2.28 때는 방조하던 미군이 4.3 때는 아예 서북청년단을 데려오는 등 사실상 지휘부 역할을 하며 주도했으니 2.28에서 배운 경험이 4.3에 적용된 것도 맞는 것 같다.
4.3 발생을 소련은 반미 프로파간다에 활용했고, 4.3의 진압 완료를 대만에서도 반공 홍보자료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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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론 브랜도는 너무 달달 외워서 줄줄 나오는 대사를 좋아하지 않았다 한다. 그래서 촬영 현장에서 여기저기 노트를 두고 참고하며 약간 더듬듯 연기하는 걸 선호했다. 엘리아 카잔과 함께 극적인 연기보다는 자연스런 연기의 유행을 주도했던 말론 브랜도답다. 물론 외우기 귀찮아져서 핑계를 댄 것일 수도 있다.


머스크와 테슬라의 계산은 복잡하다. 먼저 테슬라는 전기차 회사다. 전기차를 선호하는 건 주로 진보층이다. 머스크가 꼴통짓을 할 수록 테슬라 브랜드에 대한 진보층의 비토는 커진다. 머스크가 꼴통짓을 할 수록 극우층에서 머스크의 인기는 높아지는데 환경변화를 부정하는 극우들에게 테슬라나 전기차는 여전히 증오 대상이다. 머스크가 계속 꼴통짓을 하면 계속 판매가 줄어든다는 뜻이다. 극우들은 머스크에게 말로만 우쭈쭈 해주지 테슬라를 사지는 않을 거라. 머스크는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재산을 지키려면 꼴통짓을 멈추고 회사로 돌아가 사업에나 전념해야한다. 근데 머크스가 하는 사업 대부분이 중국이 더 잘하는 아이템들이다. 전기차, 로켓, 이제 로봇과 AI까지도. 머스크와 테슬라는 혼자지만 중국은 미국만큼 큰 나라다. 어차피 시간이 갈 수록 격차가 벌어져 머스크의 사업들은 전반적으로 축소될 수 밖에 없다. 난 머스크가 이 상황을 비관해서 사업으로는 이길 방법이 없으니 정치로 중국 전기차도 막고 해서 미국 시장만 보고 사업을 해보려는 건가 했다. 지금 생각은, 상황을 비관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은데, 어차피 테슬라는 살릴 수 없다고 판단한 게 아닌가 싶다. 중국발 전기차와 로봇의 도전이 너무 강해서. 머스크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라 사업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저렇게 꼴통짓을 하며 극우 쪽에 러브콜을 보내는 동기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렇게까지 해놓고 다시 몇년 전으로 돌아가 진보쪽으로 돌아설 방법은 없으니 아마 계속 극우층과 어울리며 관심을 먹고 살 거다. DOGE를 시작했을 때 이미 테슬라를 포기하고 극우층을 선택했다. 그럼 거기 앉아있다가 테슬라가 침몰하며 자신의 자산 대부분이 망가지는 걸 보며 망신 당하느니 차라리 테슬라와 불화를 겪고 이사회에의해 쫓겨나거나 하는 게 머스크로서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자신과 거리를 두고 다른 전문 경영인이 와서 테슬라 경영이 잘 되면 머스크의 자산도 지켜지는 거라 그걸 바라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