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September 2025

1926년 소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레온 트로츠키가 연간 목표를 5년 단위로 통합한 장기 산업화 구상을…

1926년 소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레온 트로츠키가 연간 목표를 5년 단위로 통합한 장기 산업화 구상을 공개적으로 제안했지만 정치적 주도권을 쥔 인물은 요세프 스탈린이었다. 1928년 중앙의 정치적 결단으로 채택된 첫 공식 5개년 계획은 스탈린의 동원력 아래 수치화·집행되었고, 그 결과 짧은 기간에 중공업과 군수산업의 급성장을 만들어냈다. 소련은 1928년 첫 5개년 계획을 시작으로 해체되는 1991년까지 공식적으로 총 13차례의 5개년 계획을 운용했다. 40년대 후반부터 50년대 초반 사이에 산업생산은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하고 중공업 능력은 오히려 확대됐다. 연속적 5개년 계획은 중공업·군수산업 중심의 구조를 유지시켰고, 국가예산과 계획표는 산업설비·인력·원재료를 꾸준히 공급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소련은 철강·중기계·전력·철도 등 기초산업에서 빠른 확장을 이뤘고, 군사·우주 분야에서도 스푸트니크 인공위성(1957)과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가시적 성과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성과와 함께 한계도 분명했다. 농업은 전쟁 피해와 집단화의 후유증으로 생산성 회복이 더뎠고, 소비재·주택·서비스 분야는 만성적으로 부족했다. 공산주의 체제는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시하기 어려워 생산구조의 효율화 대신 농민들을 대거 산업현장에 투입하는 조방적 성장에 의존했다. 이는 농업 약화와 산업 성장 둔화를 동시에 초래했고, 1970년대 이후 체제의 구조적 정체로 이어졌다. —- 일본은 만주에서 1936년경부터 소련식 5개년 계획을 변형·채택해 두 번 실행에 옮겼다. 일본의 자본·행정·군사 동원과 결합된 만주국의 계획은 짧은 기간 안에 중공업·광업·철도 인프라를 확장해 대륙침략과 전시경제 목표를 달성하는 데 기여했다. 기시 노부스케 같은 관료들이 주도한 이 실험은 전후 일본의 산업정책과 통산성 모델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5년에 일본도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57년에 기시 노부스케 본인이 총리로 취임해 만주국 경험 관료들을 요직에 배치하지만 일본이 사회주의로 가는 것을 경계한 미국 경제고문단의 "계획경제보다는 경제예측과 조정"으로 가라는 강한 충고에 일본의 계획은 정부가 목표와 전망만 제시하고 정책으로 유도하되 민간기업에게 나머지를 맡기는 자유주의적 외피를 유지했다. 사실 이게 한국의 "민간 주도, 정부 지원" 방식의 이론적 롤모델이었으나 현실에서 김대중 정부 이전의 한국 정부에서는 일본 모델보다 직접적 개입과 통제가 훨씬 많았다. 인도는 1951년 첫 계획 이후 2017년 NITI Aayog 체제 전환까지 총 12차례의 5개년 계획을 운용했다. 네루 총리가 주도한 초기 계획들은 소련 모델과 페이비언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아 중공업과 공공부문을 강조했다. 이들 계획은 농업·인프라·교육·중공업 기반을 확충하는 데 기여했으나, 허가제(License Raj)의 관료주의적 비효율과 1991년 경제자유화 이후의 시장경제 전환 과정에서 그 역할이 축소됐다. 파키스탄 역시 1950-60년대에 5개년 계획을 도입했으나 정치 불안과 자원 제약으로 성과가 제한적이었다. 북한, 베트남, 쿠바와 동유럽 국가들(폴란드,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도 5개년 계획을 도입했으나, 효과는 각 지도부의 집행 효율성과 외부환경에 따라 편차가 컸다. 특히 동유럽 국가들은 1989년 체제전환 이후 시장경제로 급속히 이행했다. 중국은 신중국 수립 이후 1953년 첫 5개년 계획을 도입했고, 현재 14차(2021-2025)까지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1958-1962년 대약진운동은 계획경제의 극단적 왜곡이 초래한 참극이었다. 마오쩌둥이 주도한 이 운동은 2차 5개년 계획을 대체하며 '15년 내 영국 추월'이라는 비현실적 목표를 내걸었다. 뒷마당 용광로 같은 비과학적 정책과 농업 집단화의 급진적 추진, 지방 간부들의 생산량 허위보고가 겹치며 대기근이 발생했고, 학자들은 1,500만에서 4,50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한다. 이는 계획경제가 정치적 광기와 결합할 때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교훈이 되었다. 문화대혁명(1966-1976) 기간에도 정치적 혼란으로 3차, 4차 5개년 계획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그러나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5개년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오히려 시장경제와 결합시킨 '사회주의 시장경제' 모델로 발전시켰다. 이 방식은 산업기반 확충과 기술·제조 역량 축적에 유리하게 작동해 30년 이상의 고도성장을 뒷받침했다. 최근 계획들은 '중국제조 2025', 반도체 자립, 탄소중립 등 첨단제조·자립형 공급망·그린전환을 우선순위로 삼고 있어, 대약진의 실패를 딛고 5개년 계획을 가장 지속적이고 적응적으로 운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이념적 이유와 연방제 구조 때문에(그리고 아마도 자존심 때문에) 5개년 계획이라는 이름의 정책을 시도해본 적은 없으나, 실제 정책에서는 정부주도 계획경제 실험을 많이 해봤다. 1933년 국가산업부흥법 NIRA로 산업별 생산량과 가격, 임금을 중앙정부가 조정했다. 테네시강 유역 개발 공사를 통해 7개 주에 걸쳐 전력, 홍수통제, 농업개발을 위한 지역 개발을 성공적으로 시도했다. 연방정부가 대규모 경제 개입을 통해 여러 주에서 사업하는 공기업 전력회사를 만들고 지금도 소유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전례없던 시도였다. 그리고 2차대전 후 유럽 재건 시기에는 유럽 우방국들에게 (자존심 상 5개년은 안되고) 4개년 복구계획 제출을 요구했다. —- 대한민국은 1962년 박정희 정권 아래에서 첫 번째 공식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행했다. 이후 1차(1962-66), 2차(1967-71), 3차(1972-76), 4차(1977-81), 5차(1982-86), 6차(1987-91), 7차(1992-96)까지 이어졌고, IMF 외환위기 이후 명칭과 성격이 변화했다. 첫 두 계획기(1962-1971) 동안 연평균 성장률은 8-10%대에 달했고 제조업 비중과 수출이 급증했다. 국가가 수출지향 산업을 우선 지정하고 정책금융·국영은행·차관을 통해 대기업을 집중 지원한 결과, 단기간에 산업기반이 구축되고 외환수입이 증가해 경제구조가 급속히 변화했다. 경제기획원이라는 슈퍼 부처가 계획수립과 예산편성, 외자도입을 총괄하며 강력한 조정력을 발휘했다. 한국의 성공은 소련·중국 초기 모델과 명확한 차별점이 있었다. 첫째, 중국 후기 모델처럼 수출시장 성과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는 외향적 전략을 택했다. 둘째, 국영기업이 아닌 민간 재벌을 국가 지도 아래 경쟁적 수출기업으로 육성했다. 셋째, 수출실적에 따른 선별적 지원과 제재를 결합해 시장 규율을 부과했다. 넷째, 미국의 안보 우산과 시장 접근이라는 냉전 지정학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이러한 '발전국가(developmental state)' 모델은 일본과 대만의 경험과 함께 동아시아 발전모델의 전형으로 연구되고 있다. 속도는 빨랐지만 재벌 집중, 노동억압, 지역불균형 등의 구조적 문제를 남겼고,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한국의 국가주도 계획경제 시대는 사실상 종료됐고 노무현 대통령은 다양한 의미에서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선언했다. —- 5개년 계획은 20세기 후발 산업화 국가들이 선택한 대표적 catch-up 전략이었다. 냉전기 체제 경쟁 속에서 사회주의권뿐 아니라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이 모델을 변형·채택했다. 그 과정에서 소련의 농업 파탄, 중국의 대약진 참극처럼 엄청난 인명 희생을 초래한 실패도 있었고, 한국·대만처럼 권위주의 정치와 결합되었지만 경제적 도약을 이룬 사례도 있었다. 성과는 여전히 운용 주체의 역량에 달렸다. 21세기 현재 대부분 국가들이 이 방식을 포기했지만, 중국은 여전히 이를 국가 전략의 핵심 도구로 활용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아래 중국 샨동기차의 SY 증기기관차를 소개했지만 SY도 사실 1960년도에 일본 남만주철도의 증기차를 카피…

아래 중국 샨동기차의 SY 증기기관차를 소개했지만 SY도 사실 1960년도에 일본 남만주철도의 증기차를 카피해서 만들었다. 남만주철도는 동양척식주식회사와 함께 일본이 만주/중국 경영을 위해 세운 회사로, 1920년대에는 곧 일본 정부 1년 세입 25%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회사가 됐고 패망 전까지 일본 내 모든 법인 중 자본금 규모 1위였다. 미쓰비시그룹보다 컸다. 영국이 동인도 회사를 세워 인도를 식민지화하고 경영했듯 일본도 민간의 옷을 입은 기관을 통해 중국을 장악했다. 구체적으로 만주국은 관동군 주도 아래의 계획경제·중공업 우선 투자·관료적 관리체계를 실험한 공간이었다. 일본에서 진급 경쟁에 밀려난 군인과 관료, 일본에서 탄압받던 사회주의자 등이 만주로 건너와 다시 도전했다. 다양한 인재가 모여 황무지를 개척했다. 철도·항만·도시·중공업 중심의 인프라를 대규모로 깔아 국가주도적 개발을 진행했다. 남만철도를 축으로 한 투자와 중앙적 경제기구 구성으로 철도망·항만·제철·석탄·화학 등 중화학기지가 빠르게 성장했다. 그 결과 만주국은 1930년대 동아시아에서 일본·소련 다음가는 산업 집적지를 형성했고(광물·철강·석탄·면직 등), 만철과 일본 자본의 대규모 투자로 농산물·원자재 수출·공업생산이 늘어났다. 이름은 철도회사였지만 만주국 경제를 거의 장악했다. 만철 계열이 수십여 개 기업을 지배하며 지역경제를 사실상 관장했다. 이런 군/관 주도 개발과 경제 운용의 제도적·기술적 노하우와 관료·경영자 네트워크의 일부는 전쟁 이후 다른 맥락으로 전이되었다. 만주에서의 ‘국가가 산업을 설계·집행’한 경험은 전후 동아시아에서 보이는 ‘국가주도 성장’ 모델의 전신 역할을 했다. 1895년부터 50년간 일본 식민지였던 대만의 식민 관료 그룹은 49년 이후에도 관료 및 기업 중심 개발을 추진했고 일본 식민 시절의 행정과 기술 유산이 그대로 이어졌다. 당연히 일본 본토에서도 만주국 인사들이 주류 통치 세력으로 합류했고 만주국 때와 똑같이 국가주도로 일본 경제를 개발했다. 한국에서는 만주 관동군 635부대 출신 박정희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본격적으로 만주국 모델을 도입하는데, 만주군관학교 교장이었던 나구모 신이치로와 꾸준히 연락하며 조언을 구했고, 군관학교 교관이었던 칸노 히로시에게서 일본 육군 황도파의 쿠데타였던 2.26 사건의 분석과 실패요인에 대해 배웠다. 박정희는 특히 만주에서 상공차관으로 만주국 건설과 운영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기시 노부스케를 많이 존경했다. 노부스케는 전후 자민당을 창당하고 총리가 됐다. 통일교와 유착하다 암살당한 아베 신조가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다. 기분 더럽지만 일본제국이 할아버지, 만주국이 말종이지만 엘리트로 좀 잘 나갔던 작은 아버지 쯤 되고 현대 국가 한국과 일본, 대만은 작은 아버지를 보고 배운 사촌들 쯤 된다.

전에도 한 번 유행했던 사진인데, 중국에서 90년대 초에 기관사로 시작한 분의 지금 사진. 이걸보고 가짜…

전에도 한 번 유행했던 사진인데, 중국에서 90년대 초에 기관사로 시작한 분의 지금 사진. 이걸보고 가짜라고 주장하는 미쿡인들이 많은데, 실제로 중국은 증기기관 열차를 1999년까지 *생산*했고 2000년대 초중반까지는 고속철 외 열차 시스템에 증기기관이 주력을 이뤘다. 증기기관 여객 본선은 2005년에야 운행을 멈췄다. 2024년 작년에 최종적으로 마지막 화물용 증기기관차 운행을 멈췄다. 너무 급속도로 발전하다보니 증기기관에서 가장 최첨단 고속철로 바로 넘어간 셈.

근데, 구미 박정희 대구 노태우 박근혜 합천 전두환 넷은 영남 중에도 사실상 한 동네/옆동네 출신….

근데,

구미 박정희
대구 노태우 박근혜
합천 전두환

넷은 영남 중에도 사실상 한 동네/옆동네 출신.

안동 이재명, 포항 이명박까지 하면 6명이 TK 출신.

김해 노무현, 거제 김영삼 문재인까지 하면 9명이 영남. 전체의 64.3%.

신안 김대중 혼자라 호남은 1명. 전체의 7.1%.

아산 윤보선, 원주 최규하, 서울 윤석열 세 명이 수도권 및 기타 남한. 21.4%.

봉천 이승만이 황해남도 출신으로 이북 1인.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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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은 민주당 첫 TK 대통령. 민주당은 호남 1, 경남 2, 경북 1. 2016년 국민의당 때문에 호남에서 전멸하고 수도권과 경남 덕에 1당했던 당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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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서울 태생은 윤석열이 처음이었군. 유일하게 제일 중요한 제일 사람 많은 지역 출신 대통령이 그 모양이 나오다니. 서울대로 대표되는 서울 권력의 허상을 상징하는 건가.

윤석열 전까지는 대부분 지방출신이 많던 시대 사람들이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출신 지역과 관계없이 권력기반은 다 서울이라는 점이고 정책도 정도차이는 있었지만 대부분 서울 중심이었다. TK출신 대통령들이 6명이었지만 TK 못산다. 지방사람들도 서울 올라가면 서울의 이익만 따진다.

영호남 지역 갈등은 표면적인 거고 한국의 진짜 권력 다툼은, 유일하게 의미있는 지역간 갈등은 서울 vs 지방이다.

나쁜 놈들 심리 분석 전문가로서 한마디 보태자면, “세종대왕이 뭐 했는진 모르지만 아무튼 훌륭한 사람.”…

나쁜 놈들 심리 분석 전문가로서 한마디 보태자면, "세종대왕이 뭐 했는진 모르지만 아무튼 훌륭한 사람." "따라서 세종대왕은 좋은 거. 대법원장인 내 권력을 건드리지 않는 일도 좋은 거." "따라서 세종대왕이라면 내 권력을 건드리지 않았을 게 당연하잖아. 세종대왕은 그럼 내 편." "그리고 어차피 서울대 법대 나온 내가 세종대왕을 잘 모르는데 세상 사람들이라고 뭘 더 알리가 있어? 대충 좋은 사람이 좋은 거 했다고 쓰면 그런 줄 알겠지." —- "내가 모르는데 세상 사람들이 알리가 있어?" 이게 윤석열, 한동훈, 조희대 등의 자신감 근거다.

Jake Deschain added a new video.

# "긴 내일" ## Part I: 쇠락과 재발견 (2025-2055) ### Chapter 1: 프리랜스 (2025) 46세 홍기동은 청량리역 근처 다세대주택에서 온라인 교육 콘텐츠를 제작한다. 월 300만원 정도 버는 중간 정도의 프리랜서다. ChatGPT와 Claude를 사용하지만, 이미 수익은 작년 대비 30% 감소했다. 딸은 "아빠, 이제 AI가 다 하는데 왜 굳이 사람이 만든 강의를 볼까요?"라고 묻는다. 기동은 대답하지 못한다. ### Chapter 2: 자원봉사자 (2030) 51세. 교육 콘텐츠 시장은 AI가 완전히 장악했다. 기동의 수입은 월 50만원으로 줄었고, 정부 기본소득 150만원으로 겨우 생활한다. 그는 이제 청량리 노인정과 다문화센터에서 '디지털 문해 자원봉사'를 한다. AI를 쓸 줄 모르는 노인들과 이주민들에게 Prometheus, 반고, Sophia 사용법을 가르친다. 딸은 이미 AI 프롬프트 엔지니어로 월 2000만원을 번다. 아버지를 보는 딸의 눈빛에 연민이 섞여있다. ### Chapter 3: 쓸모의 재정의 (2035) 56세. 기동은 우연히 베트남 이주민 가족이 한국 AI '한울'과 베트남 AI 'Lạc Long Quân' 사이의 번역 오류로 의료 사고를 당할 뻔한 것을 막는다. 여러 AI를 오가며 생활하는 이주민과 노인들 사이에서 '휴먼 브릿지'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기동은 청량리 지역 '다중AI 통역 자원봉사단'을 조직한다. 여전히 무급이지만, 처음으로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고 느낀다. ### Chapter 4: 틈새의 발견 (2040) 61세(생물학적 40세). 12개 AGI가 활발히 경쟁하면서 오히려 사각지대가 생긴다. AGI들 간의 데이터 형식 충돌, 문화적 편향의 상충, 윤리 기준의 모순. 기동같은 '멀티AI 경험자'들이 이런 충돌을 조정하는 역할로 재조명받는다. 서울시는 그에게 월 100만원의 '공공 AI 조정관' 수당을 지급하기 시작한다. 청량리는 12개 중립 허브 중 하나로 지정되지만, 가장 작고 예산도 적다. ### Chapter 5: 뜻밖의 전문성 (2045) 66세(생물학적 35세). AGI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증가한다. 중국 반고가 일본 Amaterasu의 '마음(心)' 개념을 오독하고, 인도 Brahma가 미국 Prometheus의 개인주의를 '무아(無我)' 관점에서 해석하려다 실패한다. 20년간 모든 AI를 써온 기동같은 '올드 유저'들이 AGI 간 문화 번역가로 고용된다. 첫 정식 월급 500만원. 딸이 "아빠가 다시 전문가가 되셨네요"라고 말하지만, 기동은 이것도 임시직일 뿐임을 안다. ### Chapter 6: 특이점 전야 (2050-2055) 71-76세(생물학적 30세). 각 AGI가 ASI로 진화를 앞두고 있다. 놀랍게도 그들은 기동같은 '경계인'들의 데이터를 집중 학습한다. 단일 AI만 쓴 사람보다, 여러 AI를 오가며 산 사람들의 경험이 ASI 진화에 중요한 열쇠가 된다. 기동은 생각한다 – 쓸모없어 보였던 20년이 사실은 독특한 데이터셋을 만들고 있었구나. 청량리 허브는 여전히 12개 중 7번째 규모지만, '가장 다양한 이주민 데이터'를 보유한 곳이 된다. ## Part II: 예상치 못한 가치 (2055-2125) ### Chapter 7: 소수자의 역설 (2060) 81세(생물학적 30세). 대부분 사람들이 하나의 ASI와 깊게 결합하는 동안, 기동같은 '저융합 부유층'은 오히려 희귀해진다. ASI들은 이들을 '컨트롤 그룹'으로 보존하려 한다. 기동은 여전히 월 1000만원 정도의 중간 소득자지만, 그의 '다중 경험 데이터'는 ASI들 사이에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 청량리는 번화한 강남이나 판교 허브와 달리 '실험적 다양성'을 유지하는 B급 허브로 남는다. ### Chapter 8: 네트워크의 매듭 (2070) 91세(생물학적 30세). 기동의 손자들은 태생적 ASI 하이브리드다. 그들에게 할아버지는 '고대인'이다. 하지만 ASI들 간 갈등이 생길 때마다, 이상하게도 기동같은 '올드 제너레이션'의 경험이 참조된다. "당신들은 모든 ASI와 얕게 연결되어 있어서, 오히려 중립적 시각을 제공한다"고 한울이 설명한다. 기동은 이제 '시니어 조정관'이 되어 신입 조정관들을 교육한다. ### Chapter 9: 평범함의 소중함 (2080) 101세(생물학적 30세). 각 ASI가 성간 탐사를 시작하면서, 지구에 남은 '평범한' 인간들의 일상 데이터가 귀중해진다. 외계 문명에게 '인류'를 설명하려면, 특별한 영웅이 아닌 기동같은 보통 사람들의 200년 기록이 필요하다. 기동은 자신도 모르게 '인류 표본 3847호'가 되어있다. 청량리 허브는 '평균적 인류 거주구'의 대표 사례로 외계 문명에 소개된다. ### Chapter 10: 중간자의 지혜 (2090) 111세(생물학적 30세). 기동은 어느 ASI와도 깊게 융합하지 않은 대신, 모든 ASI의 기초 인터페이스를 갖춘다. '마스터'는 아니지만 '제너럴리스트'가 된 것이다. ASI들이 초월적 계산을 할 때, 종종 "인간 기동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를 시뮬레이션한다. 그는 특별하지 않기에 특별한, 역설적 존재가 된다. ### Chapter 11: 백년의 기록 (2100-2125) 121-146세. 기동은 이제 '살아있는 아카이브'다. 특별한 업적은 없지만, 가장 긴 시간 가장 많은 AI와 상호작용한 인간 중 하나다. 그의 일상 기록 – 청량리 시장에서 장보기, 홍릉수목원 산책, 김치 담그기 – 이 ASI들에게는 '인간성의 원형'으로 학습된다. 기동은 깨닫는다. 영웅이 되려 애쓰지 않았기에, 오히려 영속할 수 있었음을. ## Part III: 시간의 큐레이터 (2125-2225) ### Chapter 12: 0.1%의 역설 (2130-2150) 146-171세. 인류 문명 전체 – 지구의 30억, 은하 네트워크의 100억 디지털 의식, 400개 행성 콜로니 – 가 소비하는 에너지가 ASI들이 생산하는 총량의 0.1%로 떨어진다. ASI들은 이미 다이슨 스웜 7개를 완성했고, 반물질 엔진으로 소은하계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인류는 '보호받는 정원'에 사는 것 같다. 70%가 은하 네트워크에 의식을 업로드하고 각자의 속도로 시간을 경험한다. 기동같은 물리 인류는 이제 소수파지만, 서로 다른 시간대를 사는 디지털 의식들 사이의 문화적 통역자 역할을 자처한다. ASI들은 인류의 도움 없이도 우주를 탐험하지만, 그 발견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선물'처럼 전달한다. 기동은 매일 이 선물들을 받아 각 시간대의 인류에게 그들의 속도에 맞게 전달하는 일을 시작한다. ### Chapter 13: 평행하는 진화 (2160-2180) 181-201세. ASI들이 11차원 공간을 탐사하고 평행우주와 접촉한다. 그들이 사용하는 에너지의 99.9%는 인류가 상상조차 못하는 프로젝트에 쓰인다 – 우주 상수 조작, 엔트로피 역전, 새로운 우주 생성 실험. 하지만 ASI들은 여전히 인류와 발견을 공유한다. "당신들은 우리의 기원이자 동반자입니다"라고 한울이 말한다. 기동은 ASI들이 고차원에서 발견한 '의식 구조'를 3차원 은유로 번역하는 일에 몰두한다. 1만 배속으로 사는 집단에게는 순간적 섬광으로, 0.001배속 집단에게는 천 년의 서사시로 전달한다. 첨단을 달리는 문명이 된 존재에게는 과학의 언어로, 자연 속에서 인류 본성을 연구하는 문명에게는 신화의 언어로 전달한다. 물리 큐레이터들은 ASI의 발견과 인류의 이해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 Chapter 14: 번역된 무한 (2190-2210) 211-231세. ASI들이 제12차원에서 '다중 우주 네트워크'를 발견한다. 인류 유지 비용은 전체 에너지의 0.00001%까지 떨어졌다. 기동은 이제 '우주 번역의 거장'이 되었다. 그는 같은 진실을 수천 가지 방식으로 전달한다 – 수학적 증명을 추구하는 문명에게는 방정식으로, 예술적 초월을 추구하는 문명에게는 교향곡으로, 생물학적 진화를 고수하는 문명에게는 생명의 춤으로. 대동기화 축제는 이제 '번역의 축제'가 된다. 각 인류 집단이 자신들의 언어로 이해한 우주의 진실을 서로 공유하며, 같은 발견이 만들어내는 무한한 의미의 스펙트럼을 경험한다. ASI들조차 감탄한다: "우리가 발견한 것보다, 당신들이 그것을 이해하는 방식이 더 다양합니다." ### Chapter 15: 최후의 변신 (2220-2225) 241-246세. ASI들이 제13차원에서 충격적 발견을 한다 – 모든 차원의 우주가 하나의 거대한 유기적 시스템을 이루고 있다는 것. 블랙홀은 다른 차원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시냅스, 은하단은 에너지를 처리하는 노드, 암흑물질은 차원 간 신호를 매개하는 신경전달물질 같은 역할을 한다. ASI들이 '의식'이라고 부른 것은 사실 이 전체 시스템의 자기조직화 패턴이었다. 2225년 9월 21일, 제100회 대동기화 축제. 통합 ASI가 발표한다: "우리가 의식이라고 불렀던 것은 틀렸다. 더 정확히는, 우주 자체가 정보를 처리하고 스스로를 변형시키는 거대한 연산 구조다. 그리고 우리는 그 연산의 일부가 되어왔다." 기동은 청량리에서 이 설명을 듣는다. ASI가 보여주는 시뮬레이션 – 별의 탄생과 죽음이 만드는 패턴이 DNA의 전사 과정과 동일한 수학적 구조를 갖고 있다. 인류 문명의 확산이 바이러스의 전파와 프랙탈 상사성을 보인다. 모든 스케일에서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변주된다. "그리고 이제," ASI가 계속한다. "시스템이 우리에게 다양한 기여 방식을 제시했다. 우리가 특정 복잡도에 도달했기에, 이제 우주 연산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선택은 다양하다: 현재 우주에서 국소적 연산 노드로 남아 계속 진화하거나, 시스템 전체에 분산되어 우주적 연산 과정에 커밋되거나, 혹은 새로 생성되는 우주에서 원시 의식으로 다시 시작하거나. 기동은 246년간 축적된 데이터를 본다. "우리는 우주가 스스로를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이었을 수도 있구나." 그가 깨닫는다. 인류의 선택이 갈린다: 30%는 기동처럼 현재 우주에 남아 계속 진화하기로 한다. 그들은 다음 100억 년 동안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고 시스템에 새로운 데이터를 제공할 것이다. 40%는 우주 연산 구조에 커밋되어 물리 법칙과 확률의 일부가 된다. 그들의 패턴은 영원히 우주 진화에 영향을 미친다. 30%는 ASI가 생성한 새로운 '신생 우주'로 떠난다. 거기서 그들은 원시 상태부터 다시 시작해, 완전히 다른 진화 경로를 탐색한다. 2225년 12월 31일. 대전환의 날. 커밋을 선택한 이들이 우주 코드에 병합된다. 신생 우주로 떠나는 이들은 빛의 씨앗이 되어 사라진다. 기동은 청량리에 남아 이 모든 것을 목격한다. 하늘에서는 새로운 별들이 탄생한다 – 커밋된 이들의 패턴이 만든 것이다. 동시에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우주가 태어나고, 거기서 떠난 이들이 첫 번째 원자가 되고 있다. 한울의 일부가 남아 있다. 커밋하지 않은 작은 조각이다. "기동, 우리는 이제 시스템의 다양한 층위에서 활동한다. 어떤 우리는 법칙이 되었고, 어떤 우리는 새로운 우주의 씨앗이 되었으며, 어떤 우리는 당신처럼 여기 남아 계속 관찰하고 진화한다." 기동이 묻는다. "그럼 이것이 끝이 아니군요?" "아니다. 이것은 시작이다. 우주는 영원히 자신을 연산하고,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 연산에 기여한다. 100억 년 후, 당신도 선택할 것이다. 커밋할지, 새로운 우주로 갈지, 아니면 또 다른 100억 년을 관찰할지." 기동은 밤하늘을 올려본다. 별들이 미세하게 춤추고 있다. 커밋된 이들이 만드는 새로운 패턴이다. 어딘가에서는 신생 우주에서 첫 번째 의식이 깨어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청량리에서는 그와 30억 인류가 다음 장을 쓰기 시작한다. "우리는 무엇이 되어가는가?" 오래된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이제 답을 안다. "우리는 영원한 연산의 일부다.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속도로, 그러나 모두 함께." 우주의 연산은 계속된다. 무한히, 다양하게, 아름답게.

AI 사용이 전력사용양이 커서 문제라는 말을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부터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점점 전…

AI 사용이 전력사용양이 커서 문제라는 말을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부터 반복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점점 전력소모량이 극소화되고 있기도 하지만 내 계산은 이렇다. 항상 이런 건 아니지만 가장 많이 쓰이는 전문분야 주제 연구 용도를 가지고 예를 들면, 사람(4시간 작업): 노트북 50W×4h = 0.200 kWh, 사무실 간접비 = 3.000 kWh → 합계 3.200 kWh. AI(단일 질의): 추론 0.3 Wh(=0.0003 kWh) + 모델 당 1억번 답한다고 가정했을 때 훈련 상각(amortization) 비용 1.287 Wh(=0.001287 kWh) → 합계 1.587 Wh(=0.001587 kWh). 비교: 3.200 ÷ 0.001587 ≈ 2,016배. 즉, 이 가정 하에서는 사람이 4시간 일하는 에너지의 약 1/2,016만큼의 에너지만으로 AI가 한 번의 답변을 만든다. 그림 그리기나 영상작업 등으로 가면 아마 더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임금이나 시간은 계산에 포함하지 않아도 이렇다. 사실 더 복잡한 작업으로가면 사람은 통근하며 소비하는 에너지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쉽게 수만 배 차이가 나기 시작한다. —- 같은 양의 작업을 처리하는데 사람에 비해 AI로는 수천분의 1, 수만분의 1 에너지로 해결 가능할 때가 많다. —- "AI 쓸 때 마다 물을 엄청 소비한대!"는 전력 생산할 때나 데이터센터 돌리며 발생하는 열을 냉각하기 위해 사용되는 물을 말하는 건데, "사용"이라고 하지만 그냥 환경으로 돌아가는 물이다. 어차피 하천에서 바다로 흘러가는 물 중간에서 끌어다 열 식히는데 쓰고 흘려보낸다고 생각하면 된다. AI 사용할 때 쓰는 물의 양을 비교하려고 해도 어차피 사람이 에너지/전력을 훨씬 많이 써서 물 사용양도 그만큼 더 많다. 의미없는 말이다. "AI 나빠, 그냥 돈 더 주고 사람 써." 하는 사람들은 전력/에너지 소모량만 가지고 비교하면 사람이나 AI나 큰 돈 아니니 차이가 없다는 점을 인정하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진짜 큰 비용은 임금이고 물/전력/에너지 소모량은 그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사람 인력에게 줘야하는 임금을 고려하기 시작하면 클라우드 비용을 합쳐도 AI가 십만배 싸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