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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da 음질이 좀 이상하게 나오는 것 같은데 그래도 시킨대로 잘 만드네잉… —- clean instrumental jazz trio in piano bass drums; expressive piano leading with spontaneous improvisation and lyrical phrasing; upright bass warm, melodic, and responsive; light, sensitive brush drums with prominent dynamic swells and in a pocket; live acoustic room feel with natural reverb; emotional and introspective tone, blending classical influence and free-flowing jazz interplay; tempo around 72 bpm; contemplative and organic atmosphere, contemporary jazz trio, mixed exceptionally https://suno.com/s/HihtHpFtBnT8mI1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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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노에 가서 곡을 부탁했다. 들을 곡이 없을 땐 그냥 내가 만들어서 들어도 될 것 같다. 열심히 섹션을 나눠서 설명했는데 잘 모르겠다. —- intro is sparse instrumentation with soft ambient pad and synth and light sub bass with moderate 76 bpm and minimal groove, mid-energy triphop pop, rhythmic, ambient, gentle, minimal, rich, soft, pre-chorus starts building with more layers and slightly climbing pitch and intensity and rhythmic, light, pop, then verse is gentle with subtle bass groove and slight reverb to highlight ambience and harmonically minimal, then chorus is full instrumentation with full rhythm with prominent bass and synth and rich harmonies and hook melody https://suno.com/s/U127JaJVUu56Aq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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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90년대 일본 전자산업의 전성기는 눈부셨다. 소니, 파나소닉, NEC, 히타치가 서로 경쟁하며 TV, 오디오, 반도체, 부품을 쏟아냈다. 세계는 ‘메이드 인 재팬’을 품질의 상징으로 여겼고, 일본의 가정은 자국 브랜드로 가득했다. 그러나 사업 방향은 항상 일본 내수 시장이었고 경쟁을 위해 각자 독자 규격을 고집한 결과, 생태계는 조각났다. 협업도 있었지만 중복 경쟁이 많았다. 뜯어보면 소니도 NEC와 샤프 부품으로 제품을 만드는 등 서로 공급은 하면서도 호환은 안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특히 일부 회사들은 수익보다 포맷 싸움, 패권 싸움에 집착했다. 서로 경쟁하는 플랫폼들이 많았다. 그 틈을 파고든 게 삼성이다. 부품에서 완제품까지 모든 걸 그룹 내부에서 만드는 수직화 구조로 전환하며, 연구개발과 생산, 유통까지 일사불란하게 묶었다. 그 집중력은 일본의 분산된 구조를 압도했다. 같은 예산으로도 더 빠르게 기술을 모으고, 더 싸게 대량 생산할 수 있었다. 제조 단가만 내려간게 아니라 반도체/LCD/휴대폰 성장에 힘입어 매출과 영업이익에서도 일본 기업들을 압도하기 시작했다. 삼성의 승리는 일본 제조업이 남긴 틈을 꿰뚫은 조직 구조의 승리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 역사가 반복된다. 이번에는 중국이 내수 시장이라는 괴물 같은 규모로 삼성을 압박했다. 한국은 삼성 같은 종합 기업 몇개가 경쟁하지만 중국은 제각기 다른 분야에 집중하는 회사들도 규모가 모두 크다. 제각기 경쟁하지만 또 동시에 중요한 부분에서는 정부의 지휘를 따라 규격을 정하고 움직인다. 게다가 애플이 중국에 생산망을 만들며 거기에 참여한 수백개의 중국 기업들의 기술력이 금방 삼성을 따라잡았다. 처음듣는 스마트폰 회사들이 마구 생겨나는데 품질이 모두 좋았다. 작은 나라의 수직화된 한 기업의 효율보다 중국의 수천 개 기업의 생산 네트워크가 당연히 더 강력했다. 부품부터 완제품까지, 삼성의 과거 전략을 국가 차원에서 재현하며 글로벌 공급망과 수요를 흡수했다. 그리고 파운드리. 삼성이 메모리, 디스플레이, 배터리, 스마트폰까지 전선을 넓힐 때, 대만의 TSMC는 오직 파운드리 하나에만 집중했다. 고객이 될 모든 기업의 경쟁자가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다른 사업을 포기했다. 그 ‘비경쟁의 전략’이 세계 모든 팹리스 수요를 끌어당겼다. 삼성은 완벽한 수직화를 이룬 기업으로서 모든 팹리스와 경쟁자 입장이다. 시간이 갈 수록 파운드리 사업에서 밀릴 수 밖에 없고 규모에서 압도 당하고 기술력에서 뒤쳐졌다. —- 해결책은 사실 하나 밖에 없고 삼성도 알고 있다. 파운드리를 분사하고 독립시켜야 한다. 애플이 TSMC가 아니라 그 파운드리에 주문을 보내도 그 신기술이 삼성 갤럭시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확신을 줘야한다. 소유도, 이름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이미 국민연금이 대주주일텐데 내 생각엔 아예 국영 기업으로 바꾸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스마트폰 시장은 이미 둔화하기 시작했다. 이제 AI, 센서, 배터리 등에 특화된 시장에 집중하는 게 유리하다. 모든 걸 다 만들려 하지 말고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TSMC는 이제 너무 커졌다. 경쟁하기 힘든 상대지만 TSMC는 느려질 수 밖에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은 R&D 예산을 집중해야 뭔가 돌파구가 나올 수 있다. 특히 지금 엔비디아에 의존 중인 AI 칩 소스를 다각화하려는 노력이 엄청나다. 오픈AI, 구글, 모두 새 AI 데이터센터에 엔비디아 칩 대신 자신들이 개발한 칩을 넣으려 노력중이다. 지금 이대로 가면 모두 TSMC에 주문을 하게 된다. 한국이 빨리 움직여야 한다. —- 미중 갈등은 계속 된다. 특히 AI 칩 쪽에서 사업이 정치의 영향을 계속 받게 된다는 뜻이다. 지금은 미국 진영에 속하는 TSMC, ASML, NVIDIA가 있고, 중국 자생 기업들이 대립하는 상황이지만, 한국은 사실 제 3의 길을 제시해줄 수도 있다. 동남아, 인도 등과 연합해 생산체인을 분산하고 한국은 설계-소재-품질 허브가 되는 방식이다. 어차피 수요도 앞으로 그쪽 국가들에서 많이 나오게 되니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도 이게 필요하다. 미중 양쪽 모두와도 거래가 가능하고, 미국이나 중국이 정치적 이유로 다시 난동을 부려도 한국 주도의 생산연합 자체적 수요로 버티는 게 가능해진다. 신자유주의와 전세계 공통 생산체인이 무너져가는 상황에는 다각화와 분산이 살길이고 이게 미중 갈등을 어느 정도 줄여주는 효과까지 올 수 있다.

내 생각엔 다음 총선에 부산경남 벨트 탈환은 당연하고 노재헌 현 주중대사와 함께 대구 간다고 본다. 물론…

내 생각엔 다음 총선에 부산경남 벨트 탈환은 당연하고 노재헌 현 주중대사와 함께 대구 간다고 본다.

물론 이건 훗날 얘기고 당장은 개혁과 외교협상이 더 급하다. 근데 이재명과 노재헌 조합에서만 가능한 일들이 있을 것 같다. 그걸 놓치고 나서 민주당이 대구경북을 '민주화'할 기회가 언제 또 오겠나.

더불어 노태우 정권 때 소련 중국과 수교, 기술협력, 차관외교 등을 해놔서 지금 우리가 지금 다양한 카드를 들고 미중러와 같은 판에서 플레이하는 게 가능해졌다. 특히 러시아에 차관주고 무기기술과 로켓기술을 받아온 건 정말… 평소 김종인 욕 많이 하지만 그때 경제수석으로서 차관 구조 설계 잘 했던 것 같다. 이양호 이홍구 정원식 등이 역할을 했던가 그랬을 거다. 민간에서는 박태준, 대우/현대중공업에서 역할을 했다고 한다.

구식 미그 설계, 구식 스커드 미사일 설계, 구식 로켓 엔진 핵심 기술, 잠수함 일부 기술, 러시아 최신 전자 레이다 기술 다 받아왔고 오늘날 FA-50, 현무, 나로호 등에 다 들어가 있다.

민주당 대통령들 외에 제대로 된 대통령이 없다고 평소 말해왔지만 그 중에 그래도 다시 볼 구석이 많은 게 노태우다. 그때 한국회사들이 러시아 시장에 단번에 대거 진출하기도 했다. 윤석열 덕에 많이 퇴거해버렸지만.

좋건 싫건 지금 한국의 상당 부분에 노태우의 유전자가 들어가있다. 국민연금도 그때 시작했고 건보가 전국민으로 확대됐다. 고속철, 인천공항, 일산 분당 신도시 등 우리의 일상에 노태우의 결단이 남아있다.

우리가 하나회 숙청을 김영삼 대통령의 업적으로 알고 있지만 하나회 일색이던 군 인사를 의도적으로 비 하나회 출신으로 돌리고 실질적 해체를 시작했던 건 바로 하나회 창립 멤버 노태우였다. 자신도 하나회 쿠데타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김영삼 정부 때 단번에 숙청이 가능했던 건 노태우가 이미 하나회의 뿌리를 잘라 줄기의 실질적 영향력이 많이 사라진 후였기 때문이다.

대구의 자랑 노태우 대통령이 대구경북까지 21세기로 이끌어줄 수 있다면 정말 의미있겠다.

핵추진 잠수함의 전술적 핵심은 인류에게 태양계보다도 아직 미지의 세계인 바다를 엄폐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핵추진 잠수함의 전술적 핵심은 인류에게 태양계보다도 아직 미지의 세계인 바다를 엄폐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지구 궤도 밖에 수만킬로 거리의 물체도 추적하는 우리지만 바다 속에 들어가면 잘 못 찾는다. 그 속에 숨어있다가 어디인지 모를 장소에서 미사일을 쏘면 잡을 방법이 없다는 거다. 그리고 잠수함에서 쏘는 미사일은 핵이거나 고화력 미사일이라 큰 목표물을 대상으로 한다. 한국이 핵공격에 사라진 뒤 보복을 위한 외로운 마지막 작전이라던가. 드론, 전자전 등으로 급변하는 현대전 양상에서도 아직 그 의의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뜻이다. 반면 탱크 등 지상에서 비교적 느리게 움직이는 전력은 우크라이나전에서 봤듯 원격 드론의 쉬운 먹이감이 된다. 비싸게 생산한 탱크가 계속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푸틴은 얼마나 슬펐을까. 드론의 싼 가격과 기동력이라는 무적의 창을 막을 수 있는 무적의 방패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아이언돔 같은 엄청 비싼 방패가 있지만 금방 소진된다. 이란이 싼 드론 수천대를 보낸 뒤 주력 무기인 미사일과 초음속 미사일을 보낸 게 적중했다. 아직 최근 대규모 해상전이라고 할 전투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신기술이 어떻게 적용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사실 항모를 포함해 대부분 해상전력은 드론 등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미 미국도 예멘 후티 상대 작전에서 항모전단을 회피운용했다. 겨우 게릴라에게 항모를 침격 당할까봐 전전긍긍했다. 항모 자체도 비싼데 군 전력 상당부분이 그 항모전단에 집중돼 있다. 싼 드론으로 집중 공격하면 쉽게 포인트를 올릴 수 있는 취약점이 됐다. 몇조원 투자해야하는 단일품목 무기 중 항모 쪽은 완전한 생각 전환이 필요하다. 네트워크화, 무인 통합, 드론 전력이 없는 곳에서만 활동, 등 전략 수정이 필요하다. 핵추진 잠수함은 단점이 많지만 그래도 이런 이유로 일단 찬성한다. 상대적으로 앞으로도 몇십년은 유용할 가능성이 높은 기술이다. 아직 드론의 사정거리 밖에 있다. 사진은 아마 올해 취소된 한국 CVX 경항모 프로그램과 인류가 건조한 최대 최강 전함 야마토.

음… 핵잠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도 배치하기로 마음 먹으면 분명 장점은 있다. 일단 핵공격 저지력이…

음… 핵잠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도 배치하기로 마음 먹으면 분명 장점은 있다. 일단 핵공격 저지력이 올라간다.

이왕 만들어보는 거 한국만의 신기술을 많이 개발하는 쪽으로 가야한다. 기존 디젤 잠수함들에 충전 역할을 하는 기종을 만들어 현 전력의 작전 범위와 기간을 늘릴 수도 있고.

김종대 전 의원은 뭐 핵잠은 안좋은 선택이네 하는데 지금 세계 5위권에서 경쟁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내 계산으로 실보다는 득이 많다.

잎꾼개미는 저렇게 열심히 잎을 잘라 집으로 가져간다. 저 잎을 먹는 게 아니라 저 잎으로 곰팡이를 재배해서…

잎꾼개미는 저렇게 열심히 잎을 잘라 집으로 가져간다. 저 잎을 먹는 게 아니라 저 잎으로 곰팡이를 재배해서 먹는다. 잎꾼개미가 이런 농경을 시작한 건 6천만년 전으로 추정된다. 우리 인류는 약 1만년 전부터 시작했다. 잘라온 잎을 잘게 뜯고 씹어 펄프 상태로 만든 뒤 곰팡이 주식균주 균사 일부를 접종해 기른다. 굴 내부 온도와 습도, 통풍을 관리해 수확량을 최대화 한다. 새 여왕개미가 출가할 때 균사 일부를 가지고 가서 재배하기 때문에 개미와 곰팡이의 유전자가 함께 다닌다.

사실 저 때는 영국도 최고 소득층 세율이 83%이어서 비틀즈도 번 돈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내게 생겼었다. 사…

사실 저 때는 영국도 최고 소득층 세율이 83%이어서 비틀즈도 번 돈의 대부분을 세금으로 내게 생겼었다. 사실 그래서 열심히 집도 사고 롤스로이스도 사고 회사들도 차리고 했다. 지출하지 않으면 세금으로 내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40년대부터 60년대까지 최고 세율이 91-94% 였다. 국민들 대부분은 별로 많이 낼 일이 없었지만 최고 소득층은 거의 모든 소득을 정부에 냈다. 정부는 강한 복지 정책으로 역대 최대 중산층을 만들어냈고 이 중산층이 이후 미국이 소련과의 군비경쟁에 이기는 기반이 된다.

당시 기업 총수들은 한 100억을 벌어도 한 10억만 가져가니 굶지는 않았지만 입맛 다실일이 많았다. 그때 사실 미국의 컨트리클럽, 요트, 예술품 수집 문화가 붐을 이뤘다. 어차피 세금으로 낼 거 사업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무조건 지출했다. 기업들도 다양한 사유 휴양지를 만들었다. 골프 리조트, 스키 리조트, 선착장 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최고소득구간 소득세가 이렇게 높으면 저절로 소비와 투자가 장려되고, 동시에 부의 재분배가 이뤄져서 사회 불안이 낮아진다. 지금처럼 세율이 낮으면 번 돈을 그냥 쌓아둬서 경제에 동맥경화가 온다.

직원 10명이 15명처럼 강도높게 일해 회사에 더 많은 이윤이 남아도 어차피 세금으로 나간다. 그냥 20명을 채용해서 넉넉하게 일하는 게 훨씬 유리해진다. 그래서 고용이 늘고 사회 안에서 이익 순환이 활발했다. 가장 혼자 일해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아이들 학교 다 보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안하지.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그래픽카드 시장의 절대 강자는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Diamond Mult…

19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그래픽카드 시장의 절대 강자는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Diamond Multimedia)였다. 사실 EVGA나 GIGABYTE에 비교하는 게 더 적당할 수도 있지만, 그래픽카드 계에서 지금 엔비디아의 위상을 당시는 다이아몬드가 가지고 있었다. IBM PC용 확장보드 시장이 폭발하던 시기, 다이아몬드는 ‘SpeedStar’, ‘Stealth’, ‘Viper’ 시리즈로 DOS와 Windows 시대의 그래픽 수준을 업그레이드 시켰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PC를 사서 그래픽을 업그레이드하려 하면 매장 진열대에는 다이아몬드 박스가 있었다. 1994년에는 북미 시장점유율 1위, 전 세계 AIB(Add-in Board) 제조사 중 매출 1위를 차지했다. 엔비디아는 당시 아직 그래픽칩을 개발하던 신생 팹리스였다. RIVA 시리즈 이전까지는 다이아몬드 같은 보드메이커들이 엔비디아, S3, Cirrus Logic, Matrox, Trident가 만든 칩을 구매해 보드 완성품을 만들어 파는 구조였다. 쉽게 말해 엔비디아가 엔진을 만들면, 다이아몬드가 차를 조립해 판매하는 식이었다. 그만큼 다이아몬드는 칩메이커와 보드메이커 사이의 힘의 균형이 남아있던 마지막 세대의 주인공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3D로 넘어갔다. 2D GUI 가속 시대를 주도하던 보드메이커들은 3D 렌더링과 드라이버 최적화 기술이 필요해지면서 점점 칩 설계사에게 종속됐다. 엔비디아와 ATI는 직접 레퍼런스 보드를 만들고 드라이버 생태계를 통제하며 ‘GPU’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세웠고, 그 과정에서 다이아몬드 같은 보드 중심 회사들은 주도권을 잃었다. 그래도 다이아몬드는 혁신의 흔적을 남겼다. 1998년에는 세계 최초의 상용 MP3 플레이어 ‘Rio’를 내놓아 RIAA와의 소송을 통해 디지털 음악 플레이어의 합법성을 확립했다. 애플이 iTunes로 음악을 팔 수 있었던 게 다이아몬드의 승소 때문이었다. 그래픽카드에서 시작해 디지털 시대를 열어젖힌 셈이었다. 이 회사를 세운 사람은 한국 출신 1928년 생 이종문(Chong-Moon Lee)이다. 1970년대 미국으로 건너가 1982년 실리콘밸리에서 다이아몬드를 창업했고, 회사를 세계 1위 그래픽보드 브랜드로 키워냈다. 사업 매각 후에는 벤처투자자이자 자선가로 변신해 샌프란시스코 아시아미술관에 1,500만 달러를 기부하고, 자신의 이름이 붙은 ‘Chong-Moon Lee Center for Asian Art and Culture’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