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GPU 정책

–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 메타, 아마존 등 4대 빅테크의 올해 자본지출(CAPEX)이 370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 JP모건은 AI 산업이 2030년까지 투자 대비 10% 수익을 내려면 해마다 6500억 달러의 매출을 내야 한다고 추산했다.
– 아이폰 이용자 15억 명이 월 34.7달러를 내야 하는 규모다.
– 이렇게 비교해 볼 수도 있다. 넷플릭스 이용자 3억 명이 연간 180달러를 더 내야 하는 규모다. 맥스 바인바흐(애널리스트)는 “어떻게 계산해도 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존재하지도 않고 실현될 가능성도 희박한 수익을 위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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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AI 업계 손익 계산이 안 나오는 이유는 아직 저 회사들 중 한 두 개 남고 나머지가 망하는 단계를 거치기 전이기 때문이다. 지금 업계에 투자되고 있는 금액이 4-5개로 나눠지지 않고 한둘에 집중되더라도 AGI에 도달하기는 마찬가지고 투자 대비 이익은 확 올라간다. 지금 분산된 투자액을 가지고 경쟁중인 회사들이 모두 개발에 성공하고 모두 흑자를 내는 건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건 자본주의 사회에서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다.
똑같은 투자를 하고 있는 5개 회사가 있는 업계의 투자 회수를 말하자니 15억명 사용자가 매달 35불을 내야한다는 계산이지만, 그 중 4개 회사가 망하고 남은 회사가 흑자를 내기 위해서는 15억명이 매달 7불을 내면 된다는 뜻이다. 현실에서는 아마 두개 정도 회사가 남아 각자 7억명에게 15불씩 받아 살아남지 않을까.
예를 들면 RTX 5090 같이 엄청난 성능의 GPU를 개발하는데 한 5개 회사가 각자 투자해서 각자 상품을 내놓고 있는 상황을 연상하면 된다. NVIDIA가 이게 가능한 이유는 이제 사실상 독점체제고 세계에서 가장 큰 회사고 규모의 경제로 투자와 계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TSMC의 기술력이 훨씬 소규모인 삼성보다 월등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고만고만한 회사 5개가 경쟁중이었으면 그 누구의 기술력도 지금 TSMC 수준까지 가지 못했다.
철로망이나 초기 인터넷 망을 까는 사업과도 비슷하다. 구글, 메타, 아마존이 지금 사업이 가능한 건 닷컴 거품 시절 인터넷 망과 기술에 과도한 투자를 하고 망해준 기업들 덕분이다. 아직 아무도 흑자는 내지 못하지만 그래도 투자해서 최대한 망을 늘려야 본격적으로 인터넷 사업이 성장했을 때 큰 흑자를 노릴 수 있다. 그래서 많은 경우는 정부에서 투자해 망을 깔고나서 민간에 매매하거나 대여해준다.
AI 경쟁에서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 정부가 GPU 5-6만 장을 직접 소유하고 운용하기로 한 건 신의 한수가 될 수 있다. GPU같은 전략 자원이 한국 내에서도 경쟁 끝에 망하는 기업과 함께 방황하는 대신 정부 소유로 다양한 기업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 예를 들어 한국 정부가 공공 클라우드를 만들어도 된다. 한국의 AI 기업들에게 AWS, Azure 역할을 해주는 거다. 급속도로 기술적으로 도태돼 감가상각이 극한을 찍는 GPU는 지금 같은 개발 단계에서 스타트업들이 사모으기는 힘들다.
이재명 정부의 선택이 더 빛나는 건 지금 AI 모델 경쟁에서 오픈소스 모델들이 약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큰 회사들이 수백억달러를 투자해 개발하고 있는데 일단 AGI가 완성되고 비결을 알고나면 대부분 회사가 개발에 성공하거나 하는 상황을 가정할 수 있다. 아예 완전 오픈소스 모델이 AGI를 이뤄 아무나 다운받아 돌리면 된다던지. 그러면 앞에 큰 투자를 한 회사들이 투자 회수하기에는 불리해진다. 그때부터는 서비스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사업 승부가 달렸기 때문이다. 그런 악조건에 버틸 수 있는 건 구글 같은 거대 기업들과 한국 정부가 소유하는 자원을 사용해 아이디어로 경쟁하는, 그리고 경쟁에 이제야 뛰어들기에 상대적으로 지출이 적은 한국 기업들이다.
기획경제에 비해 자본주의가 효율적이라고 하는데, 사실 경쟁에서 도태되는 자원을 생각해보면 자원을 항상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건 아니다. 다른 체제에서 잘 안되는 동기부여가 되기 때문에 다른 수준의 결과를 생산하는 게 가능하다는 게 장점일 뿐. 큰 기업들의 투자 모두 회수하겠다는 건 기획경제적 발상이다. 자본주의에서는 개인들의 각자도생이지 사회 전체의 손익분기점은 따지지 않는다. 단, 미국은 순수한 자본주의 하라고 하고 한국은 할 수 있는 모든 방식은 다 사용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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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산업 경쟁에서 정부의 사회간접자본 역할이 중요하듯 반도체도 전략 산업이다.
삼성 파운드리를 분사한뒤 정부가 인수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삼성과 관계가 끊어지고나면 모든 사업을 다 하고 있는 삼성과 경쟁관계에 있는 애플, 다양한 팹리스들, 그리고 미중 경제 전쟁 이후를 생각하면 중국 기업들도 한국 파운드리에 주문을 시작할 수 있다. 지금은 삼성과 사업이 겹치지 않는 테슬라만 남아있다.
국민연금이 삼성전자 지분 8%가 있으니 분사후 주식교환으로 100% 정부소유 기업을 만들어도 괜찮다. 한국 정부와 경쟁하는 팹리스는 없으니.
TSMC는 공기업으로 시작했다.

