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May 2025

When the sun sets, shadows, that shewed at noon 석양이 기울 무렵엔,…

When the sun sets, shadows, that shewed at noon 석양이 기울 무렵엔, 정오에 미약하던 그림자들도 But small, appear most long and terrible; 길어지고 험상스러워지나니. – [Oedipus: A Tragedy], Nathaniel Lee & John Dryden, 1678 —- 별것도 아닌 명태균 키즈 중 하나인 이준석을 모셔가기 위해 후보직만 빼고 다 주겠다는 국힘을 보니…

“미국 흑인 장병들, 당신들 지금 미국 본토에서 KKK가 당신 가족들에게 하는 짓을 우리에게 하고 있는 거야…

"미국 흑인 장병들, 당신들 지금 미국 본토에서 KKK가 당신 가족들에게 하는 짓을 우리에게 하고 있는 거야" 비엣남전 중 —- Born in the U.S.A. 브루스 스프링스틴 Born down in a dead man's town 죽은 자의 도시, 죽은 듯한 마을에서 태어났지 The first kick I took was when I hit the ground 세상에 던져지자마자 얻어맞았어 You end up like a dog that's been beat too much 너무 많이 두들겨 맞아 기운 없는 개처럼 돼버리고 Till you spend half your life just covering up 인생의 절반은 그냥 상처 가리고 사는 데 써버려 Born in the U.S.A., I was born in the U.S.A. 미국에서 태어났어, 그래, 미국에서 태어났어 Born in the U.S.A., born in the U.S.A. 미국에서 태어난 인생, 그게 나야 Got in a little hometown jam 고향에서 사소한 문제에 휘말렸지 So they put a rifle in my hand 그래서 내 손에 소총을 쥐어줬어 Sent me off to a foreign land 낯선 땅으로 날 내보냈지 To go and kill the yellow man 노란 피부의 사람들을 죽이라고 말이야 Born in the U.S.A., I was born in the U.S.A. 미국에서 태어났지, 나는 미국인이야 Born in the U.S.A., born in the U.S.A. 하지만 그런 미국이 날 버렸지 Come back home to the refinery 전쟁에서 돌아오니 정유소로 돌아가야 했어 Hiring man says, "Son if it was up to me" 채용 담당자는 말하지, “내 맘대로면 널 뽑고 싶지만…” Went down to see my V.A. man 그래서 참전용사국(V.A.)을 찾아갔지 He said, "Son, don't you understand" 그가 말하더군, “이제 그 누구도 널 원하지 않아” I had a brother at Khe Sanh 케산 전투에 참여한 형이 있었어 Fighting off the Viet Cong 베트콩과 싸웠던 형이지 They're still there, he's all gone 그들은 아직 그곳에 있지만, 형은 돌아오지 못했어 He had a woman he loved in Saigon 사이공에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는데 I got a picture of him in her arms now 이젠 그녀 품에 안긴 그의 사진만 남았지 Down in the shadow of the penitentiary 교도소 그림자 아래 Out by the gas fires of the refinery 정유소의 가스불 사이를 맴돌며 I'm ten years burning down the road 난 10년째 이 길 위에서 타오르고 있어 Nowhere to run ain't got nowhere to go 도망칠 곳도, 갈 곳도 없어 Born in the U.S.A., I was born in the U.S.A.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I'm a long gone daddy in the U.S.A. now 이젠 미국 땅의 잊혀진 사내, 완전히 멀어진 그림자일 뿐. Born in the U.S.A., I'm a cool rocking daddy in the U.S.A. now 미국의 멋 좀 부리는 록스타 사내지, 겉만 번지르르한.

장담하는데 한국은 아직 잠재력이 넘쳐나는 나라다. 나라 영향력, 군사력, 다 5-6위로 나오는데 경제력이 아…

장담하는데 한국은 아직 잠재력이 넘쳐나는 나라다. 나라 영향력, 군사력, 다 5-6위로 나오는데 경제력이 아직 못 따라잡았을 뿐이다. 국가 시스템에 철밥통을 차리고 기생충이 되어버린 언론, 검찰, 사법부, 정치, 교육이 훌륭한 국민의 다리를 붙잡고 있다. 걱정 마시라. 조만간 이재명 대통령이 하나 하나 해결해준다. 좀 많은 일이긴 하지만 5년간 다른 거 못하고 개혁에만 온국민이 집중하면 다 될 가능성도 있다. 5년 안에 싹 다 고치고 새로운 나라가 돼서 동아시아 패권 놓고 미중일과 경쟁하는 거다. 적어도 다른 강대국들이 동아시아를 가지고 놀지 못하게 평화를 지키는 중-강대국이 될 수 있다. https://www.usnews.com/news/best-countries/rankings/power https://www.globalfirepower.com/countries-listing.php

애플이 키운 건 아이폰만이 아니었다 애플의 공급망 전략은 자사의 안정성을 위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

애플이 키운 건 아이폰만이 아니었다 애플의 공급망 전략은 자사의 안정성을 위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전략은 중국 제조업 전체의 숙련도를 한 세대 끌어올리는 기폭제가 되었다. 애플은 혁신했고, 중국은 그 혁신을 체계로 만들었다. 애플은 중국에 아이폰 생산기지를 구축하면서, 거의 모든 2차·3차 부품 공급사에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애플에만 납품하지 말고, 다른 고객도 확보해라.” 이는 착한 자본주의적 배려가 아니라 냉정한 리스크 분산 전략이었다. 애플 입장에서는 미래의 제품에서 해당 공급사의 부품 구매를 중단할 경우, 그 회사가 파산해버리면 언젠가 그 회사가 필요할 때 다시 쓸 수가 없게 된다. 차라리 살아남은 상태로 기다리게 하자는 계산이었다. 결국 이 조건은 공급사들에게 새로운 고객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이었고, 그 ‘다른 고객’ 대부분은 중국의 신생 스마트폰 기업들이었다. 이들은 애플을 통해 훈련된 고숙련 공급사들과 손을 잡으며 비약적인 품질 상승을 이뤄냈다. 그 공급사들은 단순히 부품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 정밀 가공·조립 공정·배터리 효율·방열·EMI 차폐 등 아이폰에서 축적된 최고 수준의 제조 기술을 신생 중국 기업들에게 전파하는 중계자이기도 했다. 그 덕에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출시 몇 년 만에 글로벌 수준의 품질과 성능을 확보할 수 있었고, 애플은 결과적으로 자신이 키운 공급망을 통해 경쟁자의 국가 산업을 간접 육성하게 된 셈이 되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렇게 형성된 고숙련 제조 기반은 스마트폰에서 멈추지 않고 곧바로 다른 산업 영역으로 확산됐다. 특히 전기차(EV), 드론, 무기체계 등으로의 수평 확산이 두드러졌다. EV는 배터리, 센서, 열관리, 정밀가공의 총합이며, 이는 아이폰 부품과 공정 대부분과 겹친다. 드론 역시 경량화, 통신칩, 고정밀 금형, 내열소재 등이 핵심인데 이 역시 아이폰 생산 기반과 기술적으로 일치한다. 중국의 군사용 드론이 상업용 수준을 뛰어넘으며 세계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러한 전환의 속도와 기반이 결정적이었다. 이런 기술의 ‘파급’은 단순한 산업의 발전이 아니라, 중국의 산업 체계 전반이 고도화된 구조로 재정렬된 결과다. 공급사 하나하나의 성장이 아니라, 국가 단위의 ‘스케일 업’이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애플의 통제 밖에서. 이 현상은 단지 “애플이 중국에 생산을 맡겼다”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애플은 중국에 스킬을 이식했고, 시스템을 내장했으며, 그 결과물은 글로벌 경쟁상대로 되돌아왔다. 중국의 여러 스마트폰 기업이나 EV 스타트업, 드론 기업들은 단순한 카피캣이 아니다. 이들은 애플 생태계 내부에서 실시간으로 역방향 기술학습을 진행한 파트너였다. 애플이 아이폰을 만든 것이 아니라, 애플이 중국 기술생태계를 생성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고의가 아닌, 리스크 회피를 위한 부차적 조치의 부산물로. 이전에도 비슷한 전례는 있었다. 일본의 소니는 1980~90년대 고성능 부품 공급망을 갖췄지만, 그건 그 파트너들이 완제품 경쟁 자체가 불가능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은 처음부터 완제품을 만들 수 있는 공급망과 자본, 내수 시장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었고, 애플은 그 엔진에 고급 연료를 붓는 역할을 해버렸다. 삼성은 이 점을 간파했기 때문에 한국의 하청 구조는 철저히 종속형으로 설계되었다. 삼성 없이는 살 수 없도록 만든 공급망은 단기적으로는 안정적이었지만, 국가 산업의 독립성과 수직 확장 가능성을 가로막기도 했다. 결국 애플은 자신이 만든 기술의 총합보다, 그 기술을 학습한 국가가 더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례가 되었다. 기술은 총보다 빠르게 국경을 넘었고, 무기를 건넨 손은 결국 총구의 반대편에 서게 되었다. 오늘날의 애플은 여전히 세계 최고의 기술기업이지만, 그들이 공장을 세웠던 도시들은 이제 애플 없이도 스마트폰을 만들고, 전기차를 조립하며, 자국산 무기를 수출하고 있다. 애플이 만든 건 단지 아이폰이 아니라, 애플 없이도 움직이는 제조국가였는지도 모른다. —- 패트릭 맥기의 저서 [Apple in China]는 애플이 중국에 미친 영향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맥기는 애플이 2015년 한 해에만 중국에 550억 달러를 투자했으며, 이는 당시 미국의 반도체 산업 지원 법안인 CHIPS Act의 4년간 투자 규모를 초과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애플은 중국에서 수천만 명의 엔지니어를 교육하여, 이들이 중국 내 다른 산업에서도 핵심 인력으로 활동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https://www.smartkarma.com/ko/insights/episode-117-talking-apple-in-china-with-patrick-mcgee

지금은 반윤으로 이미지 세탁 중이지만 한동훈은 윤석열 정부 전반기 최소 절반의 지분이 있는 총리급 법무장관이…

지금은 반윤으로 이미지 세탁 중이지만 한동훈은 윤석열 정부 전반기 최소 절반의 지분이 있는 총리급 법무장관이었다. 윤석열은 화재가 나도, 경제가 힘들어져도, 엑스포 유치에도 한법무를 불러 일 시켰다. 이태원 참사가 한동훈 법무장관 때 마약사범 마약사범 하며 실적 올려보겠다고 하다가 일어난 일이다.

1973년 2월 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마오쩌둥이 헨리 키신저와 마주 앉았다. “중국은 가난한 나라입니…

1973년 2월 17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마오쩌둥이 헨리 키신저와 마주 앉았다. “중국은 가난한 나라입니다. 가진 건 별로 없어요. 여성 인구가 너무 많다는 걸 빼면 말이죠.” (웃음) 키신저가 재치 있게 받아쳤다. “그쪽은 수입 할당제도 없고, 관세도 없겠군요.” (더 큰 웃음) 마오는 망설임 없이 직구를 던진다. “원하신다면 수만 명쯤 보내드릴 수 있어요.” 저우언라이 총리는 옆에서 슬쩍 보탠다. “물론 자발적으로 간다는 전제 하에.” 마오는 다시 웃으며 마무리한다. “그들을 미국에 보내면 재앙을 일으킬 겁니다. 우리는 짐이 줄어들겠고요.” (폭소) 기록은 CIA 해제 문서(“Memorandum of Conversation between Chairman Mao and Dr. Kissinger,” 1973년 2월 17일)에 분명히 남아 있다. 당시 마오의 발언은 농담처럼 들렸지만, 그 표정과 맥락을 보면 절반쯤은 진심이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인구 문제는 이미 심각했고, 중미 간 외교 카드로 인구를 꺼내든 이 대목은 정치가 아니라 무역협상에 가까웠다. 당시 미국은 비엣남전의 후폭풍과 여성해방운동, 인종갈등으로 정신없던 시기였다. 거기다 중국 여성 수만 명이 “이민”을 오겠다고 하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키신저는 웃으며 받아쳤지만, 웃음 뒤에 계산기 돌아가는 소리는 마이크에 안 잡혔을 뿐이다. 이 발언을 듣고 닉슨이 뭐라 했는지는 공식 기록에 없다. 다만 키신저는 워싱턴 복귀 후, 내부 회의에서 “중국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냉정하고, 훨씬 더 유연하다”고 보고했다. 정치가 말장난처럼 보일 때, 사실 그 말장난이 핵보다 무서운 신호일 때가 있다. 1970년대 초, 미중 수교는 탁구가 아니라 이런 대화들 속에서 이루어졌다. 사람 수를 무기로 꺼내는 나라. 그걸 듣고 계산하는 나라. 그리고 50년 후, 그 이야기조차 잊어버린 나라들. 트럼프는 올해 하버드 대학이 외국인 학생들 등록하는 걸 막았고 법원에서 다시 트럼프를 막는 가처분 명령을 내린 상황이다. 트럼프가 성공하고, 그들을 받아주겠다고 발표한 홍콩 과기대에 수천명의 하버드 학생들이 가게 된다면 이건 희극으로 봐야하는 건지 운명의 장난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