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s October 2025

노벨상을 못받아 시무룩했던 트럼프가 AI, 양자컴퓨팅, 핵융합은 자기가 지원하는 분야니까 그 분야에서 나오는…

노벨상을 못받아 시무룩했던 트럼프가 AI, 양자컴퓨팅, 핵융합은 자기가 지원하는 분야니까 그 분야에서 나오는 노벨상은 자기꺼라며 양자역학에서 노벨상이 나왔으니 자신의 첫 노벨상이라고 횡설수설. 애초에 일산화탄소 중독자같은 논리지만, 양자컴퓨팅 지원한다며 왜 양자역학 노벨상을 탐내.

디퓨전 모델은 지금의 AI 이미지 생성 기술을 대표하지만, 근본적으로 느리고 비효율적인 구조를 안고 있다….

디퓨전 모델은 지금의 AI 이미지 생성 기술을 대표하지만, 근본적으로 느리고 비효율적인 구조를 안고 있다. 쉽게 말해 ‘완성된 그림을 거꾸로 되짚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먼저 이미지를 완전히 노이즈로 망가뜨리고, 그걸 수백 번의 단계를 거쳐 다시 복원해 나가는 식이다. 결과는 아름답지만, 과정은 엄청난 계산량과 전력 소모를 요구한다. 마치 1000조각짜리 퍼즐을 일부러 부수는 과정에서 그 그림에 대한 정보를 얻은 뒤 다시 그 조각으로 열심히 비슷한 모양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지금은 이게 유일한 방법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사실 중간 샘플링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수많은 이미지는 실제로 쓰이지 않고 버려지므로, 그만큼의 에너지가 낭비된다. 이 방식의 가장 큰 한계는 속도다. 초고성능 GPU를 써도 한 장을 그리는 데 수 초에서 수십 초가 걸린다. 전력 효율도 나쁘다. 한 번의 생성마다 꽤 많은 전력이 쓰인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서 같은 품질의 그림을 실시간으로 얻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최근에는 ‘더 짧은 길’을 찾는 시도가 활발하다. 대표적인 게 ‘레이턴트 디퓨전(Latent Diffusion)’이다. 이미지를 직접 다루지 않고, 압축된 ‘요약 공간(잠재 공간)’에서 생성해 계산량을 줄인다. 쉽게 말해 압축 버전에서 대충 그린 다음에 정상 화질에서 개선하는 방식이다. 또 다른 흐름은 ‘GAN(적대적 생성망)’과의 결합이다. GAN은 머신러닝을 통해 그림/사진 그리는 법을 훈련한 모델이다. 디퓨전과는 개념이 다르다. GAN은 한 번에 이미지를 그려내지만 품질이 불안정하고, 디퓨전은 안정적이지만 느리다. 둘의 장점을 섞어 속도와 품질을 동시에 노리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등장하고 있다. 최근엔 아예 발상을 바꾼 ‘열역학 기반’ 접근도 나온다. 노이즈를 거꾸로 되짚는 대신, 에너지가 가장 안정된 ‘자연스러운 상태’를 직접 찾아내는 방식이다. 마치 물이 흘러내려 결국 고요한 연못에 이르듯, AI가 스스로 가장 균형 잡힌 그림 상태를 찾도록 유도한다. 이런 방식은 계산 단계를 크게 줄이고, 물리 법칙에 가까운 효율을 목표로 한다. 마치 미로 퍼즐을 푸는데 확률적으로 가장 답일 가능성이 높은 곳만 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디퓨전은 갈 수 있는 모든 길을 동시에 시도하며 그 중 더 나은 길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이번에 Extropic이라는 회사에서 새로 내놓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약속한대로라면 100분의 1, 1000분의 1 로 처리 시간과 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다. 하드웨어 차원에서 에너지 기반 모델을 직접 샘플링해, 확률 분포 자체를 이용해 이미지를 생성한다. 중간 샘플링 같은 게 없다. 두고봐야겠지만 사실이면 AI 기술은 다시 한번 도약을 앞두고 있다.

2011년 이후 북한의 권력구조를 김정은의 권력 유지 입장에서 보자면 쿠데타 가능성이 있는 김정일 시대 핵심…

2011년 이후 북한의 권력구조를 김정은의 권력 유지 입장에서 보자면 쿠데타 가능성이 있는 김정일 시대 핵심인물들을 꾸준히, 주기적으로 숙청했다. 특히 군부 실세들을 많이 날렸다. 리영호 총참모장, 김격식, 현영철, 김정각 등 군 인사들을 조용히, 그리고 공개적으로 숙청했다. 일부는 해임, 일부는 처형됐다. 군이 갖고 있던 무역, 자재, 외화사업 등 경제 권한도 내각과 당으로 이관됐다. 형식적으로는 고난의 행군이 끝나 군이 스스로 유지비를 자급해야할 필요가 사라졌기 때문이고, 실제로는 역시 핵전력 완성으로 더 이상 선군의 필요성이 크지 않고 또 동시에 쿠데타 가능성을 낮추기 위함이었다. 집권 초기에는 김정일의 내각과 선군정치를 그대로 물려받는 척했지만 그 뒤로 사실상 일방적으로 군 권력을 해체하고 있다. 당 중앙위원회의 권한을 복원/확대하면서 아예 당이 군을 지도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시진핑도 최근 군 통솔권을 당에게 위임하며 비슷한 권력구조 개편을 시도했다. 트럼프가 윤석열의 계엄 등을 보고 배우듯 중국도 북한을 따라하는 부분이 있다. 동시에 장성택과 김정남 등 친중 인사들을 빠르게 제거했다. 김정은이 체제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거나 예기치 못한 일을 자꾸 벌일 경우 장성택이 들고 일어나고 김정남으로 지도자를 교체하는 중국의 시나리오를 무력화 시켰다. 이는 사실 김일성이 56년 8월 종파사건으로 친소련 연안파, 친중국 파 등을 모조리 숙청하고 단일체제를 만든 것의 재판이다. 정리하면 김정은의 북한은 군이 약화되고 당이 강해졌으며 김정은 1인에게 권력이 더 집중됐다고 볼 수 있다. 핵도 있겠다, 러시아와 중국과의 관계도 최고 상황이라 이래저래 김정은의 잠자리가 편할 것 같다. 북한이 지난 10년간 조용한 이유가 자신감이다.

1950년 2월 14일 모스크바에서 마오쩌둥과 이오시프 스탈린이 중소 우호 동맹 상호 원조 조약을 맺었다….

1950년 2월 14일 모스크바에서 마오쩌둥과 이오시프 스탈린이 중소 우호 동맹 상호 원조 조약을 맺었다. 45년 승전 후 경제 재건에 집중한 소련과 49년에 건국된 사회주의 중국이 본격적으로 손을 잡는 계기였다. 아직 청나라-러시아 시절 식민주의 잔재가 남아있던 두 사이를 소련이 뤼순과 다롄 조차권을 중국에 반환하고 만주철도 경영권을 완전히 넘겨주며 정리했다. 소련은 동시에 3억달러 규모의 차관을 제공해 중국의 1차 경제5개년계획의 시작을 도왔다. 이는 한국전에서의 협력 등으로 이어지나 53년 스탈린의 사망과 중소 노선차이가 심화되면서 60년대 초 중소 분열로 이어진다. 중국과 소련은 국토분쟁으로 69년에 소규모 전쟁까지 벌린다. 소련은 중국 핵공격을 검토했고 중국도 소련의 핵우산을 믿지 못하고 64년에 핵실험에 성공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이미지와 달리 스탈린은 키가 165cm였고 마오쩌둥은 180cm 이었다.

1968년 1월 23일, 동해의 겨울 바다에서 미 해군 정보수집함 USS Pueblo가 북한 해군에게 포위됐…

1968년 1월 23일, 동해의 겨울 바다에서 미 해군 정보수집함 USS Pueblo가 북한 해군에게 포위됐다. 당시 임무는 단순한 전자정보 수집이었다. 공해상 항로를 지키고 있었지만 북한은 자국 영해 침범을 주장하며 기관총을 겨누었다. 선장은 자신들의 기관총 두 정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저항 대신 선내 자료를 파괴하려 했지만, 서류 소각기는 고장 나 있었고, NSA의 암호 매뉴얼과 감청장비 대부분이 그대로 노획됐다. 이 사건은 미국 정보사에 있어 ‘현대 정보전의 최악의 손실’로 기록된다. 승조원 83명은 북한으로 끌려가 11개월간 억류됐다. 북한은 그들을 “제국주의 침략자”로 내세워 국제 언론 앞에서 머리를 숙이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선전용 사진마다 손가락 욕을 슬쩍 섞어 넣었다. 북한은 처음엔 그 의미를 몰랐고, “하와이 행운의 손짓”이라며 웃으며 공개했다. 뒤늦게 모욕의 의미를 깨닫자 가혹한 구타가 이어졌다. 그들은 ‘참회 편지’도 강요받았다. 하지만 그 안엔 교묘한 조롱이 섞였다. 한 선원은 “우리는 북한의 관대한 대우에 깊이 감사드린다. 김일성 동지께서는 우리의 지도자이시며, 우리 같은 peon들에게까지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라고 썼다. 겉보기엔 충성의 문장 같지만, peon은 pee on과 같은 발음이라 우리가 북한 니들에게 오줌을 싼다는 뜻으로 읽히는 내용이었다. 북한 통역관은 이를 ‘평민’ 정도로 이해했고, 그대로 공개했다. 미국은 전쟁까지 고려했다. 당시 린든 존슨의 백악관은 핵무기 사용 시나리오까지 검토했지만, 결국 냉전의 확전 위험을 감수할 수 없어 외교 협상으로 방향을 틀었다. 11개월 후, 판문점을 통해 포로들이 석방됐다. 미국은 ‘유감과 사죄’를 담은 문서를 서명하되, 귀환 직후 그 문서의 효력을 공식 부인했다. 미국이 실제로 북한에게 공식적으로 간첩질에 대해 사죄했다. 미국이 미개한 독재국가라고 깔보고 조롱하던 나라에게 사죄한 일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자존심을 제대로 구겼다. 미국은 자존심이 너무 상해서 공식 사과하고 포로를 돌려받은 뒤 다시 공식적으로 그 사과를 취소하는 안해도 될 속좁은 짓을 했다. 그러나 푸에블로호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원산에 정박해 있던 배는 1990년대 평양 대동강변으로 옮겨졌고, 관광객들이 내부를 볼 수 있게 꾸며졌다. 최근에는 서해안의 새 전시장으로 이전됐다. 이 이동 자체도 미국을 향한 상징적 조롱이었다. 냉전의 잔재를 마치 전리품처럼 옮겨다니며, 여전히 미 해군 마크를 단 채 선전용 배로 세워둔 것이다. 사진은 체포된 푸에블로 호 선원들. 가운데 손가락을 바짝 세우는 선원들. 북한 측과 포로 석방 협상하는 미국. 석방된 미 선원들을 환영하는 미육군참모총장 찰스 본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